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2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19화(220/412)
#219. 다시 만난 그들
“염… 썩을, 기왕 쉴 거면 좀 더 쉬지. 왜 우리랑 할 때 복귀한데.”
“형도 욕하실 줄 아네요?”
“욕? 내가 무슨 욕을?”
“방금 염병이라고…….”
“아녀, 니가 잘못 들은겨. 암튼 찬호 너도 오늘 정신 바짝 차려. 내 평자책은 네 손에 달린겨.”
“그래 봐야 저 외야수인데요.”
“개막전 때 보니게 그놈 바깥쪽 밀어치는 연습한 거 같더라고. 우익수 쪽으로 타구 많이 갈겨. 어휴, 그 생각만 해도 살 떨려 죽겄구먼.”
컨디션 조절 문제로 선발 등판일이 밀린, 그 덕에 지지리도 운이 없게 한수혁의 복귀전과 스케줄이 딱 맞물린 류한결이 이찬호를 붙잡고 한숨을 푹푹 쉬어 대고 있었다.
영상을 통해 한수혁의 데뷔 첫 홈런, 그리고 첫 퇴장 장면을 본 류한결은 생각했다.
‘안 그래도 끔찍한 놈이 더 끔찍해졌구먼.’
KBO 투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155㎞/h에 육박하는 바깥쪽 커터를 밀어 쳐 장외홈런성 타구를 날리더니, 뜬금없이 포수와 시비가 붙어 녀석의 턱에 펀치를 날려버렸다.
아름다운 스윙이었고 멋진 펀치였다.
한국에서보다 17㎏가량 체중이 늘었다고 했던가?
그 때문에 유격수 수비를 포기했다고 하니, 타자들은 그나마 아주 약간이라도 편하게 됐지만…….
‘큰일났네.’
문제는 류한결 자신은 투수라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엄청나던 한수혁의 배팅 파워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첫 타석의 그 거대한 홈런은 한국에서였다면 외야 깊숙한 플라이로 끝났을 타구였다.
홈런을 치고 곧바로 퇴장을 당해버리는 바람에 더 이상 한수혁의 달라진 점을 볼 수 없었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경각심을 갖기에는 충분했다.
“찬호야.”
“네, 형.”
“넌 어쩌다 저 괴물하고 같은 지구로 왔디야.”
“우리가 먼저 여기 온 건데요.”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형.”
“왜?”
“그 녀석 3차전에 선발 데뷔전 치른대요.”
“쩝… 팀 분위기 작살 나겠구먼.”
류한결이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쩝쩝 다시는 사이, 두 팀 간의 경기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 * *
“챔피언,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뭔가 로테이션이 꼬이긴 했지만 난 자네를 원래 계획대로 기용할 생각이야. 혹시 이의 있나?”
“없습니다, 감독님.”
“좋아. 그 쓰레기 같은 자식을 때리느라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전혀, 컨디션은 100프로입니다.”
“혹시 상대 투수가 류라고 봐줄 생각은 아니겠지?”
감독 벤자민 레이놀즈의 말에 한수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형이 저 없는 동안 긴장이 좀 풀어진 거 같아서 다시 한번 조여줄 생각입니다.”
“흐흐, 그래. 자고로 그런 게 진정한 친구고 고향 사람에 대한 예의지. 좋아, 그럼 나가봐. 에인절스 자식들을 박살 내보자고.”
한수혁을 내보낸 감독이 자신이 작성한 라인업 용지, 그리고 향후 한 달간 계획된 선발 투수 로테이션 자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빅리그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그리고 투타 겸업을 보다 확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한수혁은 구단과의 협의를 거쳐 체중을 늘렸고, 지난 개막전 첫 타석에서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KBO에서 뛸 때보다 조금 둔해졌지만 파워면에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한수혁.
그런 한수혁을 감독은 올 시즌 2번 3루수, 혹은 좌익수 자리에 고정할 생각이었다.
다만 투수로서의 롤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3시즌을 뛰며 자신이 투타 겸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지만 빅리그의 일정은 KBO와는 차원이 달랐다.
정해진 휴식일 없이 드넓은 미국 땅덩이를 오가며 경기를 치러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투수 한수혁에 대해서는 조금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했다.
그렇기에 다니엘 감독은 시즌 초반 6선발 체제를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존 선발 5인방 바로 뒤에 한수혁이 나서는 식으로 말이다.
일단 그렇게 시즌을 치르며 한수혁에게 부하가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한 후 다시 한번 로테이션을 조정한다는 게 다니엘 감독의 계획이었다.
결론적으로 올 시즌 초반 한수혁은 3루수 혹은 좌익수로 경기를 소화한 후 팀의 여섯 번째 투수로 선발 등판, 그리고 그 다음 날 경기에는 휴식을 가지며 리그를 치를 예정이었다.
오클랜드와의 개막 시리즈에서 기분 좋은 위닝 시리즈를 거둔 시애틀은 이제 LA에인절스와 3연전을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경기에서 한수혁은 빅리그 첫 선발 데뷔전을 갖게 될 것이다.
‘대준… 저 녀석을 지휘하게 되니 생각할 게 너무 많군요.’
한국에서 자신이 모셨던 보스, 이대준을 생각하며 다니엘이 눈을 꼭 감았다.
가끔 의견 충돌이 있긴 했지만 두 사람은 항상 좋은 파트너이고 인생의 선후배였다.
한수혁의 미국 진출이 결정되던 날, 이대준 감독이 자신에게 소주잔을 내밀며 말했다.
곱게 잘 쓰고 무사히 돌려보내 달라고.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녀석은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고.
다니엘 또한 알고 있다.
한수혁이라는 선수가 얼마나 바람 같은 존재인지.
일반적인 야구 선수들처럼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에 모든 걸 내다바칠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랬다.
이대준의 말이 아니더라도 언제 불쑥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선포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다니엘의 목표는 간단하고도 원대했다.
한수혁을 데리고 있는 동안 어떻게든 팀을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 놓는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있는 건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 * *
“형, 잘 지내셨어요?”
“그럼, 잘 지냈지. 누구랑 상대 안 해도 되니 얼매나 마음이 편하든지.”
“흐흐.”
“머 하러 물 건너 미국까지 왔디야. FA 채우고 천천히 오지.”
“형 보고 싶어서요.”
“어쭈, 이제는 농담도 하네? 그려, 아무튼 잘 왔어. 재미있게 게임 해보자고.”
“네, 저도 재미있게 해보려고요.”
“아녀, 내가 말이 헛나왔네. 넌 그냥 재미없어도 돼. 그냥 혀. 야, 이찬호. 이리 와봐. 수혁이 왔어.”
“어! 한수혁! 야, 이게 몇 달 만이냐. 이야… TV로 보긴 봤는데 너 진짜 몸이 어휴… 이게 어디 동양인 몸이야?”
“형도 체중 좀 늘리셨나 봐요.”
“어, 여기서는 굳이 내가 도루까지는 안 해도 될 거 같아서. 하루 다섯 끼 억지로 꾸역꾸역 먹어 대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야.”
“아무튼 외지에서 보니 더 반갑구먼. 수혁아, 우리 살살 좀 하자. 응?”
“노력해볼게요.”
“그려, 글구 우리 포수 입은 좀 거칠어도 본심은 아녀. 집에서 고양이를 다섯 마리나 키우는 착하고 섬세한 놈이여. 괜히 턱주가리 날려버리지 말고. 쟤 없으면 내 공 잡을 애가 없어.”
“흐흐, 제가 무슨 깡패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 턱을 왜 날려요.”
“그려… 그랬으면 좋겠구먼. 알았어. 그럼 경기에서 보자.”
인사를 마친 한수혁이 뒤로 돌아 홈팀 덕아웃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류한결이 말했다.
“저놈, 이상하게 인간적이 되어 버렸네. 농담도 할 줄 알고.”
“그러네요. 체격이 커지면서 인성도 같이 늘어난 건가.”
“전에도 나쁜 놈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대하기 어려웠는데, 그렇지?”
“네, 그… 뭐랄까, 동생처럼 대하기가 좀 힘든 타입이랄까.”
“아무튼 근데 진짜 몸이 엄청나네. 저거 빗맞아도 홈런일 거 같은디.”
“고생하세요, 형.”
“몰러, 그냥 다 볼넷으로 내보내버릴겨.”
* * *
한편 한수혁을 반갑게 맞이한 건 류한결과 이찬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시즌 한수혁의 메이저리그 경기 한국 중계권을 따낸 KBC에서 두 사람이 시애틀 현지로 급파되었다.
한수혁의 빅리그 적응기를 취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들은 바로 한수혁에 있어서는 최고 전문가라 불러도 좋을 고동식 해설위원과 박철민 아나운서 콤비였다.
“오오… 이곳이 바로 빅리그 팀의 라커룸.”
“카메라, 저기 찍고 계시죠?”
“네, 사전에 구단에 허락받은 곳은 빠짐없이 담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아나운서님.”
“좋아요. 자, 위원님. 저희도 준비하죠. 한수혁 선수가 인터뷰 허락했다고 합니다.”
“오오오……!”
한수혁의 빅리그 경기 중계를 전담하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고동식은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지난 시즌, 라이벌 방송국인 MBS가 LA에인절스 중계로 짭짤한 재미를 보는 걸 지켜봐야만 했던 KBC는 한수혁의 빅리그 진출이 성사되자마자 즉시 중계권 협상을 벌였고, 치열한 경쟁 끝에 그 권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고동식 위원과 박철민 아나운서를 시애틀로 급파했다.
시즌 초반 한수혁을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라고 말이다.
고동식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편파 판정이니, 특정 선수 편애라느니 그런 소리를 듣지 않고 한수혁 중심의 경기를 중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할 판국에 밀접 취재를 할 기회까지 주어지다니.
“박 아나운서.”
“네, 위원님.”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한수혁 선수를 빨… 아니, 흠, 가능성을 알아보고 거기에 모든 걸 집중한 걸 거야.”
“갑자기?”
“자네도 수고했어. 그동안 욕받이 하느라 힘들었지?”
“네, 뭐… 휴우…….”
툭하면 폭주해 버리는 고동식과 방송국 사이에 끼어 눈물 겨운 시간을 보냈던 아나운서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간 있었던 수많은 경고와 징계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튼 이제 걱정하지 마. 빅리그잖아. 앞으로는 우리가 무슨 소리를 하든 그걸로 경고 먹을 일은 없을 테니까. 내가 진짜 편파 방송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지.”
“위원님…….”
비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되새기는 고동식을 보며 아나운서가 뭔가 말을 하려던 그때, 매리너스의 홍보팀 직원이 그들을 불렀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 맞죠? 이쪽으로 오세요. 시간은 길게 못 드리고… 음, 10분 내에 끝내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자, 위원님, 그리고 카메라 감독님. 바로 가시죠.”
“오케이.”
라커룸 이곳저곳에서 로컬 방송국과 매리너스 선수들의 인터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만, 정작 모든 이들이 궁금해할 몇몇 선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원래 경기 전 인터뷰를 따내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타이 존슨,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인터뷰 거절 의사를 밝힌 한수혁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한수혁이 미국 방송국과의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그가 데스몬드 킹이라는 머저리의 턱을 날리고 출장 징계를 당한 며칠 사이, 그 사건을 둘러싼 추측 기사들이 인터넷에 도배되었다.
입에 담기도 싫은, 그야말로 파파라치의 원조라 불리는 미국 기자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사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징계에서 복귀한 그가 기자들을 만나봐야 무슨 얘기가 나올지 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굳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대중들의 여론을 신경 쓸 이유를 찾지 못했다.
돈? 명예? 권력?
뭐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 한수혁이었다.
하고 싶지 않아도 되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세상에 몇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한수혁은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수혁이 경기 전 모든 인터뷰를 거절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어떤 기자들은 분노했고, 또 어떤 기자들은 아쉬워했다.
물론 세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존재했다.
“잠시만요, 좀 지나가겠습니다.”
“익스큐즈 미. 쏘리, 쏘리.”
기자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라커룸 가장 안쪽, 한수혁과 타이 존슨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는 KBC 취재팀이 바로 그랬다.
“한수혁 선수! 정말 반갑습니다! 이야, 진짜 몸이… 와우! 언빌리버블!”
“위원님, 잘 지내셨죠? 아나운서 님도 오랜만에 뵙네요.”
“저희야 뭐, 어휴. 안 그래도 미국 딱 도착하자마자 출장 징계 받을 거란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2경기로 그쳐서 정말 다행입니다.”
“저런… 그런데 그 이야기 물으려고 오신 건 아니죠?”
한수혁의 표정에서 아주 미세한 불쾌함을 느낀 고동식이 잽싸게 그 말을 받았다.
“전혀요! 뭐 그놈이 맞을 짓을 했겠죠. 그런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요. 음, 저희 시간이 딱 10분밖에 없으니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요. 에인절스 쪽에 가서 류한결 선수랑 이찬호 선수도 만나봐야 해서요.”
“바쁘시네요. 아무튼 좋습니다. 전 준비됐어요. 뭐든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박 아나운서, 그럼 질문은 내가 해도 될까?”
“네, 위원님. 그러시죠. 감독님, 카메라 준비되셨죠? 네, 좋습니다. 위원님, 바로 시작하시죠.”
“오케이.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흠흠흠, KBC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대한민국 야구계의 자랑, 2029년 대한민국 미혼 여성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에 뽑힌 한수혁 선수를 만나러 미국 시애틀에 나와 있습니다. 한수혁 선수, 반갑습니다. 먼저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인사 한마디 해주시죠.”
“결혼하고 싶은 남자……? 그런 설문조사도 있나요? 음, 아무튼 반갑습니다. 야구선수 한수혁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네요. 저는 지금 한결이 형, 찬호 형이 속한 에인절스와 경기를 앞두고 있는데요. 오랜만에 그 형들하고 야구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아마 한수혁이 아니라, 그를 상대해야 할 류한결일 거라 생각하며 고동식이 질문을 이어갔다.
“감사합니다. 자, 경기를 앞둔 선수를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으니 바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사실 제가 가장 묻고 싶은 건 음… 어쩌면 지금 상황에 안 어울릴 수도 있지만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 거 같아 질문 드립니다. 한수혁 선수, 빅리그에 진출을 결심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지금 그 선택에 만족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음, 제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해드린 적이 없나요?”
“네, 정확한 답변은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한수혁 선수.”
“그렇군요. 네, 좋아요. 그러고 보니 그랬던 거 같네요. 제가 빅리그 진출을 결심한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