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2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21화(222/412)
#221. 돌아온 괴물
“시발, 아직도 저러네. 한번 호구 잡히니까 끝도 없네, 이거.”
“What? CI BAL?”
“Oh, no, no! it’s my… 아, 젠장 혼잣말이 영어로 뭐더라? Myself! Talking to myself! 맞나, 이거?”
한국 게이머들이 전 세계 게임판을 휩쓸고, 거기에 K-드라마와 음식 먹방 컨텐츠가 각국으로 퍼져 나가며 시발이라는 한국 욕 역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무심코 뱉은 혼잣말에 시애틀 포수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자 이찬호가 다급하게 변명을 내뱉았다.
자기 허벅지만 한 팔뚝에 험상궂기 짝이 없는 얼굴,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굳이 포수와 말다툼을 벌일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지난 시즌 빅리그 진출 첫해, 이찬호는 타율 0.285, 출루율 0.356, 장타율 0.401, 14홈런, 35도루의 성적을 기록했다.
한수혁을 제외하면 한국 최고의 타자라 불리던 것을 감안하면 여러 모로 아쉬운 성적이었다.
원인은 수비 시프트였다.
선천적으로 부족한 파워를 배트 스피드로 커버하던 그는 장타를 늘리기 위해 잡아당기는 타격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부터 수비 시프트는 그에게 영원한 숙제 같은 것이었다.
다행히도 한국에서는 힘으로 그걸 뚫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빅리그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구속과 구위에서 KBO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공들이 날아들었다.
그런 공을 힘으로 잡아당겨 시프트를 뚫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모로 아쉬운 첫 시즌을 보낸 이찬호는 자신의 타격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도루를 포기하고, 타구에 힘을 싣기 위해 체중을 늘리고, 밀어치는 타격을 익히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그 노력의 결과 지난 시범경기에서 밀어 친 안타를 제법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다른 구단들이 보는 이찬호는 시프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타자인 것 같다. 첫 타석부터 저렇게 노골적인 시프트가 사용되는 걸 보니 말이다.
“플레이!”
수비 시프트로 경기 시간이 늘어지자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이에 대한 제약을 건 바 있다.
2루 베이스를 중심으로 좌우로 2명 이상의 수비수가 반드시 서 있어야 한다는 규정.
그 규정이 신설되기 전에는 유격수가 1-2루 사이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었다.
3-유 간을 3루수 혼자 커버하고, 1-2루 사이에 내야수 3명이 섰다는 뜻이다.
어쨌든 그때보다는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한숨이 나오는 건 마찬가지다.
시애틀의 유격수가 2루 베이스에 거의 붙다시피 서 있다.
텅 빈 3-유 간 공간을 지키는 건 오로지 3루수 하나뿐이다.
‘젠장.’
시프트가 더욱 치욕적인 건 상대가 뭘 노리는지 뻔히 알면서도 당하게 된다는 데 있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존 중앙으로 들어오다 역회전하며 몸쪽으로 꺾여 들어오는 하드싱커.
오늘 시애틀 선발로 나선 조나 버로우를 빅리그 선발투수로 자리 잡게 해준, 지난 시즌 이찬호가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그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한국에서였다면 한 번쯤 판정에 불만을 표시했었을 법한 그런 공.
하지만 지금 이찬호는 KBO의 슈퍼스타가 아닌 메이저리그의 2년 차 평범한 선수에 불과했다.
뭐, 그걸 떠나 어차피 AI를 이용한 볼 판정 시스템이 도입된 마당에 심판에게 항의를 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구장 여기저기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볼의 궤적을 추적해서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정한다.
그 결과에 항의를 해봐야 돌아오는 건 바보라는 비아냥뿐이다.
‘휴우… 침착하자. 침착해.’
어쨌든 공 하나를 잘 골라냈다.
방금 그 공은 아무리 잘 쳐봐야 내야 땅볼이다.
슈웅
파앙
“볼.”
똑같은 코스로 또 하나의 하드싱커가 날아들었다.
이찬호가 빅리그에 넘어온 후 어려움을 겪은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투수들이 변형 패스트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이었다.
포심과 거의 구속 차이가 나지 않는 투심, 싱커, 커터, 스플리터.
맞추기도 힘들고, 맞춰봐야 땅볼이 될 게 뻔한 위력적인 공들이 존 구석구석으로 날아드는데 처음에는 기가 질릴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찬호가 그보다 더한 괴물을 상대해본 적이 있다는 거였다.
170㎞/h 포심과 165㎞/h 변형 패스트볼을 던지는 한수혁이라는 괴물 말이다.
그 경험마저 없었다면 이찬호의 빅리그 적응은 조금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슈웅
따악
“파울!”
현대 야구가 잔인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각종 분석 장비와 통계 자료를 통해 선수 하나를 해부하다시피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가장 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하기 때문이다.
집요할 정도로 계속되는 몸쪽 승부.
제구가 약간 잘못된 것인지 존 중앙에 가깝게 들어온 포심을 받아 쳤지만 아쉽게 빗맞으며 원 볼 투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순간 이찬호의 직감이 발동했다.
짧지 않은 시간 야구를 하며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직감.
이번에는 몸쪽 공이 아닌 바깥쪽 공이 들어올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슈웅
예상이 맞았다.
타자에게서 가장 먼 바깥쪽을 향해 슬라이더가 맹렬히 날아들었다.
지난 시즌까지였다면 제대로 맞추기도 힘든, 억지로 쳐봐야 힘없는 땅볼이 되었을 그런 공이다.
하지만 그는 예전의 이찬호가 아니었다.
겨울 내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연습한 새로운 스윙.
바깥쪽 공을 상대하기 위해 장착한 새로운 스윙이 그 공을 향해 힘차게 뻗어갔다.
따아악!
‘됐다!’
맞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맞은 타구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지난 겨울 동안 흘린 땀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주인 없이 텅 빈 3루 베이스 위로 날아가는 타구를 보며 이찬호가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터억
“커헉?”
1루를 향해 달리던 이찬호가 다시 한 번 타구의 방향을 확인하던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글러브 하나가 타구를 낚아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한국에서 한수혁 때문에 당했던 다양한 굴욕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젠장, 젠장, 제엔장!’
이찬호가 이를 악물고 달리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저걸 잡아내다니.
분명 유격수 자리에 있던 놈이 대체 언제 3루 베이스까지 따라온 걸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최소한 2루타가 될 게 확실한 타구가 녀석의 글러브에 잡혔다.
이제는 2루가 아니라 1루에서 살아남는 게 문제다.
“이익!”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 올린 이찬호가 1루 베이스에 거의 다 다다른 순간,
슈우웅
3루 쪽에서 하얀 공 하나가 총알 같은 속도로 날아들어왔다.
그리고,
퍼어어엉
“아웃!”
엄청난 포구음과 함께 심판의 입에서 아웃 선언이 떨어졌다.
2루타성 타구를 치고 1루에서 아웃당한 이찬호가 얼빠진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Fuck……!”
한수혁의 송구를 받은 1루수 타이 존슨이 글러브를 벗고 아파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관중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103마일? 미친? 저게 진짜 맞는 건가?”
“좋아! 바로 이거야! 시발! 그래! 이걸 보려고 내가 그 좆 같은 시즌권을 구매한 거라고!”
“퍼킹 매리너스! 퍼킹 한수혁!”
관중들이 어딘가를 보며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 방향을 따라 이찬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AI 시스템이 관측한 송구 속도.
거기에는 103마일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기존 메이저리그 내야 송구 속도 최고 기록인 100마일을 가볍게 넘어서는 수치였다.
“이런 미친…….”
너무 어이가 없어 화도 안 날 지경이었다.
이제야 새삼 실감이 났다.
저 괴물과 다시 한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 * *
투수가 시속 150㎞/h로 던진 공이 홈플레이트 뒤 포수 미트 속으로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0.4초 내외다.
그 공을 타자가 받아 쳤을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난 시즌 빅리그 타자들의 타구 평균 속도는 150㎞/h, 최고는 무려 200㎞/h에 달했다.
복잡하게 계산할 필요 없이 투수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고, 그 공을 받아 친 타구가 수비수에게 날아오기까지의 시간은 고작해야 1초 남짓이라는 뜻이다.
지난 시즌, 불안불안한 시애틀의 내야 수비를 홀로 건사하다시피 한, 수비 하나만으로 팀의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찬 조쉬 올리버는 생각했다.
‘저 녀석은 대체 뭐지? 초능력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
좌타자로서 극단적인 풀히터인 이찬호를 상대하기 위해 1-2루 간 강력한 수비 시프트를 걸었다.
그리고 원 볼 투 스트라이크에 몰린 타자를 향해 바깥쪽 슬라이더가 날아들었다.
지난 시즌까지 이찬호의 타격 패턴을 감안할 때 그냥 지켜보다 삼진을 먹거나, 혹은 억지로 잡아당겨 2루 땅볼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큰 그런 공이었다.
하지만 예상이 빗나갔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몰라도 이찬호가 바깥쪽 공을 제대로 밀어쳤고, 힘이 실린 빠른 타구가 텅 빈 3루 베이스 쪽으로 날아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하지만 조쉬 올리버를 비롯한 시애틀 내야진들이 놀란 건 이찬호 때문이 아니었다.
그걸 미리 예견한 누군가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2루 베이스에 붙은 유격수를 대신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던 한수혁이 투구가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3루 쪽으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는 3루 베이스 위로 총알같이 날아가는 땅볼 타구를 그대로 건져 올렸다.
2루타가 될 뻔했던 타구가 그렇게 한수혁의 글러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데 조쉬가 진짜 놀란 건 그 다음 플레이였다.
타구를 잡자마자 몸의 중심을 회복한 한수혁이 1루를 향해 총알 같은 송구를 뿌렸다.
그래, 그건 총알 같다는 말 외에는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그런 송구였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간 송구가 1루수의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고, 심판의 입에서 아웃이 선언되었다.
조쉬가 자기도 모르게 전광판을 돌아보았다.
103마일, 167㎞/h.
관중들의 입에서 구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2루타성 타구를 날리고 1루에서 아웃당한 타자가 세상 다 산 듯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헤이.”
“음? 왜.”
다시 정상 수비 위치로 돌아온 조쉬가 한수혁에게 물었다.
“어떻게 안 거야? 타자가 그 공을 밀어… 아니, 타구가 그쪽으로 갈 거라는 걸?”
“흠.”
조쉬의 질문에 한수혁이 잠깐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피식 웃으며 답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고, 그냥 야구를 한 16년 정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걸.”
“뭐?”
“됐고, 그보다 다음 타자가 기습번트를 시도할지도 모르니까 대비하는 게 좋을걸.”
무심코 던진 한수혁의 말 한마디에 조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기습번트?
설마, 저 에인절스 놈이 지난 시즌에 기습번트를 시도한 적이 있던가?
조쉬가 이도 저도 결정을 못 내리고 갈팡질팡하던 그 순간,
툭
“컥!”
정말 타자가 초구에 기습번트를 댔다.
3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향하는 제법 잘 댄 번트 타구.
스타트 타이밍을 놓친 조쉬가 어정쩡한 자세로 앞으로 달려가던 그때,
“비켜!”
어느새 나타난 한수혁이 맨손으로 공을 걷어 올려 그대로 1루를 향해 송구.
파앙
“아웃!”
“우아아아아!”
“젠장, 미친! 너무 좋아! 빌어먹을! 한수혁! 네가 최고다!”
“저런 녀석이 있었으면 진작 데려와야 했을 거 아냐!”
“드디어 이 팀에 제대로 된 3루수가 생겼군!”
관중들이 저렇게 미쳐 날뛰는 이유를 조쉬는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시즌 시애틀의 3루를 지키던, 지금은 뉴욕 메츠로 팔려간 그놈은 한 시즌 동안 무려 41개의 실책을 기록했었다.
보이지 않는 실책까지 감안하면 팀에 미친 해악은 그 수치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애틀이 그런 3루수를 계속 쓸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나마 녀석이 팀내 유일한 3할 타자였기 때문이다.
“좋아! 빨리 저 녀석의 유니폼을 더 찍어! 미친듯이 찍어내라고! 내가 다 사줄 테니까!”
“오빠!”
조쉬가 처음 빅리그에 데뷔할 때만 해도 꽤나 얌전했던, 하지만 몇 년간의 암흑기를 거치며 광폭화된 관중들의 함성과,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왠지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어떤 동양인 여자 팬의 목소리가 야구장에 울려 펴졌다.
갑자기 이유 모를 안도감이 밀려 들었다.
지난 시즌 유격수로서 팀의 내야를 지휘하고, 부족한 3루수의 뒤를 커버하느라 온 정신을 쏟아야 했던 조쉬 올리버가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두 개의 안타성 타구를 깔끔히 처리하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무덤덤한 표정의 한수혁이 고개를 숙인 채 타자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