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2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23화(224/412)
#223. 전국구 스타
야구를 향한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 톰 글래빈
투수를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건 팔이 아니라 뇌라고 불리는, 두 귀 사이에 있는 것이다. – 그렉 매덕스
배팅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 – 워렌 스판
스트라이크를 던져라. 홈플레이트는 움직이지 않는다. – 샤첼 페이지
그는 세 가지 속도의 공을 던진다. 느린 공, 더 느린 공, 가장 느린 공. – 밀트 파파스
투수에게 중요한 건 구속이 아닌 제구력, 혹은 두뇌임을 강조하는 여러 명언들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구속만 빠른 멍청이보다는 스마트한 두뇌와 칼 같은 제구력을 갖춘 투수가 더 좋은 선수임에 분명하니까.
예를 들어 서울 워리어스의 천상진처럼 말이다.
하지만,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Fuck!”
한 선수가 구속과 제구력, 그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면?
105마일에서 최대 107마일의 구속을 유지하면서 존 구석구석을 찔러 대는 강속구.
슈웅
따악!
“아웃!”
타자의 몸쪽, 바깥쪽으로 마구 휘어들며 범타를 양산해내는 투심과 커터.
슈융
부웅
“스윙! 아웃!”
결정적인 순간 헛스윙을 유도해내는 체인지업과 스플리터.
“Holy shit…….”
한수혁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도 안 되는 강속구와 변화구의 향연 앞에 에인절스 타자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지켜보면 존 구석에 107마일 강속구가 날아와 꽂히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면 범타, 아니면 삼진을 먹기 일쑤고.
타자들을 더더욱 절망에 빠트린 건 상식 밖의 투구 템포였다.
처음에는 포수의 리드를 따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한수혁이 경기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포수가 할 일이라고는 투수의 사인을 받은 후 피치컴을 통해 그걸 수비수들에게 전달하는 게 고작이었다.
“헉헉헉…….”
포수뿐만이 아니었다. 그라운드 위에 서 있는 시애틀의 야수들은 지금 한수혁의 템포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투수에게 공을 던지기 전 시간이 필요하듯이 야수에게도 뭔가를 생각하고 수비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수혁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템포로 공을 뿌려 댔다.
피치컴의 리드에 따라 공 하나하나에 수비 위치를 조정하던 야수들이 먼저 지쳐버렸다.
벤치에서 잠깐 타임이라도 걸어서 경기 흐름을 조절해 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마저 기대하기 어려웠다.
슈웅
부웅
“스윙! 아웃!”
이유는 간단했다.
한수혁이 6회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1루로 내보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신 나간 인간은 빅리그 첫 선발 등판에서 세계 최고 구속 기록을 갱신한 것으로도 모자라 6회까지 퍼펙트 게임을 진행중이었던 것이다.
그런 투수의 리듬을 방해할 수 있는 간 큰 인간은 적어도 이 구장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봐, 혹시…….”
“쉿!”
시애틀의 2루수가 한수혁에게 뭔가를 말하려다 타이 존슨에게 저지당했다.
그제야 분위기를 눈치챈 2루수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오늘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한수혁에 대해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던 일부 선수들, 코칭스태프, 그리고 홈팬들이 그를 경의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되었다.
한수혁이 어떤 선수인지, 그가 KBO에서 이룩한, 국제대회에서 이뤄낸 성과가 진짜였다는 걸 말이다.
“좋아! 이대로 한번 가보자! 에인절스 놈들을 박살 내주자고!”
“고! 고! 고!”
어쩌면 빅리그 데뷔 첫 무대에서 퍼펙트 게임이 나올 지도 모를 상황.
시애틀 야수들이 기합을 내지르며 그라운드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따악
“아아앗!”
“빌어먹을! 1루! 1루!”
* * *
[시애틀 매리너스의 루키 한수혁, 빅리그 선발 데뷔전에서 107마일 던지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되다!] [20년 만에 세계 최고 구속 기록 경신한 한수혁 “제구에 집중했을 뿐 구속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뜻인가?] [7회 원아웃까지 19타자 맞아 삼진 14개 포함 완벽하게 막아낸 한수혁, 3루수 실책으로 퍼펙트가 깨진 것에 대해 “KBO에서 퍼펙트는 이미 몇 번 해봤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퍼펙트가 깨지자 곧바로 투수 교체를 단행한 벤자민 레이놀즈 시애틀 감독 “기록이 깨진 이상 무리를 시킬 이유가 전혀 없다. 그는 올 시즌 우리 팀의 중심타자이자 풀타임 선발투수다.”] [3루수로 출전했다 결정적 에러 저지른 백업요원 로니 몬타릭 “혀를 깨물고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한수혁이 그러더라. 쓸데없는 생각 말고 저녁이나 같이 먹으러 가자고.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이 팀의 리더 중 하나다.”] [한수혁의 무실점 투구에 힘입은 매리너스, 에인절스를 5 대 1로 꺾으며 시리즈 스윕. 5승 1패로 지구 단독 선두 유지] [경기장을 찾은 시애틀 매리너스 팬들 “그는 단순한 투타겸업 선수가 아닌 홈런왕이자 다승왕이 될 수 있는 선수다. 저런 멋진 선수를 데려온 구단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중계된 이날 경기, 야구팬들 “저 말도 안 되는 공을 던지는 투수는 대체 누구인가? 뭐? 저 녀석이 타자라고? 투수도 하고, 타자도 한다고?”] [거침없이 진격하는 시애틀 매리너스, 다음 상대는 지구 라이벌 텍사스 레인저스]똑똑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팀과 관련된 기사를 들여다보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사장이 노크 소리에 반응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누군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부름을 받고 달려온 이 팀의 단장 다니엘 미첼이었다.
“절 찾으셨다고요?”
“그래, 이제 들어온 건가?”
“네, 미팅이 좀 길어져서… 그보다 무슨 일인가요?”
“좋아, 바쁠 텐데 거두절미하고 묻지. 혹시 ESPN 놈들이 무슨 이야기하지 않던가?”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건지?”
다니엘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사장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지난 한수혁 선발 등판 경기가 갑자기 ESPN 전국 중계로 변경된 것도 그렇고… 내가 보고 받기로는 다음 선발 경기도 이 녀석들이 맡는다고 했다지?”
“네, 맞습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
미국의 국기인 야구의 인기가 다른 프로 스포츠, 그러니까 미식축구나 농구, 아이스하키 같은 종목에 밀리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정적인 경기 분위기와 갈수록 늘어지는 경기 시간도 문제였고, 다른 종목과 달리 뛰어난 선수 하나가 경기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도 한 몫을 차지했다.
이러한 경기 지배력의 문제는 결국 미국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슈퍼스타의 부재로 이어졌다.
쉽게 말해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스포츠 스타 중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를 찾는 게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현 시점에서 빅리그 최고 스타인 타이 존슨조차 인지도만 따지면 미국 전체 프로 스포츠 선수 중 열 손가락 안에 들까 말까 한 수준이니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다.
경기 분위기나 시간 단축 같은 문제는 룰 개정, 혹은 새로운 시스템 도입으로 어느 정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두 번째 문제, 그러니까 슈퍼스타의 부재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식축구나 농구, 아이스하키, 축구처럼 경기 시간 내내 쉴 새 없이 두 팀이 공방전을 펼치는 종목과 달리 야구는 투수가 던진 공 하나마다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정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턴제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턴제 게임의 특성이 하나 있는데 그건 한 선수가 경기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극도로 제한된다는 뜻이다.
농구처럼 수비 리바운드를 잡은 선수가 혼자 상대 진영을 혼자 헤집고 역전 덩크슛을 날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한편 야구에서 슈퍼스타가 탄생하기 힘든 데에는 경기 중계와 관련된 문제도 한 몫을 차지했다.
다른 종목과 달리 시즌 내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경기가 진행되는 야구는 주로 지역 방송을 통해 해당 지역 내에서만 중계 송출이 이루어지곤 한다.
가뜩이나 적극적으로 뭔가를 검색하고 공부하는 것에 인색한 미국인의 특성상 자신의 팀이 아닌 다른 팀, 다른 리그 선수에 대해 무지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 역시 미국 전역을 아우를 수 있는 슈퍼스타의 부재에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ESPN 같은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는 일부 경기를 미 전역에 중계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경기의 수가 많지 않을뿐더러, 방송국과 사무국이 마음대로 결정을 하다 보니 각 구단들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거다.
시청률로 먹고 사는 방송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주목도가 높은 경기 위주로 전국 중계를 잡을 수밖에 없기에 팀별 형평성 따위는 전혀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시애틀의 사장이 의문을 품고 있는 건 그런 도도한 방송국 놈들이 갑자기 한수혁의 선발 경기를 미국 전역으로 중계했다는 점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다음 선발 경기 역시 자신들이 전국 중계를 하겠다 나섰고 말이다.
이건 대놓고 한수혁을 밀어주겠다는 뜻이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사장은 다니엘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장의 표정을 읽은 다니엘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야 뭐 무조건 환영할 일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그렇지. 그냥 나는 이유가 궁금한 것뿐이야.”
“음.”
“혹시 말이야……. 정말 혹시나 해서 그런 건데 이번 일이 한수혁의 입단식 당시 그 일과 연관이 있나?”
사장의 물음에 다니엘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저도 확신할 수 없지만 네, 저도 그렇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렇군.”
사장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한수혁의 입단식 당시 불쑥 야구장을 찾아 구단주를 비롯 모든 시애틀 관계자를 긴장시켰던 한 가족.
한수혁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난생 처음 야구장을 찾은,
이 미국의 지배자인 로펠스 가문, 그들의 입김이 닿은 모양이다.
그런 사장의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다니엘이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슬쩍 알아봤는데 한수혁 선수가 그분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더군요.”
“그분?”
“네, 로펠스의 차기 가주님 말입니다.”
“아아, 그 도련님. 그런데 무슨 메시지였지?”
“형 경기 중계 보느라 역사 수업을 빼먹어서 엄마한테 혼났다고. 그래도 다음에도 꼭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네요?”
“오…….”
“방송국이나 사무국 놈들이나 뭐 알아서 납작 엎드렸겠죠.”
“으으음…….”
그제야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로펠스 가문의 입김이 닿았다, 그것만으로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사장이 다니엘을 향해 말했다.
“다니엘.”
“네, 사장님.”
“일단 구단주님에게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 VIP용 스카이박스 전면 리모델링부터 시작하자고. 그분들이 언제 경기장을 찾을지 모르니 말이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한수혁 말인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제대로 한번 밀어줘보자고. 혹시 알아?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전국구 스타가 우리 팀에서 나올지 말이야.”
“그것 역시 매우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 그럼 나가봐.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한수혁 그 친구, 더 철저하게 관리해주고 말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사장과의 대화를 끝낸 다니엘이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굳이 사장의 지시가 없었더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전국구 스타라 불렸던, 뉴욕의 황제, 혹은 뉴욕의 연인이라 불렸던 데릭 지터.
실력과 인지도, 모든 면에서 미국을 대표했던 스포츠 스타.
그 선수를 뒤를 이을 만한 슈퍼스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홍보 마케팅 예산을 대폭 늘려야겠군. 저렇게까지 말했으니 자기도 양심이 있으면 결제를 해주겠지.’
그는 한수혁이 경기, 아니, 리그를 지배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다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오직 하나, 그런 한수혁의 존재를 미국 전역에 알려 진정한 월드스타로 만드는 것뿐이다.
‘얼마나 걸릴까? 그때까지 우리가 그를 데리고 있을 수 있을까?’
KBO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낸 벤자민 감독만큼은 아니지만 다니엘 역시 한수혁의 자유분방한 성격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돈이나 인기, 명예, 권력 같은 것에 구애받을 인간이 아니었다.
지금은 빅리그에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뛰고 있지만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할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시애틀에서 일하기 전부터 이 팀을 사랑해왔던, 단장이기에 앞서 매리너스의 진짜 팬인 다니엘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한수혁이 이 팀에 있는 동안 어떻게든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우승을 계기로 시애틀을 명문 구단으로 만든다.
‘음,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네.’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다니엘의 표정에 기분 좋은 흥분과 설레임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