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2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25화(226/412)
#225. 애송이
시애틀이 6승 1패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던 그때, 그보다 조금 늦게 시즌을 시작한 KBO에서는 서울 워리어스가 부산 타이탄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3연전을 치르고 있었다.
영원한 꼴찌 후보, 창단 이후 단 한 번도 정규 시즌 우승을 기록하지 못한 팀, 21세기 들어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만져본 적이 없는 기적의 팀 부산 타이탄스.
하지만 이번 2030 시즌, KBO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가진 팀을 꼽으라면 단연 이 부산 타이탄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KBO 출범 후 48년간 타이탄스 구단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진산고와 경서고 카르텔.
팀이 바닥을 벅벅 기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호의호식하던 세력들이 일거에 청소를 당했다.
그 기적 같은 일을 일궈낸 건 다름 아닌 타이탄스의 신임 구단주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영권 승계가 유력했던 큰형을 제치고 대신 총수의 자리에 오른 전 회장의 셋째 아들.
후계자 수업을 받던 시절 아주 잠깐 타이탄스 구단 운영에도 관여를 했던 그는 정권을 잡자마자 곧바로 야구단에 칼을 빼 들었다.
당연히 그룹의 큰 아들이 총수가 되리라 생각하고 그쪽으로 줄을 대고 있는 야구단 내 모든 세력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타이탄스를 장악하고 있던 사장과 단장, 프런트 직원, 감독, 코치,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감사, 그리고 후속 조치가 이뤄졌다.
급속한 변화는 팀에 더 해가 될 거라 조언했던 사장의 목이 가장 먼저 날아갔다.
그리고 그 라인을 이루던 운영팀장과 홍보팀장, 그리고 1, 2군 코치 넷이 사이 좋게 손을 잡고 팀에서 쫓겨났고, 능력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베테랑 몇이 아무 조건 없이 팀에서 방출 당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차기 사장 자리를 노리던 단장, 그리고 그와 연결되어 있던 코치와 전력분석팀장, 마케팅 팀장, 감독, 선수 몇이 이어서 짐을 쌌다.
순식간에 초토화된 부산 타이탄스.
공석이 된 사장 자리에 전문 경영인을 앉힌 신임 구단주는 세상을 향해 선포했다.
설사 앞으로 몇 년간 또 꼴찌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밥 버러지들이 팀을 좀 먹는 걸 좌시하지 않겠다고. 누가 됐든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소문이 들려오면 그 즉시 짐을 싸게 될 거라고.
그 말 한마디에 아직 목줄이 붙어 있던 코치와 선수 몇이 납작 엎드렸다.
비밀리에 진행되던 모임, 그리고 끈끈하게 연결되어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던 라인이 순식간에 단절되었다.
[부산 타이탄스, 신임 단장에 한국계 미국인 조나단 리 임명] [신임 단장 조나단 리 “워리어스의 양해를 얻어 좋은 감독을 모시게 되었다. 지난 시즌 워리어스 2군 감독이었던 제이슨 베넷이 앞으로 3년간 타이탄스를 이끌게 될 것이다.”]한수혁이 미국으로 진출하고, 벤자민 레이놀즈 수석코치가 매리너스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며 워리어스에 남아 있던 몇몇 외국인 코치들도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나선 상태였다.
그중 황폐화되었던 워리어스 2군을 정상으로 돌린 공을 인정받고 있던 제이슨 2군 감독이 부산 타이탄스의 새로운 감독이 되었다.
[부산 타이탄스 “새로운 감독이 워리어스의 위닝 멘탈리티를 타이탄스에도 이식해주길 기대한다”] [부산 야구계 원로들, 급작스러운 타이탄스의 행보에 우려의 목소리] [타이탄스 팬들 “구단의 과감한 행보를 적극 지지한다. 야구 원로 OUT!”]몇 년 전 워리어스에서 있었던 대대적인 구단 개혁이 부산 타이탄스에서 진행되었다.
그 덕분일까.
아직 제대로 뒷수습을 못 한 상태였지만, 구단 분위기를 좀먹던 놈들이 사라지자 남아 있는 타이탄스 선수들의 얼굴에는 지금까지의 안이함이 아닌,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바로 경기력으로 이어졌다.
에이스 임준영이 등판한 경기에서 먼저 1승을 거둔 워리어스는 이어진 2차전에서 타이탄스에게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2선발 천상진이 7회까지 2실점으로 잘 막아냈지만, 중간계투로 나선 이영주가 석점 홈런을 맞으며 순식간에 역전을 허용, 그대로 2차전을 내주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3차전.
따아아악!
“커헉!”
“3루! 3루!”
“이이익!”
슈웅
퍼엉
“아웃!”
“우아아아아!”
“서형주 나이스! 나이스 플레이!”
“서형주! 서형주! 서형주!”
워리어스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올 뻔했다.
옆구리에 불편함을 느낀 에릭 톰슨을 대신해 선발로 투입된 최마루가 5회 결정적인 위기를 막아낸 후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역전 적시타가 될 수 있었던 타구를 중견수 서형주가 멋지게 처리하며 4 대 3, 한 점 차 리드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수혁이 떠난 후 워리어스 선수 운영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그가 빠진 선발진은 임준영, 천상진, 에릭 톰슨, 라이언 스타크, 최마루 순으로 재편되었다.
이제는 서른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이만식은 선발이 아닌 롱릴리프, 혹은 셋업맨으로 팀에 기여하고 있었다.
타선에서도 달라진 점이 많았다.
한수혁이 빠진 유격수 자리는 동기 유인철이 메우고 있다. 비록 공수주 모든 면에서 한수혁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워리어스 팬 중 그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세상에 한수혁을 대신할 유격수 같은 건 없다는 걸 그들 모두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한편 서형주는 여전히 주전 중견수 겸 리드오프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민주현 영입 이후 지명타자로 밀려났던 안치욱은 절치부심 끝에 3루수 자리를 되찾았다.
안치욱에게 3루를 양보한 민주현은 이제 마흔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조성오를 대신해 1루수로 출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덕수는 거대한 체격과 체중 문제로 점점 포수 출장 횟수를 줄이는 대신 지명타자로 나서며 타격에 조금 더 힘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변했지만 딱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워리어스 덕아웃에 남아 있는 한수혁의 존재감이었다.
“최마루, 잘했어.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휴우, 최마루. 너 마지막 공 내가 포심은 안 된다고 했지?”
“뭐래, 야, 거기서 어설픈 변화구 던졌으면 무조건 넘어갔어. 용병 쟤 팔뚝 좀 봐라.”
“하아… 입만 살아가지고. 됐고, 그보다 수혁이 형한테 메시지를 받았다고?”
“흐흐흐, 그래. 정말 영광스럽게도 그분께서 친히 내 미천한 휴대폰에 거룩한 문자를 남겨 주셨다 이 말이지.”
“얼마나 귀찮게 계속 메시지를 보냈으면… 아무튼 뭐라고 하시는데?”
“그게 음… 이게 좀 긴데, 일단 동석이 너한테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쓸데없는 프레이밍 할 생각 말고 기본에 충실하라고. 공 잡을 때마다 엉덩이 들썩거리는 것도 그만두고.”
“헐… 내가 진짜 그랬나.”
“알아서 판단하고, 그리고…….”
옆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형주가 불쑥 끼어들었다.
“혹시 나한테는 뭐라고 안 하든?”
“아! 형주 형님! 방금 수비, 정말 감사합니다.”
“됐고, 한수혁 그 자식이 나한테 뭐라고 안 했냐고.”
“아, 아, 네, 그게 그러니까…….”
“왜? 암 말도 안 하든?”
“하긴 했는데 그게…….”
“뭔데? 아, 답답해 죽겠네. 그냥 시원하게 말해.”
“넵! 타석에서 쓸데없이 폼 잡지 말고, 집 청소나 똑바로 하라고 전해달라고…….”
“…젠장.”
정곡을 찔린 서형주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어디론가 사라지자 안치욱이 대신 옆으로 다가왔다.
“나한테는?”
“아, 치욱이 형님.”
“됐고, 뭐라 했는데?”
“…스윙할 때마다 팔꿈치 자꾸 벌어지면 미싱으로 몸통에 박아버릴 거라고…….”
“나쁜 놈… 몇 달 만에 한다는 소리가.”
서형주와 마찬가지로 뭐라 할 말이 없어진 안치욱이 배트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마루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수혁이 형, 보고 싶다. 이제 몇 달밖에 안 됐는데.”
“그러게.”
“박동석.”
“왜?”
“나 말리지 마라.”
“뭘?”
“내년에는 무조건 포스팅으로 미국 간다.”
“헛소리하지 말고 오늘 경기부터 잡아. KBO에서 5이닝 3실점 하는 놈을 어떤 정신 나간 미국 구단이 데려가?”
“야, 그건 내가 갑자기 등판 일정이 당겨져서……!”
“어? 너 지금 투수코치님 디스한 건가? 코치님! 여기 마루가 읍! 읍! 이거 놔! 퉤! 퉤!”
이제는 어엿한 프로 3년 차가 된, 하지만 여전히 어려 보이기만 하는 막내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워리어스 선수들이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렸다.
헤어진 지 고작 몇 달밖에 안 됐지만 벌써부터 그 존재가 그리웠다.
팀에 부족한 점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메워주던 기둥 같은 존재.
한수혁.
아무리 잊으려 해도 그에 대한 기억과 존재감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렇기에 워리어스 선수들, 그리고 팬들이 한수혁을 잊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이 세상 누가 와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선수이니까.
* * *
쾅!
“Fuck! Fuck! Fuck!”
뉴욕 양키스타디움의 원정팀 라커룸.
오늘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동안 무려 다섯 점을 내준 후 강판당한 시애틀 5선발 제이크 하워드가 자기 라커를 주먹으로 때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어렵사리 잡은 빅리그 선발 마운드에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결과를 남긴 자기 자신 말이다.
“이봐, 그만 진정하라고. 그러다 손이라도 다치면 어쩌려고.”
“…젠장, 미안해요, 타이.”
“아니, 나한테 미안할 건 없고, 난 그저 네 손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뿐이야.”
“이해했어요. 고마워요.”
“좋아, 그럼 가서 샤워부터 하고 머리 좀 식히라고, 친구.”
그 모습을 보다 못한 타이 존슨이 나서 상황을 정리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1차전에서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가 완투승을 하며 6승 1패, 압도적인 페이스를 기록했던 매리너스는 이어진 텍사스와의 2, 3, 4차전에서 3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너무 잘했고, 반면 매리너스 선수들은 그보다 조금 못했을 뿐이다.
그 3연패 기간 동안 한수혁이 세 개의 홈런을 추가했고, 타이 존슨 역시 1개의 홈런과 5개의 타점을 올렸지만 결국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거기까지는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홈 10연전이 끝나고 양키스와의 원정 3연전을 위해 뉴욕으로 온 시애틀은 첫 번째 경기에서 또 한 번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4연패, 개막 후 7경기에서 6승 1패를 달리던 팀이 순식간에 지구 4위로 떨어졌다.
당연하게도 선수단의 분위기도 함께 축 처져버렸다.
굳이 리더 역할을 자청할 생각은 없지만, 베테랑으로서 팀 분위기에 책임감을 느낀 타이 존슨이 몇몇 선수들을 위로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거기에는 한수혁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 바나나를 먹고 있었다.
“젠장, 저기 저 녀석들이 네 반만큼이라도 대범했으면 좋으련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타이. 아직 어려서 그래요.”
올 시즌 시애틀 매리너스의 주전 라인업의 평균 나이는 고작 26.5세에 불과했다.
젊다기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그런 나이였다.
“어리다… 그래, 이제 스물 초반인 네가 할 말은 아니지만 확실히 어리기는 하지.”
“야구를 하다 보면 그냥 이럴 때도 있는 법인데, 흠…….”
“흐흐, 그것 참.”
타이 존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나이로 치면 이 팀에서 가장 어린,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좌절하고 라커에 머리를 박고 있어야 할 놈이 저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니.
생각할수록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었다.
어쨌든 나이니 뭐니 그런 고리타분한 걸 떠나 한수혁의 말이 맞다는 걸 타이 존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별 일 아니다.
야구라는 게 원래 연승을 달리다가 아무 이유 없이 연패에 빠질 수 있는 거다.
물론 자신 역시 그걸 이해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웃차.”
“젠장, 애송이.”
“방금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누가 떠오르네요.”
“누구?”
“있어요, 나만 보면 자꾸 너클볼 던지지 말라고 하는 사람. 아무튼 왜요?”
“내일 경기는 기대해도 되겠지?”
타이 존슨의 말에 한수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내일은 좀 길게 던져보려고요. 우리 팀 애송이들, 저대로 두면 울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