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2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27화(228/412)
#227. 유니폼의 무게
‘이상하다. 이렇게 아무 단서도 안 나올 수가 있나?’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민태현의 집이자 한수혁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임시 아지트로 사용 중인 곳에서 민예린은 뭔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그건 다름 아닌 한수혁의 부탁 때문이었다.
처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아는 거라고는 나이, 인종, 그리고 음악을 한다는 것밖에 모르는 여자를 찾아 나섰을 때만 해도 솔직히 막막했다.
의뢰를 받은 탐정 사무소도 민예린이 워낙 많은 돈을 줬기에 억지로나마 일을 시작한 거지, 솔직히 못 한다고 배를 째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수혁이 그녀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사는 곳도 알게 되었다.
오렌지 카운티에 사는 스무 살 정도의 음악을 하는 여자.
탐색 범위가 확 좁아졌다.
마침내 그녀의 인상착의를 담은 몽타주가 완성되었을 때, 민예린은 확신했다.
이제 그녀를 찾는 건 시간 문제라고.
좁게는 오렌지 카운티, 넓게는 LA를 몽땅 뒤지다 보면 금세 그 여자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없습니다. 몇몇 비슷한 사람들을 찾긴 했는데 만나 보니 아니었어요. 적어도 LA에는 그런 여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LA에서의 조사를 마친 탐정은 이제 미국 전역을 떠돌고 있다. 혹시나 다른 도시에서 음악을 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기약 없는 일이었다. 의뢰를 한 사람도, 그 의뢰를 수행 중인 사람도 모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임무였다.
‘일단 저희도 가용 가능한 모든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데… 혹시 모르니 소도시 쪽도 찾아볼까요?’
처음 이 조사를 시작한 지 벌써 1년 반, 아니,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다.
직접적으로 물은 적은 없지만 이 수수께끼의 여자가 한수혁에게 꽤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이란 걸 민예린은 알고 있었다.
가끔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한수혁의 표정, 뭔가를 그리워하면서도 혹은 두려워하는 그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건 결코 남녀 사이의 감정 같은 게 아니었다.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민예린이 보기에는 그랬다.
‘오빠…….’
그렇기에 꼭 찾아주고 싶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수혁의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무언가가 깨끗이 정리될 수 있도록, 그래서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뭔가를 고민하던 민예린이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의 연락처를 눌렀다.
– 어, 예린아. 무슨 일이야?
“언니, 바쁘세요? 혹시 통화 잠깐 가능할까요?”
– 음, 10분 정도는 가능. 아직 촬영 시작 안 했거든.
“감사합니다. 언니, 다른 게 아니라…….”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김은별,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더욱 잘 알려진 배우이자 로펠스 가문과도 연이 닿아 있는 바로 그녀였다.
현 시점에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에게 민예린이 도움을 요청했다.
* * *
– 멋진 저녁입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멋진 경기가 될 것 같군요. 뉴욕 양키스와 시애틀 매리너스 간의 시즌 2차전이 준비 중인 양키스타디움입니다. 오! 어서 와요. 데이브, 라커룸 분위기는 어떤가요?
– 반갑습니다. 일단 물부터 한 모금 마시고, 좋아요. 그럼 양팀 분위기부터 짚고 넘어가야겠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 꽤나 긴장해 있더군요. 최근 4연패를 당한 시애틀은 물론이고, 어제 경기를 잡으며 다시 지구 2위로 올라선 양키스도 오늘 경기의 중요도 때문인지 바싹 긴장해 있더라고요.
– 좋습니다. 그 얘기는 오늘 선수들이 등장할 때마다 조금씩 들어보는 걸로 하고, 방금 전 언급한 대로 개막 첫 주 아메리칸 리그 전체 1위를 달리던 시애틀이 순식간에 4연패를 당하며 위기에 몰렸습니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나요?
–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경험 부족이죠. 저 팀은 아직 어려요. 주전 라인업의 평균 나이가 26.5세죠. 심지어 타이 존슨을 포함한 수치가 그 정도입니다. 세상에, 내 조카보다 어린 녀석들이 연봉 수백만 달러를 받으면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니.
– 돈 얘기는 하지 말죠. 그래 봐야 우리만 서글퍼지니까. 경험 부족이라, 음, 좋은 지적이군요. 확실히 장기 레이스에서 경험보다 중요한 건 없겠죠. 시애틀이 타이 존슨에게 그 어마어마한 돈을 안긴 것도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일 테고요. 좋아요. 자, 그럼 또 다른 이유는 없을까요?
– 당연히 있죠. 공수의 밸런스가 좋지 않아요. 모두들 알다시피 매리너스는 공격의 팀이죠. 에이스인 라이언 티보우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선발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어요. 지난 시즌 시애틀 선발진의 성적을 살펴보죠. 2선발이 고작 9승, 3선발 8승, 4선발 6승… 맙소사, 최하위를 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네요.
– 그 부족한 투수진을 공격력으로 메웠다?
– 맞아요. 야구를 조금 오래 본 시청자들이라면 이렇게 이해하면 빠를 것 같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지금 시애틀 매리너스가 아주 닮은 꼴이라고 말이죠.
– 세상에, 지금 저 시애틀의 타자들을 알버트 벨, 매니 라미레즈, 짐 토미, 케니 로프턴, 카를로스 바에르가, 샌디 알로마에 비유하는 건가요?
– 흐흐, 물론 당장의 성적만 놓고 보면 멀고도 멀었죠. 제 말은, 음, 그러니까, 네, 몇 년이 흐른 후라면 분명 그들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젊고 파괴력 넘치는 타선이 될 거라는 거예요. 무엇보다 그 당시 알버트 벨과 비교해도 부족할 게 하나 없는, 현 시점 최고의 타자인 타이 존슨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 정말 엄청난 칭찬이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자, 그런데 뭔가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빠진 것 같은데요?
– 원래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죠. 자, 이제 KBO를 박살 내고 빅리그로 넘어온 한수혁 선수에 대해 본격적으로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 일단 기록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11경기를 치르며 타율 0.441, 출루율 0.529, 장타율 0.955, 홈런 6개, 타점도 무려 12개를 기록했습니다.
– 자, 저 선수가 빅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이 나라의 부끄러운 야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3/4/5에 홈런 30개만 쳐도 충분히 성공한 거라고. 그런데 아직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어떻습니까? KBO 통산 기록과 차이가 전혀 없네요. 대단하죠? 그런데 더 대단한 건 그 선수가 방금 전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 뭐라고요?
– 아직 영점 조절이 안 끝났다고요.
– 와우!
– 자, 그것만이 아니죠. 저 선수는 그냥 잘 치는 타자가 아닙니다. 오타니 이후에 명맥이 끊어졌던, 현 시점 빅리그 유일의 투웨이 선수입니다. 에인절스를 상대로 했던 첫 번째 경기 결과를 볼까요? 6이닝 무실점이군요. 3루수 실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퍼펙트 페이스였고요. 맙소사, 정말 엄청납니다.
– 좋아요. 많이 흥분한 것 같은데 이제 한번 정리를 해보죠. 한수혁 선수의 영입이 시애틀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말이죠.
– 미래에 대한 영향? 아니, 표현이 조금 틀렸군요.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현실입니다. 파괴력이 넘치지만 경험이 부족한 타선에 타이 존슨과 한수혁이 합류했습니다. 지난 시즌 대비 대폭 증가한 팀 타격 지표들이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고요. 투수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이스인 라이언 티보우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선발투수가 없다고요? 맞아요. 그것 때문에 지난 경기까지 4연패를 당했죠. 하지만!
– 하지만?
– 오늘 한수혁 선수가 어떤 투구를 보여주냐에 따라 그 부분도 예측 수정이 필요할 겁니다. 만약 그가 지난 에인절스 전에서처럼 엄청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이 팀에는 에이스 두 명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그럼 나머지 선발투수들이 조금 못해도 충분히 월드시리즈에 도전해볼 만하죠. 원래 야구는 그런 거니까요.
– 대단한 호평이군요. 좋아요, 그럼 이제 예측은 그만두고 직접 경기를 지켜보도록 할까요? 1회초 수비를 위해 양키스의 에이스 타이슨 바샴이 마운드에 올라섭니다. 이곳은 양키스타디움입니다.
* * *
‘빌어먹을, 마음에 안 들어.’
리그 최고의 투수라 부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지난 5년간 거대 제국 양키스의 1선발 자리를 지켜온 타이슨 바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오늘 상대팀의 선발투수이자 2번 타자로 이름을 올린 한수혁이 대기타석에서 짝다리를 짚은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팀의 캡틴이자 최고 타자인 루카스 앤더슨과 마찬가지로 양키스 팜에서 자라나 결국 이 자리까지 오게 된 타이슨은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이 갖는 무게와 영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수였다.
처음 한수혁이 미국에 진출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자신의 친구이자 동기인 루카스 앤더슨이 그를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할 때,
입 밖으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는 한수혁의 입단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인종이니 뭐니 하는 그런 어줍잖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기 위해서는 실력 외에 특별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하자면 정통성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야구공을 만지게 되었을 때부터 양키스 입단을 꿈꾸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땀을 흘리고, 결국 오랜 기다림과 고생 끝에 그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면서 고리타분하기까지 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어디 붙어 있는지 아직도 헷갈리는 나라의 리그에서 뛰던 선수를 입단시키기 위해 양키스 사장이 직접 그곳까지 달려갔다는 것 자체가 타이슨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국 녀석은 양키스가 아닌 다른 팀을 선택했다.
양키스와는 역사와 실력, 인지도, 모든 면에서 비교조차 안 되는, 창단 이후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문턱을 밟아보지 못한 팀 말이다.
녀석이 무슨 생각으로 시애틀 매리너스를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아무 관심이 없다.
문제는 막상 녀석이 그 팀을 선택하고 나니 그건 또 그것대로 기분이 나쁘다는 거다.
놈이 양키스에 입단하는 것도 싫지만, 그렇다고 양키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런 허접한 팀을 선택한 건 더더욱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래도 짜증이고 저래도 짜증이다.
그렇기에 지금 타이슨 바샴이 생각하는 건 단 하나.
‘철저히 부숴 주마.’
오늘 경기에서 놈을 완벽히 봉쇄하는 것, 그럼으로써 애초에 저 녀석에게는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없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뿐이었다.
“플레이!”
드디어 경기 개시 사인이 울리고 시애틀의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지난 시즌 3.12의 평균자책점에 16승 6패의 성적을 올렸던 양키스의 1선발이 타자를 향해 힘찬 초구를 던졌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