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2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28화(229/412)
#228. 시너지 효과
따아악!
“아웃!”
데릭 플레밍이 친 잘 맞은 타구가 1루수의 글러브로 쏜살같이 빨려 들어갔다.
“젠장!”
“데릭, 아까웠어.”
“미안해. 차라리 공이나 좀 더 오래 지켜볼 걸 그랬나?”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해. 들어가서 수비 준비나 하라고.”
“좋아, 하나만 얘기하자면 저 아저씨, 오늘 공 장난 아니야. 젠장, 아직도 손가락이 울리네.”
지난 벤치 클리어링 이후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친근감을 표시하는 데릭이 손가락을 주물럭거리며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그의 말대로였다.
예전 삶에서도 지겹게 상대해온, 그렇기에 수년 만에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익숙한 타이슨 바샴의 오늘 컨디션은 최고조에 가까웠다.
리그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메리칸 리그 좌완 투수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드는, 묵직한 포심과 체인지업을 미끼로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해 내는 투수다.
쉽게 설명하자면 류한결의 최종 진화판이라고 봐야 할까.
지난 삶에서도 저 인간은 중요한 순간마다 시애틀의 앞길을 막아서곤 했다.
당시 서른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위력적이던 그가 지금 그때보다 훨씬 젊은 육체를 가진 채 나를 노려보고 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왜 저렇게 노려보는 거지?
내가 예전에 저 꽉 막힌 인간의 공을 제법 잘 치기는 했지만, 그걸 기억할 리는 없고,
그냥 유전자에 새겨진 나에 대한 적대감 같은 걸까?
“플레이!”
이유가 뭐가 됐든 어차피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생각해 보면 저놈과 내가 딱히 서로 웃으면서 얼굴을 마주할 사이는 아니지.
지난 포스팅에서 내가 양키스의 제안을 거절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팀에는 타이슨 같은 선수들이 득실거린다는 점이었다.
인간성이나 뭐 그런 걸 얘기하려는 게 아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쉽게 말해 앞뒤가 꽉 막힌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양키스 유니폼을 입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온, 그렇기에 양키스에 입단한 후에는 구단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그게 뭐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인간들이 저 팀 덕아웃에 한둘이 아니다.
가끔 올스타전에서 그런 녀석들과 말 한두 마디를 섞는 것조차 피곤한데 한 팀에서 뛰라고?
슈웅
퍼엉
“스트라이크!”
초구를 노려볼까 했지만 일단 공 하나 정도는 지켜보기로 했다.
여전했다.
98마일 내외의, 빅리그를 기준으로 하면 아주 빠르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회전수가 높아 공략하기 까다로운 묵직한 포심.
저 꽉 막힌 인간을 그대로 닮은 그런 공이다.
오늘 경기 전 루카스 앤더슨이라는 놈이 우리 덕아웃을 찾아왔다.
명목상으로는 타이 존슨과 인사를 하러 왔다는데, 이상하게도 녀석의 시선이 자꾸 신경 쓰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말을 돌릴 생각도 없는지 직설적으로 내게 물었다.
양키스 유니폼을 거절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모르겠다.
인간이 고정된 환경에서 계속 같은 사상을 주입 받다 보면 저렇게 되는 걸까?
왜 그 유니폼을 거절한 것에 대해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거지?
정말 자기 자신보다 팀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건만, 왜 스스로를 팀의 부품으로 격하시키려는 걸까?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저 양키스 놈들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다.
솔직히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건 지난 삶에서 양키스에게 계속 밀렸던 기억들이 아직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양키스를 박살 내 줄 생각이다.
철저히,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나만 보면 숨이 턱턱 막혀오고 오줌을 질질 지릴 정도로.
드드득
예전 내가 상대했던,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던 타이슨 바샴이었다면 여기서 공 두세 개 정도는 유인구가 날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 초반에 불과하다.
기량이나 육체적으로 모든 면에서 절정에 달해 있는, 선수로서 자신의 실력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그런 나이.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 또 한 번 승부구가 날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스슥
빅리그에 적응하기 위해 조정 작업을 거친 새로운 타격폼.
빠른 몸쪽 공 승부에 대처하기 위해 약간은 오픈 스탠스에 가까워진 이 폼이 이제는 꽤나 익숙하다.
마운드 위 투수가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키킹 높이, 팔의 각도, 모든 면에서 예전 내 기억 속 녀석의 폼과는 차이가 있다.
그에 맞춰 반응 속도를 약간 높이고, 배트 각도를 조절하고,
그렇게 내가 준비를 하는 사이 녀석의 손끝에서 공이 발사되었다.
이제 필요한 건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다.
98마일의 포심이 날아 들어올 궤적을 향해 망설임 없이 힘껏 스윙.
따아아아아아악!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타이슨 바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오랜만에 정말 제대로 맞은 타구였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배트로 땅을 짚은 채 타구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퍼킹! 저 멍청한 놈!”
“죽어! 시작하자마자 이딴 걸 얻어 맞는다고?”
“저 시건방진 루키를 죽여! 죽여버리라고!
관중석에서 홈런을 맞은 투수, 그리고 나를 향한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날아간 타구가 양키 스타디움 펜스를 넘어 아예 장외로 날아가버렸다.
쏟아지는 야유가 더욱 거세졌다.
그런 관중들을 향해 어깨를 한 번 으쓱해준 후 천천히 1루를 향해 출발했다.
“빌어먹을 놈, 타이슨이 네 머리를 박살 내버릴 거다.”
“해봐, 잊고 있나 본데 나는 오늘 선발투수야. 한 번에 내 머리를 터뜨리지 못하면 너희 팀 선발 전원의 머리가 박살 날 거다.”
내가 타구를 쳐다본 게 기분이 나빴는지 2루수가 되도 않는 시비를 걸어왔다.
예전에도 이 녀석하고 한 번 주먹을 주고받은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벤치 클리어링이라, 얼마든지 환영이다.
매일 근엄한 표정만 지을 줄 알지, 막상 제대로 화조차 낼 줄 모르는 양키스 샌님들이 과연 내 머리에 공을 던질 수 있을까?
던져도 상관없다. 그 다음은 녀석들 차례일 테니까.
턱
“우우우우!”
“꺼져! 이 재수 없는 자식아! 홈플레이트에서 발 치우고 저리 꺼지라고!”
내가 홈으로 돌아오자 관중들의 야유 소리가 더욱 크고 거세졌다.
원정팬이라고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으로 가득 뒤덮인 이 광경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저 야유 소리가 잠시 후면 절망의 탄식으로 바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흐흐, 괴물 같은 놈.”
“타이.”
“왜.”
“초구를 노려봐요.”
“초구? 흠,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았어. 참고하도록 하지.”
* * *
오늘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건 ESPN뿐만이 아니었다.
여기 한국에서 건너온, 시즌 초반 한 달간 현지 체류를 허락받은 KBC의 고동식, 박철민 콤비 역시 눈을 벌겋게 뜨고 한수혁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었다.
– 으아아아아!
– 위원님?
– 진짜 개뽕… 흠, 자랑스럽습니다! 미국 야구의 수도, 메이저리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이곳 양키스타디움에서 한수혁 선수가 양키스의 에이스 타이슨 바샴의 공을 그대로 후려쳐 장외로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 네, 정말 휴, 뭐랄까, 충격적이긴 합니다. 한국에서도 한수혁 선수의 장외홈런을 한두 번 본 게 아니긴 하지만 TV로만 보던 양키스 에이스의 공을 저렇게 쉽게 쳐냈다는 게 참… 어, 어, 어! 말씀드리는 순간, 시애틀의 3번 타자 타이 존슨이 초구를 후려 쳐… 너, 너, 넘어갔습니다! 백투백 홈런! 한수혁, 타이 존슨의 백투백 홈런으로 매리너스가 1회 두 점을 선취합니다!
– 크으, 진짜 대단하네요. 바로 이겁니다. 한수혁 바로 뒤에 타이 존슨이 연속 배치됨으로써 이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오게 되는 거죠. 마운드 위 투수의 표정을 보세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창백하죠? 투수 출신인 제가 말씀드립니다. 저거 멘붕 온 거예요. 절대 쉽게 회복 못 합니다.
–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한수혁 선수가 시애틀을 선택했을 때 저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좀 더 명문구단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아니네요. 이제 와서 생각하니 한수혁 선수의 선택이 무조건 옳았습니다. 타이 존슨 선수가 뒤에 버티고 있다는 게 한수혁 선수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는 거 같습니다.
– 그렇죠. 저 역시 동감입니다. 무엇보다 한수혁 선수는 한국에서 최하위팀 워리어스를 이끌고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시킨 경력이 있지 않습니까? 다들 아시겠지만 시애틀 매리너스는 창단 이후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해본 적이 없는 팀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사상 최초로 시애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 선수가 될 거라는 걸 말이죠.
– 네, 꼭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 양키스의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오면서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습니다. 이곳은 미국, 뉴욕 양키스와 시애틀 매리너스의 시즌 2차전 경기가 열리고 있는 양키스타디움입니다.
* * *
툭툭
“이봐, 혹시 흥분한 건 아니지? 나도 타이슨 저 녀석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아까 그건 명백한 실투였어. 복수할 필요 없다고. 내 말 이해했지?”
“알아, 실투인 거. 타자보다 지가 더 놀랐는데 그걸 모르겠어?”
“좋아, 이해했다니 다행이군. 아, 그리고 사인은 기본적으로 내가 내겠지만 마음에 안 들면 네가 직접 내도 좋아. 다만 하나는 꼭 부탁하자고.”
“부탁?”
“젠장, 넌 너무 템포가 빨라. 따라가기가 벅차다고. 조금만, 조금만 늦춰줬으면 좋겠어.”
“흠, 좋아. 노력해보지.”
“오케이. 그럼 시작해 보자고.”
1회초, 한수혁과 타이 존슨의 백투백 홈런으로 시애틀이 2점을 선취했다.
그리고 이어진 타석, 흥분한 타이슨 바샴이 던진 공이 시애틀의 4번 타자 척 클락의 머리로 향했다.
헬멧 끝을 스치며 지나간 97마일의 강속구.
하지만 벤치 클리어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미안함 따위는 표시하지 않는 빅리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타이슨이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두드리며 연거푸 실수라는 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백투백 홈런을 허용한 후유증임에 분명했다.
다음 타자인 짐 브라운의 병살타로 인해 추가 득점은 올리지 못했지만 일단 승기를 잡은 건 시애틀이었다.
그렇게 1회초가 끝나고, 1회말 한수혁이 마운드에 올랐다.
“뭐야! 저 팀에는 아시아인이 대체 몇 명인 거야? 아까 홈런 친 놈도 이름이 ‘한’이더니 투수도 ‘한’이야?”
“이봐, 말 조심해. 그건 인종차별 발언이라고. 그리고 대체 야구를 제대로 보긴 하는 거야? 같은 선수잖아?”
“그래? 같은 선수라고? 아, 아, 예전 그 오타니 그놈처럼?”
“맞으니까 닥치고 야구나 보라고.”
“젠장, 언제부터 내가 내 돈으로 티켓을 사고 들어와서 말조심까지 하게 된 거지?”
예나 지금이나 미국인들의 무신경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로 한다.
자신들의 국가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에 사로잡혀서일까, 도통 남의 것, 남의 팀, 남의 나라, 남의 선수에 대해 무신경한 이들은 방금 전 타석에서 홈런을 친 선수와 마운드에 올라 있는 선수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수혁이 KBO를 박살 내고, 국제무대에서 맹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양키스 팬들 대다수는 그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한수혁이 누군지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이 사랑하는 세계 최고의 팀이 어디서 굴러들어왔는지도 모를 검은 머리 선수에게 홈런을 허용한 게 짜증 나고 화가 났을 뿐이었다.
“점수 준 건 준 거고 빨리 되찾아 오자고. 내가 그라운드에 다이나마이트를 던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이 더럽게 질기고 맛없는 핫도그를 15달러에 계속 팔아먹고 싶으면 빨리 경기를 뒤집으라고, 이 자식들아!”
양키스가 경기를 뒤집기 전에는 결코 끝나지 않을, 홈팀 팬들의 엄청난 야유 속에 한수혁이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95마일,
100마일,
105마일,
마치 자동차 기어를 높이듯 조금씩 상승하는 구속 앞에서 양키스 팬들의 야유가 점점 잦아들었다.
슈웅
퍼어어어엉!
그리고 마침내 107마일,
난생 처음 보는 그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공의 위력 앞에 양키스 팬들의 입이 완전히 닫혀 버렸다.
“플레이!”
양키스의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