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2화(23/412)
#22. 시범경기 (1)
하루하루 경기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야구팬들에게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이어지는 비 시즌 기간은 너무나 길고 지루한 시간이다.
그 길고 긴 인내의 시간을 보낸 야구팬들이 지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2027 시즌 시범경기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긴긴 겨울이 지나고 다시 프로야구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2027년 3월 13일, 시범경기 개막에 맞춰 잠실야구장을 찾은 저는 아나운서 이태일, 제 옆에는 강태구 해설위원님 나와 계십니다
– 반갑습니다. 강태구입니다
– 위원님, 시범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잠실야구장에 관중이 거의 만원에 가까울 정도로 가득 찼습니다. 관중석의 열기가 여기 중계실에까지 전해지네요
– 네, 정확히는 2만 3천여명 정도가 입장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시즌에 비해 많이 달라진 워리어스와 타이탄스, 두 팀에 대한 기대감도 있을 것이고, 입장한 모든 관중들에게 선물로 증정된 민예린 씨의 사인이 담긴 데뷔앨범도 한 몫을 했겠죠?
– 하하, 어제 저녁에 저도 SNS 훑어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민예린 씨 데뷔앨범이라면 사실 이제는 돈 주고도 못 사는 물건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벤트를 위해 급하게 제작을 했다죠? 워리어스 광 팬으로 알려진 민예린 씨가 정말 크게 한 턱을 쏜 것 같습니다
– 그렇죠. 저도 아까 들어오다가 간신히 하나 챙겼습니다. 아들 놈이 이거 못 받아오면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 돌아가실 집이 생겨서 천만다행이군요. 그나저나 위원님. 오늘 맞붙게 될 서울 워리어스와 부산 타이탄스, 두 팀에 지난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물론이죠. 일단 부산 타이탄스의 경우 외부 FA 2명을 영입하면서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데 성공했습니다. 지난 시즌 괜찮은 성적을 거뒀던 외국인 선수 세 명과도 재계약을 했고요. 특별한 부상 선수도 없는 터라 올 시즌 아주 기대가 됩니다
– 음··· 정말 기대해도 될까요, 방금 그 말에 해설위원 자리를 거실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이 지금 채팅창에 올라왔는데요
– 하하, 끔찍한 소리를 하시네요. 저도 한 집안의 가장입니다. 여러분. 감사한 제안이지만 내기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올해 타이탄스는 뭔가 다를 것이다, 이 정도만 말씀드리도록 하죠
﹂꼴) 씨바, 내가 저 소리만 벌써 20년째 듣는다. 올해는 다를 거다, 다를 거다
﹂꼴) 다르긴 다르겠지. 뭔가 더 참신하게 지는 방법을 찾아낼 테니까
﹂꼴) FA를 2명이나 데려왔는데 왜 저 워리어스 놈들이 부러운 걸까···
﹂워) 그럼 그 FA 2명 우리 주고 한수혁 데려가쉴?
﹂꼴) 진짜? 오키, 딜
﹂워) 농담
﹂꼴) 미친 놈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청자 채팅창을 흘끗 본 아나운서가 피식 웃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 사실 지난 스토브리그의 주인공은 서울 워리어스 아니겠습니까? 구단 매각부터 선수 트레이드와 영입까지, 아주 스펙터클했죠?
– 맞습니다. 일단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워리어스의 모기업이 교체되었죠. 오강 그룹에서 아이코닉 파트너즈로 구단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 그 과정에서 참 말도 많았죠?
– 네,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에 대한 건 일단 차치하고··· 사실은 그 이후가 더 중요하죠
– 한수혁
– 네, 신생 회사로 인수된 것에 대해 반대하던 워리어스 팬들의 여론이 한수혁 선수의 영입으로 완전히 반전되었죠. 사실 KBO가 시작된 이래 선수 하나의 입단을 놓고 이렇게 리그 전체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 자, 한수혁 선수에 대해 준비하신 이야기가 한 둘이 아닐 테니 그 부분은 오늘 플레이를 보면서 조금씩 풀어 나가는 걸로 하고, 그 외 워리어스에서 주목할 점은 없을까요?
– 음, 일단 올 시즌 워리어스의 전력 변동을 살펴 보면 지난 시즌까지 마무리 투수를 맡아주던 한진우 선수가 부산 타이탄스로 트레이드 되었습니다. 거기에 워리어스의 신임 단장인 박재철 단장은 추가로 황성민과 송기태 선수도 트레이드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 여기 중계석 바로 밑에 그 박재철 단장이 앉아 있네요. 뭘 하고 있는 거죠? 아, 옆에 앉아 있던 야구팬과 뭔가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위원님, 워리어스의 트레이드에 이래저래 말이 많은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크흐흠
아나운서의 질문에 해설위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워리어스가 한 계단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소문난 쓰레기 둘을 처리해야 한다고 어떻게 방송에 대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헛기침으로 그 질문을 넘겨버린 강태구 위원이 계속 말을 이었다.
– 그 외 지난 시즌 괜찮은 활약을 해주었던 라이언 스타크와 브룩스 파커, 두 명의 투수들이 모두 재계약에 성공했고요. 용병 타자는 맥스 워커라는 선수로 교체되었습니다
– 아쉬운 것은 그 어떤 팀보다 외부 수혈이 필요했던 워리어스가 지난 시즌 FA 시장에서 아무 것도 건지지 못했다는 거겠죠?
아나운서의 그 말에 이번에는 워리어스 쪽 채팅장이 불타기 시작했다.
﹂한수혁 때문에 유입된 얼빠들, 너희들 그거 암?
﹂암이 아니고 앎, 아무튼 뭔데?
﹂이 워리어스라는 팀이 지난 45년 동안 FA로 뺏긴 선수가 20명이 넘는데, 반대로 FA 선수 사 온 건 딱 한 번이라는 거.
﹂씨바, 구라치지 마라. 그런 개좆같은 팀이 세상에 있다고?
﹂아닌데, 이창모도 있는데
﹂9개 구단에서 전부 외면한 거 거의 공짜로 줏어온 거?
﹂그래도 FA로 쳐주자···
﹂됐고, 진짜 이런 거지 구단이 또 있을까 싶음
﹂부산 타이탄스랑 서울 매지션스가 20세기 들어 우승 한 번 못한 것만큼이나 어메이징하군
﹂그래서 난 모기업 바뀌었어도 우리가 외부 FA 데려올 거란 기대는 절대 안 함
﹂아무튼 앞으로 이 팀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어메이징할 거다. 기대해라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이었다.
몇 안 되는 원년팀 중 하나인 서울 워리어스는 45년이라는 장대한 역사 속에서 순수 외부 FA를 영입한 게 딱 한 번인, 투자에 있어서는 짠돌이라는 표현조차 아까운 그런 팀이었다.
물론 메이저리그 실패 후 국내 복귀과정에서 미아가 될 뻔했던 이창모를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주어오기는 했지만 그걸 제대로 된 FA 영입이라 쳐주는 건 무리이니까.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진 워리어스의 올드 팬들은 지난 시즌 외부 FA 영입이 하나도 없었다는데 전혀 절망하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오로지 한수혁, 이 저주받은 팀에 정말 오랜만에 강림한 구세주 한수혁에게만 포커스를 맞춘 채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리는 중이었다.
﹂우리 외사촌 형이 워리어스 프런트 직원인데···
﹂너 내가 IQ 기억해둔다. 헛소리면 각오해라
﹂일단 들어봐. 한수혁 캠프에서 165 던졌다고 함
﹂어, 나도 그 얘기 들은 거 같음
﹂165를 던지면서 투수를 안 한다고?
﹂그런데 연습경기에서는 게임당 하나꼴로 홈런을 쳤다 함
﹂타자만 해도 할 말이 없긴 하네
﹂아무튼 쟤는 진짜임. 올 시즌 신인왕 각 세워본다
﹂아직 시즌 개막도 안 했는데 신인왕;;;
* * *
부산 타이탄스와의 시범경기 개막전, 이대준 감독이 내세운 선발 라인업은 야구판에서 구를 데로 구른 나조차도 조금 놀랄, 파격적인 것이었다.
오늘 선발 라인업은 이랬다.
1번 2루수 이창모
2번 유격수 한수혁
3번 1루수 조성오
4번 우익수 맥스 워커
5번 3루수 안치욱
6번 좌익수 김수학
7번 지명타자 송기태
8번 포수 황성민
9번 중견수 정기호
선발투수 라이언 스타크.
일단 지난 시즌까지 리드오프로 뛰었던 정기호 선배가 9번으로 밀려났다.
아마도 캠프 중 연습경기에서 몇 차례 팀워크를 해치는 행동을 한 게 원인인 것 같다.
그 이후로 정기호를 보는 이대준 감독의 눈빛이 확연하게 서늘해졌으니까.
그를 대신해 1번으로 자리 잡은 이창모 선배.
전성기 시절 기량을 생각하면 이 팀에서 클래스가 가장 높은 타자 중 하나다.
그래, 기동력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사실 이 팀에서 1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타자가 있다면 바로 저 선배겠지.
음.
어쨌든 나는 유격수 겸 2번 타자로 나서게 되었다.
이대준 감독이 몇 차례 인터뷰를 통해 강한 2번 타자론을 얘기했는데, 아마 그 계획의 일환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타순이다. 타석에 많이 들어서야 하나라도 더 홈런을 칠 수 있으니까.
경기 전 만난 리포터가 신인으로서 상위 타순에 배치된 게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긴장은 조금 되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겠습니다.”
“아, 네. 한수혁 선수.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좋은 경기 기대하겠습니다.”
거짓말이다.
긴장은 무슨.
날 긴장시키려면 적어도 월드시리즈 7차전 9회말 투아웃 마지막 타석 정도는 되야 가능하지.
그 외 타순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다.
한때 2군으로 쫓겨날 뻔했던 안치욱이 하위타선이 아닌 5번 타순에 배치된 게 조금 의외이긴 하지만 뭐, 강하게 키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때 오늘 시범경기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서게 된 라이언 스타크가 내 팔을 툭 치며 지나갔다.
“친구.”
“헤이, 라이언.”
“오늘 상대팀에 우 타자가 많은 것 같아.”
“맞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 거지?”
“물론이지.”
“좋아, 경기가 끝나면 내가 새로 발견한 피자 맛집으로 데려가주지.”
유난히 피자에 집착하는 라이언이 또 어떤 가게를 발견했나 궁금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우 타자가 많다라···
내 쪽으로 타구가 많이 갈 테니 나만 믿는다, 뭐 그런 뜻이겠지?
흐음.
그나저나 오늘 진짜 관중 많네.
입장객 전원에게 무료 CD를 뿌렸다는 게 저번에 성훈이 형이 말한 그 여자 가수인가?
누군지 몰라도 진짜 성격 한 번 화끈하네.
CD 2만장이면 돈이 대체 얼마야.
나중에 보게 되면 고맙다고 말이나 한 번 해줘야겠네.
* * *
1번 2루수 이창모, 2번 유격수 한수혁, 5번 3루수 안치욱이라는 파격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온 이대준 감독이 침중한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어제 밤, 이 팀의 원로라는 인간들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몇 통이던가.
한수혁의 덩치로 유격수는 무리이니 주전 유격수는 송기태가 낫다는 둥, 황성민이 지난 시즌 부진했지만 그래도 팀에 하나뿐인 베테랑 포수이니 아껴줘야 한다는 둥, 안치욱이라는 듣보잡은 뭐냐는 둥 별의 별 이야기를 다 들어줘야 했다.
‘네, 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물론 이대준은 그 원로들의 말 중 그 어느 것도 라인업에 반영할 생각이 없었다.
박성훈이 이 팀의 레전드 중 하나인 이대준을 감독으로 기용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현역 말년에 팀 내 주류 파벌에 밀려 떠밀리듯 은퇴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워리어스 역대 최고 타자라는 이름값은 그대로 살아 있다.
아무리 원로들이라 해도 정당한 명분 없이 이대준을 압박하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이대준이 걱정하는 건 그런 노땅들의 압박이 아니라 대체 누가 자신이 전날 밤 고심 끝에 작성한 라인업 명단을 외부에 유출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팀에 몇 남지 않은 한국인 코치인 수비코치? 2군에서 올라온 퀄리티 코치? 그도 아니면 프런트 직원들 중 누구?
모르겠다. 떠오르는 용의자가 너무 많다.
일단 범인을 잡는 건 나중 일이다.
당장은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감독실에 금고 설치를 요청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내부 첩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이대준의 눈이 그라운드 위 선수들에게로 향했다.
오늘 선발 출장할 선수들이 천천히 몸을 풀고 있었다.
‘두근두근’
이제 곧 자신의 커리어 첫 시합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린다.
손발이 떨리고 머리까지 멍해진다.
프로야구 감독이 된다는 게 이렇게 심장에 무리가 가는 일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오늘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을 보니 문득 현역 시절 자신을 아껴주던 노 감독님이 떠올랐다.
연세도 많고 지병도 있던 분이 대체 이런 압박감을 어떻게 견뎌낸 걸까?
‘그곳에서는 편안하시죠? 오늘 제자의 첫 경기 잘 지켜봐 주세요. 감독님’
누가 들으면 이대준을 지도하던 노 감독이 세상을 떠났다고 착각하겠지만 사실은 은퇴 후 KBO 고문으로 위촉되어 잘 지내고 계시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의 두근거림이 점점 더 심해진다. 마치 터지기 일보직전의 그것처럼.
지금 이 미칠 듯한 긴장감과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방법.
이대준 감독은 마침내 그 해법을 떠올렸다.
‘수혁이가··· 어디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부들거리던 이대준 감독이 저 멀리 외야에서 가벼운 러닝을 하고 있는 한수혁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시범경기임에도 거의 만원에 가까울 정도로 들어찬 관중들이 한수혁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그런 관중들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거만한 표정으로 몸을 풀고 있는 슈퍼 신인.
올 시즌 워리어스의 성적을 좌우할 핵심 전력이자 이대준 감독이 유일하게 백 프로 신뢰하고 있는 치트키 같은 존재.
그런 한수혁에게 시선을 10초 정도 맞추니 마구 흔들리던 심신이 급격하게 안정되기 시작한다.
“휴···”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신은 전력을 다해 선수들을 훈련시켰고, 지금 가능한 최선의 라인업을 구상했다.
처음 이 팀을 맡고 지금까지 정말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팀을 정비했다.
그럼에도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는 어쩔 수 없었다.
상대팀 타이탄스가 비록 지난 시즌 8위에 머물기는 했지만 선수단 뎁스 측면에서 워리어스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대준 감독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그 모든 불리한 상황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히든 카드가 있지 않은가?
다시 한 번 한수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를 괴롭히던 번뇌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침내 마음 속 모든 번뇌를 털어버리는데 성공한 이대준 감독이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경기의 시작을 지켜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