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3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29화(230/412)
#229. 따라가기도 벅찬
덜컥
“안 나가고 방에 계셨군요, 박 단장님.”
“아, 대표님. 지금 이 상황에 제가 가긴 어딜 가겠습니까? 아침 일찍부터 서울시 놈들이 불렀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다녀오신 일은? 어떻게, 어떻게 됐습니까?”
“음… 세부적인 것까지 하나하나 따지자면 너무 복잡할 거 같고, 그냥 큰 틀에서 얘기하자면, 네, 드디어 우리가 한 지붕 두 집 살이를 끝낼 때가 온 것 같네요.”
“오! 그러면?”
“네, 문체부와 서울시 간의 협의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앞으로 4년, 그때가 되면 우리에게 드디어 새로운 집이 생길 것 같네요”
WBC와 올림픽 우승으로 인해 대통령과 두 차례 만찬을 갖게 된 야구 대표팀, 자신이 뭔가 도와줄 게 없냐는 대통령의 물음에 한수혁은 두 번 모두 돔 구장 건립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개 야구 선수의 말 한마디에 대통령이 움직일 리 없다.
두 번째 만찬 후 대통령이 약간이나마 그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것이 정부의 이익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대문 한복판에 방치된 그 디자인 전시관, 그거 때문에 고민이라고 들었습니다. 저희 구단주님이 전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맡겨만 주시면 민간 예산으로 깨끗하게 철거하고 대신 그 자리에 돔 구장을 올리겠다고 말이죠.’
아마추어 야구의 성지라 불렸던 동대문 구장을 철거하고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디자인 박물관.
서울을 전면 리모델링하겠다는 당시 시장의 의지와 맞물려 진행된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지금 텅 빈 채 방치되어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처럼 국가와 도시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
최초 계획대로라면 서울 시민을 위한 디자인 전시장이자 갤러리, 쇼핑몰로 사용되었어야 할 곳이건만, 애초에 그런 거대한 공간을 갤러리 용도로 사용하는 건 이래저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거기에 쇼핑몰 공간에 입주를 희망하는 개인과 기업도 전무한 상황, 이런 문제점들이 겹치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은 서울시와 정부의 골치덩어리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부 예산을 전혀 들이지 않고 그 골 아픈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있다 하니, 대통령의 귀가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한번 알아봐. 무슨 계획이 있는 건지 말이야.’
대통령의 의지를 전달받은 주무부처와 서울시가 움직였다.
워리어스의 모기업인 아이코닉 파트너즈의 제안은 아주 간단했다.
서울시에서 해당 부지를 아이코닉 파트너즈에 장기 임대 해주기만 하면 철거부터 돔 구장 설립까지 나머지 문제는 모두 민간이 알아서 하겠다는, 정부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제안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체육 시설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만 소유할 수 있다는 법과 규정이었다.
이에 처음 서울시가 제안한 건 기부 체납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코닉 측은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자신들의 돈으로 구장을 짓고 이를 다시 서울시에 기부한 후 소액의 임대료를 내고 사용하는, 그 구차하고 번거로운 짓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 차례 삼자 간의 공방이 오갔고, 드디어 오늘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이른 아침부터 달려가신 보람이 있네요. 그럼 저희 계획대로 문화 관람장으로 간다는 건가요?”
“네, 대신 야구 경기가 없는 날은 공연이나 전시, 각종 문화행사를 위한 장소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저희도 운영 비용을 마련하려면 적극적으로 대관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좋네요. 뭐 하나 손해 볼 게 없군요.”
“맞아요, 박 단장님. 어쨌든 이제 이 일은 실무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아차, 그러고 보니 수혁이 경기는? 아직 안 끝났죠?”
“네, 대표님 들어오시기 전까지 보고 있었는데… 잠시만요, 바로 켜보죠.”
지난 몇 달간 마음을 무겁게 누르던 문제가 해결돼서일까, 표정이 몰라보게 밝아진 박재철이 서둘러 TV를 켰다.
“으음……? 벌써 8회말이네요?”
“네, 대표님. 오늘 경기 스피드가 엄청나네요. 지켜보는 사람이 힘들 정도로 말이죠.”
“좋아요, 그럼 일단 경기부터 다 보고 얘기할까요?”
워리어스를 이끄는 대표와 단장, 두 사람이 입을 닫고 TV 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곳에는 8회말, 양키스의 공격을 막기 위해 한수혁이 마운드에 오르고 있었다.
경기 스코어 3 대 0.
중계 카메라에 잡힌 양팀 선수들의 얼굴이 안쓰러울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 * *
– 정말 엄청납니다! 이런 경기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위원님,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 하아… 하아… 숨이, 숨이…….
– 위원님?
– 죄송합니다. 너무 감격해서 제대로 숨이, 휴우… 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요.
–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희도 사람인지라. 자, 위원님, 이제 막 TV를 튼 시청자분들을 위해 지금까지 상황을 좀 정리해 보죠. 일단 타자로서 오늘 한수혁 선수의 성적입니다. 4타수 4안타, 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엄청나지만…….
– 사이클링 히트!
– 맞습니다. 엄청나죠. 1회 첫 타석에서 선제 홈런으로 포문을 연 한수혁 선수가 3회 단타, 6회 2루타, 그리고 방금 전 끝난 8회초 공격에서 그 어렵다는 3루타를 뽑아내며 빅리그 데뷔 첫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 휴우, 정말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 말씀해보시죠, 위원님.
– 저 거만한 뉴요커들의 안색이 허옇게 질린 걸 보니 속이 다 시원…….
– 흠, 위원님, 그런데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 남아 있지 않습니까?
– 아! 그렇죠. 맞아요. 자, 시청자 여러분. 놀랍게도 현재 한수혁 선수는 7회말 수비까지 단 한 명의 양키스 타자도 1루에 내보내고 있지 않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빅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퍼펙트 게임에 도전 중입니다.
– 죄송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사실 이런 말을 입에 담는 게 금기라는 건 저희도 잘 알고 있지만, 휴우, 이곳 분위기를 보시면 저희 심정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중계 카메라가 양키스타디움 구석구석을 비췄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욕설을 내뱉고 있는 양키스의 팬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한수혁을 응원하고 있는 교포들.
신기한 건 그라운드 위의 풍경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니폼이 땀과 흙으로 엉망이 되어 있는 양키스 선수들, 반면 지나칠 정도로 상태가 깨끗한 유니폼을 유지하고 있는 매리너스 선수들.
그렇게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두 팀 선수들의 얼굴에는 공통적인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부담감, 긴장감, 그리고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공포감.
한수혁의 퍼펙트 행진은 상대뿐만 아니라 같은 팀 동료들에게도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마운드 위 한수혁의 표정은 편안하기만 했다.
방금 전 타석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고 3루까지 죽어라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차분하게 마운드에서 타자를 바라보던 한수혁이 초구를 던졌다.
슈웅
퍼어엉!
“스트라이크!”
“미친!”
“젠장! 이게 말이 돼?”
“뭐라도 좀 해보라고, 이 자식들아!”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한수혁이 누구인지조차 잘 몰랐던, 그냥 흔해 빠진 동양인 선수라고 무시하던 양키스 팬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자기 팀 선수들을 욕해 댔다.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한수혁, 그리고 그 뒤에서 기회를 맛있게 받아먹으며 1홈런 포함 3타점을 올린 타이 존슨.
상대팀 선수들이 그렇게 활약하는 동안 점수는 고사하고, 1루 베이스조차 한 번 밟지 못한 선수들을 향해 비난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양키스 선수들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젠장, 8회에 105마일을 던지는 괴물을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고?’
1회, 107마일의 초구가 날아왔을 때만 해도 아직 여유가 남아 있었다.
아무리 빠른 공이라 해도 충분히 보다 보면 적응이 될 거라고, 그리고 이닝이 거듭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구속은 떨어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지금까지 90개의 공을 던진 저 괴물은 8회에도 105마일에 달하는 포심을 던져 대고 있다.
그냥 빠른 공만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 약간 느린, 시속 102에서 103마일에 달하는 하드 싱커가 양키스 타자들의 방망이를 헛돌게 만들었다.
반칙이다. 인간이라면 저런 말도 안 되는 공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존 안에 집어넣을 수 없다.
하지만 양키스 선수들이 뭐라 생각하든 한수혁은 계속 그 페이스를 이어갔고, 결국 그 누구도 그의 공을 제대로 때려내지 못했다.
부웅
파아앙!
“스윙! 아웃!”
또 다시 세 타자가 무기력하게 물러나며 8회말 양키스의 공격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이제 단 한 이닝.
한수혁이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까지 남은 건 단 한 이닝에 불과했다.
* * *
KBO 출신 선수들이 빅리그에 진출한 후 가장 크게 애를 먹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경기의 스피드다.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속, 타구 속도, 주자의 스피드, 하다 못해 송구 속도까지 모든 것이 KBO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거기에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도입된 피치 클락과 AI볼 판정 시스템이 더해지며 화룡점정을 찍는다.
투수는 주자가 없는 경우 15초 이내, 그리고 주자가 있을 경우 20초 이내에 다음 공을 던져야 한다. 타자 역시 정해진 시간 안에 타석에 들어서야 하고 말이다.
인간이 아닌 AI가 볼 판독을 하다 보니 판정을 놓고 심판에게 항의할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경기가 시작되면 입 닥치고 던지고, 치고, 받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간을 질질 끌어 대던 한국 선수들 입장에서는 빅리그의 스피드감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다 방전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 2년 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한결과 다음 해 그 뒤를 따라온 이찬호가 고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미국 전문가들, 팬들, 그리고 각 구단의 전력분석 요원들은 한수혁 역시 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슈웅
파아앙!
“스트라이크! 아웃!”
“이 정신 나간 놈들! 저놈 연봉이 2천만 달러라고? 방출해! 저딴 자식은 당장 방출하고 마운드 위에 저 녀석을 우리 팀으로 데려오라고!”
“방망이에 맞추기라도 해봐! 뭐라도 좀 해보라고,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이미 예전 삶에서 질릴 정도로 상대해본 양키스 타자들의 데이터가 한수혁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그 정리된 데이터에 따라 한수혁이 공을 뿌려댄다.
포수의 리드? 그런 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 시애틀의 포수는 한수혁의 리드에 따라 공을 받는 것만도 벅찰 지경이었다.
슈웅
파아앙!
“스트라이크!”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순식간에 구종과 코스를 결정하고, 그 사인에 따라 포수 미트를 가져다 대면 귀신같이 그곳으로 공이 날아든다.
빠른 공을 노리는 타자에게는 110㎞/h 체인지업이, 몸쪽 공을 기다리는 타자에게는 바깥쪽에서 역회전해 들어오는 하드 씽커가, 그리고 공을 오래 지켜보는 습관이 있는 타자에게는 170㎞/h에 가까운 포심이 연속으로 날아들었다.
9회 원아웃까지 그 공을 받아낸 시애틀 포수 브루스 매튜스는 생각했다.
‘내가 타자였다면 이 녀석을 어떻게 상대했을까?’
암만 생각해도 뾰족한 해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받아내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데, 이걸 쳐야 한다고?
‘Holy shit……!’
올해 스물아홉으로 시애틀 주전 타자들 중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 이번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얻어 월드시리즈 도전이 가능한 팀으로 떠날 생각이던 브루스는 생각했다.
‘젠장, 에이전트하고 다시 한번 얘기를 나눠봐야겠군.’
슈웅
파아앙!
“스윙! 아웃!”
어느새 9회말 투 아웃, 이제 대기록까지 남은 건 아웃카운트 하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