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3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30화(231/412)
#230. 저 녀석은 뭘까
‘너무 완벽하게 던지려고 하지 마. 편하게 마음을 먹으라고. 원래 투수는 맞으면서 성장하는 법이야. 6회, 아니, 5회까지 석 점 정도는 준다는 생각으로 던지라고. 내 말 이해했나?’
지난 삶에서 나를 지도한 수많은 코치와 감독들이 그렇게 말했다.
편하게 던지라고, 야구선수는 결코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고, 실패에서 오히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법이라고.
심지어 도전과 기회의 땅이라는 이 미국의 코치들조차 같은 말을 해대는 통에 나는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말을 하는 코치들과 항상 얼굴을 붉히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야구는 그게 아니었다.
머릿속으로 실패를 먼저 가정하고 경기를 뛰라니, 그런 거지 같은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언제나 공을 던지기 전 머릿속으로 실패가 아닌 성공을 그리려 애썼다.
선발로 나서 1회부터 9회까지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질 때도 매 순간 내 공이 절대적으로 성공하리란 믿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물론 나는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고, 경험이 부족했으며, 그 와중에 욕심만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머릿속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던 내게 부상이라는 악재가 닥쳐왔고, 결국 나는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슈웅
부웅
파아앙!
“스윙!”
106개째의 공이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해냈다.
오늘 나는 1회부터 9회까지 하나하나 블록을 쌓는 마음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조금만 툭 건드려도 무너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블록의 탑.
어지간한 투수, 아니, 나조차도 회귀라는 경험이 없었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벌벌 떨릴 그런 순간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슈웅
틱
“파울!”
107개째의 공이 파울이 되며 이제 스트라이크 하나면 경기를 끝낼 수 있게 되었다.
“…Holy shit!”
“Fuck……!”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양키스 팬들의 야유 소리가 어느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대신 언제 끊어져도 이상할 게 하나 없는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그라운드 위 선수들이 내뿜는 짙은 한숨과 나지막한 욕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나는 투수로써, 그리고 타자로써, 수비수로써 몇 번의 퍼펙트 게임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 팀 동료들이, 그리고 상대 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아 올린 107개의 블록.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 블록을 지켜내려는 시애틀 선수들, 그리고 어떻게든 그 블록의 탑을 무너뜨리겠다는 각오로 배트를 쥐고 있는 양키스 타자들.
“플레이!”
예전 내게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야구를 배우라 가르치던 코치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공을 던져야 할지 말이다.
피식
그래, 이런 건 모두 의미 없는, 이 세상에 어디 하나 공유할 곳 없는 나만의 공상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제 이 경기를 끝낼 때가 되었다는 거다.
스르륵
타석에 선 양키스 타자의 얼굴에 긴장감,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있다.
아마도 이런 거지 같은 순간에 자신을 대타로 내보낸 감독에 대한 원망이겠지.
앞선 두 개의 빠른 공에 제대로 반응조차 못 한 타자.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쯤 유인구가 날아올 타이밍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과 또 한 번 그 빠른 공이 날아올 거라는 생각이 서로 부딪히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순간 타자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빠른 공과 느린 공, 둘 중 하나에 타이밍을 맞추고,
배트를 휘두르고,
그리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
타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게 전부다.
탓
그런 타자를 향해 나는 오늘 경기를 끝낼 마지막 공을 준비했다.
야구공의 실밥 개수와 같은, 그리고 불교에서 흔히 일컫는 인간의 번뇌와도 그 수가 같은,
108번째의 공.
슈우웅
내 손 끝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타자의 스윙이 시작되는 게 눈에 들어왔다.
50 대 50의 확률 속에서 타자의 직감이 옳은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부우웅!
“스윙! 아웃!”
“우아아아아!”
“이런 미친! 퍼펙트! 퍼펙트라고?”
“이겼다! 이겼어! 빌어먹을! 퍼펙트라고!”
“한! 이봐! 한수혁! 젠장! 으아아!”
102마일로 날아오던 공이 갑자기 땅으로 쑥 꺼지고,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그라운드 위에 있던, 그리고 덕아웃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팀 동료들이 우르르 내게로 달려 들었다.
지난 4연패의 여파로 얼굴에 핏기 하나 없던 애송이들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얼굴로 내 이름을 불러댄다.
하루 종일 내게 야유를 쏟아붓던 양키스 팬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혹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 와중에 몇몇 양키스 팬들, 다 모아봐야 한 줌밖에 안 되는 교포들, 그리고 이제는 어디에 있어도 한 번에 찾아볼 수 있게 된 민예린이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즐겁다.
예전 삶에서는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되어서, 부상만 아니었다면, 내가 경험만 조금 더 있었다면 하는, 그런 거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나는 이 순간이 정말 즐겁다.
* * *
틱
“아앗! 주장! 조금만 더 보고……!”
“안 돼. 우리도 슬슬 훈련 시작해야지. 자, 다들 의자에서 엉덩이 떼고. 10분 안에 그라운드로 집합!”
얼마 전 또 한 번의 리모델링을 마친 잠실야구장 라커룸.
그 벽면 한쪽에 설치된 대형 TV 앞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한수혁의 경기를 지켜보던 워리어스 선수들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 같아서는 중계 후에 이어질 한수혁의 인터뷰 모습과 경기 하이라이트까지 다 보고 싶지만,
안 될 말이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자신들도 경기를 해야 하니까.
“준영 선배님…….”
“쉿, 마루야. 그냥 와.”
“네? 아, 아, 네, 알겠습니다.”
선수들이 모두 빠져 나간 라커룸.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있던 임준영을 최마루가 부르려 하자 누군가 곧바로 막아섰다.
조성오였다.
그가 최마루의 등을 조용히 밀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오늘 매지션스와의 잠실 라이벌전에 선발 등판 예정인 임준영은 지금 알 수 없는 감각에 빠져들어 있었다.
어느덧 서른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워리어스의 에이스는 방금 전 후배 한수혁의 피칭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다는 것, 물론 대단하고 엄청난 일이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프로에서만 15년 넘는 시간을 보내며 이제야 간신히 야구에 대해 알게 된 임준영은 오늘 한수혁이 퍼펙트 피칭을 달성한 이유를 하나하나 곱씹어보는 중이었다.
공이 빠르고 변화구가 위력적이고, 제구가 좋아서?
그건 그냥 당연한 거다.
한국에서도 최고였던 한수혁의 공은 미국으로 넘어가며 또 한 단계 진화했으니까.
하지만 임준영이 본 오늘의 퍼펙트 게임의 비결은 그런 공의 위력 같은 게 아니었다.
빠른 공을 던져 타자의 배트 타이밍을 강제로 거기에 맞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 느린 변화구와 체인지업을 연달아 던지며 타자들의 컨디션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렇게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타자들에게 다시 빠른 공을 던져 손발을 묶어버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변형 패스트볼을 존 안에 넣어 범타를 계속 유도하는,
이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그래, 그거다.
‘오늘 수혁이의 투구 정도면 야구 교과서에 수록해도 될 것 같은데.’
단순한 공의 빠르기와 상관없이, 정말 투구란 무엇인가, 투수는 어떻게 공을 던져야 하는가를 한 경기 안에 다 보여준 멋진 투구였다.
워리어스의 유니폼을 입은 지도 벌써 3년째에 접어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이가 서른 중반에 가까워지며 아주 조금씩이나마 팔 각도가 내려가고, 그에 따라 구속과 구위, 모든 면에서 전성기 때보다는 위력이 조금씩 떨어져가고 있다.
그렇게 점점 하락하는 피지컬을 경험과 두뇌로 커버하기 위해 임준영은 단 한순간도 야구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고 있다.
‘휴우… 저놈은 정말…….’
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임준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한수혁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대체 어떻게 하면 그 나이에 그런 투구를 할 수 있는 거냐고.
“준영이 형님, 감독님이 찾으십니다.”
“어? 어, 그래, 상진아. 바로 나가볼게.”
임준영이 한동안 라커룸에서 나오지 않자 감독이 천상진을 보내 그를 찾았다.
머릿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미련을 억지로 털어버린 임준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임준영을 보며 천상진이 말했다.
“형님도 수혁이 때문에 그러시죠?”
“응, 너도 그러냐?”
“그럼요, 당연하죠. 저도 투수인데요.”
“상진아.”
“네, 형님.”
“이제는 그만 형이라고 부르고. 아무튼 대체 수혁이 저놈은 뭘까? 뭐 하는 놈이야, 대체?”
“흐흐, 글쎄요. 저도 진짜 궁금하네요.”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미국 가서 수혁이랑 같이 뛸 걸 그랬나?”
“아직 안 늦으셨어요. 이번 계약 끝나면 미국 가시면 되죠.”
“그런가?”
천상진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준 임준영이 복도를 따라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곳에는 감독과 선배, 그리고 후배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영아, 이제 준비 끝난 거냐? 오늘 믿어도 되겠지?”
“선배님! 이거 그립 한 번만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 씨, 왜! 박동석, 왜 자꾸 옆구리를 꼬집는 건데?”
“이 정신 머리 없는… 아우, 됐어! 이리 와!”
후배들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에서 자신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번뇌들이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임준영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수혁이 자식, 한번 보고 싶네. 시즌 끝나면 한국에 오려나.”
한수혁이 양키스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쟁취한 그 순간, 한국에서는 임준영이 워리어스를 위해 마운드에 오를 준비를 시작했다.
* * *
[시애틀 매리너스 한수혁, 2번 타자 겸 선발투수로 출장해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 한 경기 사이클링 히트-퍼펙트 게임 동시 달성] [타석에서 4타수 4안타 1홈런 1타점, 마운드에서는 공 108개 던지며 15K 포함 무안타 무실점, 완벽 투구, 다시는 없을 대기록] [ESPN 전국 중계 통해 한수혁의 충격적 경기를 지켜본 야구팬들 “대체 저 선수가 누구냐? 왜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 [다시 한번 재조명 받고 있는 한수혁의 포스팅 협상 과정, 양키스와 레드삭스, 다저스의 오퍼를 거절하고 시애틀 매리너스를 선택한 이유는?] [대기록 달성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수혁 “재미있는 경기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냐는 질문에 “야구가 재미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최근 4연패에 빠져 있던 시애틀 매리너스, 한수혁의 퍼펙트 게임으로 7승 5패 기록하며 다시 지구 3위로 뛰어올라] [홈런(7개)과 다승(2승) 부문 단독 선두로 나선 한수혁, “기록에 신경이 쓰이냐고? 당연하다.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다. 나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두 번의 선발등판 경기 모두 미 전역으로 방송된 한수혁, 야구팬들에게 인지도 급상승] [올 시즌 매리너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타이 존슨 “한수혁의 뒤에서 뛰면서 열심히 타점을 주워 담는 데 힘쓰고 있다. 이러다 역대 최고 타점을 기록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 중”] [한수혁과 타이 존슨이 가세한 시애틀의 공격력에 메이저리그 투수들 초비상] [4연패 끊고 다시 한번 반등의 기회 잡은 시애틀, 양키스와 3차전 경기에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 예고]<삽화 별도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