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3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33화(234/412)
#233. 선택의 순간
[시애틀 매리너스, 휴스턴과의 원정 1차전 잡아내며 3연승. 선발 투수 디몬 앤더슨 주니어, 5이닝 5실점에도 불구하고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투수 달성] [한수혁, 6타석 4타수 4안타 2볼넷, 도루 5개, 타점 5개로 휴스턴 마운드 초토화, 홈런은 없었지만 완벽 그 자체였던 하루] [1회 홈스틸 허용한 휴스턴 포수 지미 존스턴, 2회에도 또 한 번 도루 허용하며 이닝 중 교체 굴욕] [그동안 도루 시도가 왜 없었냐는 질문에 한수혁 “앞으로도 웬만하면 도루는 자제할 생각, 오늘은 그냥 한번 뛰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시즌 2승 기록한 디몬 앤더슨 주니어 “타자들의 헌신에 감사한다. 특히 오늘 내 승리는 한수혁의 활약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랜디 맥크리어리 단장 “시즌을 치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법”] [팀의 16 대 5 대패를 지켜본 휴스턴 팬들 “이따위로 할 거면 당장 구단을 매각하라” 분노의 한 목소리]“오늘 아침 뉴스는 확인했나? 너희 팀 팬들이 화가 많이 난 거 같던데?”
“…….”
“흠, 어제 그 늙다리가 사라지고 젊은 놈이 대신 앉아 있길래 말이 좀 통할까 했는데… 뭐야, 벤치에서 대화 금지령이라도 내려온 거야?”
“…닥쳐! 너도 어린 건 마찬가지잖아!”
“어라? 말을 할 줄 아네? 다행이야. 마네킹하고 야구를 하는 건 별로 재미가 없을 거 같거든.”
“개자식.”
“욕도 할 줄 아는군. 좋아, 그럼 나도 한마디 해주지. 시끄럽게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제대로 덤벼봐.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그만, 거기서 더 이상 나가면 둘 다 퇴장이야.”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난 저 자식이 말을 시켜서 대답 몇 번 한 게 전부라고요!”
어제 내게 농락당하고 벤치로 쫓겨난 베테랑 포수 대신 오늘 급하게 마이너에서 콜업된 애송이가 억울하다는 듯 심판에게 항의했다.
멍청한 짓이다.
심판은 판사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판정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 아무 일 없이 오늘 경기를 마치는 것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할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알겠습니다. 입 닥치고 야구만 하겠습니다.”
“흠.”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도 나이와 경력 같은 게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KBO보다 오히려 더 고지식한 부분도 있다.
예전 같으면 빅리그 1년 차에 불과한 내가 이렇게 심판 신경을 건드렸다가는 볼 판정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고 심판의 권한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AI볼 판정 시스템.
바로 그것 때문이다.
이제 볼 판정을 하는 건 심판이 아니라 AI다. 심판이 하는 일이라고는 AI가 판정한 결과를 선수들에게 알려주는 게 전부다.
물론 세세하게 따지고 들면 볼 판정 외에도 체크스윙 여부라든지, 홈에서의 세이프 판정에서도 패널티를 줄 수 있겠지만…….
바로 그럴 때 쓰라고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라는 게 있으니까.
말이 길어졌는데 결론은 이거다.
굳이 심판과 적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그들에게 잘 보일 필요는 없다는 거다.
적어도 나는 말이다.
슈웅
“볼.”
만약 심판이 판정을 내렸다면 나, 혹은 저 휴스턴의 애송이 포수 중 누구의 편을 들어주느냐를 놓고 고민하게 만들었을 애매한 공에 볼 판정이 내려졌다.
AI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투수의 능력치 중 제구력에 대한 가중치가 더욱 높아졌다.
존 안으로 들어오다가 뚝 떨어지거나, 혹은 휙 휘어지며 보더라인을 스치고 가는 공에도 스트라이크 판정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타자가 육안으로 보기에는 존에서 한참 벗어나 땅에 처박히는 공이 종종 스트라이크로 판정 받기도 한다.
슈웅
“볼.”
하지만 지금 마운드에 위에 있는 휴스턴의 투수는 그런 정교한 제구력과는 거리가 있는 놈이었다.
턱도 없는 볼 두 개가 연속으로 날아들자 애송이 포수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Fuck!”
“뭐야, 설마 볼 판정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겠지? 네가 싱글A에서만 뛰다 와서 잘 모르나 본데 여기 빅리그에서는 말이야. AI판독 시스템이라는 게 도입되어 있거든? 신기하지?”
“다, 닥쳐. 나도 알아! 그리고 욕을 한 게 아니라, 젠장…….”
어리버리한 애송이를 가지고 노는 건 언제나 재미있다.
혹시나 사인을 훔친다 오해를 받을까, 뒤를 돌아보진 못했지만 지금 심판이 웃음을 참고 있다는 데 내 전 재산을 걸어도 좋다.
아, 잠깐만.
내가 조금 잘못 생각한 것 같다.
고작 이런 일에 걸기에는 내 전 재산이 너무 많아졌다.
흠,
아무튼,
어제 3연전 첫 경기에서 우리에게 대패를 당한 휴스턴은 오늘도 경기 초반부터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었다.
보통 메이저리그 구단이 유망주 수집을 위해 일부러 최하위를 노리는, 흔히 말하는 탱킹을 시작하면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이상 그 기조가 유지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 몇 년이라는 기간 동안 팬들은 팀이 뻔히 지기 위한 경기를 하는 걸 알면서도 눈물을 머금고 야구장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심지어 2010년대 후반 아메리칸 리그 중부 지구에서는 디트로이트와 시카코, 캔자스시티, 미네소타 등 4개 팀이 동시에 탱킹을 시작하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 있던 클리블랜드가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일도 있었다.
한두 팀도 아니고, 지구 전체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는 뜻이다.
그럼 야구를 안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실제로도 그런 이유로 야구를 외면하는 팬들이 늘고 있다.
아무리 로컬 스포츠에 충성도 높은 야구라 해도 그런 상황이 계속 되다 보면 팬들의 숫자는 점점 감소할 수밖에 없는 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 휴스턴의 홈구장을 보면 된다.
최대 4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멋진 구장에 고작 7,000명 남짓한 관중이 드문드문 모여 앉아 자신들의 팀을 향해 야유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이봐.”
“왜, 이 개, 개자식아.”
“격 떨어지게 욕은 그만하고. 네 이름이 뭔지 몰라서 그냥 부른 건데 혹시 섭섭해?”
“내 이름은 잭…….”
“아아, 됐어. 네 이름 같은 걸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음, 어차피 볼넷으로 내보낼 거면 그냥 자동고의사구를 요청하라고. 여기 타석에 서서 저 한심한 볼을 보는 것도 귀찮으니 말이지.”
“그게 아니라, 제구가 제대로… 젠장, 내가 무슨 소리를.”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내가 흘끗 뒤를 돌아봤는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다.
휴, 이제 좀 속이 풀린다.
급한 대로 열은 식혔으니 이 한심한 놈들에 대한 분노는 그만 접어두고 내 할 일을 할 차례다.
볼 두 개가 연속으로 들어왔으니 다음 공은 존 안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다.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저 얼빠진 녀석이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병에 걸린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기에 큰 것을 노린다.
어제 경기에서 추가하지 못한 홈런을 노릴 차례다.
드드득
장타를 만들기 위해 그립의 위치를 조정하고, 몸쪽 공에 대비하기 위해 좌측 발을 오픈하고,
포수에게서 분노의 감정을 전달받은 투수가 이를 악물고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당장은 멍청하고 한심해 보이지만 사실 멀지 않은 미래에 꽤 쓸 만한 투수가 될 놈이다.
물론 중요한 건 그 미래가 올지 안 올지, 이제는 알 수 없게 됐다는 거지만.
어쨌든 그런 녀석의 손 끝에서 공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아악!
“빌어먹을! 이 멍청한 개자식들아!”
“죽어! 죽어! 그냥 죽어버리라고!”
* * *
[거칠 것 없는 시애틀의 진격, 휴스턴과의 원정 3연전 싹쓸이하며 시즌 성적 11승 5패로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단독 선두] [슈퍼 루키 한수혁, 휴스턴 3연전에서 홈런 2개 8타점 추가하며 아메리칸 리그 홈런 1위(10개)] [1번 데릭 플레밍, 2번 한수혁, 3번 타이 존슨, 4번 척 클락, 상대 팀 투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시애틀의 핵타선] [시즌 22번째 타점을 기록하며 이 부문 단독 선두로 떠오른 타이 존슨 “한수혁이 앞에서 워낙 자주 출루하다 보니 가볍게 쳐서 홈으로 불러들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시애틀은 아주 좋은 팀이 되어가고 있다.”] [시즌 개막 전 서부지구 3위로 예상되었던 시애틀 매리너스, 타선의 폭발력에 힘입어 가을야구 진출 가능할까?] [부족한 선수단의 경험, 라이언 티보우와 한수혁을 제외하면 여전히 의문 부호인 선발진이 시애틀의 약점]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1위 시애틀와 2위 오클랜드의 대결, 내일부터 이어질 두 팀의 3연전에서 시즌 초반 향방 가려질 듯]“여기까지 어쩐 일입니까? 다니엘.”
“아, 벤자민, 지난 경기들은 아주 멋졌습니다. 대단했어요.”
“프런트에서 좋은 선수들을 보충해준 덕분이죠.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일단 커피라도 한 잔 드릴까요?”
“커피, 좋죠. 네, 그럼 부탁해도 될까요?”
“좋아요. 그럼 잠시만.”
원정팀 라커룸 한 켠에 위치한 감독실에 다니엘과 벤자민,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애슬레틱스와의 원정경기를 앞둔 벤자민 감독을 만나기 위해 다니엘 미첼 단장이 직접 오클랜드로 내려온 것이다.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에서 그나마 시애틀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이 오클랜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두 도시 간의 거리는 무려 1,100㎞에 달한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요?”
어차피 이번 3연전만 끝나면 시애틀에서 만나게 될 텐데, 굳이 왜 여기까지 날아온 걸까?
벤자민이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다니엘을 바라보았다.
후륵
후륵
바로 대답할 생각이 없는지 다니엘이 커피 몇 모금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곧 그의 입이 열렸다.
“벤자민, 전화로 할까 하다가 얼굴을 보고 묻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이번 시즌, 어떻게, 한번 해볼 만하겠습니까?”
바로 어제, 팀이 휴스턴 3연전을 스윕하며 지구 1위로 올라서는 순간, 시애틀 구단주 그룹이 결단을 내렸다.
선수 영입을 위한 추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결정 말이다.
한때 지구 내에서도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했던 시애틀의 페이롤은 이제 리그 전체에서도 중상위권으로 치솟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유망주였던 선수들의 연차가 쌓이며 동시다발적으로 연봉 조정 신청이 이루어졌고, 팀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베테랑급 선수 몇을 외부에서 데려왔다.
거기에 라이언 티보우와 10년짜리 장기계약이 아직 7년이나 남았고, 타이 존슨을 데려오기 위해 또 하나의 초대형 장기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이런 투자 기조에 대해 여러 명으로 구성된 시애틀 구단주 그룹 내에서도 찬반 여론이 엇갈렸다.
기왕 돈을 쓴 거 조금 더 써서 화끈하게 우승에 도전해보자.
아니다. 일단 이 정도 페이롤을 유지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부터 노려보자. 우승에 도전하기에는 아직 선수들의 경험이 부족하다 등등.
그렇게 한동안 이어졌던 양 측의 의견 대립이 이제야 정리된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본 후, 만약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우승에 도전해보자는 쪽으로 말이다.
“다니엘, 어려운 질문이기는 하지만 사실 감독으로서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겠군요.”
“뭐라고요?”
“저는 우리 선수들을 믿는다고 말이죠.”
“흐음.”
감독의 대답을 들은 다니엘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맞는 말이었다.
처음 저 사람을 감독으로 데려올 때부터 그는 계속 저렇게 말했다.
할 수 있다고, 선수들을 믿는다고.
정작 그 말을 안 믿은 건 바로 자신이었다.
감겨 있던 다니엘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의 단장 자리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원래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게 단장의 역할이니 말이다.
“벤자민.”
“네, 다니엘.”
“우리는 올 시즌 우승에 도전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저도 하나 묻죠. 혹시 좋은 매물이 나온 건가요?”
다니엘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맞아요. 그것도 두 명이나.”
“호오… 누군가요?”
“일단 밀워키의 샤킬 레너드.”
“오… 가만, 그럼 밀워키는?”
“네, 또 탱킹에 들어갈 거 같네요.”
“맙소사… 겨우 2년 만에…….”
“네, 그 팀 사정이야 좀 딱하지만 어쨌든 27살밖에 안 된 젊은 에이스가 시장에 나오는 건 절대 흔한 일이 아니죠. 지금 이 순간에도 밀워키 단장 전화기에는 불이 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또 다른 하나는 누구죠?”
“다저스의 마이크 워렌.”
“음.”
“네, 이쪽은 좀 애매하죠. 장기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가 너클볼을 장착하고 돌아와서 반 시즌 활약한 게 전부인 36살 투수……. 그런데 조건이 좋아요. 기본 연봉 자체도 높지 않고, 거기에 다저스 측에서 어느 정도 연봉 보조까지 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니까요.”
“그쪽에서는 마이크에 대해 회의적인 판단을 내린 모양이군요. 아무튼 좋아요, 다니엘. 이제 찾아온 용건은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그럼 저에게 뭘 원하는 건지 말씀해 주시죠. 혹시 그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건가요?”
“맞아요, 우리에게는 라이언과 한수혁의 뒤를 받쳐줄 선발투수가 필요하고, 만약 그게 샤킬 레너드라는 판단이 들면 큰 대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어떻게든 우리 팀으로 데려올 생각입니다.”
“이거, 허허,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는군요.”
“아뇨, 이번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질 테니 당신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어쨌든 벤자민,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27살의 젊은 에이스냐, 아니면 36살의 너클볼 투수냐. 어디로 가는 게 맞겠습니까?”
단장의 말에 감독이 잠깐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닫혀 있던 그의 입이 열렸다.
“다니엘.”
“네, 말해보세요, 벤자민.”
“내가 한국에서 뛸 때 말입니다.”
“네?”
“선수들의 미래를 기가 막히게 예측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같은 팀, 다른 팀 가리지 않고 말이죠. 저 선수는 몇 년 안에 포텐이 터질 거다. 혹은 저 선수는 오래 가지 못할 거다, 재미있는 건 그 예언이 대부분이 맞아떨어졌고, 그 덕에 그 친구가 있는 팀은 트레이드 시장에서 엄청난 이익을 얻곤 했죠.”
“그래요? 호오… 한국에 그런 스카우터가 있다고요? 누구입니까? 이번 일과 상관없이 일단 우리 팀으로 데려오죠.”
“하하, 스카우터는 아니고요. 그리고 굳이 데려올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네?”
“벌써 우리 팀에 와 있거든요.”
“그게 누구… 설마?”
“네, 지금 이 테이블에 그 친구를 초대해 보죠. 이봐, 게리. 한을 좀 불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