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3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34화(235/412)
#234. 너클볼 투수
운동선수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인 기량과 피지컬 외에도 선수의 인성과 가정환경, 대인관계, 워크에식, 부상의 위험 등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프로스포츠 팀의 스카우터는 그저 능력이 조금 뛰어난 도박꾼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여기,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누군가의 미래를 예측하는 게 가능한 사람이 있었다.
“누구요? 샤킬 레너드? 걔는 안 돼요.”
“안 된다고요? 왜요?”
“길어야 1년, 아니, 운이 없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어깨가 터져버릴지 모르거든요.”
감독실에 불려온 한수혁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니엘은 당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샤킬 레너드의 롱런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예전부터 존재해왔다.
투수를 하기에는 다소 작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100마일을 넘어서는 강속구를 뿌리는 우완 정통파 투수.
그렇기에 밀워키가 큰 마음먹고 샤킬 레너드에게 연 평균 2,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안겨 줬을 때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장기계약 후 2년간 밀워키의 마운드를 홀로 책임지며 내구성과 실력을 동시에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만약 밀워키에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밀워키가 탱킹이 아닌 가을야구 도전을 선택했다면,
샤킬 같은 투수가 시장에 나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저기, 한수혁 선수… 물론 그 친구 투구폼에 내구성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당장 내일 터질 수도 있다는 건 좀 지나친 억측 아닐까요?”
“다니엘.”
“네, 한수혁 선수.”
“그 녀석, 아직도 아버지를 개인 트레이너로 두고 있죠?”
“트레이너? 네, 네, 올해부터 다시 아버지에게 맡겼다고 들었습니다.”
“스프링 트레이닝 때 아버지가 투구폼에 손을 댔고요.”
“아, 네, 그랬죠. 그런데 거의 차이가…….”
“그럼 확실해요. 지난 2년 동안은 아버지 손을 떠나서 그나마 멀쩡할 수 있었지만, 다시 그 양반이 손을 댄 이상 절대 오래 못 갈 거예요. 물론 우리 팀으로 데려오면서 계약 조건에 그 아버지와 손절하는 걸 넣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이래저래 시끄러워지겠죠?”
“한수혁 선수 얘기는 샤킬 레너드의 아버지가 옆에 붙어 있는 한 무조건 부상이 터질 거다?”
“맞아요. 물론 아닐 수도 있겠죠. 어쨌든 내 생각을 묻는다면 그렇습니다.”
“흠.”
한수혁의 말에 다니엘의 얼굴에 고심의 빛이 떠올랐다.
자신의 단장직이 날아가는 한이 있다 해도 어떻게든 데려와 보고 싶었던 밀워키의 젊은 에이스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이라고?
그렇게 단장이 고민에 빠져든 사이, 대신 감독이 나서 한수혁에게 물었다.
“그럼 챔피언, 하나만 더 묻지. 마이크 워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마이크 워렌? 다저스 마이크 워렌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아니, 그 아저씨가 지금… 음, 혹시 그 선수가 지금 너클볼을 던진 지 얼마나 됐죠?”
“작년 시즌 중반부터 시작해서 반 시즌 정도?”
“흠, 다저스 걔들은 이래서 안… 아무튼 벤자민.”
“그래, 말해보게.”
“일단 마이크 워렌은 아주 좋은 선수고요. 우리 팀에 영입한다면 확실히 자기 몫을 해줄 겁니다. 만약 샤킬과 마이크,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저는 무조건 마이크를 고를 거고요.”
“그 정도인가?”
“네.”
“좋아, 그럼 우리가 필요한 건 다 들은 것 같으니 이만 나가서 경기 준비를 하도록 해. 컨디션은 괜찮은 거지?”
“더할 나위 없이요.”
“다행이군. 그럼 그라운드에서 다시 보자고.”
감독의 말에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한수혁이 감독실을 빠져나갔다.
벤자민과 다니엘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다니엘이었다.
“벤자민.”
“네.”
“표정을 보아 하니 한수혁 선수의 말을 100% 신뢰하고 있군요.”
“맞습니다. 그는 제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정확한 눈을 가졌으니까요. 대체 저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안목을 가지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좋아요.”
“네?”
“어차피 미래는 오직 신만이 아시는 거겠죠. 우리 같이 평범한 인간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걸 테고…….”
“걸 테고……?”
“그럼 한번 믿어봅시다. 저 멀리 하늘에 계신 신 말고, 지금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야구의 신을 말이죠.”
“호오… 그것 참 근사한 말이군요. 야구의 신이라.”
“저는 한수혁 선수가 한국에서 뛸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뭐, 어쨌든 저는 감독 입장에서 둘 중 누가 오든 환영입니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선발진에 조금 손을 댈까 생각 중이었으니까요.”
“네, 그럼 저는 다시 시애틀로 돌아가겠습니다. 며칠 안에 좋은 소식 전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원래 삶에서 한수혁에게 너클볼을 전수해줄 운명이었던,
마흔네 살의 나이까지 메이저리그에서도 유일무이한 너클볼 선발투수로 활약하게 될 마이크 워렌의 미래가 그렇게 결정되었다.
* * *
시애틀과 오클랜드 간의 1차전 경기가 5 대 4, 오클랜드의 한 점 차 승리로 끝난 그날 저녁,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LA에서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절 찾으셨다고요, 단장님.”
“그래, 마이크. 컨디션은 어때? 어깨는 괜찮고?”
“물론이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음.”
“…설마 트레이드입니까?”
“내 입으로 자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돼서 유감이야. 오랜 시간 다저스에 대한 자네의 공헌은 잊지 않겠네. 하지만 더 이상 함께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단장의 말에 나이 든 투수의 고개가 밑으로 툭 떨궈졌다.
이곳 팜에서 성장해 지금까지,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저스를 위해 헌신해 왔다.
내 몸에는 파란 피가 흐른다고 말했던 다저스의 어떤 감독만큼은 아니더라도, 마이크 워렌은 이 팀이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냉혹했다.
선수를 떠나보내야 하는 프런트도,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필요 없다는 말을 전달받은 선수도,
서로가 괴로울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다.
그가 더더욱 아쉬운 건 아직도 자신이 다저스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남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수술대에 올랐을 때는 이대로 선수생활이 끝나나 싶었지만 2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결국 너클볼 투수가 되어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시즌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시즌 하반기, 다섯 게임에 선발 등판해 평균 자책점이 6점대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다를 거라 확신했다.
스프링 트레이닝과 시범경기를 거치며 드디어 너클볼이 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의미 없는 이야기다. 이미 자신의 운명은 결정되었으니까.
간신히 생각을 정리한 마이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이런 게 야구이니까요.”
“좋아, 팀을 옮기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우리도 최선을 다해 돕겠네.”
“고맙습니다. 자, 이제 말씀해 주시죠. 제가 가야 할 곳을 말이죠.”
“이곳에서 멀지 않아. 토마스가 도와줄 테니 곧바로 오클랜드로 출발하면 된다네.”
“오클랜드? 거기서 저를 데려간다고요?”
“아니, 오클랜드가 아니라 거기랑 상대하고 있는 팀이 자네의 새로운 직장이 될 거야.”
* * *
시애틀과 오클랜드의 2차전, 당초 한수혁이 등판할 예정이었던 그 경기의 선발투수가 어젯밤 급하게 변경되었다.
“자, 제군들. 주목. 다들 이 친구가 누구인지 알겠지? 오늘부터 우리 선수가 된 마이크 워렌이다. 팀에 합류하자마자 선발로 등판하게 되었으니 다들 많이 도와주고, 그럼 라이언, 주장으로서 이 친구가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젠장, 이런 말을 하기에는 이 친구 경력이 너무 많군. 좋아, 인사는 다들 알아서 하고, 중요한 건 오늘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거다. 다들 알겠나?”
“네! 보스!”
“목소리 한번 마음에 드는군. 그럼 다들 조금 이따가 보자고.”
당초 에이스 라이언을 필두로 2선발 디몬, 3선발 댈빈, 4선발 조나, 5선발 제이크, 6선발 한수혁 순으로 운영되던 시애틀의 투수 로테이션이 마이크 워렌의 합류를 계기로 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6선발 자리에서 뛰며 빅리그 무대 적응 작업을 마친 한수혁이 라이언의 바로 뒤 2선발 자리로 이동하고, 시즌 개막 후 내내 부진했던 4선발 조나 버로우와 5선발 제이크가 중간계투진로 자리를 옮겼다. 대신 오늘 합류한 마이크 워렌이 5선발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라이언 티보우, 한수혁, 디몬 앤더슨 주니어, 댈빈 슈워츠, 마이크 워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5선발 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트레이드는 시애틀에게 있어 다시 한 번 윈나우를 선언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몇 년 전에도 윈나우를 선언했다가 2년 연속 4위에 머문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그때 시애틀에 빅네임이라고는 라이언 하나가 유일했다면, 이제는 거기에 한수혁과 타이 존슨, 그리고 마이크 워렌이라는 베테랑 투수까지 가세하게 된 것이다.
다저스에서만 17년을 뛰며 통산 139승을 기록한 올해 서른여섯 살의 투수.
시애틀은 빅리그에서 활용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하위 라운드 신인 두 명을 내주고 대신 이 투수를 데려왔다.
연 평균 300만 달러짜리 계약이 아직 2년 남아 있지만 다저스에서 100만 달러를 보조해 주기로 했으니 어느 정도 성적만 내준다면 시애틀로서는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패한다면 다 늙어서 너클볼밖에 못 던지는 퇴물을 데려왔다고 욕을 먹겠지만 말이다.
“마이크, 오랜만이네요. 한 5년 정도 됐죠?”
“라이언,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갑군. 그래, 맞아. 내가 마지막으로 올스타전에 나갔을 때 봤으니 5년 전이 맞을 거야.”
“그렇군요. 그나저나 새 유니폼을 입자마자 선발등판이라니.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아니, 어차피 다저스에서도 오늘 선발로 등판하려고 몸을 만들고 있었거든. 아무 문제없어.”
“좋아요. 그럼 새로운 배터리와도 인사를 해야겠죠? 브루스, 이쪽으로 와봐.”
사실 시애틀이 마이크 워렌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주전 포수 브루스 매튜스의 존재 덕분이었다.
너클볼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포수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나 지금처럼 너클볼 투수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는 더더욱.
다저스에서는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포수가 마이크의 전담 포수를 맡았다.
지난 시즌 타율 0.078을 기록한, 타격이 아예 안 되는 반쪽짜리 포수가 말이다.
당초 다저스는 약간의 추가금만 지불하면 마이크 워렌과 그 포수를 세트로 묶어 함께 보내주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시애틀이 거절했다.
타격이 전혀 안 되는 포수를 로스터에 넣는 건 심각한 낭비일뿐더러, 주전포수인 브루스 매튜스가 대학 시절 너클볼 투수와 배터리를 이뤘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시즌 동안 너클볼 투수를 선발로 등판시키려면 어느 정도 시행착오는 각오해야 한다. 시애틀은 그 각오를 마친 상태이고 말이다.
“헤이, 마이크. 우리 한 번 본 적 있죠?”
“그래, 지난 시즌 인터리그에서… 음, 맞아. 내가 아마 삼진을 잡았지?”
“젠장,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찔하네요. 그 공을 내가 잡아야 한다 이거죠?”
“잘 부탁해. 친구, 자네가 내 공을 못 잡으면 난 곧바로 마이너에 처박힐지도 몰라.”
“걱정 말아요. 좀 오래 되긴 했지만 그래도 대학 2년 동안 너클볼이라면 신물이 나도록 잡아봤으니까요.”
“좋아. 고마워.”
그 뒤로도 마이크와 안면이 있는 몇몇 선수들이 다가와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돌아갔다.
그중에서 마이크의 합류를 가장 반긴 건 타이 존슨이었다.
팀 내에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선수가 하나도 없다는 데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던 그는 진심으로 마이크를 반겼다.
그렇게 생각보다 많은 선수들이 자신의 합류를 반겨주자 마이크 역시 다시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17년 동안 몸 담은 팀에서 버림받았다는 자괴감도 조금씩 옅어졌다.
그런 마이크를 향해 마지막으로 다가온 선수는 다름 아닌 한수혁이었다.
“음, 그러고 보니 저 친구를 빼놓을 뻔했네요. 마이크, 누군지 알죠? 하긴 모를 리가 없겠죠.”
“알지. 저 정도로 요란한 데뷔 시즌을 치르는 선수는 처음 보는 것 같으니까. 이봐, 한. 잘 지내보자고.”
마이크가 내민 손을 한수혁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잘 왔어요, 마이크. 그리고 고마워요.”
“음? 뭐가?”
한수혁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