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3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36화(237/412)
#236. LA다저스
운동선수가 성장하는 방법 중 롤모델로 삼은 선배의 플레이를 직접 보며 느끼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문제는 빅리그에 마지막 남은 너클볼 투수 마이크 워렌에게는 그런 롤모델을 만날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오늘, 마이크는 처음으로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저건 대체… 맙소사, 저건…….’
5이닝 1피안타 1볼넷 무실점.
한수혁이 5회까지 너클볼 하나로 토론토 타자들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며 마이크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때 우완 정통파 투수였던 그가 어깨 부상 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클볼 투수로 변신하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투구 매커니즘을 갈아엎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투구라는 건 손가락으로 강하게 공을 잡아채 최대한 많은 회전을 주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바로 거기서 공의 구속과 구위, 변화구의 각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구종, 너클볼만은 예외다.
너클볼을 제대로 던지기 위해서는 공을 잡아 채는 대신 밀 듯이 던져야 한다. 회전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위력적인 공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너클볼을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투구 매커니즘에 변화가 생긴다.
투구의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포심의 구속과 위력이 점점 줄어들고, 대신 볼의 회전이 줄어들며 너클볼의 위력이 점점 더 증가된다.
말하자면 분명 같은 투수이지만, 다른 투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저게 대체 말이 되는 건가?’
지난 몇 년간 재기를 위해 너클볼을 연구해온 마이크 워렌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투수라 해도 107마일의 포심과 70마일의 너클볼을 함께 던진다는 건 불가능하다.
적어도 그게 지금까지 마이크 워렌이 갖고 있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런 상식이 무참히 깨어졌다.
지난 등판까지 107마일의 광속구를 뻥뻥 뿌리던 한수혁이 최저 60마일에서 최대 75마일에 불과한 너클볼 하나로 토론토 타자들을 박살 내고 있었다.
마이크 워렌이 정말 놀란 건 5이닝 무실점이라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완벽해…….’
자신이 너클볼을 연습하며 꿈꿔온 가장 이상적인 공, 지금 그 공이 한수혁의 손 끝에서 구현되고 있었다.
“플레이!”
6회초, 타이 존슨의 홈런으로 시애틀이 3 대 0으로 앞서 나가는 가운데 다시 토론토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무덤덤한 표정의 한수혁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또 너클볼을 뿌려 상대 타자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슈웅
부웅
“스윙!”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우아아아아!”
“뭔지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젠장, 멋진 피칭이야!”
“그래, 공 속도가 뭐가 중요해? 아웃만 잡으면 되는 거지! 한수혁! 네가 최고다!”
공중에서 거의 춤을 추는 듯한 너클볼에 토론토의 타자가 제대로 스윙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삼진으로 물러났다.
순간 마이크 워렌의 눈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뭔가가 잡혔다.
그에게 너클볼을 가르쳐준 인스트럭터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구종을 던져야 하는 일반적인 투수들에게는 릴리스 포인트를 일정하게 가져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반면, 너클볼 투수는 그것보다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어차피 너클볼만 주구장창 던질 거라는 걸 상대도 알고 있고, 똑같이 던져봐야 공이 어디로 갈지 투수도 컨트롤할 수 없으니 다른 건 무시하고 공을 제대로 밀어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공 하나는 서서 던지고, 공 하나는 누워서 던져도 어차피 둘 다 너클볼일 거라는 걸 타자가 알 테니 굳이 릴리스 포인트를 이용해 타자를 속일 필요는 없었다.
마이크 워렌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훈련해왔다.
공 하나하나마다 투구 폼이 좀 달라지거나 릴리스 포인트가 들쑥날쑥해도 일단 넘어갔다.
그보다는 공의 회전을 최대한 억제하고 존 안으로 공을 집어넣는 데만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슈웅
부웅
“스윙! 아웃!”
“퍼킹! 그레이트! 그래! 네가 에이스다! 한수혁! 네가 최고야!”
“캐나다 촌뜨기들을 죽여버려! 죽여버리라고!”
한수혁은 달랐다.
그는 마치 너클볼을 던지는 기계처럼 똑같은 폼,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에서 계속 공을 뿌려댔다.
그렇게 그의 손끝을 떠난 공이 너풀너풀 춤을 추며 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이크 워렌이 보기에 한수혁과 자신이 던지는 너클볼의 회전수와 변화폭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그와 자신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존재했다.
기계처럼 정확한 투구 폼, 자로 잰 듯 일정한 릴리스 포인트, 그리고,
슈웅
따악
“아웃!”
“우아아아아!”
“벌써 6이닝 무실점이야! 너클볼 하나로!”
“왜 포심을 안 던지는지 모르겠지만 젠장, 상관없어! 다 죽여버리라고!”
자신의 공이 절대 공략당하지 않을 거란 믿음, 그리고 확신.
관중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올린 한수혁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덕아웃으로 들어오는 한수혁과 마이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순간 마이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한수혁에 대한 경외감, 놀라움, 그리고 지금 당장이라도 마운드에 올라가 너클볼을 던지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5이닝 7실점을 했던 아픈 기억 따위는 깨끗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신 한수혁처럼 던지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 * *
따아아아악!
“오! 오! 오오오! 간다!”
“갔어! 갔다고! 으하하하하! 캐나다 자식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줬다고!”
7회말, 3타자 연속 출루를 허용하고 정신이 반쯤 나간 토론토 투수의 공을 한수혁이 펜스 밖으로 넘겨버렸다.
순식간에 스코어가 9 대 0으로 벌어지자 벤자민 감독은 즉시 한수혁에게 아이싱을 명령하고, 불펜 투수를 준비시켰다.
아직 투구 수에 여유가 있지만 6선발에서 2선발로 자리를 옮긴 한수혁의 컨디션을 관리하기 위한 조치였다.
투수로서 7이닝 무실점, 그리고 타자로서 1홈런 4타점.
오늘 한수혁이 이뤄낸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어깨에 아이싱을 한 한수혁이 벤치 오른쪽 가장 끝자리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혼자서 경기를 좌지우지하는 한수혁의 포스에 눌려 동료 선수들조차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한수혁이 지난 양키스전에서 사이클링 히트와 퍼펙트게임이라는 대기록을 동시에 달성했음에도 아직까지 시애틀 선수들이 생각하는 팀내 최고 투수는 라이언 티보우고, 최고 타자는 누가 뭐래도 타이 존슨이었다.
그건 그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커리어에 대한 존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수들의 머릿속에 조금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벤치에 걸터앉아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는 저 어린 선수가 어쩌면 팀내, 아니, 미국 최고의 선수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투구를 마치고 가만히 앉아 있는 한수혁에게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그 증거라 할 수 있었다.
뭔가 자신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그런 존재를 보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단 한 사람, 당장이라도 한수혁에게 달려가고 싶은 선수가 있었다.
방금 전 본 엄청난 투구에 대해 묻고 싶은, 그리고 그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나이 든 투수.
마이크 워렌,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한수혁에게 다가갔다.
“이봐, 한.”
“네, 마이크.”
한수혁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의 부름에 대답했다. 하지만 잔뜩 흥분한 마이크는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나만, 아니, 몇 가지만 물어도 될까?”
“제가 타석에 들어서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네, 좋아요. 얼마든지요.”
“고마워. 다른 게 아니라…….”
머릿속에 엉망진창 나열된 궁금증을 하나로 정리하느라 마이크의 입이 닫혀버렸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어떻게 하면 그런 공을 던질 수 있는 거지? 너클볼을 던질 때도 릴리스 포인트를 일정하게 가져가는 게 중요한 걸까? 아니, 애초에 오늘 왜 너클볼을 던진 거야? 넌 원래 너클볼 투수가 아니잖아.”
“하나씩만 물었으면 좋겠는데.”
“아아, 이런 젠장. 미안해. 내가 너무 흥분했군. 좋아, 그러니까 내 말은…….”
“마이크.”
“음?”
“일단 릴리스 포인트, 네, 중요해요. 당신이나 저처럼 두 가지 스피드의 너클볼을 섞어 던질 때는 더더욱이요.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제대로 된 너클볼을 던지는 거지만요. 이걸 착각하지 말아야 해요. 그러려면 당연히 죽어라 연습하는 것뿐이겠죠. 빠른 공을 던지던 시절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왜 너클볼을 던졌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그냥 그러고 싶어서?”
마이크가 입을 닫지 못한 채 한수혁의 말을 경청했다.
이 팀에서 오래 뛰지는 않았지만 눈앞의 이 어린 동양인 선수가 평소에 얼마나 과묵한지 아는 그로서는 지금 그가 왜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한수혁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어차피 너클볼이란 게 그런 거잖아요. 내 손을 떠난 공이 어디로 향할지 나조차도 짐작할 수 없는. 기술적인 부분들은 당신도 이미 답을 알고 있어요. 그렇기에 마이크, 당신에게 부족한 건 그게 아닐 거라 생각해요.”
“내게 부족한 거? 그게, 그게 대체 뭐지?”
“믿음,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은 옳다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더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노력.”
“아…….”
“너무 뻔한 이야기죠? 하지만 제 생각은 그래요. 마이크, 자신을 믿어요. 당신이 옳아요. 틀리지 않았어요. 그대로만 가면 돼요.”
그 뒤에 따라붙었어야 할 말이 하나 더 있었다.
이건 미래의 당신이 내게 가르쳐준 거라고, 당신은 대단한 너클볼 투수가 되어 오랜 시간 이곳에서 살아남게 될 거라고.
결코 입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그 말을 속으로 삼키며 한수혁이 마이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마이크, 고마워요. 진심으로.”
한수혁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이크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호의에 감사하는 것이 마이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 * *
[7이닝 12K 무실점 승리투수, 홈런 1개 포함 2안타 4타점, 한수혁의 맹활약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12 대 3으로 대파한 시애틀 매리너스, 리그 단독 1위 고수] [투수 성적 3승 무패 방어율 0, 타자 성적 4할, 11홈런 25타점, 이달의 선수상 유력해진 한수혁 “아직은 영점이 제대로 안 잡혔다. 아직은 내 컨디션이 아니다” 야구팬들 경악] [시애틀 팬들 “오늘 경기로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아메리칸 리그, 아니, 빅리그 최고의 선수다. 그런 선수를 데려온 보드진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SPN을 통해 또다시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된 한수혁의 선발 등판 경기, 야구팬들 “엄청난 선수다. 우리 선수가 아니라는 게 너무 아쉬울 뿐이다.”]└젠장, 누가 권총 한 자루만 빌려줄 사람 없을까?
└권총은 뭐 하게?
└듣도 보도 못한 한국인 선수를 영입하겠다고 단장이 한국으로 갔을 때 내가 구장 앞에서 시위를 했거든
└무슨 시위?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우리 팀 유격수와 FA계약이나 제대로 맞으라고
└너 어느 팀인데?
└메츠
└지져스… 정말 권총이 필요할 것 같군
└빌어먹을, 정말 저 자식 뭐야? 저게 말이 되는 성적이야? 잠깐 반짝 하고 말 줄 알았는데, 여전히 4할이 넘는다고? 22이닝 무실점은 또 뭐고? 아무리 107마일을 던져도 그게 말이 돼?
└지난 경기를 못 본 모양이군, 친구. 이걸 한번 보라고?
└???? 이건 또 뭔데? 왜 70마일 공에 토론토 멍청이들이 헛스윙을 하고 있는 거지?
└그게 바로 너클볼이라는 거야
└너클볼? 강속구 투수라며, 웬 너클볼
└젠장,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해. 지난 스토브리그의 승자는 시애틀이야.
└그나저나 저 녀석 꽤 어려 보이는데 대체 몇 살이야?
└스물셋
└오 마이 갓… 나는 대체 스물세 살 때 뭘 하고 있었지?
└아마 쇼파에 드러누워 한심한 메츠 경기를 보면서 아이스크림이나 퍼먹고 있었겠지
시애틀 팬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한수혁에 대한 관심이 이제 본격적으로 리그 전체에 퍼져 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시애틀과 한 번도 붙어보지 못한 팀의 팬들조차 한수혁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가 기록한 놀라운 성과에 경악하게 되었다.
그 사이, 시애틀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토론토와의 2차전에서 3선발 디몬 앤더슨 주니어가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2연승을 거둔 시애틀은 이제 다음 상대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4선발 댈빈 슈워츠와 5선발 마이크 워렌, 그리고 1선발 라이언 티보우가 나서게 될 이번 3연전의 상대는 다름 아닌 LA다저스, 마이크를 방출하다시피 내보낸 친정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