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3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37화(238/412)
#237. 덤벼봐
“오빠! 여기요!”
다저스와의 홈 3연전 1차전 경기에서 4선발 댈빈 슈워츠의 부진으로 먼저 1패를 당한 시애틀은 오늘 너클볼 투수 마이크 워렌을 앞세워 반격을 준비했다.
유니폼을 갈아입은 지 고작 일주일도 안 되어 만나게 된 친정팀.
그래서일까, 복잡한 심경이 된 마이크 워렌은 아무 말없이 경기 준비에만 몰두하는 중이었다.
한편, 전날 경기에서 3루수 겸 2번 타자로 출전해 안타 2개를 추가한 한수혁이 경기장 앞에서 민예린을 만나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저 안 늦었죠?”
“괜찮아. 천천히 와도 된다니까.”
“아뇨, 팀 훈련 시작했는데 다시 나오려면 힘드시잖아요. 아무튼 여기요!”
민예린이 가슴팍에 안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 한수혁에게 건넸다.
지난 양키스전에서 함께 퍼펙트 게임을 만들어낸 포수에게 줄 시계였다.
“생각보다 빨리 구했네. 이거 예약해도 나오려면 한참 걸리는 거 아니야? 음, 지난번에도 그렇고 비결이 뭐야? 혹시 집에 롤렉스 시계 쌓아 놓고 사는 건 아니지?”
한수혁의 농담에 민예린이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지!’
언제 어느 때 그가 퍼펙트 게임을 기록할지 알 수 없기에, 이미 충분한 시계 물량을 확보해 놓은 민예린으로서는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걸 곧이곧대로 털어놓아 한수혁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런 건 모두 자신에게 맡기고 그는 그저 열심히 야구만 했으면 좋겠다는 게 민예린의 마음이었다.
‘헉… 이게 설마 그 내조라는 건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을 간신히 참아 누르며 민예린이 다른 쪽으로 말을 돌렸다.
“아, 그리고 오빠, 그 언니 말인데요. 죄송해요……. 아직도 나온 게 없어요.”
“언니 아니야. 우리보다 어리다니까. 그리고 괜찮아. 하루 이틀 안에 찾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 천천히 해도 돼. 그보다 예린아.”
“네?”
“그 오빠라는 말 말이야. 그냥 대충 넘어가려 했는데 역시나 안 되겠다. 아무리 생일 차이가 나도 동갑내기한테 오빠 소리 듣는 거 진짜 어색해.”
한수혁의 말에 민예린의 표정이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오빠…….”
“오빠 하지 말라니까.”
“히잉… 죄송해요.”
“갑자기 뭐가?”
“저 프로필 나이 한 살 올렸어요.”
“뭐?”
“미국에서 공부하고 한국 와서 음악 시작하는데 너무 어린애가 작사작곡까지 한다고 하면 얕보인다고… 그래서 나이를…….”
“야, 너 그게 무슨……. 아니, 그보다 그걸 왜 이제 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잠시 버벅거리던 한수혁이 갑자기 표정을 굳혔다.
머릿속에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만! 너 그럼 나 처음 만났을 때 미성년자였던 거야?”
정색이 된 한수혁이 무언가를 생각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짰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 짧았던 포옹부터 단둘이 떠난 LA여행, 그리고 이후 민예린과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이 차례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혹시 내가 법에 걸릴 만한… 아냐, 그건 다음 해니까…….’
한참 동안 뭔가를 고민하던 한수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를 올렸다… 연예인이 나이를 내린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음, 어쨌든 알았어. 진짜 동생이었다니 나도 마음이 편하네.”
“죄송해요… 속여서.”
“아니, 됐어. 뭐 중요한 것도 아니고. 어쨌든 예린아, 시계 정말 고마워. 내가 돈은 경기 끝나고 바로 보내줄게. 오늘 시합 재미있게 보고.”
한수혁이 경기장 안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민예린이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도 자신에게 거리를 두는 것 같아 속상할 때도 있지만 저 사람은 나름대로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슬퍼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가 먼저 자신의 손을 잡아줄 거라 믿으며.
‘일단… 이 여자부터 빨리 찾아드리자.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민예린은 그렇게 조금씩 정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브루스.”
“어, 왜?”
“이거 받아.”
“이게 뭔데?”
“뭐긴 뭐야. 기념품이지.”
한수혁이 내민 작은 케이스를 브루스가 받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맙소사… 이거 진짜 비싼 건데? 이봐, 한. 정말 괜찮겠어? 루키가 이런 걸 턱턱 선물해도 되는 거냐고.”
“괜찮아. 나도 돈 많아.”
“그래? 하긴 한국에서는 슈퍼스타였다고 했지. 아무튼 정말 고마워. 이거 나도 정말 갖고 싶던 모델인데. 젠장, 그러고 보니 퍼펙트 게임을 하고 시계를 받아본 건 이게 처음이네.”
“그거 나 들으라고 한 소리지?”
마침 옆을 지나가던 라이언이 장난스럽게 브루스의 머리를 툭 치며 지나갔다.
이곳 시애틀에서 함께 데뷔해 오랜 시간 배터리를 이뤄왔지만 아직 라이언은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경험이 없었다.
“그나저나 부르스.”
“음? 아, 잠깐만 일단 이거부터 넣어놓고. 맙소사, 라커에 보관하기에는 너무 비싼 물건인데.”
한참 동안 너스레를 떤 브루스가 한수혁을 따라 라커룸 구석으로 향했다.
그런 브루스에게 한수혁이 물었다.
“마이크 컨디션은 어때?”
“컨디션? 흠, 글쎄. 지난번하고 비슷한 거 같은데. 어제까지만 해도 의욕이 넘치는 거 같더니. 오늘은 좀 차분해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래도 친정팀을 상대하려니 마음이 복잡한 거 아닐까?”
“브루스.”
“어?”
“오늘 리드할 때 최대한 경기 진행 속도를 빠르게 높여봐.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경기 속도? 흠,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았어. 그나저나 너, 혹시 다음에도 너클볼 던질 생각이야? 그럴 거면 미리 말해. 저번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아니, 던질 생각 없어. 아무튼 명심해. 빠르게, 최대한 빠르게. 투수가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속도를 높여봐. 그럼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까.”
* * *
한 조직에 오래 몸을 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맥이라는 게 형성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오늘 경기 전 우리 덕아웃을 찾아와 마이크 워렌에게 인사를 건네고 간 다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애런 데커처럼 말이다.
문제는 오랜 인맥이라는 게 이처럼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누군가에 대한 호의뿐만 아니라 불만이나 적대감 같은 감정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짙어지게 마련이니까.
1회초, 마운드에 선 마이크 워렌은 안타 1개와 볼넷 1개를 내줬지만 유격수 조쉬 올리버의 호수비에 힘입어 간신히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어진 1회말, 시애틀의 공격.
1번 데릭이 3루수 플라이로 물러난 가운데 내 차례가 돌아왔다.
아무 생각 없이 타석에 들어서는데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질 것 같은, 탁하고 걸쭉한 목소리가 내 귀로 흘러 들어왔다.
지난 시즌, 너클볼을 제대로 받지 못해 마이크가 등판할 때마다 다른 포수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던 다저스의 주전포수 티건 버크해드였다.
“이봐, 너희 팀에는 선발투수가 부족한 건가? 비만 오면 어깨도 잘 못 올리는 저런 영감을 마운드에 세우는 걸 보면 말이야.”
그 비아냥의 대상이 다른 선수였다면 그냥 흘려듣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보모도 아니고, 우리 팀 선수들을 하나하나 다 챙길 필요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그것이 마이크 워렌, 내가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면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공도 제대로 못 받아서 타율 7푼짜리 포수한테 홈플레이트를 내줬던 놈이 할 소린 아닌 거 같은데?”
“뭐?”
“다른 사람 나이를 들먹일 거면 네 그 병신 같은 미트질이나 먼저 걱정해. 이 머저리 같은 자식아. 한 번만 더 입을 함부로 나불거리면 대가리를 박살 내버릴 테니까.”
“워워, 잠깐. 거기까지. 더 이상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나도 가만 있을 수가 없어.”
“…빌어먹을 개자식, 두고 보자.”
주심의 즉각적인 개입에 험악스러웠던 분위기가 일순간 가라앉았다.
포수 놈이 내뿜는 콧김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들린다.
지난 시즌 다저스가 리그 최강의 전력을 갖고도 챔피언십에서 세인트루이스에게 밀린 데는 이 포수의 지분이 적어도 절반 이상일 것이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침착해야 할 포수가 저렇게 자기 감정조차 제대로 제어를 못 하니, 플레이오프 같은 큰 경기에서 다저스 마운드가 약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마이크 워렌을 트레이드한 건 다저스 프런트의 큰 실수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몇 년간 큰 경기에서 자기 몫을 해 줬을 베테랑을 연봉 보조까지 해주며 내보내다니.
뭐, 그것 때문에 이익을 본 우리 입장에서야 고마운 일이지만.
“플레이!”
어쨌든 포수가 이렇게 흥분을 했으니 초구가 어디로 들어올지는 안 봐도 뻔하다.
몸 쪽 높은 위협구일 확률이 적어도 80%.
다만 한 가지 변수가 하나 있는데, 바로 마운드 위의 저놈이다.
다저스의 에이스 조슈아 칼루.
3년 전 사이영 위너이자 지난 시즌에도 18승을 기록한 LA다저스의 1선발.
오늘 경기 도박사들이 다저스의 일방적인 우세를 예견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친정팀에서 방출당한 후 첫 번째 경기에서 난타 당한 36세의 너클볼 투수와 지난 시즌 18승을 올린 에이스 간의 선발 맞대결이니 말이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나는 저 투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기른 턱수염과, 조금이라도 강해 보이기 위해 새겨 넣은 양손 커다란 타투.
심약한 성정을 감추기 위해 남자다운 척 자신을 포장하고 살아가지만 알고 보면 겁쟁이라는 걸 난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떻게 아냐고?
겁대가리 없이 나를 맞추길래 펀치 몇 방을 먹여줬더니 엄마를 찾으면서 외야로 도망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물론 현재까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흠,
성질머리 고약한 주전 포수와 예민하고 겁 많은 에이스의 조합이라…….
내가 보기엔 이 두 놈 중 하나가 은퇴하거나 트레이드 당하지 않는 한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점점 멀어질 거라 확신한다.
어쨌든,
마운드 위에서 연신 고개를 젓고 있는 투수의 얼굴을 보니 내 짐작에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열받은 포수 놈은 내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지라 요구하고 있을 테고, 저 심약한 에이스는 그걸 거부하고 있는 거겠지.
이럴 때는 어중간한 공이 들어올 확률이 아주 높다.
멍하니 있다가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미리 대비하면 큰 타구를 날릴 수 있는 그런 공 말이다.
높은 공에 대비해 그립의 위치를 조정하고, 빠른 공에 맞춰 하나, 둘, 셋,
슈웅
따아아아아악!
내 머리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하지만 존에서는 많이 벗어난 몸쪽 높은 공이 제대로 배트에 걸렸다.
굳이 타구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지만 배트를 마치 지팡이처럼 짚고 서서 한참 동안 타구를 감상했다.
그렇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타구가 T모바일파크 좌측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지는 순간,
“우아아아아아아!”
“퍼킹! 빌어먹을! 최고다! 한! 멋진 홈런이야!”
“속이 다 뻥 뚫리는군! 그래! 저 스머프 같은 놈들을 죽여버려!”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지는 걸 확인한 후 배트를 어깨 뒤로 휙 집어 던지고 1루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빌어먹을 개…….”
등 뒤에서 포수 놈이 뭔가 지껄였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렇게 1루를 돌아 2루로, 다시 3루로,
눈이 마주친 모든 다저스 야수들이 당장이라도 내게 덤벼들 듯 노려보았지만 정말로 내게 달려드는 놈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부잣집에서 곱게 자란 도련님 같은 놈들이다.
그런 녀석들에게 가벼운 비웃음을 날려준 나는 드디어 홈플레이트에 도착했다.
쿠웅
오른발을 크게 들어 홈플레이트를 내려찍는 순간 포수 놈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라 있는 놈을 향해 말했다.
“야구에서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실력이야, 이 머저리 자식아. 억울해? 그럼 덤벼봐. 야구든 주먹이든 다 받아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