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3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38화(239/412)
#238. 폭주
오랜 시간 몸 담아온 팀을 옮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모든 걸 떠나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돈 많고 자존심 강한 머저리들과도 새로운 친분을 쌓아야 한다는 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마이크 워렌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새 직장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일단 시애틀의 주장인 라이언이 침착하게 그의 적응을 돕고 있었고, 팀내 최고 커리어를 가진 타이 존슨 역시 나이가 비슷한 그의 합류를 반겼다.
거기에 조금 나이는 어리지만 공수 양면에서 이 팀의 중심축이자, 최근 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한수혁 역시 이상할 정도로 그에게 호의적이었다.
마이크 워렌의 합류로 자신의 자리를 잃거나 보직이 변경된 선수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잡음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다.
“플레이!”
한수혁의 선제 홈런으로 시애틀이 1 대 0으로 앞선 가운데 2회초 다저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회초 안타와 볼넷을 내주고도 수비진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마이크 워렌이 글러브 속 너클볼의 그립을 잡았다.
사실 별 쓸데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너클볼에 다른 구종들, 그러니까 포심이나 커브, 체인지업을 섞어 던지는 투수들도 있었지만 현 시점 빅리그 유일의 너클볼 투수인 마이크는 100개의 공 중 90개를 너클볼만 던지는, 그야말로 진짜 너클볼 투수였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글러브로 그립을 감추는 행동은 오랜 시간 투수로 뛰며 몸에 익은, 이제는 필요 없어진 습관 같은 거다.
끄덕
포수의 리드에 마이크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구종은 단 하나다.
너클볼.
현재 포수가 차고 있는 피치컴에는 너클볼 말고도 포심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건 루상에 주자가 있을 경우 피치아웃, 혹은 작전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 던질 공이다.
다음 공이 너클볼이라는 걸 투수도 알고, 포수도 알고, 타자도 알고, 팬들도 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메이저리거나 되는 타자가 그 뻔한 공을 못 때리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건만, 원래 너클볼이라는 게 그런 거다.
던지는 투수나, 때리는 타자나 반쯤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대해야 하는 공이랄까.
슈웅
파앙
“볼.”
방금 전 공만 봐도 그렇다.
분명 던지는 투수는 존 중앙을 노리고 던졌건만, 그렇게 들어가던 공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타자 몸 쪽으로 뚝 떨어졌다.
오늘 경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수혁을 찾아갔다.
자신이 본 가장 대단한 너클볼러인 한수혁 말이다.
뭔가 하나라도 조언을 얻으려는 마이크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미 해답을 알고 있어요. 그냥 존 안으로 집어 던지고 신에게 기도하는 게 너클볼러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걸 말이죠. 지난번 내가 던진 공은 잊어요. 그때는 샌디에이고 놈들의 머릿속에 내 포심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거니까요.’
모르겠다.
너클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왜 항상 자신에게 이미 알고 있을 거라는 말을 하는 건지.
하지만 결국 결론은 그거였다.
지금 마이크가 걷고 있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아직 노력이 부족해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이대로 계속 걸어가면 언젠가 목적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이제 빅리그에 제대로 된 너클볼러가 한 명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마이크는 그저 누군가에게 기대고 조언을 받고 싶었던 것이었으니까.
슈웅
부웅
“스윙!”
칠 테면 쳐봐라 하는 마음으로 또 한 번 존 중앙으로 너클볼을 던졌건만, 이번에는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은 공에 타자가 어이없는 스윙을 하고 말았다.
마이크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지금까지는 그냥 너클볼을 던지는 데만 급급했건만,
이제야 조금씩 이놈을 길들이는 맛을 알 것만 같다.
* * *
1회말 한수혁의 선제 홈런으로 시애틀이 한 점을 먼저 선취했지만 3회와 4회, 마이크가 홈런 두 방을 허용하며 순식간에 경기가 역전되었다.
너클볼 투수에게 홈런은 그냥 세금과도 같은 거란 말이 있다.
조금만 회전이 들어가거나, 혹은 제대로 밀어내지 못하면 홈런을 치라고 던져주는 배팅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4회말 공격에서 7번 브루스 매튜스의 적시타가 터지며 경기는 다시 2 대 2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진 5회초, 마운드에 오른 마이크 워렌이 다저스의 4, 5번 타자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혹시나 투수 코치가 올라오지 않을까 덕아웃을 흘끗 바라봤지만 감독과 코치 모두 미동도 하지 않고 마이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애틀이 바라는 건 당장의 1승이 아니라 마이크가 이 팀의 선발로 자리 잡는 거였다.
라이언을 제외하면 모두 20대 초중반으로 짜인 선발 투수진에 마이크 워렌이라는 베테랑 투수의 경험을 더하고 싶은 거다.
그 사실을 깨달은 마이크가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음 타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내셔널리그 최강팀인 다저스에서 주전포수 겸 6번 타자를 맡고 있는 티건 버크해드.
자신이 너클볼 투수로 전향하기 전, 그리고 저 녀석이 루키이던 시절에는 제법 사이가 괜찮았건만,
시간이 흐르며 자신은 퇴물이 되고, 반면 저 녀석은 스타가 되면서 둘 사이의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그러던 중 자신은 어깨 부상을 당해 2년이라는 공백기를 가져야 했고, 그 사이 티건 버크해드는 다저스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가 되었다.
“플레이!”
저 녀석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아직도 혈기왕성한 나이인 20대의 메이저리그 슈퍼스타.
팀의 주전포수인 그로서는 퇴물인 자신 때문에 5경기에 한 번씩 홈플레이트를 내줘야 한다는 게 자존심 상했을 거다.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빅리그를 경험한 마이크는 알고 있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그런 상황에서 팀은 연봉이 높고,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걸.
둘 사이의 감정 대립이 점점 심해지자 결국 다저스는 마이크를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았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존에 거의 걸치듯이 들어간 초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자 티건 버크해드가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았다.
저 건방지고 오만한 모습 뒤로 처음 빅리그에 올라왔던 당시 순진하고 어수룩했던 녀석의 표정이 겹쳐 보인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차라리 어깨 부상을 당했을 때 그냥 은퇴를 선택했다면 저 녀석과도 이렇게 얼굴을 붉힐 일이 없었을 텐데, 그리고 다저스 박물관의 한 구석에나마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을 텐데.
슈웅
부웅
“스윙!”
자기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또 한 번 너클볼을 뿌렸다.
몸쪽 높은 코스로 들어가다 공중에서 두 번 변화를 일으키며 뚝 떨어지는 공에 티건의 배트가 춤을 췄다.
녀석의 시선에서 노골적인 적대감이 드러났다.
마이크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포수로서도, 그리고 타자로서도 도무지 너클볼과는 상성이 안 맞는 놈이다.
“타임.”
잔뜩 흥분한 녀석이 타임을 요청하고 배팅박스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생긴 아주 잠깐의 여유 시간, 마이크가 자기도 모르게 다저스의 덕아웃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때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던 후배들이 한심하다는 듯, 혹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 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고작 이 정도였던가.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긴 시간을 다저스를 위해 뛰었건만, 자의도 아닌 타의에 의해 다른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옛 동료에게 저런 시선을 보내다니.
아무리 자신이 티건 버크해드와의 분쟁에 휘말려 쫓겨나듯 저 팀을 떠났지만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혹시 내 피부색이 검다는 게 이유 중 하나일까? 하지만 그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갑자기 혼자가 된 기분이다. 빅리그에서 보낸 모든 시간이 부정당하는 기분이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마이크가 타자를 향해 마지막 공을 뿌렸다.
슈웅
부웅
“스윙! 아웃!”
“Fuck!”
콰직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너클볼에 또 한 번 헛스윙을 날린 티건 버크해드가 분을 이기지 못해 자기 방망이를 부러뜨렸다.
그러고는 여전히 분이 안 풀리는지 마운드를 보며 욕설까지 내뱉었다.
“빌어먹을 늙은이, 이 따위 똥볼밖에 못 던질 거면 그냥 은퇴하라고 내가 말했지? 퉷, 재수 없는 새끼.”
“이봐! 그만하고 들어가. 한 마디만 더 하면 퇴장이야.”
난데없는 타자의 욕설에 주심이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를 날렸다.
하지만 이미 마이크 역시 그 말을 들은 후였다. 그가 타자 쪽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뭐? 지금 나보고 뭐라고 한 거지?”
“퇴물 새끼, 꺼지라고 말했다. 이제는 귀까지 안 들리는 건가?”
마이크로 인해 홈플레이트를 내줘야 했던 부정적인 기억들, 덕아웃에서의 세력 싸움에서 자신이 승리했다는 우월감, 그런 상대에게 삼진을 먹었다는 분노가 합쳐지며 티컨 버크해드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개자식이.”
“그 병신이 다 된 어깨로 한번 해보겠다고? 빌어먹을,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이 늙은이 새끼야.”
“그만! 퇴장! 당장 덕아웃으로 돌아가. 퇴장이야!”
갑자기 시작된 타자와 투수 사이의 말다툼에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던 양팀 선수들이 우르르 그라운드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당황한 주심이 티건 버크해드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스스로의 분노에 잡아 먹힌 티건의 폭주는 계속되었고, 난데없이 욕설을 들은 마이크가 타자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진작에 이 일을 정리해야 했다는 걸 말이다. 팀을 옮기기 전에 정리했어야 하는 일을 그대로 덮어둔 덕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 건방진 녀석의 턱을 날려버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머리를 맞대고 누구의 말이 옳은지 끝까지 따져봐야 하는 걸까?
어느 쪽이 됐든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할 것이다.
상대는 다저스 구단과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주전 포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자신은 퇴물이 되어 쫓겨나듯이 이곳으로 온, 아직 기댈 곳 하나 없는 늙은 신입생에 불과하니까.
“개자식, 왜? 이제는 싸움을 할 용기도 사라진 건가? 어? 당당하게 나한테 잔소리를 하던 그 잘난 놈은 어디 가고, 이런 병신 같은 인간이 거기 서 있는 거지?”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가운데 티건의 폭언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선뜻 녀석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여기서 주먹다짐을 벌였다가 자칫 징계라도 받으면 자신을 데려온 시애틀에게도 못 할 짓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걸 떠나 자신의 자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마이크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던 그때.
덥석
누군가의 거친 손아귀가 티건 버크해드의 뒷덜미를 잡아 뒤로 끌어냈다.
“멍청한 늙은이. 애초에 저런 퇴물 같… 컥! 뭐야, 어떤 놈이야? 이거 안 놔?”
뒷덜미를 잡힌 티건이 반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대로 질질 끌려갔다.
놈을 사이에 두고 반으로 나뉘어 몸싸움을 벌이던 선수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컥, 케엑, 켁, 놓으라고. 이 개자식아! 같은 유색인종이라고 편을…….”
한수혁이었다.
여전히 입에서 똥을 내뱉고 있는 티건을 한수혁이 그대로 백네트 쪽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콰앙
“커헉!”
그 압도적인 힘에 반항 한 번 못 하고 그대로 내동댕이쳐진 녀석이 뒤늦게 자세를 잡고 한수혁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이 개자식아!”
분노에 휩싸여 마구잡이로 휘둘러진 주먹을 한수혁이 간단하게 피해냈다.
그리고 곧바로 한 방.
퍼어억!
“컥……!”
녀석의 오른쪽 옆구리에 한수혁의 바디블로우가 정확히 틀어박혔다.
그 한 방에 숨이 턱 막혀버린 녀석의 멱살을 한수혁이 잡아챘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커… 커억, 커어억……!”
한수혁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 아무것도 못 하던 다저스 선수들이 이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그쪽으로 달려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타이 존슨과 데릭 플레밍, 브루스 매튜스, 조쉬 올리버 같은 시애틀 선수들이 한수혁의 주변을 둘러싸고 보호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다저스 자식들, 다 덤벼!”
“젠장, 얼마 못 버텨. 한, 그 녀석 끝장낼 거면 빨리 하라고!”
자신이 동료 선수들에게 떨어져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걸 깨달은 티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이 개자식아.”
“나, 나, 나는, 나는…….”
퍼억!
더듬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녀석의 턱에 한수혁의 펀치가 또 한 발 적중했다.
“끄륵…….”
그 한 방으로 녀석이 스르르 무너져 그대로 침몰해버렸다.
“그만! 그만! 다들 그 자리에서 그만! 그거 내려놔! 퇴장이야! 퇴장이라고!”
여기저기서 다발적으로 터지는 선수들의 충돌에 심판들이 기겁을 하며 퇴장을 외쳐 댔지만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다.
“개자식!”
타이 존슨의 주먹이 누군가의 배에 틀어 박혔고, 반대로 다저스의 누군가가 브루스를 그대로 잡아 그라운드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여기저기서 선수들의 욕설과 신음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1루와 3루 관중석의 안전망이 무너져 내렸고, 분노한 시애틀 팬들이 한가득 그라운드로 쏟아져 내렸다.
시애틀의 홈구장 T모바일파크가 광기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