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4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46화(247/412)
#246. 돔구장
1회초, 무사 주자 2루 상황에서 바깥쪽 공을 밀어쳐 적시타를 만들어낸 한수혁이 3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볼넷으로 또 한 번 출루에 성공했다.
그러고는 초구에 곧바로 2루로 도루.
미국에 진출한 이후로 어지간해서는 도루를 시도하지 않고 있지만 이번 시즌 다섯 번 시도에 다섯 번 모두 성공시키며 자신의 주루 감각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한수혁의 활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사 주자 2루 찬스, 타이 존슨이 친 총알 같은 타구가 우익수 바로 앞에 뚝 떨어졌다.
공격력은 형편없지만 송구 하나만큼은 빅리그 최고 수준인 클리블랜드의 우익수가 타구를 잡자마자 망설임 없이 홈으로 승부를 걸었다.
자칫하면 홈에서 아웃당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한수혁은 193㎝, 115㎏의 거구가 믿기지 않는 엄청난 스피드로 홈을 파고들었고, 순간적인 기지로 포수의 태그를 피하며 팀의 두 번째 득점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프로그레시브 2층 한가운데 설치된 KBC 중계실, 고동식 위원의 함성이 사방으로 울려펴졌다.
“으아! 정말 대단합니다! 한수혁 선수가 이번에는 발로 득점을 만들어냅니다!”
“와! 정말 멋지네요. 엄청납니다. 위원님, 방금은 조금 늦지 않았나 싶었는데 저걸 살려내네요?”
“맞아요. 사실 3루 주루 코치는 멈추라는 사인을 보냈거든요. 하지만 한수혁 선수 눈에는 뭔가 빈틈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천재예요. 정말 천재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천재… 네, 조금 진부하기는 하지만 저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거 같군요.”
“제가 얼마 전에 개인 방송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생전에 한수혁 같은 선수가 다시 나올 일은 없을 테니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말이죠.”
“음, 조금 과격하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이 가는 말이군요.”
“그냥 한 말이 아니에요. 이게 다 근거가 있는 말이거든요.”
“어떤 근거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과연 한 스포츠 종목에서 한수혁 같은 천재가 등장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거죠.”
“그게 수치로 추정이나 측정이 가능한가요?”
“어렵죠. 하지만 그 어렵고 무모한 짓을 한 곳이 있습니다.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말이죠.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속해 있는 아스널이 그 주인공인데요.”
“아, 그 개ㅈ… 음, 죄송합니다. 아스널 말씀이시군요. 거기서 어떤 조사를 했었나요?”
야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은 초보 아나운서이지만, 유럽축구의 광팬인 박철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동식 위원을 바라보았다.
“간단합니다. 리오넬 메시를 모르는 분들은 별로 없으실 테죠? 2000년부터 2020년대까지 현대 축구를 지배했던 축구계의 GOAT죠.”
“당연히 알죠.”
“좋습니다. 2014년에 아스널에서 이런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리오넬 메시 같은 천재가 태어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랜 연구 끝에 이런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약 20만 명 중 1명 꼴로 리오넬 메시급의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난다고 말이죠.”
“20만 명 중 1명이라… 음, 생각보다 확률이 높은데요?”
“맞아요, 숫자만 놓고 보면 그렇죠? 하지만 제 설명을 듣고 나면 그게 얼마나 희박한 확률인지 알게 되실 겁니다. 메시의 예를 근거로 한수혁 선수급의 야구 재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확률을 20만 분의 1로 잡아보죠.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가…….”
“검색해 보니 20만 명 정도 되네요, 위원님.”
“고마워요. 그나저나 한 해 출생아 수가 20만 명이라……. 음, 조금 절망스럽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죠. 어쨌든 단순 계산상으로는 아주 명확하죠? 우리나라에서 1년에 한 명 정도 한수혁 선수급의 야구 재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는 겁니다.”
“오, 그럼 꽤나 희망적인 것 아닌가요?”
“아니죠. 이제부터 여러 전제 조건들이 붙습니다. 일단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운동선수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재능이 특출난 아이니까 가만히 둬도 운동에 흥미를 가지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 1년에 딱 한 명 태어난 한수혁 선수급의 야구 재능을 가진 아이가 늦어도 중학교 입학 전까지는 운동에 흥미를 가져줘야 합니다. 만에 하나, 공부에 취미를 붙이거나, 혹은 운동을 하더라도 축구나 농구 같은 데 빠지면 그대로 끝이에요. 정확하게 야구여야 합니다.”
“으음.”
“그리고 부모님도 그걸 허락하고,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야구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뒤를 받쳐줄 어느 정도의 기반도 있어야 합니다. 야구는 상당히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거든요.”
“아아…….”
“그런 확률을 뚫고 아이가 야구선수가 됐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제대로 성장하려면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하죠. 여기서 좋은 지도자란 기술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진짜 어른을 뜻하는 겁니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맞아요. 아이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건 당연한 거고, 관리도 잘 해줘야 합니다. 어깨가 고장나서 야구를 그만두는 학생들이 일 년에 몇 명이나 되는지 아시나요? 아,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가 다른 길로 새지 않도록 바른 길로 이끄는 것도 지도자의 몫입니다. 재능을 갖춘 아이들 중에 노력이 부족해서 그 재능을 그대로 시궁창에 박아 넣는 학생들이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휴우…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요.”
“네, 이런 모든 가정에 가정에 가정을 뚫고 제대로 성장해야만 한수혁 같은 선수가 되는 겁니다. 매년 한수혁 선수급의 재능을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건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에요. 만약 단순 숫자와 확률로만 계산한다면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매년 메시급의 축구 선수가 몇십 명씩 나와야 하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시궁… 죄송합니다.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확 와닿는군요.”
“아무튼 제 결론은 이겁니다. 적어도 향후 백 년 내에 한수혁 선수 같은 야구스타가 우리나라에 다시 나타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네, 안타깝지만 없어요. 그러니 현재를 즐겨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한수혁 선수의 경기를 보고, 밤잠을 설치면서 응원도 하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여기는 시애틀과 클리블랜드 간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미국 프로그레시브 필드입니다.”
* * *
[시애틀 매리너스와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간의 시즌 1차전, 10 대 3 시애틀 매리너스의 대승] [7이닝 3실점 기록한 베테랑 마이크 워렌, 5타수 4안타 4타점 기록한 한수혁, 투타 MVP] [경기 후 인터뷰에서 한수혁 “탱킹은 야구를 좀먹는 행위, 클리블랜드 선수들 중 제대로 야구를 하는 건 레너드 존스 정도가 유일했다.”] [SNS를 통해 이에 대한 심경을 밝힌 레너드 존스 “분하다.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것도 못 했다는 게 더욱 분하다. 내일은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하겠다.”] [한국 중계팀 해설위원의 ‘20만 분의 1 법칙’ SNS에서 화제. 한수혁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 [20만 분의 1 법칙에 대해 설명 들은 한수혁 “과분한 말이다. 나는 천재가 아니라, 그냥 야구를 잘하고 싶어 하는 노력파.” 야구팬들, 황당] [시애틀의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가 출격하는 2차전, 클리블랜드의 반격은 가능할까?]“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형?”
– 좋은 소식이 있어서. 거기 지금 아침 맞지?
“맞아. 서울은 지금쯤 한밤중이겠네.”
– 그래. 아, 다른 게 아니고, 우리 홈구장 공사 이제 시작한다고.
“벌써?”
– 어, 내일부터 곧바로 철거 작업부터 들어간다. 거기 지하철 통로 우회로 확보가 생각보다 잘 풀려서 일정이 좀 앞당겨졌어.
“오… 웬일이래?”
– 저번에 네가 KBC랑 인터뷰한 게 컸지, 뭐. 한국에도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돔구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한 말. 야, 그 인터뷰 나가고 나서 공무원들이 우리 대하는 태도가 확 달라지더라.
“흐흐, 그럼 인터뷰 몇 번 더 할까?”
– 아냐, 그것도 가끔 써먹어야 효과가 있지. 너 말고 민예린 씨도 그렇고 틈만 나면 돔구장을 입에 올려서 그런지 국민들 여론도 좋고……. 그리고 고시엔 구장처럼 프로 경기 없을 때는 아마추어 경기에도 개방한다고 하니 그쪽에서도 한 팔 거들고 나섰고, 아무튼 이대로만 가면 생각보다 더 빨리 우리 새 집이 생길 것 같다.
“다행이네. 매지션스 애들하고 동거 이제 그만 끝내야지. 지겨워서 어디 살겠어.”
– 맞아. 그리고 넌 특별한 일은 없지? 야, 그나저나 어제 경기는 왜 그렇게 살벌하냐? 너 클리블랜드 좋아한다며? 그런데 아주 마음먹고 개박살을 내던데?
“원래 마음에 드는 녀석들일수록 확실하게 박살을 내줘야 성장하는 법이거든.”
– 듣기만 해도 살 떨리는 소리 그만하고, 아무튼 조만간 조감도 나오면 보내줄게. 한번 확인해봐.
“알았어.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돈 아끼지 마. 팍팍 쏟아부어서 크고 화려하게. 내 말 이해했지?”
– 그래, 알았다. 걱정 안 하고 돈 팍팍 쓰마. 그럼 오늘 경기 잘하고.
당초 2035년으로 예정되었던 워리어스의 돔구장 완공이 생각보다 1년 정도 앞당겨질 것 같다.
프로젝트를 맡은 미국 시공사의 설명을 전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결론은 그거였다.
최대 4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 개폐식 돔구장을 2024년까지 완공시키겠다는 것.
거기에 필요한 건 오직 하나, 많은 돈이었고, 내게는 그걸 충족시킬 충분한 재력이 있었다.
분기별로 지급되는 배당금이 쌓이고 쌓여,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계좌가 터져버릴 지경이다.
이에 다른 곳으로도 투자를 좀 해볼까 했지만 민태현 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말리는 통에 안정적인 몇 곳에 분산투자를 한 후 그대로 묵혀 두고 있는 상태다.
하긴, 이 이상의 돈은 정말 의미가 없을 거 같긴 하다.
내게 돈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게 되었다. 구단에서 받는 연봉이 애들 용돈으로 보일 정도다.
어쨌든 어제 경기에서 시애틀을 대파한 우리는 다시 라이언 티보우를 앞세워 2차전에 돌입했다.
시애틀, 아니,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였던 라이언은 내가 알던 것보다 더욱 좋은 선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2선발 자리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 녀석의 승부욕을 자극한 것 같다.
또 한 번 내 회귀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가볍다.
“플레이!”
어제와 똑같은 타선으로 나선 시애틀의 1회초 공격.
1번 타자 데릭이 3루수 플라이로 물러난 가운데 내가 타석에 들어섰다.
어제 인터뷰한 내용이 마음에 걸렸는지 조용히 입을 닫고 있는 포수를 향해 먼저 말을 걸었다.
“이봐.”
“응?”
“젠장,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떠벌거리더니 왜 그렇게 기가 죽었어? 고참들한테 한 대 맞은 건가? 그런 배짱을 가진 녀석이 아직 클리블랜드에 남아 있던가?”
“그런 거 아니니까 그만하고 야구나 하자고.”
“흠, 좋아. 열 받았나 보군. 그래, 원래 야구는 열 받은 상태에서 하는 게 제 맛이지. 그럼 이제 내 머리로 공이 날아올 차례인가?”
“…아니.”
“잠깐 움찔한 거 같은데? 뭐야, 진짜 그럴 생각이었어?”
“젠장, 그러길래 왜 그렇게 함부로 입을… 제대로 야구를 하는 선수가 하나도 없다는 말은 대체 왜 한 거야?”
“아하, 그것 때문이군. 그래서, 한번 해보자고?”
“아니, 너를 맞춰야 한다는 놈들이 몇 있었지만 감독님이 눌러버렸어. 내가 왜 너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아줬음 좋겠어.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말이야.”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좋아, 명심해두지.”
“그래, 아무튼 우리가 원하는 건 깨끗한 승부야. 그러니까 야구를 하자고.”
“오케이, 친구.”
“자, 그럼 평화 협정도 잘 끝난 것 같으니 경기를 시작해 보자고. 플레이!”
심판의 목소리와 함께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맞는 말이었다.
이 녀석들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겠지. 그저 그 최선이라는 게 내 기준에는 못 미치는 것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 인터뷰 때문에 머리는 아니더라도 엉덩이 정도는 한 대 맞아줄 각오가 되어 있었건만,
저렇게 신사적으로 야구만 하자고 하면 나도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슈웅
퍼어엉!
“볼!”
잠깐…….
“야구만 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 방금 이건 내 머리를 노린 거 같은데?”
“아니, 그럼 패스트볼을 던졌겠지. 지금은 그냥 공이 손에서 빠진 것뿐이야.”
“흠.”
“정말이라니까? 어어, 그거 배트는 일단 놓고, 자, 우리 말로 하자고, 친구. 그래, 휴, 진정하고. 다시 한 번 사과하지. 정말 실투였어. 실투 맞을걸? 실투 맞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