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4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47화(248/412)
#247. 베테랑의 품격
“젠장, 원정 일정이 뭐 이 따위야? 대체 누가 일정을 이렇게 짜 놓은 건데?”
“그래도 이번 시리즈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네요. 휴우…….”
볼티모어전부터 시작된 말도 안 되는 원정 일정이 드디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처음 일정이 나왔을 때 다니엘 단장이 입에 거품을 물고 항의를 했다고 하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다.
그나마 일정의 대부분이 동부 지역에 몰려 있었다는 게 다행이지만, 이번 일정의 마지막을 장식할 상대팀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축구에 훌리건이 있다면 야구에는 필리건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악의 팬덤을 보유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강팀.
한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던 필리스는 2020년 초반부터 조금씩 포텐이 터지는가 싶더니 2025년, 팜에서 키워낸 선수들이 MVP급 선수로 성장하며 최고 절정기를 맞았다.
시간이 흐르며 그 선수들 중 몇이 팀을 떠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얼굴들이 채우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강력하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라는 성적이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다.
어쨌든 앞서 말한 것처럼 저 팀이 끔찍한 건 전력 때문만이 아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상대팀, 심지어 자기팀 선수들에게까지 야유와 욕설을 퍼부어대는 필라델피아의 야구광들.
어지간한 멘탈을 가진 선수들은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질릴 정도다.
“챔피언. 컨디션은 어때?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 말해야 해.”
“전혀 문제없습니다, 보스. 하루 쉬웠더니 몸이 근질근질하네요.”
“좋아, 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바야. 그럼 가서 저 시끄러운 녀석들의 입을 닥치게 만들어주라고.”
당초 클리블랜드와의 3차전 선발투수로 내정되었던 나는 일정을 하루 미뤄 필라델피아 필리스 1차전에 등판하게 되었다.
클리블랜드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가볍게 완승을 거둔 벤자민 감독은 3차전에 주전 선수 대부분을 제외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계속되는 원정에 선수들이 많이 지쳤고, 그 상태로 필리스를 만났다가는 자칫 우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나를 대신해 임시 선발이 마운드에 올랐고, 주전 야수들 역시 대부분 벤치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진행된 3차전에서는 클리블랜드의 애송이 포수 레너드 존스가 맹활약을 펼쳤다.
주전이 대거 빠진 우리 팀을 상대로 2안타 1홈런 4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연패를 막아낸 것이다.
내가 만약 시애틀의 단장이라면 쓸 만한 신인 몇 던져주고 녀석을 데려오겠지만…….
뭐, 우리 팀의 주전 포수 브루스도 제법 괜찮은 포수인지라 당장 시급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클리블랜드와의 3연전은 2승 1패로 끝났고, 우리는 주전들의 체력을 회복한 채 이 지독한 놈들과 3연전을 펼치게 되었다.
“우우우! 집어치워! 이따위로 할 거면 팀을 해체해버리라고, 개자식들아!”
“우리 할머니가 지팡이로 야구를 해도 너희들보다는 잘할 거다. 빌어먹을 새끼들아!”
“그 따위로 할 거면 연봉 반납하고 가서 게이트볼이나 쳐! 이 머저리들아!”
경기 시작 30여 분을 앞둔 필리스의 홈구장 시티즌스 뱅크 파크.
시애틀 선수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직 경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뭘 이따위로 할 거면 해체하라는 거지?”
“글쎄, 저 필리건 녀석들의 속을 누가 알겠어.”
“내가 보기엔 어제 메츠에게 져서 그럴 거야.”
“어제 져서? 그 전에 3연승 중이지 않았나? 그럼 세 번 이기고 한 번 졌다고 저 난리를 피우는 거라고?”
“원래 그런 놈들이잖아. 저 자식들은 팀이 이기고 있어도 그라운드로 홍염을 던지는 녀석들이라고.”
“끔찍하군. 이봐, 한. 괜찮겠어? 넌 저놈들 처음 상대하는 거잖아.”
오늘도 나와 배터리를 이룰 브루스의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평소보다 좀 시끄러울 것 같으니까 피치컴 볼륨이나 최대한으로 높여.”
“음, 역시 넌 이상해. 아무리 봐도 루키 같지가 않아. 젠장, 혹시 은퇴한 베테랑이 성형수술을 받고 다시 돌아온 건 아니겠지?”
역시 빅리그 팀의 주전포수를 맡을 만한 통찰력이라 생각하며 그라운드에 발을 디뎠다.
“우우우! 저 개자식은 또 뭐야!”
“저 애송이가 아메리칸 리그 이달의 선수상을 받은 놈이라고? 역시 근본 없는 리그답군!”
“타율이 4할이 넘는다고? 그래서 뭐 어쩌라고? 죽여! 그냥 다 죽여버려!”
연습 스윙을 몇 번 한 것뿐인데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아마… 시애틀이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던 그 해였지?
보복구랍시고 내 머리로 공을 던진 투수를 박살 내고, 그걸 막겠다고 달려들던 포수도 박살 내고, 안전망을 무너뜨리고 달려든 필리건 한 놈을 업어치기로…….
음,
생각해 보니 천만다행이다.
오늘 민예린이 이곳에 오지 않은 게 말이다.
그 애라면 이곳에서도 시애틀 저지를 입고 안전망을 기어오를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정말 경기가 끝나고 총에 맞게 될 수도 있다.
앞으로도 절대 필라델피아에는 오지 말라고 말해둬야겠다.
“이딴 걸 야구라고 보는 내가 한심하다. 개자식들아!”
“이렇게 질 거면 그냥 집어치워! 기권하라고!”
아직 경기 시작도 안 했는데 대체 뭘 보고, 뭘 졌다고 하는 걸까?
두 번째 삶을 살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필리건들의 야유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가혹한 환경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백번 공감한다. 여기 눈앞에 그 산증인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개자식, 빨리 삼진 당하고 덕아웃으로 꺼져버려.”
선두타자 데릭이 3루수 땅볼로 물러나고, 내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필리스 포수 놈이 대뜸 시비를 걸어왔다.
상당히 신선하다.
지난 몇 번의 벤치클리어링 이후 이렇게 내게 대놓고 시비를 걸어온 건 이놈이 처음이다.
내 벤클 영상을 보지 못한 걸까?
아니, 내가 보기에는 저 미치광이 팬들에게 하도 단련이 되다 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된 모양이다.
가시를 바짝 세우고 사자에게 덤벼드는 호저 같다고나 할까.
이런 미치광이들을 상대할 때는 일단 기선제압이 중요하다.
가시에 찔릴까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다 보면 괜히 기세만 세워주게 마련이다.
슈웅
파아앙!
“볼.”
미치광이 집단에 어울리는 미치광이 같은 초구.
헬멧 끝에 닿을 듯 아슬아슬하게 들어오는 초구를 꿈쩍도 않고 바라보았다.
“어때? 이제야 좀 겁이 나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빨리 삼진이나 처먹…….”
“이봐, 머저리.”
“뭐? 이런 새파란 루키가 어디서 건방…….”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하면 난 네 턱을 박살 내버릴 지도 몰라. 아마 15경기 이상 중징계를 먹게 되겠지. 하지만 내 주먹에 맞은 너는 최소 한 달 이상은 병원에 누워 있어야 할 테고, 그 기간 동안 주전포수를 잃은 필리스 멍청이들은 매일 울면서 엄마를 찾게 될 거야. 어때, 누가 손해인지 한번 해볼까?”
“…….”
가짜 광기는 결코 진짜 광기를 이기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이었는데,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진심이 되어버렸다.
뭐랄까, 이유 없이 욕을 먹다 보니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다고 해야 할까.
음,
다행인 건 내가 말한 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느꼈는지 필리스 포수의 입이 닫혔다는 거다.
“우우우!”
“화끈하게 머리를 맞춰! 죽여버리라고!”
어느새 익숙해진 필리건들의 야유 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타격 자세에 들어갔다.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야유를 퍼부어대는 미친 팬들,
처음 보는 타자에게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 대는 포수,
거기에 머리 쪽으로 빈 볼을 던지는 호전적인 투수,
이 세 가지를 조합하면 다음에 들어올 공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좌측 발의 각도를 조절해 오픈 스탠스로 변경하고, 그립의 위치를 조절하고, 타이밍은 포심에 맞춰서,
슈웅
따아악!
홈런을 만들기에는 조금 무리였지만 몸쪽 높이 날아오는 공을 잡아당겨 그대로 중견수 머리 위를 넘겨버렸다.
“개자식! 빌어먹을 자식! 내가 널 죽일 거다!”
“필라델피아에 온 걸 후회하게 해주마!”
“저 자식을 단두대에 매달아! 죽여버리라고!”
2루 베이스를 밟고 우리 덕아웃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게 또 신경을 건드렸는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야유가 쏟아졌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멘탈을 단련하며 강해진 것인지, 덩치가 내 3분의 2밖에 안 되는 2루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여기서 그런 행동을 한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좋아, 후회하게 만들어줘 봐.”
“뭐?”
“일단 너희 팀의 빌어먹을 포수 놈은 날 삼진으로 잡겠다던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했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네가 약속을 지켜봐.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뭘 어떻게 할 거지? 내 턱에 주먹이라도 날릴 건가? 그럼 한번 해봐. 약속하건대 그 즉시 너는 병원으로 실려가게 될 거다.”
“개자식…….”
“역시 입만 살았군.”
후,
KBO에서 뛸 때는 안 그랬는데 이곳으로 건너온 후에는 가끔 이렇게 욕설을 주고받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기분까지 들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은 꽤나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팀이 완전히 박살 났을 때 필리건 놈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플레이!”
상황이 정리되고 다시 우리 팀의 공격이 계속되었다.
1사 주자 2루 상황, 타석에 들어선 타이 존슨이 심각한 표정으로 투수를 노려보았다.
오늘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감독이 몇 차례나 주의를 줬다.
이 정신 나간 놈들이 툭하면 머리 쪽으로 공을 던진다는 걸 말이다.
조금만 더 나가면 바로 퇴장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타고 넘는 데 아주 능숙한 놈들이다.
지난 시즌 하반기, 컵스 투수에게 어깨를 맞고 일주일 정도를 결장했던 타이 존슨은 높은 쪽으로 날아오는 위협구에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물론 어지간한 투수라면 현 시점 메이저리그 최고의 레전드이자, 모두에게 존경받는 타자의 머리로 공을 던지지는 못하겠지만…….
“죽여! 타이 존슨, 저 개자식을 죽여!”
“빌어먹을! 경기에 져도 돼! 그냥 저 녀석의 머리로 공을 던지라고!”
지난 시즌까지 수차례 타이 존슨이 포함된 카디널스의 벽에 가로막혔던 필리스 팬들이 극도로 흥분해 날뛰기 시작했다.
본래 광기란 그냥 두어도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하물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4만 명 가까이 몰려든 저 광신도 집단들에 둘러싸여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만약 저 투수가 그 광기에 침식된다면?
“좋아, 난 준비됐어.”
뜬금없는 내 선언에 필리스 2루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뭔 소리야?”
“너희 팀 투수가 던진 공이 타이의 몸에 맞는 순간 일단 난 네 턱부터 박살 낼 거야. 그리고 바로 마운드로 올라가서 저 투수의 갈비뼈를 으스러뜨릴 생각이야. 그게 가능하겠냐고? 궁금하면 한번 지켜봐.”
“…….”
몇 차례 사인을 주고받은 투수가 드디어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도 마음의 준비를 끝냈다.
아무리 내가 오늘 선발투수라 해도, 그리고 이곳이 미친놈들의 성지 시티즌스 뱅크 파크라고 해도,
미친 짓을 하는 놈에게는 더 미친 짓으로 응징해야 하는 법이다.
만약 저 멍청한 투수와 포수 놈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양팀의 선발투수가 치고 받아 동시에 퇴장당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게 내가 다음에 벌어질 사태에 대비하던 그때,
따아아아악!
공이 몸에 맞는 소리 대신 듣기만 해도 시원한 타격음이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 울려 퍼졌다.
타이 존슨이라는 이름값에 눌린 투수가 어정쩡한 높은 공을 던져버렸고, 타이가 그걸 놓치지 않고 펜스 너머로 날려버린 것이다.
“개애애애자아아아시이이익아!”
“시이이이이바아아알! 좆 같은 새끼들아!”
“죽인다! 내가 반드시 죽여버릴 거다!”
평소에는 비교적 얌전하고 중후한, 실력뿐만 아니라 매너 면에서도 메이저리거들의 모범이라 불리던 타이 존슨이 홈런을 친 배트를 뒤로 휙 집어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마치 보란 듯이 천천히 1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필리건들이 미쳐 날뛰다 못해 당장이라도 그라운드로 뛰어들 듯한 분위기였지만, 빅리그에서만 16년을 넘게 보낸 베테랑은 그게 뭔 상관이냐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1루를 돌아 2루, 3루, 그리고 홈.
먼저 홈을 밟고 기다리던 내가 타이에게 말했다.
“젠장, 미친 놈들에게 어울리는 최고의 선물이었어요, 타이.”
“그래? 흐흐, 다행이군. 그럼 얼른 가서 공 던질 준비나 해.”
필리건들의 분노를 루키이자 오늘의 선발투수인 한수혁에게서 자신에게로 가져온 타이 존슨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