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5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51화(252/412)
#251. 50년의 한
머릿속으로 가정해보자.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수의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전력으로 도전한다.
그 사이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고, 그 뜻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계속 뒤를 이어 도전하지만 100년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실패가 거듭된다고 생각해보자.
이쯤 되면 그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을 패배감과 박탈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야구판에는 그런 일이 간혹 발생하곤 한다.
1907년과 1908년, 연속 우승 이후 무려 100년 넘게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시카고 컵스는 그로부터 정확히 108년이 지난 2016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그 한을 풀 수 있었다.
한 세기를 뛰어넘고 나서야 우승 트로피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보다는 조금 사정이 낫지만 1918년 우승 이후 86년 만에 정상에 오른 보스턴 레드삭스도 있고, 1948년 우승 이후 82년 동안 우승 트로피를 기다리고 있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도 있다.
하지만,
그런 팀 팬들의 처절한 한 역시 이 팀 팬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다.
1977년 창단 이후 52년 동안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보지 못한 팀, 현존하는 모든 빅리그 구단 중 유일하게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팀.
언제나 하위권을 박박 기는 성적, 간신히 찾아온 전성기 시절에는 양키스에게 번번히 발목을 잡히며 챔피언십을 벗어나본 적이 없던 불행의 아이콘.
그런 시애틀 매리너스 팬들에게는 컵스나 레드삭스, 가디언스 팬들의 푸념조차 별 것 아니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은 월드시리즈에 나가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로이. 갈 준비는 다 된 거니?”
“네, 할아버지. 준비됐어요.”
“좋아, 그럼 출발해볼까?”
하얀 바탕에 진청색으로 팀명이 새겨진 시애틀 매리너스의 저지.
등번호 1번 한수혁의 이름이 새겨진 저지를 입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손을 꽉 잡은 채 집을 나섰다.
지난 1977년, 열 살의 나이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았던 일이 기억에 선하건만, 어느새 나이를 먹어 그때의 자신만 한 손주가 생겨버렸다.
얼마 전 60을 넘긴 시애틀의 오랜 팬, 토마스 모간이 손자를 뒤에 태우고 야구장으로 출발했다.
자신이 처음 야구를 볼 때만 해도 이 팀은 전용 구장이 없어 미식축구, 농구 팀과 같은 돔구장을 사용해야 했다.
세월이 흐르며 전용 구장이 설립되고, 자신도 나이를 먹어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고, 그 아이가 장성해 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태어난 손자에게 야구를 가르칠 때가 오고.
그 세월이 무려 52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응원하는 팀은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지 못했고, 자신은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할아버지.”
“말해라, 로이.”
“야구장에 데려가 주셔서 기뻐요.”
“음.”
여덟 살이 된 손자는 벌써부터 다른 사람의 호의에 감사를 표할 수 있는 멋진 아이로 자라났다.
그런 아이를 야구장에 처음 데려가는 토마스의 마음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어젯밤 이 문제를 놓고 아들과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
‘전 로이가 야구 보는 걸 반대합니다, 아버지.’
‘왜? 너도 어릴 때는 나랑 야구 보러 다니는 걸 좋아했잖아?’
‘네, 맞아요. 하지만… 젠장, 그냥 전 반대예요. 제 아들에게 또 그 고통을 물려주기 싫거든요.’
‘고통?’
‘시애틀은 저주받았어요. 농구팀은 해체되었고, 미식축구팀은 매번 하위권을 빌빌거리죠. 하지만 그래도 야구보다는 나아요. 50년이 넘도록 결승 한 번 못 나가본 팀을……. 아버지가 굳이 로이를 데려간다고 하면 말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전 반대예요. 이런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요.’
자신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다니던 아들은 이제 더 이상 야구를 보지 않는다. 아니, 아예 스포츠 자체를 끊은 지 오래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혼자 야구장을 찾고, 아무도 없는 소파에 앉아 TV중계를 보며 늙어가던 토마스는 손주가 여덟 살이 되자마자 함께 야구장을 찾기로 결심했다.
아들이 반대하는 마음도 이해하지만 올해는 다를 거라 생각했다.
아니, 그건 확신이었다.
지난 시절, 이 팀에 켄 그리피 주니어와 에드가 마르티네즈, 스즈키 이치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같은 선수들이 있던 시절에도 느껴보지 못한 확신.
그것은 한수혁의 존재 덕분이었다.
수비 실책으로 대기록이 깨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평균자책점 0을 달리고 있는 무결점 투수, 거기에 4할이 넘는 타율에 2경기당 1개에 가까운 홈런을 때려내고 있는 최강의 타자.
토마스는 생각했다.
이런 위대한 선수의 등장을 반드시 손주와 함께 보고 싶다고.
그리고 믿었다.
그가 반드시 자신의 팀을 월드시리즈 무대에 올려놓을 거라고.
언젠가 손주가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함께 이때를 회상하며 웃음 지을 수 있을 거라고.
“할아버지.”
“오냐.”
“그런데 이 유니폼… Han? 이 선수는 어떤 선수예요?”
손주의 물음에 토마스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될 거다, 로이.”
* * *
필라델피아 필리스 1차전에서 한수혁의 홈런 두 방과 9이닝 2실점 무자책 완투승에 힘입어 승리한 시애틀은 이어지는 2차전과 3차전에서 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시애틀을 깎아 내리고 싶은 사람들은 그것이 모두 팀 내 불화에서 기인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그저 시애틀이 불운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수혁을 비롯한 타자들이 때려낸 잘 맞은 타구가 야수 정면으로 향했고, 투수들이 밸런스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시즌을 치르다 보면 생길 수 있는 그런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필리스와의 3연전을 1승 2패로 마쳤지만 시애틀 매리너스는 27승 16패, 승률 0.627을 기록하며 여전히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길고 긴 원정길에 나섰던 매리너스 선수단이 홈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야구장을 찾지 못했던 홈 팬들이 앞다투어 거리로 뛰쳐나왔다.
매년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면서도 팬 충성도 하나만큼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시애틀 팬들이었지만 이날 그들이 보이는 열기는 그 이상이었다.
“젠장! 표를 팔라고! 홈페이지는 다운되고, 현장에서는 표가 없다고 하고! 장난해?”
“몇 배든 좋으니 내게 표를 팔아! 그 많던 암표상은 다 어디로 간 거야?”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자기도 야구를 봐야겠다고 경기장에 들어가는 걸 내가 봤어.”
“이런 프로답지 못한 자식들 같으니, 암표상이 표를 안 팔고 경기를 본다고? 그게 대체 말이 돼?”
당장이라도 폭동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뚫고 민예린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매리너스의 홈구장인 T모바일파크에서 민예린은 VIP 중의 VIP였다.
단 한 번도 한수혁의 입에서 그와 민예린 사이가 언급된 적은 없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녀는 한수혁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였다.
어떻게든 한수혁을 오래 데리고 있고 싶은 매리너스 입장에서는 그녀에게 온갖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VIP 전용 스카이 박스를 통째로 내주고, 경기장에 입장하는 즉시 전담 인원이 붙어 그녀를 보호하고, 가끔 안전망을 타더라도 그냥 못 본 척 내버려두고.
하지만 민예린은 단 한 번도 그 스카이박스를 이용해본 적이 없다.
한수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홈팀 덕아웃 바로 위, 1루측 내야석이 그녀의 지정좌석이다.
그렇게 오늘도 그 자리에 앉은 그녀가 한숨을 푹 쉬며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기운이 나질 않는다.
한수혁이 부탁한 일은 여전히 진도가 나가지 않고, 그와의 사이 역시 도통 진도가 나지 않는다.
뭔가 계기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살인적인 리그 일정 때문에 같이 밥 먹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다.
‘휴…….’
답답한 마음을 억지로 누르며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홈으로 돌아온 시애틀이 상대할 팀은 다름 아닌 시카고 컵스였다.
컵스 선수 중에 우승 반지가 있는 선수는 도둑이라 불러야 한다는 둥,
컵스의 타격 연습 날 피칭 머신이 노히터를 기록했다는 둥,
컵스가 이기는 날에만 음식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는 둥.
별의별 놀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시카고 컵스는 108년 동안 이어온 저주에서 탈출한 후 매년 꾸준한 성적을 내는 강팀이 되었다.
민예린은 그 모습에서 한국에 두고 온 어떤 팀 하나를 떠올렸다.
아직 108년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38년에 불과하지만 어느 면으로 봐도 아주 많이 닮아 있는 부산의 그 팀.
‘그 팀도 올해는 제법 잘 나가던데… 과연…….’
타이탄스를 생각하니 아주 약간이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아니, 좋아졌다기보다는 그냥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민예린이 시카고 컵스와 부산 타이탄스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데 열중하던 그때.
“잠시만 지나갈게요, 아가씨. 미안해요.”
“네? 아, 아, 네.”
어딘가 조금 지쳐 보이는 백발의 사내와 그 손주로 보이는 꼬마 아이가 민예린의 앞을 지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래 전 아빠의 손을 잡고 워리어스 경기를 보러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때는 그 일로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필이면 왜 워리어스였냐고, 구두쇠같이 선수를 팔아 연명하는 팀을 왜 소개해 줬냐고.
하지만 모두 옛 말이다.
새로운 구단주가 등장하고, 한수혁이 입단하면서 워리어스를 응원한 일은 민예린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쟤도 그랬으면 좋겠네…….’
모든 아이는 어른을 통해 야구를 배우게 된다.
갈색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는 꼬맹이가 먼 훗날 이 시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민예린이 다시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와아아아아!”
“좋아! 가자! 매리너스!”
“간신히 들어왔어! 멋진 경기를 보여 달라고!”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 소리와 함께 시애틀 매리너스와 시카고 컵스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우어어어어어!”
“젠장! 날 가져! 필요하면 내 차도, 집도 다 가져가!”
“네가 최고야! 시애틀은 너를 사랑해!”
1회말 시애틀 매리너스의 첫 번째 공격,
갑자기 터진 관중들의 함성과 비명에 놀란 아이, 오늘 난생 처음 야구장을 찾은 로이 모간이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지금 점수 난 거 아니죠?”
“아니, 방금 1번 타자가 친 타구를 3루수가 잡아서 1루로 던졌지? 이게 바로 내야땅볼 아웃이란다.”
“네, 저도 알아요. 오기 전에 야구에 대해 공부를 했거든요.”
“오냐, 기특하구나. 그런데 왜?”
“아니, 갑자기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서요. 제가 혹시 뭔가를 놓친 건가요?”
이제 여덟 살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너무나도 침착하고 똑똑한 손주의 질문에 토마스가 자기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놓친 거 없단다. 아주 잘 보고 있어. 지금 이 사람들이 흥분한 건… 음, 저기 저 선수 때문이란다.”
“선수요?”
할아버지의 손가락 끝을 따라 로이의 시선이 이동했다.
그곳에는 한 눈에 봐도 체격이 범상치 않은, 그러면서도 전혀 둔해 보이지 않는 아시아 선수 하나가 연습스윙을 하고 있었다.
“저기 저분이요?”
“맞아. 우리가 입고 있는 유니폼의 주인공이 바로 저 친구란다. 한수혁. 한국에서 왔지. 너도 기억나지? 할아버지가 한국 여행 갔을 때 사진 보여줬잖아?”
“네, 기억나요. 나중에 저도 데려간다고 해주셨잖아요.”
“맞아. 아무튼 저 선수가 어떤 선수냐 하면… 그래, 이렇게 설명하면 되겠구나. 최고의 투수이자 동시에 최고의 타자.”
“아! 그거 뭔지 알아요. 투수랑 야수를 동시에 하는… 투웨이!”
“훌륭하구나. 그래, 맞아. 저 선수는 지금 투수와 타자를 겸하면서 두 분야 모두에서 리그 최고 성적을 기록하고 있단다. 그 덕에 시애틀이 지금 1위를 달리고 있지. 저기 전광판의 타율을 보렴. 0.427이라고 보이지? 쉽게 말해서 10번 배트를 휘두르면 그중 4번 이상을 안타로 만든다는 뜻이야.”
“야구에서는 3할만 쳐도 스타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4할이요? 와, 굉장하네요…….”
“그래, 그리고 그보다 더 굉장한 건 그중 대부분이 장타라는 거지. 자, 그러니… 아, 잠시만, 미안하구나. 로이. 중요한 전화가 와서 잠깐 자리를 비워야겠구나. 제길, 하필이면 이럴 때… 음, 절대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할아버지.”
“그래, 그럼… 으음, 아무래도 이거 안심이…….”
토마스가 이도 저도 못하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때, 옆에서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민예린이 불쑥 끼어들었다.
“다녀오세요. 아이는 제가 대신 지켜봐드릴게요.”
“음? 아가씨는? 아아! 그래, 저번에 안전망을 타다 잡혀간……?”
“맞아요, 히히. 제가 로이? 이 아이 이름 맞죠? 로이가 어디 못 가게 지켜볼 테니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가씨라면 믿을 수 있지. 그럼 빨리 다녀올 테니 잠시만 부탁할게요.”
“얼마든지요.”
민예린을 알아본 토마스가 안심한 얼굴로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아이를 향해 민예린이 말을 걸었다.
“안녕, 난 민예린이라고 해.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게 됐는데 야구장이 처음인가 봐?”
“네, 누나.”
“좋아, 경기 보다 모르는 거 있으면 이 누나에게 얼마든지 물어봐도 돼. 특히 저기 저 선수, 한수혁 선수에 대해서는 이 지구상 누구보다 누나가 잘 아니까 참고하도록 하고.”
“진짜요? 저런 대단한 선수를 잘 아세요?”
“에헴, 당연하지. 자,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려나. 잠깐, 너 배고프지 않니? 누나가 먹을 것 좀 사줄까? 여기 핫도그가 꽤 맛… 꺄악!”
흐뭇한 표정으로 쉴 새 없이 주절거리던 민예린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질렀다.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로이의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미친 듯이 고함을 질러댔다.
“고! 고! 고!”
“좋아! 그대로! 그대로! 가라고! 제발!”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로이의 푸른 눈동자가 열심히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이 무엇을 이렇게 열심히 쳐다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푸른 잔디와 파란 하늘, 그 두 사이를 마치 가로지르듯 날아가고 있는 하얀색 야구공.
엄청난 높이로 치솟은 야구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간 공이 좌측 외야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지는 순간.
“꺄아아아악! 오빠아아아!”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주던 예쁜 누나가 후다닥 밑으로 달려가 안전망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로이는 그 모습이 마치 스파이더맨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최대한 통화를 빨리 마친 할아버지가 로이의 곁으로 돌아왔다.
“다녀왔다, 로이. 잘 지키고 있었구나. 아까 그 아가씨는… 음, 저기 매달려 있구나. 하하, 참 보기 좋아. 나도 젊었을 때는 종종…….”
“할아버지, 방금 그거 보셨어요?”
“그거? 아아, 물론이지. 내가 말했잖니. 그는 최고의 선수라고. 어때? 야구장에 오길 잘했지?”
“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까 그 홈런은 정말… 정말 멋졌어요. 꼭 하얀색 아이언맨 같았거든요. 저도 그렇게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호, 네가 드디어 야구의 맛을 알게 되었구나.”
“네, 할아버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야구장에 데려와주셔서.”
한수혁이 스무 번째 홈런을 치던 그날, 시애틀 매리너스의 팬 한 명이 새로 추가되었다.
노인이 될 때까지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기다려야 했던 할아버지와 달리, 이제 곧 최고의 무대에서 경쟁할 팀을 응원하게 될 어린 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