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5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52화(253/412)
#252. 기백을 담아
시즌 성적 27승 17패, 승률 0.614, 오클랜드에 한 게임 차로 따라 잡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구 1위를 달리고 있는 팀 성적.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초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중하위권으로 시즌을 마감한 경험을 갖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 팬들은 최근 팀이 연패를 당한 것에 대해 심각한 공포와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필라델피아와의 2, 3차전 패배,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온 홈에서 시카고 컵스에게 또 패배.
아군에게는 계속된 불행이, 그리고 상대에게는 결정적인 행운이 중첩되었던 필리스전 2연패는 그렇다 치고, 오랜만에 돌아온 홈에서 벌어진 컵스와의 1차전은 시애틀 팬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회말, 한수혁과 타이 존슨의 백투백 홈런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한 매리너스.
이날 시애틀의 마운드를 지킨 건 이적 후 3번의 경기에서 2번의 승리를 따낸 마이크 워렌이었다.
팀 적응을 위해 5선발로 나서고 있지만 조만간 3, 4번째 선발로 승격이 점쳐지고 있는 너클볼 투수.
하지만 지난 두 번의 호투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3회부터 6회까지 매 이닝 홈런을 내줬고, 거기에 애매한 실책 몇 개가 터져 나오며 결국 매리너스는 컵스에 11 대 4로 패하고 말았다.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너클볼 투수에게 홈런은 그냥 세금 같은 거라는 걸 잘 알기에, 그리고 아무리 잘나가는 팀이라 해도 3연패 정도는 당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건만 컵스에게 패한 그날 밤, 인터넷에 올라온 파파라치 컷 하나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팬들의 심기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PHOTO] 팀이 대패를 당한 후 고급 레스토랑에서 웃고 떠들고 있는 시애틀 선수들 #한수혁 #조쉬 올리버 #조나단 오웬스 #브루스 매튜스 #데릭 플레밍 #마이크 워렌
└젠장, 이게 뭐야? 이 자식들 뭐가 좋다고 이렇게 웃고 있는 건데?
└저기 스테이크 한 접시에 300불이 넘는 곳이잖아? 빌어먹을, 메이저리그가 좋긴 좋군. 경기를 그 따위로 말아먹고도 저런 데서 밥을 먹을 수 있다니
└잠깐만, 혹시 저거 합성 아니야? 아니면 아주 한참 전에 찍은 사진이라던지
└암만 봐도 오늘이야. 저 식당 지난주에 리모델링했거든. 최소한 이번 주 사진이야
└미친, 그럼 원정에서 이제 돌아왔으니 오늘이 맞네. 저기 모인 놈들을 봐. 패배의 원흉이 다 모여 있군. 패전투수, 그리고 실책을 한 야수들.
└닥쳐, 한수혁은 빼. 그 친구는 아주 잘했어. 다른 놈들이 머저리지.
└지나가던 양키스 팬인데 혹시 한수혁 욕할 거면 그냥 방출해. 우리가 데려갈 테니.
└머리통에 구멍이 나기 싫으면 닥쳐.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해 이 팀은 항상 이런 식이지. 시즌 초반에 잠깐 반짝하다가 중반이 지나면 귀신같이 하위권에 처박히는 저주받은 팀.
└그건 저주받은 게 아니라 이 팀이 아직 젊어서 그래. 주전 선수들 나이를 보라고.
└꺼져. 어리다고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그리고 한수혁을 봐. 이제 빅리그에 막 데뷔한 프로 4년 차가 저렇게 잘하는데, 그보다 나이도 많은 것들이.
└일단 한수혁은 논외로 하자고. 그 친구는 우리의 슈퍼스타이니까. 대체 왜 저런 머저리들 틈에 섞여서 웃고 떠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래, 네 말대로 한수혁은 빼더라도 나머지 놈들은 욕을 처먹어도 싸. 젠장, 정말 끔찍한 경기였다고.
고작 선수들이 밥 먹으며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매리너스 커뮤니티가 미친 듯이 불타올랐다.
분노한 팬들은 내일 경기를 보이콧하자는 둥 아무리 잘해도 박수를 치지 말자는 둥 선수들을 향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터질 듯하던 커뮤니티 분위기는 누군가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들 진정했으면 좋겠군. 나는 이 팀의 창단 첫 경기를 할아버지 손 잡고 지켜봤던 사람이야. 그리고 오늘 내 손주와 함께 컵스 놈들과의 경기를 관전했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기 저 사진은 진짜야. 어떤 빌어먹을 놈이 남의 사생활을 찍어 올렸는지 몰라도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식사하는 사진이 맞아.
└거봐! 내 말이 맞지? 역시 정신 상태가 글러먹은 놈들이라니까?
└닥치고 내 말 계속 들어.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내가 뭔데 이런 말을 하냐고? 그야 저 자리에 있던 사람이니까. 자, 저기 테이블 중앙을 잘 봐. 선수들에게 가려져서 잘 안 보이지만 꼬맹이 하나 보이지?
└보이는군. 저게 누군데? 선수 자식인가?
└내 손자야. 그래, 난 오늘 처음으로 내 손주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았고, 경기가 끝난 후에 선수들의 초대를 받아 저 레스토랑에 가게 됐지. 내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사진이 찍힌 것 같은데 아무튼 저기 선수들이 왜 모인 건지 내가 가장 잘 아니 대신 설명해주지.
└좋아, 일단 들어보자고. 내 말투를 기분 나빠 하지 마. 나도 이 빌어먹을 팀을 창단 때부터 응원해온 사람이니까.
└나와 동년배인가 보군.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결론만 이야기하도록 하지. 나는 여덟 살이 된 손주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았지. 시작은 아주 좋았어. 한수혁과 타이 존슨이 백투백을 날렸거든. 손주는 그 타구를 보고 하얀색 아이언맨이 하늘을 나는 것 같다고 하더군.
└젠장, 맞아. 거기까지는 정말 좋았지.
└계속 들어봐. 나이를 먹어서 키보드를 치는 게 쉽지 않아. 어쨌든 그 이후는 너희들도 잘 아는 바대로야. 마이크는 계속 홈런을 맞았고 우리 야수들은 실책을 저질렀지. 팀은 패배했어.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그렇게 팀이 졌으면 추가 훈련은 못 하더라도 최소한 저 따위…….
커뮤니티가 또 한 번 확 달아오르려던 순간, 노인의 글이 이어졌다.
└나는 야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경기에 패배한 팀이 뭘 해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몰라. 하지만 내가 아는 게 하나 있지. 그렇게 내 손주의 첫 관전 경기가 패배로 끝나고, 녀석은 안전망에 기대서 울고 있었어. 그런데 내 옆에 앉아 있던 여자분이 그러더군. 혹시 바쁘지 않으면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겠냐고? 한수혁 선수가 나와 손주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더군.
└가만, 혹시 그 여자가?
└맞아, 매일 우리 구장 안전망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그 여자.
└알지, 아니, 사실 나는 잘 모르는데 우리 딸은 아주 그 여자만 나오면 뒤로 넘어가더군. 미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팝스타라지?
└그래, 아무튼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와 손주는 시애틀에 수십 년을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멋진 식당으로 초대를 받았지. 거기에는 저 선수들이 기다리고 있었어.
└음,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는데?
└처음에 한수혁 선수가 내 손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러더군. 경기에 져서 미안하다고. 오늘 경기가 생애 첫 야구장 방문이라고 했더니 더 미안해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어. 그러고는 손에 배트를 들고 돌아오더군. 오늘 홈런을 친 배트라고 말이야.
└맙소사! 그럼 그 배트를 선물로 받은 거야?
└당연하지. 지금 우리 손주는 그 배트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어. 그렇게 선수들이 하나하나 나와 손주를 위로해줬고, 식사가 나왔어. 그리고 그게 시작됐지.
└뭐가?
└한수혁 선수가 거기 모인 선수들, 그러니까 오늘 패전을 당한 선발투수와 실책을 저지른 수비수, 그리고 삼진을 먹은 타자들에게 하나하나 피드백을 해주더군. 뭐가 문제였고, 내일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는지, 그리고 팬들을 위해 선수들이 무얼 할 수 있는지 말이야.
└젠장…….
└내 말은 이거야. 눈에 보이는 거만 갖고 선수들을 공격하지 마. 나는 우리 선수들이 얼마나 팀을 위해 헌신하는지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야.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믿어도 돼.
└빌어먹을, 좋아.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군. 경솔했던 거 인정하지.
└다행이군. 아, 그리고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한수혁 선수가 내 손주에게 이렇게 말하더군.
└뭐라고?
└내일 경기는 반드시 이기겠다고, 아니,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을 거라고. 그 말을 믿고 나는 오늘도 손주의 손을 잡고 야구장으로 달려갈 거야. 그러니 너희도 닥치고 응원이나 하라고.
* * *
“칙쇼……!”
“뭐라고?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아, 아니, 그냥 혼잣말이야. 젠장, 미안해.”
“흠… 뭐, 좋아. 그럼 시작해 보자고.”
시애틀 매리너스와 시카고 컵스 간의 시즌 2차전, 양팀의 에이스가 맞붙은 가운데 시애틀의 1회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선발투수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마운드를 방문했던 컵스의 포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홈플레이트로 돌아왔다.
지난 4년간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인 투수 다나카 야마토, 그의 상태가 약간 이상했기 때문이다.
공의 위력 자체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심리적으로 뭔가에 쫓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멍하니 풀린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갑자기 움찔 놀라기도 하고,
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몇 번을 물었지만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는 나라의 국민이라 그런지 당최 입을 열지 않았다.
‘어쨌든 공 자체는 괜찮으니까…….’
궁금한 표정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투수 코치에게 일단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준 포수가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7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8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9번 2루수 조나단 오웬스
선발 투수 라이언 티보우
어제와 동일한 시애틀의 선발 라인업.
전반적으로 젊고 역동적인 타선이지만 역시 2번과 3번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타자들로 짜여 있다.
오늘처럼 에이스 대 에이스가 맞붙는 경기에서는 그런 작은 경험 차이가 큰 결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긍정회로를 실컷 돌린 컵스 포수가 마운드 위 에이스를 향해 힘차게 소리쳤다.
“좋아! 다나카! 한번 가보자고! 네가 최고야!”
* * *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거인군에 입단, 일본을 대표하는 요미우리의 에이스 자리를 꿰찬 후 7시즌 동안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한,
그리고 포스팅을 통해 미국으로 진출한 후 5번째 시즌을 맡고 있는 시카고 컵스의 일본인 에이스 다나카 야마토.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건만 그의 이마에서 식은 땀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플레이!”
주심의 경기 개시 사인과 함께 시애틀의 1번 타자 데릭 플레밍이 타석에 들어섰다.
올 시즌 3할 8푼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는 힘 있고 발 빠른 타자.
지난 시즌 다나카의 주무기인 투심을 제법 잘 받아 친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 다나카 야마토의 머릿속에 있는 건 데릭 플레밍이 아니었다.
바로 그 뒤에 버티고 있는 타자.
WBC와 올림픽에서 자신을 상대로 무쌍을 찍었던 타자 한수혁.
올림픽이 있던 그해, 시즌이 끝나고 일본을 찾은 다나카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 은퇴한 자신의 장인과 긴 시간 상담을 가진 바 있다
‘뭘 던져도 맞을 거 같습니다. 그 녀석 얼굴만 봐도 토할 거 같고요.’
‘기백이 부족하군!’
‘아뇨, 기백은 충분합니다. WBC 때는 몰라도 이번 올림픽 때는 방심이라고는 전혀 없이 죽을 힘을 다해 상대했거든요. 그런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인어른?’
‘혼을 담아서 던지면 돼! 사무라이 정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무 도움도 못 된 상담이었다.
그나마 다나카가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건 그 끔찍한 녀석과 상대하는 게 2년에 한 번, 그러니까 올림픽과 WBC 정도가 전부일 거라는 거였다.
하지만.
[KBO리그를 폭파한 한수혁,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지다! 전 거인군 에이스이자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 다나카 야마토, 일본인의 혼을 보여줄 것인가?]‘혼또?’
어느 날, 즐겨 보던 요미우리 신문 홈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기사를 본 다나카는 그대로 뒤로 넘어갈 뻔했다.
그 끔찍한 자식이 미국에 진출한다고?
아니, 프로에 데뷔한 지 고작 3년밖에 안 된 놈이 벌써?
그날부터 다나카의 온 신경은 한수혁의 행보에 집중되었다.
어느 팀으로 갈 것인가? 설마 같은 지구로 오는 건 아니겠지?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을 끌어안고 매일 끙끙거리던 다나카는 한수혁이 시애틀 유니폼을 선택했다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고 말았다.
“반자이!”
일 년에 3경기뿐인 시애틀과의 인터리그 경기, 운만 좋으면 그 녀석을 상대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5분의 3 확률을 뚫고 시애틀과의 2차전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된 다나카가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데릭을 향해 초구를 던졌다.
슈웅
파앙
“볼!”
존을 거의 스치듯 지나가는 슬라이더에 타자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 타자가 그 빌어먹을 자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절대 여기서 출루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
다나카는 마치 월드시리즈 최종전에 등판한 마음으로 한 구 한 구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자신의 장인어른이 말한, 바로 그 기백을 담아서 말이다.
파앙
“볼!”
틱
“파울!”
파앙
“볼!”
파앙
“스트라이크!”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비슷한 코스의 공에 무턱대고 배트를 내밀던 놈이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다나카의 마음이 점점 더 초초해졌다. 안 그러고 싶은데 자꾸 시선이 대기타석에 있는 한수혁에게로 향했다.
불안한 마음은 곧 불안한 제구력으로 이어졌다.
슈웅
파앙
“볼!”
“좋았어! 그래! 진즉에 이럴 것이지!”
“박살 내버려! 저 컵스 놈들을 박살 내라고!”
“젠장! 이 꼴을 보려고 내가 다섯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온 줄 알아? 제대로 해!”
시애틀 팬들이 내지르는 함성, 그리고 이 먼 도시까지 비행기를 타고 원정 온 몇몇 컵스 팬들의 야유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선두 타자 볼넷,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단순히 볼넷 하나에 불과했지만 다음 타자를 감안하면 최악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다나카에게는 일생일대의 위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의 차례가 도래했다.
[2번 타자 서드베이스맨 한수혁]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베이스기타 연주음과 함께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다나카 야마토는 하마터면 그대로 마운드 위에 주저앉아 버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