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5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54화(255/412)
#254. 개자식
– 고 위원님.
– 말씀하세요.
– 정말 끔찍하군요. 보기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한수혁 선수에게 연타석 홈런을 허용한 다나카 선수가 넋 나간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네, 제가 투수 출신이라 저 마음 아주 잘 알죠. 한 타자에게 저런 엄청난 홈런을, 그것도 연타석으로 맞으면요, 그… 뭐라 해야 할까? 진짜 ㅈ… 절망스럽죠. 아무튼 다나카 상, 오늘도 아주 수고 많아요. 한수혁 선수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선수예요.
– 흠흠, 상대 선수에 대한 지나친 비난이나 비아냥은……. 음, 그보다 위원님, 지난 WBC부터 시작해서 올림픽, 그리고 오늘 경기까지, 정말 처절할 정도로 한수혁 선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다나카 야마토 선수입니다.
– 네, 이건 뭐 기록을 찾아볼 필요도 없이 그냥 둘이 만나면 무조건 장타가 나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게 용해요. 만약 제가 저렇게 한 선수에게 계속 얻어맞는다? 차라리 등판 전에 설사약을 먹고 그대로 똥을…….
– 저기, 위원님.
– 아, 죄송합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계실 텐데 제가 더러운 이야기를… 면목이 없습니다. 어쨌든 말이죠. 한수혁 선수가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에게 저렇게 강한 모습을 보인다는 건 여러모로 반가운 일입니다.
– 어째서인가요?
– 당장 올 시즌이 끝난 후에는 카타르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죠? 한수혁 선수도 참가 의사를 밝혔고요. 일본을 대표하는 에이스가 한수혁 선수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나 마찬가지이니 일단 일본전은 먹고 들어가는 셈이죠.
– 뭐라 반박할 수가 없군요.
– 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말이죠. 한일 간의 스포츠 경쟁 역사를 살펴보면 전체적인 팀 전력 외에도 어느 쪽이 압도적인 선수를 보유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 적이 많았거든요? 손흥민 선수가 현역으로 있을 때는 일본 축구가 우리 앞에서 숨도 쉬지 못했고, 오타니 선수가 있을 당시에는 우리 야구 대표팀이 형편없이 당하곤 했죠.
– 음.
– 하! 그때를 생각하니 또 열불이, 자, 한수혁 선수, 아직 멀었습니다. 당한 만큼 갚아줘야죠. 일단 눈앞의 저 다나카 야마타부터 완전히 박살을…….
– 다나카 야마타가 아니라 야마토고요. 어쨌든 무슨 말씀인지는 이해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그럼 광고 보고 오겠습니다. 이곳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시카고 컵스 간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T모바일파크입니다.
* * *
“멋진 홈런이었어, 한.”
“그래, 브루스. 그보다 아까 션 터커, 그 자식하고 분위기가 이상하던데 왜 그런 거야?”
“별 거 아니야. 머저리 같은 놈이 시비를 걸길래 입 닥치고 야구나 하라고 해준 거야.”
“시비?”
“우리 팀에 있을 때부터 나랑 별로였거든. 어쨌든 신경 쓰지 마. 원래 저런 놈이니까.”
“흠, 시비 붙을 거 같으면 나한테 달려와. 턱을 박살 내줄 테니까.”
“흐흐, 네, 마미. 집에 일찍 들어올 테니까 잔소리 그만하세요.”
내 말이 농담이라 생각한 건지, 브루스가 피식 웃으며 그라운드로 걸어 나갔다.
4회초 컵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내 홈런 두 방으로 시애틀이 3 대 0으로 앞서가고 있는 상황.
경기에 이기고 있지만 아직 우리 팀 선수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연패에 대한 부담감이 몸과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것이다.
나처럼 야구를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지만 연패를 끊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압도적인 에이스가 나서서 강제로 연패를 끊어내는 방법이 있고, 어느 한 선수에 의지하지 않고 선수단 전체가 분위기를 띄워 연패에서 탈출하는 방법도 있다.
사실 이걸 방법론이라고 하기는 뭐하고, 결과론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나는 후자가 훨씬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선수에게 계속 기대다 보면 그게 버릇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만,
내가 왜 이런 걱정까지 하고 있는 거지.
“플레이!”
4, 5, 6번으로 이어지는 4회초 컵스의 공격.
라이언 티보우가 컵스의 4번 타자를 향해 힘차게 공을 뿌렸다.
몇 년 전부터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하나였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하나, 즉, 비슷비슷한 기량을 가진 여러 선수들 중 하나.
칭찬하려는 게 아니다.
본래 역사대로라면 사이 영 컨택터 0순위로 올라섰어야 할 녀석이 수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걸 지적하고 싶은 거다.
모르겠다.
저 녀석이 원 역사보다 조금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게 다른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운명에는 없었던 나와 타이 존슨의 등장으로 저 녀석이 에이스의 책임감을 내려놓았고, 그것이 기량의 발전을 막는 원인이 된 것인지,
야구선수라는 게 이렇게 예민한 존재이다.
단순히 피지컬과 기술만으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심적인 요소가 전체적인 완성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불안정한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볼.”
어제는 감독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라이언 저 녀석이 감독에게 찾아가 이렇게 얘기했다더라.
에이스 자리를 내놓겠다고.
팀의 우승을 위해 자신보다 나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내게 1선발 자리를 넘기겠다고 말이다.
미션 완료! 쿠키 3개가 지급되었어요
지금 바로 사용해보세요!
내가 무실점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다.
회귀하기 전 녀석에게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까.
어릴 적부터 자신의 목표는 이 팀의 에이스가 되어 팀을 우승시키는 거였다는, 아주 흔해 빠졌지만 결코 비웃을 수 없는 꿈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라이언 저 녀석은 시애틀의 우승을 위해 에이스라는 자부심까지 포기할 마음인 거다.
슈웅
따아악!
“파울!”
그 말을 곱씹다 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회귀 후 나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
워리어스를 인수하고, 우승팀으로 만들고, 오랜 시간 정상을 유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그리고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빅리그로 건너오고.
단언컨대, 이 세상에 나보다 열심히 노력한 인간은 별로 없을 거라 확신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룬 사람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지금도 목표를 갖고 있냐 묻는다면?
슈웅
틱
“파울!”
없다.
최고 레벨의 선수들과 경쟁해보고 싶고, 그 안에서 내가 최고가 되고 싶고,
두 번째 인연을 갖게 된 시애틀이라는 팀을 정상에 올려놓고 싶지만,
그건 말 그대로 그냥 하고 싶은 일일 뿐.
목표라고 부르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인생을 걸고 평생을 노력해야 하는 그런 목표,
나는 그런 걸 가질 수 있을까?
따아악!
“서드!”
타악
슈웅
“아웃!”
“좋아! 역시 최고야!”
3루 베이스 라인을 타고 흐르는 타구를 잡아 기계적으로 1루에 송구하고 나니, 나를 향해 엄청난 환호가 쏟아진다.
갑자기 찾아온 내 인생에 대한 의문.
“후……”
깊은 한숨과 함께 그것을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언젠가는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 나서야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눈앞에 닥친 경기에서 승리하는 거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컵스의 5번 타자 션 터커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신기한 녀석이야.’
한국에서는 포수를 안방 마님이라 부르곤 한다.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되는 다른 필드 플레이어들과 달리 팀의 이런 저런 부분들을 꼼꼼히 챙겨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시애틀의 포수 브루스 매튜스는 제법 쓸 만한 안방 마님이었다.
타격이나 수비 면에서 리그 정상급이라 부르기 힘들지만, 동료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그들이 놓친 것이 없는지 하나하나 챙겨주고, 덕아웃과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 아주 능숙했다.
말하자면 아주 세밀하고 꼼꼼한 살림꾼이라고 해야 할까.
그 덕에 팀 동료들과 팬들, 그리고 코칭스태프들에게 두루 사랑을 받고 있는 브루스 매튜스가 묘한 표정으로 3루 쪽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다른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한수혁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게 심했다.
뭐랄까, 함께 그라운드 위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지만 혼자 다른 세상에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야구, 아니, 세상에 통달한 듯한 분위기 마구 뿜어져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녀석이 스물셋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생각하며 브루스가 포구 자세를 취했다.
투 아웃 주자 없는 상황, 타석에 선 건 재수는 없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한 5번 타자 션 터커.
이런 상황에서 녀석이 큰 걸 노린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브루스가 바깥쪽 낮은 포심을 요구했다.
끄덕
라이언의 손끝에서 공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정확하게 브루스가 유도한 곳으로 들어왔다.
슈웅
퍼엉
“스트라이크!”
“Fuck!”
예전부터 느꼈지만 더럽게 입이 거칠고, 그것 때문에 자꾸만 주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놈이다.
저놈은 알까? 자기가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지독한 썩은 내가 난다는 걸?
슈웅
부웅
퍼엉
“스윙!”
“Fuck! Fuck! Fuck!”
제 분에 못 이겨 튀어나오는 욕설, 그리고 거친 행동.
입 좀 닥치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브루스가 승부를 이어갔다.
슈웅
파앙
“볼.”
윈나우를 선언하고 마이너에 대기 중이던 신인들을 대거 콜업한 지도 벌써 몇 년, 시애틀이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친 성적을 기록한 데는 지난 시즌까지 지속된 팀 내 파벌싸움이 한 몫을 차지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전무한 상황.
시애틀 선수단은 라이언 티보우를 중심으로 한 투수들의 파벌과 브루스 매튜스를 중심으로 한 야수들의 파벌, 그리고 션 터커와 몇몇 이적생들을 중심으로 한 파벌 등 세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라이언이 주장을 맡게 되고, 자연스럽게 투수파와 야수파는 한 몸이 되었지만 션 터커를 중심으로 뭉친 이적생들의 파벌은 좀처럼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구단 측에서는 팜에서 자라난 어린 유망주들, 그러니까 라이언과 브루스를 필두로 한 루키들에게 더욱 신경을 쏟았고, 돈을 보고 모여든 이적생 무리들의 불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시애틀의 구단 운영이 조금 미숙했다.
유망주들로 채워진 선수단의 빈자리, 그것을 그저 돈으로 메우면 될 거라 생각한 게 실책이었다. 조금 더 먼 미래를 보고 선수단을 구성해야 했다.
물론 그 책임을 지고 전 단장이 물러났고, 새로운 단장이 취임하고 한수혁과 타이 존슨이 입단하며 전화위복이 되었지만.
슈웅
파앙
“볼.”
어쨌든 션 터커, 저 녀석이 시애틀에서 보낸 3년이라는 시간은 놈에게나 시애틀 선수들에게나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특히나 루키들을 보호하기 위해 션 터커와 맞섰던 브루스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슈웅
파앙
“볼.”
그럼에도 인성과 별도로 션 터커가 상당히 좋은 선수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매년 3할을 넘나드는 타율과 스무 개 가까운 홈런을 날릴 수 있는 파워.
그리고 수비수로서도 리그 평균 이상의 수비력을 갖춘 A급 3루수.
녀석이 트레이드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다.
KBO를 박살 낸 루키가 3루를 맡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걱정이 더욱 커졌다.
물론 이제 와 생각하면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슈웅
틱
“파울!”
투 아웃 풀 카운트.
이제 승부를 결정지을 때가 왔다.
시애틀에 대한 악감정이 전투력을 끌어올린 것인지 평소보다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녀석을 보며 브루스가 마지막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
헛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과감한 볼 배합.
만약에 녀석이 참아내면 볼넷을 줄 수도 있지만 브루스는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여기서 그걸 참아내는 게 가능했다면 아무리 녀석의 인성이 엉망이었다 해도 시애틀이 트레이드를 했을 리가 없으니까.
삼진이 될 거라 확신한 브루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포구 자세를 취했다.
슈웅
투수의 손 끝에서 공이 떠났다.
그 공이 자신이 요구한 코스대로 완벽하게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브루스가 미트를 가져다 댔다.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가르고, 공이 미트 안으로 들어오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부웅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션 터커가 휘두른 배트의 끝이 브루스의 헬멧을 강타했다.
그리고 브루스가 풀썩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