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5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55화(256/412)
#255. 제가 하죠
벤자민 레이놀즈 사단이라 불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줄곧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노아 앤더슨 타격 코치는 마침내 자신이 활약할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3년간 몸담았던 워리어스를 떠나 벤자민 감독과 함께 시애틀 유니폼을 입던 날, 그가 자신을 따로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노아. 자네가 대학 시절 야구를 하면서 미식축구에서 러닝백을 병행했다고 들었어.’
‘맞습니다, 보스.’
‘좋아, 자네는 우리 팀 코치 중 가장 젊어. 발도 빠르고 힘도 제법 세지. 러닝백을 했으니 태클에도 능숙할 테고.’
‘뭐… 그렇기는 한데, 갑자기 그건 왜?’
‘언젠가 자네가 활약해야 할 때가 올 거야. 그러니 덕아웃에 있을 때는 항상 긴장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 명심해. 내가 명령을 내리면 곧바로 반응해야 해. 머뭇거리면 늦어.’
‘그게 대체 무슨…….’
당시에는 몰랐다.
하지만 막상 이런 순간이 닥치니 그때 보스가 한 말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노아! 지금이야! 그를 잡아! 내일 우리 팀 선발투수를 보호해야 해!”
“옛설! 보스!”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막 마흔 초반에 접어든, 아직 한창 때의 피지컬과 태클 기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노아 앤더슨이 덕아웃을 박차고 어디론가 달려나갔다.
“우우우! 죽여! 저 개자식들! 죽여버리라고!”
“저 빌어먹을 자식, 분명히 고의야.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야! 심판은 뭐 하는 거야? 사무국은?”
“션 터커! 너 이 개자식! 넌 시애틀 밤거리를 조심해야 할 거다!”
“우리 집 개를 걸고 약속하지. 밖에서 내 눈에 띄면 네 머리통에 구멍을 뚫어버릴 거다!”
라이언이 던진 멋진 체인지업에 션 터커가 삼진을 당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뒤에 이어진 길고 강렬한 팔로우 스윙이 포수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얼마나 세게 맞았는지 헬멧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브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흥분한 양팀 선수들이 몰려들었고, 심판들은 상황을 정리하려 애썼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노아 앤더슨은 당장 눈앞에 있는 자신의 역할에만 신경 쓰기로 했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모든 것을 망치게 된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으아아!”
3루 베이스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노아 앤더슨이 고함을 지르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바로 앞에 그가 있었다.
KBO를 넘어 메이저리그의 핵주먹으로 떠오른, 조금만 수틀리면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 그리고 일단 주먹을 날리면 상대의 어디 하나는 꼭 부러뜨리고 마는 한수혁이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걸음을 떼고 있었다.
“안 돼!”
자신이 보기에도 방금 전 그건 사고가 아닌 고의성이 다분한 플레이로 보였지만, 그렇기에 벤클은 당연한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저 녀석은 안 된다.
한수혁은 내일 경기를 뛰어야 할 선발투수다.
원래대로라면 다음 경기 선발투수는 벤치 한 구석에 가만히 앉아 벤클에서도 열외가 되는 존재였지만 그는 투타 겸업을 하다 보니 이런 순간 그라운드에 발을 딛고 있었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여기서 만약 한수혁이 션 터커의 턱을 박살 내버리면?
보나마나 또 출장정지를 당할 테고, 내일 시애틀 마운드에는 마이너에서 콜업된 애송이가 임시 선발로 올라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팀은 계속되는 연패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이익!”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온 노아 앤더슨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던 한수혁의 뒤를 따라잡았다.
됐다. 고지가 코앞이다.
덥석
등 뒤에서 그를 꽉 끌어안은 노아 앤더슨이 저 멀리 자신의 덕아웃을 향해 소리쳤다.
“보스! 도와줘요! 나 혼자서는 안 돼!”
* * *
– 아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습니다.
– 이런 @%$%!!
– 위원님! 잠시! 잠시! 진정하시고!
– 하아,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 휴, 일단 위원님, 방금 전 상황에 대해 정리부터 부탁드립니다.
– 네, 예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기는 했습니다. KBO에서도 그렇고, 메이저리그에서도 말이죠. 보통 스윙을 잘못 배운 머저리들이 팔로우 스윙을 길게 가져가다가 포수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경우가 있는데 말이죠.
– 저도 중계하면서 몇 번 본 기억이 납니다.
– 맞아요. 그런데 지금 상황은… 느린 화면 보면서 말씀하시죠. 보세요. 바깥쪽 체인지업에 타자가 헛스윙을 했죠? 삼진 콜이 나왔고요.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플레이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장면을 보세요. 헛스윙을 하면서 허리를 뒤로 제치고 무슨 회전회오리슛… 마치 원을 그리듯이 팔로스로우를 가져갑니다. 하나 걸려라 하고 말이죠.
– 네, 거의 360도, 한 바퀴를 돈 거나 마찬가지네요.
– 제가 저 선수 올해 스윙 장면을 일일이 하나하나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장담합니다. 저거 백프로 고의로 한 거예요.
– 위원님, 일단 사실 확인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런 발언은… 어억! 그런데 저건 뭔가요? 시애틀 덕아웃에서 튀어나온 코치 하나가 한수혁 선수에게 태클을 먹였습니다! 뒤이어 달려온 다른 코치들이 한수혁 선수를 둘러싸버렸습니다!
– 헐… 저건 제가 보기에는 음…….
– 네, 뭔지 알 것 같네요.
– 그렇죠? 하하, 이거 참… 좋게 생각하죠. 내일 선발투수를 보호하려 한다고 말이죠.
– 역시 그런 거겠죠? 아! 말씀드리는 순간 코치 세 명을 뒤에 매단 한수혁 선수가 션 터커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뭐라고 하는 걸까요?
– 글쎄요, 저게 스페인어 같은데… 한수혁 선수가 스페인어도 할 줄 알았나요? 한 가지는 확실하겠죠. 백 프로 욕입니다.
– 아아, 상황이 점점 엉망이 되어 갑니다!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엉키며 경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 이야, 그 와중에 한수혁 선수 보세요. 한 명 더 늘어서 코치가 네 명이나 달라붙었는데 그걸 질질 끌고 션 터커에게 다가가네요. 저 머저… 흠, 저 선수 쫄았어요. 보세요. 한수혁 선수를 쳐다도 못 보네요. 자기도 아는 거죠. 가까이 갔다가는 맞아 죽겠구나 하고 말이죠.
– 결국 앰뷸런스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고 경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저희도 그럼 잠시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이곳은 홈팀 시애틀 매리너스와 원정팀 시카고 컵스 간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T모바일파크입니다.
* * *
“우우우! 다 죽여! 다 죽이라고!”
“컵스! 이 빌어먹을 쓰레기들!”
“닥쳐! 이 시애틀 머저리들아!”
그라운드 위에서 시작된 싸움이 경기장 전체로 번져 나갔다.
브루스 매튜스가 병원으로 후송되고, 말도 안 되는 스윙으로 포수에게 부상을 입힌 션 터커에게는 엄중 경고가 내려졌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문제이건만, 더 큰 문제는 이후 양팀 선수들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주먹을 주고받은 선수 몇 명이 퇴장을 당했다는 거다.
“젠장,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저 자식들은 대체 제 정신이야? 시카고에서 여기까지 야구를 보러 날아온다고?”
“저놈들 저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요. 그보다 보스, 어떻게 할까요? 포수를 볼 선수가 없습니다.”
“빌어먹을, 존, 그 녀석은 왜 주먹을 휘둘러서.”
“컵스 쓰레기가 먼저 주먹을 날렸으니까요,”
“알아. 답답해서 해본 소리야. 후, 그럼 정리를 해보자고. 지금 퇴장당한 게 누구누구지?”
“일단 퇴장당한 건 존과 데릭입니다. 브루스는 병원에 도착하면 곧바로 검사를 받을 예정이고요.”
“좋아, 한마디로 주전 중견수와 주전포수, 그리고 백업포수가 한꺼번에 날아갔군.”
“네, 맞습니다. 일단 중견수 자리에는… 케빈을 넣을까요?”
“케빈… 그래,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이봐! 케빈! 몸 풀어! 중견수 자리로 들어간다.”
“네? 네! 알겠습니다! 코치!”
지시를 받은 선수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이 한숨을 푹 쉬며 말을 이었다.
“자… 그럼 포수가 문제인데, 우리 팀에 포수 경험이 있는 녀석이 누가 있지?”
“타이가 데뷔 초반에…….”
“안 돼. 임시 포수로 써먹기에는 너무 비싼 친구야. 나이도 많고, 다음.”
“조쉬가 고등학교 때 한두 번 포수 마스크를 쓰긴 했습니다.”
“젠장, 장난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네 중에 하나를 올려 보내는 게 낫겠군. 내가 이럴까 봐 로스터에 포수 셋은 있어야 한다고 한 건데…….”
“단장이 그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으니 조만간 결론이 나겠죠.”
“휴, 알아. 답답해서 해본 소리야. 자, 그럼 어떻게 한다. 정말 조쉬를 올려야 하나? 젠장, 고등학교 때 잠깐 포수를 한 녀석이 100마일을 잡아낼 수 있을까?”
“뭐… 구속을 좀 줄이라고 하면…….”
“그게 말이 돼? 이봐, 우리는 지금 3연패 중이야! 마운드에는 우리 팀 에이스가 서 있고. 경기를 포기하란 소리야?”
“보스, 일단 진정부터 좀.”
“빌어먹을, 컵스 개자식들. 난 선수 때부터 저 녀석들이 너무너무 싫었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보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포수부터 골라야 할 것 같습니다.”
“젠장…….”
시애틀의 덕아웃이 침묵에 잠겼다.
누가 브루스 대신 포수 마스크를 쓸 것인가를 놓고 시애틀 코칭스태프가 머리를 쥐어뜯던 그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수 하나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 * *
“할아버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배트로 사람을 때렸으면 퇴장당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저 선수는 계속 플레이하고 다른 선수들이 퇴장당한 건가요?”
“그게 말이다, 로이…….”
한수혁의 약속을 믿고 오늘도 야구장을 찾은 모간 가문의 조부.
손주의 질문에 할아버지가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할 말을 골라냈다.
“일반적으로 배트로 상대를 때리면 당연히 퇴장인데 말이지, 지금 상황은 플레이 도중 일어난, 그러니까 고의가 아니라… 젠장, 로이.”
“네, 할아버지.”
“그냥 빌어먹을 상황인 거다. 저 컵스 자식이 분명 고의로 배트를 휘둘렀는데 심판이 증거를 못 찾은 거지. 로이, 그러니 명심해라. 인생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예를 들어 네가 누군가에게 사탕을 뺐겼다거나 혹은 나이가 들어서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는 무조건 증거부터 확보해야 한단다. 그래야 억울한 일을 안 당할 수 있는 거야.”
“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노력해 볼게요, 할아버지. 그런데 앰뷸런스가 들어와서 우리 포수를 실어 갔으니까… 다른 선수가 대신 들어오는 거죠?”
“맞아. 원래는 우리 팀 백업 포수인 존 글렌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 친구도 퇴장을 당했거든. 가만있어 보자. 이렇게 되면… 누가… 응?”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라운드와 전광판을 번갈아 바라보던 할아버지와 손자의 눈이 어딘가에 고정되었다.
그곳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선수 하나가 포수 장비를 착용한 채 그라운드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