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5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56화(257/412)
#256. 성공인가, 실패인가
“진짜 믿어도 되는 거야?”
“돼. 되니까 얼마든지 던지고 싶은 대로 던져.”
“음, 그럼 사인은…….”
“어차피 피치컴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쓸데없는 걱정 말고 마운드로 돌아가. 어깨가 더 식기 전에 빨리 끝내고 들어가자고, 라이언.”
엉망이 되었던 그라운드 정리가 끝나고 다시 컵스의 공격이 재개되었다.
투 아웃 주자 없는 상황,
내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자 라이언뿐만 아니라 다른 야수들까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백 프로 자신 있는 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전을 제외하면 엉망진창인 시애틀 포수진 덕에 회귀 전에도 몇 번 포수 마스크를 썼지만 그것도 벌써 10년이나 된 일이니까.
하지만,
파앙
“좋아.”
파앙
“좀 더 빠르게.”
파앙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덕아웃에 있는 놈들 중 나보다 더 포수를 잘 볼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고의임에 분명한 션 터커의 스윙이 브루스의 머리를 가격하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경기에서 이기고 말겠다고.
“플레이!”
컵스의 6번 타자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바로 입이 열렸다.
“그 썩어빠진 동태 눈깔 저리 치우고 똑바로 야구나 해, 개자식아. 너희들은 오늘 살아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포수로서는 초보지만 트래쉬토크는 그거랑 별개니까.
* * *
슈웅
파아앙!
“스트라이크!”
“오오오!”
“제법인데? 아니, 브루스보다 더 나아 보이는데?”
“그럴 리가 있나? 어쨌든 다행이야. 맙소사, 포수가 다 사라진 줄 알고 걱정했는데 저 친구가 저렇게 포수를 잘하다니!”
“생각해보면 겨우 395만 달러에 리그 최고의 투수이자 타자이자 3루수이면서 포수까지 볼 수 있는 선수를 데려온 건가!”
“오마이갓! 하느님, 시애틀 프런트에 축복을!”
한수혁을 향해 초구를 던진 라이언은 생각했다.
‘잘 잡네?’
한수혁보다는 느리지만 97마일에 육박하는 투심패스트볼.
타자의 몸쪽으로 역회전하며 떨어지는 그 공을 한수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냈다.
‘방금 그 공 한 번 더.’
끄덕
한수혁의 사인을 받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본 듯한 리드.
‘하긴 저 녀석도 투수니까, 그것도 나보다 더 대단한.’
라이언이 씁쓸한 듯 입맛을 다셨다.
시즌 초반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의 우승을 위해,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이 시애틀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위해,
오랫동안 지켜왔던, 자신의 자존심과 같았던 에이스 자리를 내놓으려 했다.
성적은 둘째 치고, 멘탈적으로도 자신보다 한수혁이 더 에이스에 어울린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을 통해 돌아온 대답은 명백한 거절이었다.
명목상으로는 투타 겸업을 위해 체력 보전이 필요하다는 거였는데, 그 안에 자신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다는 걸 라이언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안 든다.
한수혁이?
아니, 자기 자신이.
자신의 기량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라이언은 난생 처음 한수혁을 통해 좌절감을 맛보고 있었다.
빅리그 1년 차 루키에게 실력으로 밀렸다는 패배감, 그런 상대에게 동정을 받았다는 무력감.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팀의 3연패를 끊어내야 하는 중요한 경기.
거기에 팀의 포수 두 명이 모두 날아간 상황.
그들을 대신해 포수마스크를 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이자 라이벌인 한수혁.
그런 한수혁이 내민 미트를 향해 라이언이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 * *
– 위원님, 혹시 알고 계셨나요?
– 뭘요?
– 한수혁 선수가 포수를 볼 수 있다는 것 말이죠.
–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너무 놀라 말이 잘 안 나올 지경인데요.
– 대단하네요.
– 대단하죠. 제가 저번에 말했잖습니까. 저런 선수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고 말이죠. 그러니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기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한수혁 선수의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틱톡틱톡.
– 알겠습니다. 자,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던 4회초가 끝이 나고, 이제 4회말 시애틀의 공격이 이어집니다. 3 대 0으로 여전히 시애틀이 석 점을 앞선 가운데 이번 이닝 공격은 8번 타자로부터 시작됩니다.
– 자, 시애틀 선수들 힘을 내야 합니다. 주전 선수 두 명이 빠진 상황이니 어떻게든 점수를 더 벌려야 해요. 한수혁 선수 앞에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겁니다.
– 선수들도 알고 있겠죠. 그럼 이번 이닝에 어떤 공격이 펼쳐질지 잠시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이곳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T모바일파크입니다.
* * *
“조쉬, 긴장하지 말고.”
“네, 코치.”
“좋아. 가볍게. 출루에 초점을 맞춰서. 그럼 나가봐.”
시애틀의 주전 유격수이자 8번 타자인 조쉬 올리버가 긴장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타격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지만 안정된 수비력 하나로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찬 그는 지금 몹시 화가 난 상태였다.
루키 시절부터 자신이 가장 믿고 따라온 브루스 매튜스의 부상 때문이다.
‘개자식.’
정말 화가 나는 건 브루스와 션 터커의 사이가 저렇게 벌어진 데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거다.
처음 자신이 빅리그에 콜업되고, 션 터커가 시애틀로 트레이드되어 오고,
유격수와 3루수로 호흡을 맞추던 시절, 저놈은 유독 조쉬를 못살게 굴었다.
라커룸에서 시작된 언어 폭력과 괴롭힘은 결국 그라운드 안에까지 이어졌고, 그것 때문에 브루스와 션 터커가 직접적인 몸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브루스는 그저 션 터커가 하는 짓이 눈에 거슬려 그랬다고 말했지만 그건 명백하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플레이!”
그렇기에 조쉬 올리버는 어떻게든 1루로 출루할 생각이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복수는 션 터커가 속한 팀을 박살 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마운드 위에 서 있는 건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 다나카 야마토.
한수혁에게 홈런 2방을 허용했지만, 나머지 타자들에게는 여전히 에이스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컵스의 1선발.
조쉬의 머릿속에 방금 전 한수혁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이봐, 조쉬.’
‘음?’
‘잘 들어. 초구에 어떤 공이 들어오든 간에 크게 헛스윙을 해. 그리고 분하다는 듯이 투수를 노려봐.’
‘초구 헛스윙, 노려본다… 그런데 왜?’
‘그럼 다음 공이 한가운데 포크볼로 들어올 확률이 50% 정도 될 거야. 그 공을 노려봐.’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타격에 대해서만큼은, 아니, 야구에 대해서만큼은 한수혁의 말이 다 옳다는 걸 그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슈웅
부웅
“스윙!”
“Fuck!”
그의 말대로 몸이 한 바퀴 돌아갈 정도로 큰 헛스윙을 해버렸다.
그러고는 분하다는 듯, 아주 정말로 분한 마음을 담아 크게 욕설을 내뱉았다.
“젠장, 시애틀 놈들은 모두 제멋대로군.”
컵스의 포수가 뭐라 궁시렁거렸지만 그냥 못 들은 척 무시해 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이런 놈과 말다툼을 벌이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출루한다.
어떻게든,
부웅
다시 한 번 큰 스윙을 할 것처럼 몸에 힘을 잔뜩 주고 투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한가운데로 들어오다 떨어지는 포크볼의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공을 지켜보고, 가볍게.’
모르고 있으면 정말 치기 어렵지만, 반대로 말하면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쉽게 쳐낼 수 있는 공이 포크볼이다.
최근 주류로 자리 잡은 스플리터에 비해 낙차가 크긴 하지만, 그만큼 구속이 느리기 때문이다.
드드득
‘타이밍은 하나 둘에 맞추라고 했지?’
한수혁이 가르쳐준 타이밍에 맞춰, 투수의 손 끝에서 공이 떠나간 후 하나, 둘,
따악!
“됐다!”
“좋아!”
“조쉬, 멋진 놈! 네가 최고야!”
1-2루 사이로 빠져나가는 깨끗한 우전 안타.
출루라는 목표를 이뤄낸 조쉬 올리버가 1루 베이스를 밟은 채 덕아웃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한! 네 말이 맞았어!”
* * *
‘네 말이 맞았다고? 대체 뭔 소리지?’
벤클 이후 서로를 향해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선수들과 달리, 그라운드 위 오직 단 한 사람, 한수혁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다나카가 얼빠진 표정으로 1루 쪽을 바라보았다.
8번부터 시작되는 시애틀의 이번 이닝 공격.
어떻게든 한수혁 앞에 주자를 내보내지 않으려 했건만, 결국 첫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이번 시즌 타율이 0.235에 불과한, 타격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쓸 필요 없는 타자에게 일격을 당하고 만 것이다.
‘하아…….’
겨우 안타 하나 친 걸 갖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방방 뛰는 타자 주자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좌절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뜻밖의 선두타자를 내보내게 됐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병살타를 유도해도 좋고, 삼진 2개로 주자를 묶어 둔 후 한수혁을 거르고 타이 존슨과 승부하면 된다.
물론 타이 존슨 역시 엄청난 타자이지만…….
‘젠장.’
호랑이에게 물려 죽든, 표범에게 물려 죽든 죽는 건 똑같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가야 할 것 아닌가.
머릿속이 복잡해진 다나카가 이를 악물고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컷패스트볼.
그 공이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길 바라며.
하지만,
툭
“아아앗!”
“세컨! 아니, 퍼스트! 퍼스트!”
다음 타자가 댄 기습번트가 데굴데굴 굴러 1루수 옆으로 향하는 순간, 다나카의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버렸다.
무사 주자 1, 2루.
지옥문이 열리고 있었다.
* * *
따악!
“아웃!”
교체되어 들어온 시애틀의 중견수가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다.
1사 1, 2루,
한수혁의 타석이 돌아왔다.
“거르라고 할까요?”
“제정신이야? 1사 만루에서 타이 존슨을 상대하자고? 게임을 던지자는 거야?”
“그럼 투수를 바꿀까요?”
“바꿔? 누구로? 지금 저 녀석보다 믿을 수 있는 투수가 존재해?”
“…그럼 가만 있을까요?”
“장난해? 이 상황에 가만 있을 거면 투수코치는 왜 하는 건데?”
그러는 당신은 왜 똑바로 감독질을 못 하고 그렇게 성질만 내는 거냐고 내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냈다.
화를 누르느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컵스의 투수코치가 전화기를 들어 불펜에 연락을 넣었다.
“일단 몸 풀리는 순서대로 보고해.”
현재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2위를 달리고 있는 컵스는 사실 전력에 비해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대표적인 구단 중 하나다.
사치세를 감수하고 여기저기서 끌어 모은 비싼 선수들, 자체 팜을 통해 길러낸 제법 괜찮은 루키들.
그럼에도 컵스는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도 좀처럼 1위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까지는 타이 존슨이라는 변명거리가 존재했다.
리그 최고의 타자가 같은 지구 팀에 있다는 핑계 말이다.
하지만 그가 떠난 올해도 컵스는 여전히 구관조 놈들에 밀려 2위를 전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그대로 가.”
“…네, 알겠습니다.”
현재 컵스의 감독이 능력이 없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좋은 루키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선수단 전체를 운영하는 능력도 상당히 탁월하다.
다만 한 가지 안 좋은 습관이 있는데 그건 데이터와 자신의 감 사이 선택지를 만났을 때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오랜 감각을 믿는다는 거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자신이 감독이었다면 곧바로 투수를 교체하고 최대한 한수혁을 피했을 거다.
현 시점 최고의 타자는 누가 뭐래도 한수혁이고, 지금 마운드에 서 있는 이 팀의 에이스는 그런 한수혁에게 처절할 정도로 두드려 맞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벤치에 앉아 있는 저 감독은 한수혁이 아닌 바로 그 뒤 타이 존슨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지난 시즌까지 매년 타이 존슨에 막혀 지구 우승 직전에서 무너진 걸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타이 존슨에 대한 공포가 강하다 해도 현 시점에서 4할에 20개가 넘는 홈런을 치고 있는 타자는 피해야 할 것 아닌가?
‘올해도 틀렸군. 가만, 차라리 잘된 건가? 저 인간이 잘리면 나에게도 기회가?’
계속 이런 식이면 차라리 감독이 잘리고, 자신이 대신 위로 올라가도 좋을 거라 생각하며 투수코치가 마운드 위로 시선을 돌렸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다나카 야마토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덕아웃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투수 교체를 원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럴 거라 생각이 들었지만 감독이 입을 닫고 있는 한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매년 이렇게 정상 직전에서 무너질 거면 차라리 이 기회에 감독의 무능함을 알리는 것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다른 코치들도 모두 비슷한 생각인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울상이 된 다나카 야마토가 한수혁을 향해 초구를 던졌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아악!
공이 쪼개지는 듯한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컵스의 에이스가 그대로 마운드에 주저앉았다.
“우아아아!”
이것은 과연 성공일까, 아니면 실패일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인 컵스의 투수코치가 눈을 꼭 감은 채 현실을 외면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