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6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59화(260/412)
#259. 조만간 알게 될 거야
– 아, 역시나 고의사구가 나오는군요. 7번 조나단 오웬스가 볼넷으로 출루하며 1루 베이스가 채워집니다. 1사 주자 1, 2루, 타석에는 오늘 시애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1년 차 포수 레너드 존스가 등장합니다.
– 네, 기습번트와 보내기 번트로 1사 주자 2루 상황이 만들어지니 컵스에서 곧바로 고의사구를 지시하네요. 9회말 1 대 1 동점 상황인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보입니다.
– 자, 이렇게 되면 오늘 한수혁 선수의 승리가 8번 레너드 존스의 손에 걸리게 되었네요. 어떤 선수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 물론이죠. 경기 시작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어제까지만 해도 클리블랜드 유니폼을 입고 있던 빅리그 1년 차 선수이고요. 올 시즌 타율이 0.198로 솔직히 강타자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경험도 부족하고요. 하지만 지금 시애틀 벤치에 포수로 나설 선수가 없는 만큼 대타를 쓰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어떻게든 이 선수가 끝내 줘야 합니다.
– 아니면… 다음 타자에게 기회를 넘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괜히 무리하게 강공을 하다가 병살타가 나올 수도?
– 아뇨, 오늘 9번 타자로 나선 케빈 맥클라우드의 타율을 보세요. 0.195죠? 도찐개찐……. 흠, 솔직히 저 선수는 대주자와 대수비 자원이거든요. 그런데 주전 중견수가 빠지니 대신 나온 선수가 저 선수입니다. 한수혁과 타이 존슨, 그리고 라이언 티보우라는 스타들을 보유하고도 시애틀이 확 치고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겁니다. 백업이나 대타감이 너무 부족해요.
– 그렇군요. 해설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이번 타석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이런 뜻이군요. 아, 컵스 벤치에서 타임을 요청하네요. 그럼 저희도 잠시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이곳은 T모바일파크입니다.
* * *
오늘 경기 내내 목줄 풀린 비글처럼 사방팔방 뛰어다니던 녀석이 입을 꾹 다문 채 계속 방망이만 쳐다본다.
“이봐, 레너드. 긴장하지 말고 그냥 자기 스윙을 해.”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코치!”
“난 코치가 아니라 감독이야.”
“아앗! 네넷! 보스! 죄송합니다!”
아무리 타고난 비글미의 소유자라 해도 이적 후 첫 경기에서 주전 포수로 뛰고, 심지어 그 경기를 자기 손으로 끝낼 기회가 왔으니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감독과 코치를 헛갈린 건 좀 골 때리는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대로 타석에 내보내면 보나마나 헛스윙만 세 번 하고 돌아올 게 뻔하다.
다행히 컵스에서 먼저 타임을 요청하며 약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어깨에 아이싱을 한 채 녀석을 옆으로 불러들였다.
“레너드, 이리 와봐.”
“한! 오오, 내 우상, 내 파트너, 그래, 혹시 나한테 조언을 해줄 생각인가? 얼마든지 말해. 무조건 따를 테니까.”
벼랑 끝에 몰렸다가 간신히 동아줄을 발견한 놈처럼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바라본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그 누구에게도 타율이 2할도 안 되는 타자에게 백 프로 안타를 치게 만들 수 있는 능력 같은 건 없다.
그냥, 나는 팀의 연승을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내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해보려는 것뿐이다.
“레너드, 올 시즌 네 타율은 0.198이야. 마운드 위에 있는 저 투수의 피안타율을 생각하면 네가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은 10% 미만이라 봐야겠지.”
“맞아.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어. 친구,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들어. 이럴 때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특정 코스와 구질을 설정하고 초구를 노린다. 만약 그 노림수가 실패로 돌아가면 넌 결국 삼진을 당하게 될 거야. 어때, 해볼 거야?”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레너드 존스의 고개가 위아래로 미친 듯이 끄덕여졌다.
“좋아. 내 생각에 크리스 개릿 저 녀석이 초구로 몸쪽 낮은 포심을 던질 확률이 적어도 35% 정도는 된다고 봐. 자료상으로는 바깥쪽일 확률이 더 높지 않냐고? 맞아, 제대로 된 타자를 상대로라면 그렇지. 하지만 넌 거기 해당되지 않아. 애송이, 그러니 날 믿는다면 그냥 받아들여. 포수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뒤로 물러나. 스탠스는 조금 열어 두고, 그리고 2루 베이스로 타구를 보낸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어깨에 힘을 빼고, 내 말 이해했어?”
“몸쪽 낮은 포심, 반보 정도 물러나서, 스탠스를 열고, 그립 위치를 조정하고, 오케이, 이해했어! 내가 뭘 해야 할지 이제 알 것 같아. 고마워.”
“가봐. 이 노림수가 실패하면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러니 신에게 기도해 보자고.”
“물론이야. 어떤 결과가 나오든 널 원망할 일은 없을 거야. 퍼킹! 시애틀은 정말 멋진 팀이야. 이곳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콧김을 뿜어내며 타석으로 들어서는 레너드 존스.
내가 기억하는 빅리그 최고의 포수이자 클리블랜드의 캡틴이었던 선수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본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만에 하나 이번 이닝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면 상대적으로 뒷문이 헐거운 우리 팀이 불리할 것이다.
원래 그런 게 야구다. 타이밍이 왔을 때 잡지 못하면 경기에 패할 수밖에 없는 그런 스포츠.
하지만,
따아악!
내 머릿속에 떠오르던 패배라는 단어가 곧바로 지워졌다.
“으아아아아! 됐다! 해냈어! 내가 해냈다고! 한!”
초구를 받아 쳐 멋진 끝내기 안타를 만들어낸 레너드 존스가 콧물을 주렁주렁 달고 나를 향해 달려온다.
음료수통을 들고 달려나간 선수들이 녀석의 머리 위에 물 세례를 끼얹고 그대로 그라운드 위에 눕혀버렸다.
흥분한 관중들로 인해 안전망이 무너지고, 그라운드로 난입한 관중들이 시애틀 선수들과 어깨를 얼싸안고 응원가를 불러댔다.
“한! 이리 와! 젠장! 이리 오라고!”
그답지 않게 잔뜩 흥분한 짐 브라운이 나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어쩐지 애들이 노는 곳에 어른이 끼는 것 같아 잠깐 멈칫했지만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생각하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퍼킹! 시애틀! 고! 고! 고!”
오늘 승리로 인해 시애틀은 시즌 성적 29승 17패, 승률 0.622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순위는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빅리그에 진출하며 당초 계획했던 몇 가지 일들 중 한 가지,
시애틀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이 어쩌면 예상보다 조금 빨리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 * *
따아악!
“흡!”
“그만! 그만! 안치욱! 정신 안 차릴래?”
“죄송합니다.”
“휴, 일단 다들 휴식, 밥 먹고 샤워도 좀 하고 오후에 다시 집합.”
“네!”
경기가 없는 월요일, 하지만 워리어스의 훈련장은 선수들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시즌 개막 후 40여 일이 흐른 지금, 워리어스는 매지션스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에 머물러 있었다.
바로 뒤 부산 타이탄스가 2게임 반 차로 따라온 걸 감안할 때 여차하면 3위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변명거리는 많았다.
에이스 임준영이 손톱 부상으로 로테이션에서 두 번 빠졌고, 정강이에 타구를 맞은 천상진이 그 여파 탓인지 최근 경기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건 주전 3루수이자 중심타자인 안치욱의 부진이다.
데뷔 초반 불안했던 수비력이 보완되고, 거기에 타격 포텐이 터지며 매년 3할, 20홈런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지만…….
“치욱아, 나 좀 잠깐 보자. 세미나실로 좀 갈까?”
“네, 성오 형님.”
아직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2할 초반대에 머물고 있는 타율, 거기에 홈런은 겨우 1개뿐.
타격도 타격이지만 최근에는 수비에서도 집중력을 보이지 못한다는 건 어딘가 분명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최근 안치욱의 상태를 유심히 주시하던 조성오가 결국 그와 대화 자리를 마련했다.
“이쪽으로 앉아. 편하게.”
구단과 4+1년 계약을 맺은 조성오는 올 시즌, 혹은 내년 시즌까지 선수로 뛴 후 플레잉코치로의 전환을 생각 중이었다.
1루수 자리를 민주현에게 내준 후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 중이고, 그나마 장덕수가 지명타자로 나오는 날에는 벤치를 지키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조성오는 여전히 주장으로서 워리어스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그를 믿고 따른다는 데 있어 조성오는 최고의 주장임에 분명했다.
“커피는 좀 그렇고, 차 한 잔 줄까?”
“네, 성오 형님.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힘들 텐데 괜히 얘기하자고 부른 거 아닌가 걱정이네.”
올해 서른여덟 살의 노장, 사실상 팀 내에서 코치급의 지위를 가진 선수.
그런 조성오가 따뜻한 목소리로 안치욱에게 말했다.
“치욱아.”
“네, 형님.”
“너희를 본 지도 벌써 4년째네.”
절망뿐이었던 이 팀에 한수혁과 안치욱, 서형주, 이 세 놈이 입단하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
워리어스라는 팀에 제2의 전성기를 가져온 신인 3인방은 어느새 프로 4년 차가 되었고, 그중 한 놈은 미국에 진출해, 그리고 나머지 둘은 한국에 남아 리그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고 있다.
“치욱아.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너 무슨 고민 있지?”
“네? 아, 아뇨, 그게…….”
“거짓말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널 하루 이틀 보냐? 그리고 넌 얼굴에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는 타입이야. 그러니까 말해봐. 뭔데? 단순히 야구 때문은 아닌 거 같은데, 내 생각이 맞나?”
“하아…….”
만약 앞에 앉은 게 감독이나 코치였다면 절대 입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치욱에게, 아니, 워리어스의 어린 선수들에게 조성오는 선배이자 주장이자, 형이었다.
어쩌면 진짜 친형보다 더 가까울지도 모를 그런 형.
한참 동안 고민하던 안치욱이 결국 결심한 듯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요즘 들어 야구에 집중 못 한 이유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휴, 죄송합니다. 사적인 일로 제 할 일을 제대로 못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형님.”
“그러니까 정리하면… 너희 부모님이 요즘 많이 힘드시다는 거지? 농사 짓는 땅 주변에 리조트랑 카지노가 들어올 거 같아서?”
“네, 얼마 전만 해도 거기가 제주도에서 경관보전지역으로 관리하는 곳이라 리조트 허가 안 날 거라고, 걱정 말라고 하셨는데… 모르겠어요. 제주도에서 허가를 해준 건지 중국 애들이 매일 돈 싸 들고 찾아와 땅 팔라고 괴롭힌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시는데 속상해 죽겠습니다, 형님.”
“하아…….”
안치욱의 말에 조성오가 한숨을 푹 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건 자신이 들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농사 짓는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땅에 리조트와 카지노를 짓겠다는 중국 놈들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일에 대해 일개 야구선수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거면 차라리 부모님을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모시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하려던 그때,
조성오의 머릿속에 뭔가 떠올랐다.
얼마 전 한수혁과 통화할 때 그가 지나가듯 하던 말.
그때 그 말과 지금 이 상황을 조합하니 머릿속에서 그림 하나가 맞춰졌다.
뭔가를 깨달은 조성오가 자기도 모르게 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거 참. 치욱아.”
“네, 형님.”
“너 진짜 나중에 수혁이 돌아오면 잘해줘라. 지금 쓰고 있는 집도 잘 관리해주고 청소도 잘하고, 맨날 설거지 쌓아놓고 분리수거 안 하고 그러지 말고. 그런 식으로 쓰면 집 금방 망가진다.”
“네?”
“짜식, 내가 보기에는 그 문제 곧 해결될 거 같은데, 음, 이건 내 입으로 말할 사안은 아닌 거 같고, 아마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싶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형님?”
“아마 조만간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야구에만 집중해. 내 말 알아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