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6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61화(262/412)
#261. 괴물을 상대하는 법
내 회귀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도 있고, 이득을 본 사람도 있다.
범위를 야구계로 한정짓자면 워리어스 선수들 중 대부분은 이득을 봤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황성민이나 송기태 같은 쓰레기들은 손해를 본 쪽에 속할 테고 말이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팀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에인절스의 선발인 류한결은 어떨까?
나한테 하도 얻어터져서 그런지 회귀 전에 비해 기량 면에서 한층 진보한 그는 명백하게 이득을 본 사람들 측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물론 본인 생각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슈웅
파앙
“볼.”
1회초 에인절스의 첫 번째 공격이 득점 없이 끝난 가운데 1회말 시애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2선발로 시작해 어느새 슬금슬금 에인절스의 에이스 자리를 차지한 류한결이 1번 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를 향해 초구를 던졌다.
컵스와의 벤치클리어링으로 인해 출장정지를 당한 주전 중견수 데릭 플레밍과 백업 포수 존 글렌은 오늘까지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시애틀은 지난 컵스와의 3차전에서 사용했던 라인업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1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7번 2루수 조나단 오웬스
8번 포수 레너드 존스
9번 중견수 케빈 맥클라우드
선발 투수 디몬 앤더슨 주니어
오늘 데릭 플레밍을 대신해 리드오프를 맡게 된 안토니오 가르시아는 사실 류한결 입장에서는 상당히 상대하기 어려운 타입의 타자다.
정교한 제구력을 바탕으로 공 하나 정도를 존에 넣었다 뺐다 하는 류한결의 스타일상 자기가 정한 존이 아니면 아예 스윙할 생각조차 않는 토니와 상성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방금 던진 공도 사실 어지간한 타자였다면 배트가 나왔을 법한 그런 공이었다.
하지만 토니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잘 던진 초구가 볼이 되고 말았다.
* * *
‘주전이 둘이나 빠졌는데도 끔찍하구먼.’
마음먹고 던진 유인구에 타자가 꿈쩍도 하지 않자 류한결이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컵스 전 벤치클리어링으로 주전 타자 둘이 빠졌는데 여전히 암담하기만 하다.
물론 하위타선은 확실히 힘이 빠졌지만 문제는 나머지 타자들의 힘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1번 안토니오부터 시작해서 5번 짐 브라운까지 이어지는 시애틀의 상위 타선.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몇몇 야구팬들은 2번 한수혁과 3번 타이 존슨의 조합이 1900년대 초반 베이브루스와 루 게릭을 넘어서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의 콤비가 될 거라며 설레발을 떨고 있다.
‘일단 야는 절대 내보내면 안 돼.’
그렇기에 시애틀을 상대할 때는 일단 1번 타자부터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1번 타자를 출루시키면 바로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서고, 그 뒤 대기타석에서 타이 존슨이 투수를 노려본다.
웬만한 강심장을 가진 투수가 아니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게임은 끝이다.
‘신중하게.’
슈웅
“스트라이크!”
류한결이 보기에 안토니오 가르시아는 참으로 신기한 타입의 타자였다.
초구 볼이 된 공과 방금 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공은 사실 같은 코스로 들어갔다 해도 무방한 그런 공이다. AI판정 시스템 때문에 하나는 볼, 하나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것뿐이다.
타자라면 움찔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공이다.
그런데 저 녀석은 두 번 모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자신이 설정한 존에 공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저런 타입이다 보니 선구안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삼진도 많고, 볼넷도 많은, 그래서 타율 2할에 출루율 3할 후반이라는 말도 안 되는 타격지표가 나오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하나 더?’
타자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저 코스를 집중 공략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존 안으로 잘 제구가 되면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고, 조금 벗어나더라도 타자가 안 칠 테니 볼이 하나 늘어날 뿐이니까.
고개를 끄덕인 류한결이 토니를 향해 3구를 던졌다.
슈웅
파앙
“볼.”
역시나 반응하지 않는다.
투 볼 원 스트라이크.
안토니오 가르시아라는 타자가 무서운 건 저런 일관성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엄청난 장타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타율은 2할밖에 안 되지만 기록한 안타 중 절반이 홈런이다.
투수 입장에서는 시한폭탄을 다루는 기분이 될 수밖에 없다.
언제 배트를 휘두를지 모르는 타자, 그리고 한 번 휘두르면 두 번 중 한 번은 펜스를 넘겨버리는 괴력의 소유자.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류한결이 4구째를 던졌다.
“볼.”
“하아…….”
4개 모두 같은 코스를 던졌는데 역시나 반응하지 않는다.
문제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공이 반 개씩 존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AI판독 시스템이 도입되며 손으로 장난을 치거나 포수가 프레이밍을 하는 게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다.
결국 실력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는 소리다.
‘하나 더.’
눈으로 보기에는 스트라이크라 봐도 좋을 공을 자신이 설정한 존이 아니라는 이유로 끝까지 참아내는 타자.
그리고 그 코스에 연속으로 공 다섯 개를 던지는 배짱 두둑한 투수 간의 대결.
슈웅
파앙
“볼.”
“와아아아!”
“좋아! 토니!”
승자는 그 유혹을 끝까지 참아낸 타자였다.
시애틀의 리드오프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1루로 진출하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두둑 두두둑
메이저리그로 넘어오기 바로 전날 밤, 여러 팀의 선수들이 모인 송년회 자리에서 류한결이 한수혁에게 물었다.
‘수혁아, 너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고개 좌우로 꺾으면서 소리 내는 거.’
‘네, 그거 뭐요?’
‘너 그거 일부러 하는 거지? 투수들 겁먹으라고?’
‘설마요.’
‘아녀, 내가 보기엔 확실해. 야, 나 미국으로 가더라도 대전 투수들한테는 그거 하지 마러. 들을 때마다 소름이 쫙쫙 끼친당게.’
당분간 볼 일이 없다 생각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한 말이었는데, 겨우 2년 만에 또 그 소리를 듣게 되었다.
마치 죄수의 목을 칠 준비를 끝낸 사형집행관 같은 표정을 한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염병.’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그 특유의 타격 매커니즘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타자라면 한수혁 저 녀석은 타격 매커니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더욱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다.
KBO 시절 초반,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던 시절에는 말도 안 되는 어퍼 스윙으로 엄청난 타구를 양산해내더니, 투수들의 견제가 시작된 후에는 그에 맞춰 타격폼을 조절하며 성적을 계속 유지해 나갔다.
메이저리그에 넘어온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체격을 불리며 파워가 한층 늘어난 한수혁은 이제 타격 폼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코스, 어떤 공이든 담장 밖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괴물이 되었다.
바로 뒤에 타이 존슨이라는 살아 있는 레전드가 버티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한수혁은 배리 본즈가 기록한 한 시즌 232개의 볼넷 기록을 경신했을지도 모른다.
“플레이!”
어쨌든 그런 끔찍한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류한결이 마른 침을 삼키며 1루를 바라보았다.
메이저리그 평균에도 못 미치는, 아니, 평균 이하가 확실한 1루 주자의 주력.
‘염병.’
하지만 전혀 위안이 안 된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타자 중 땅볼/뜬공 비율이 가장 낮은 게 한수혁이라는 걸 감안하면 병살타를 유도한다는 건 하늘에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외야 플라이를 유도해 범타로 처리하는 것.
끄덕
한수혁 같은 엄청난 타자에게 범타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승부구로 선택한 공은 몸 쪽 높은 포심, 그렇다면 그 공이 최대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타자의 선구안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
슈웅
파앙
“볼.”
승부구로 삼을 공보다 조금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 그러니까 몸 쪽으로 들어오는 공은 볼이라는 걸 인식시켜줄 공 하나.
끄덕
슈웅
파앙
“볼.”
그리고 던지려는 코스와 정확히 대척점에 놓여 있는 바깥쪽 낮은 코스로 흘러 나가는 슬라이더.
두 개 연속 볼 판정을 받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러다 뭔가 느낌이 안 좋다 싶으면 그냥 걸러 보낼 생각이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류한결은 타이 존슨보다 한수혁 쪽이 훨씬 무서웠다.
끄덕
한 번 더 타자의 시선과 밸런스를 바깥쪽으로 유도해야 할 때다.
류한결이 가장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바깥쪽 체인지업.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좆 될 뻔했다.
타석에서 한수혁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싱글싱글 바라보는데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바깥쪽으로 뺀다는 게 살짝 손에서 미끄러지며 한가운데로 들어간 것이다.
스트라이크를 잡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수명이 10년은 줄어든 기분이다.
‘자, 이제 승부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킨 류한결이 드디어 마지막 승부구를 준비했다.
당초 예정한 대로 몸 쪽 높은 곳으로 말려 들어가는, 류한결이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포심.
피치컴을 통해 배터리의 뜻이 야수들에게 전달되고, 내야수와 외야수들이 한 걸음 이상 뒤로 물러서며 뜬공 타구 처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슈웅
류한결의 손끝에서 발사된 95마일의 포심이 한수혁의 몸 쪽 높은 곳으로 정확하게 날아들었다.
‘제발, 제바아알!’
공을 던진 류한결이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고,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수혁의 배트가 무심하게 공간을 찢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따아아악!
“된 건가!”
배트에 맞는 순간, 공이 엄청나게 떠오른 걸 본 류한결이 저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됐나? 된 건가? 정말인가?
처음 노린 대로 배트 윗단에 맞은 타구가 거의 55도에 가까운 각도로 솟아올랐다.
공을 던진 투수도, 그 공을 때려낸 타자도, 그리고 수비수들도, 모두 자리에서 꿈쩍 않고 타구를 쳐다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둥실둥실
처음 맞았을 때만 해도 중견수 플라이가 될 것 같은 타구가 둥실둥실 비행을 이어갔다.
그 공이 그라운드 외야수의 머리 위를 지날 때쯤 류한결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에이, 설마.’
아무리 한수혁이 괴물이라 해도 저렇게 빗맞은 타구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시애틀의 높은 습도를 뚫고 홈런이 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는 내려오겠지, 이제는 내려오겠지.
그런 마음으로 모두가 타구를 바라보던 그때.
“어, 어? 어! 어어어!”
타구를 쫓아 한 발 두 발 뒤로 물러서던 중견수가 갑자기 펜스를 향해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타구가 갑자기 힘을 받아 쭉쭉 뻗어 나갔기 때문이다.
“넘어가! 가라고! 제발!”
“빌어먹을! 좀만 힘을 내! 망할 타구 놈아!”
시애틀 팬들의 절규와 아우성 속에 야구공의 비행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터엉!
그렇게 날아간 타구가 T모바일파크 센터를 살짝 넘겨 아무도 없는 공간에 떨어지는 순간,
“우아아아아!”
“오 마이 갓! 이게 정말 가능한 거야? 저게 넘어갔다고?”
“한수혁! 그는 신이야! 야구의 신이 우리 팀에 강림했다고!”
“젠장, 내 돈을 가져가! 저 친구와 관련된 상품을 마구 만들어! 내가 다 사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홈런을 허용한 류한결이 이마를 짚은 채 마운드 위에서 휘청거렸고, 한수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