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6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63화(264/412)
#263. 좋은 투자처
– 왜 전화한 거야? 거기 지금 몇 시냐?
“여기? 오후 3시.”
– 뭐야, 경기 시작 얼마 안 남았네. 안치욱, 농땡이 피우지 말고 빨리 가서 공이라도 한 번 더 쳐라. 너 동석이보다도 타율이 낮다며? 그러다가 또 자리 뺏기고 울지 말고 연습해, 연습.
“누가 울… 하아, 됐고. 야, 한수혁.”
– 왜.
“고맙다고. 아, 이거 진짜 낯간지럽네. 아무튼 고맙다. 너 덕분에 우리 부모님도 요즘 매일 웃으신다.”
– 뭔 소리야, 고맙긴 뭘 고마워. 아, 그거? 그건 진짜로 은퇴 후에 내려가려고 산 건데, 그걸 네가 왜 고마워해?
“됐다. 아무튼 이번 일은 잊지 않고 나중에 꼭 갚을게. 혹시나 진짜 제주도에 내려와서 살게 되면 내가 매일 흑돼지 먹여주마.”
–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빨리 끊고 나가서 연습이나 해. 너 때문에 워리어스가 2위로 떨어진 거 아냐. 스윙할 때 잡 생각하는 게 여기까지 들리니까 아무 생각 말고 야구나 열심히 해.
“알았다. 그럼 끊는다.”
통화를 끝낸 안치욱이 라커룸을 나와 그라운드로 향했다.
그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던 문제가 해결된 후 자연스럽게 타격 페이스도 올라가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자신이 이 팀에 입단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한수혁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자신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래도 이만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니, 스스로 생각해도 그건 아닐 것 같다.
이제 와 생각하면 참으로 대책 없고 개념 없던 신인 시절의 안치욱을 바로잡아준 건 선배나 코치, 감독이 아닌 동기 한수혁이었다.
그가 자신을 억지로 잡아 끌어주지 않았다면, 바로 옆에서 시시콜콜 참견하고 관리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녀석에게 이제는 더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어디서 돈이 난 건지는 몰라도,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집이 날아갈 뻔한 걸 그가 해결해줬다.
“안치욱! 빨리 와!”
“네! 선배님!”
그라운드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 달리며 안치욱은 생각한다.
언젠가 먼 훗날 누군가 자신에게 야구선수 안치욱의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자신의 입에서 한수혁이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야, 안치욱. 너 설마 한수혁한테 내가 거실 TV 고장 낸 거 이른 건 아니지?”
“일렀어. 서형주가 개박살 냈다고.”
“야 이, 배신자 놈아!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농담이고, 그거 내가 고쳐놓을 테니까 앞으로 조심해라. 거실에서 스윙 연습 한다고 설치지 말고.”
“네가 고친다고? 진짜?”
“쉿, 감독님 오신다.”
매일 1, 2위를 오르내리는 숨 막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있는 이대준 감독이 선수단 앞에 섰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박력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모였지? 오늘 이기면 다시 1위로 올라간다!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안치욱!”
“네!”
“목소리 좋아! 그래, 이제야 안치욱답군. 오늘 선발 3루수 겸 5번 타자로 선발 출장이다. 믿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감독님.”
언젠가 한수혁은 워리어스로 돌아올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안치욱은 확실히 그럴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기에 지킨다.
한수혁이 돌아올 때까지 워리어스를 지켜낸다.
“자, 파이팅!”
안치욱은 그걸 위해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류한결을 상대로 했던 에인절스와의 4연전 첫 경기에서 우리는 5 대 4, 한 점 차 승리를 거뒀다.
경기 초반 집중타를 맞고 석 점을 내줬던 류한결은 이어진 이닝을 잘 막아내며 7이닝 3실점을 기록한 채 마운드를 내려갔다.
반면 5회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잘 버티던 우리 팀의 선발 디몬 앤더슨 주니어는 6회초 에인절스의 중심타자 레이몬드 퍼킨스에게 좌측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지는, 그야말로 퍼킹스러운 초대형 만루 홈런을 얻어맞으며 역전을 허용했다.
그렇게 3 대 4로 끌려가던 우리는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2루수 조나단 오웬스가 때려낸 시즌 첫 홈런이자 끝내기 홈런에 힘입어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냈다.
덕아웃에 앉아 침울한 표정으로 팀의 패배를 지켜보는 류한결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KBO를 대표하는, 어쩌면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좌완이라 불리는 그가 결국 우승반지 한 번 껴보지 못하고 은퇴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이봐, 친구. 오늘도 잘 부탁해.”
“마이크, 걱정하지 말아요. 내 쪽으로는 단 하나의 타구도 지나가지 못할 테니까.”
“좋아. 여전히 든든하군.”
스스로 생각하건대 나는 굉장히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다.
비록 KBO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꾸 나를 음해하려는 세력, 그러니까 내가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사람을 때린다는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는 인간이 있지만.
내가 동료들에게 해준 것들을 생각하면 분명 난 친절한 사람에 속한다고 자부한다.
어쨌든 그런 내가 최근 가장 신경을 쓰는 동료가 있다.
다름 아닌 마이크 워렌이다.
지난 삶에서 내게 너클볼을 가르쳐준, 그래서 결국 그 너클볼로 워리어스의 우승을 가져올 수 있게 만들어줬던 베테랑 투수.
다저스에서 넘어온 후 줄곧 5선발로 뛰던 그는 이번 로테이션부터 4선발로 한 단계 지위가 상승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나나 라이언의 뒤에 서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한다.
100마일이 넘는 공을 상대하다가 갑자기 70, 80마일 너클볼을 때려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이다.
뭐, 그건 감독이 알아서 할 일이긴 하지만.
“자, 선발 라인업 확인하고. 혹시 어디 불편한 곳 있는 놈은 지금 얘기하고. 없나? 좋아, 다행이군. 내가 종이를 낭비하지 않아도 돼서.”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6번 포수 레너드 존스
7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8번 2루수 조나단 오웬스
9번 좌익수 케빈 맥클라우드
투수 마이크 워렌
출장정지를 당했던 주전 중견수 데릭과 백업 포수 존 글렌이 돌아왔다.
그리고 뒤통수를 가격당한 후 병원에 입원해 있던 브루스 역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다시 선수단에 합류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선발로 나서기에는 불안한다는 감독의 판단에 따라 벤치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백업 포수이자 경험이 더 많은 존 글렌이 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이지만…….
“오늘 선발 포수는 레너드 존스다.”
“와우! 감사합니다, 감독님!”
본래 수비력보다는 타력으로 백업 포수 자리를 지키던 존 글렌에게 갑자기 너클볼을 잡으라 하는 건 너무 과한 처사였다.
결국 자기는 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뻥뻥 친, 연습 투구에서 제법 너클볼을 잘 잡아낸 레너드 존스가 선발 포수로 출장하게 되었다.
솔직히 상황만 놓고 보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도 너클볼을 잡을 수 있다고 큰 소리 뻥뻥 치는 1년 차 루키가 그 말을 지킬 가능성은 그닥 크지 않으니까.
게다가 6번부터 9번까지 이어지는 타선의 허약함도 우리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높다.
확실히 다른 건 몰라도 백업 멤버는 조금 더 보충해야 한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런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나아가 가을야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말이다.
문제는 라이언 티보우에 이어 타이 존슨과 대형 계약을 맺은 구단주 그룹이 최근 재정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는 거지만.
어쨌든 마이크 워렌에게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는 나는, 되도록 그를 돕고 싶었던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LA에인절스, 시애틀을 7 대 4로 꺾고 전날 패배 설욕] [시애틀 선발투수 마이크 워렌 6이닝 5실점(2자책점), 불안한 수비로 자멸한 매리너스] [2안타 2타점 한수혁, 1안타 3볼넷 1타점 타이 존슨, 그들도 막지 못한 팀의 패배] [번번이 찬스를 끊어 먹은 허약한 하위타선, 두텁지 못한 중간계투는 시애틀의 지구 우승 도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 [시애틀 매리너스 다니엘 미첼 단장 “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조금만 믿고 기다려 달라.”]* * *
“대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이 정도 연봉에 이런 선수를 어디서 구한다고요? 말린스가 파산 직전이 아니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겁니다. 승인해 주세요, 보스!”
“이봐, 다니엘.”
“하아, 제가 이번 트레이드를 위해 얼마나 오래 공을 들여왔는데, 이제 와서 안 된다니요!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데!”
“다니엘, 유감일세. 그래도 이번 트레이드는 승인할 수가 없어.”
“이유가 뭡니까? 대체 이유가 뭐냐고요!”
한수혁과 타이 존슨의 영입을 성공시키며 팬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 다니엘 미첼 단장이 얼굴을 붉히며 사장을 바라보았다.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한수혁과 타이 존슨, 라이언 티보우라는 압도적인 선수를 보유하고도 확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선수단의 뎁스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단기전이 아닌 시즌 162게임 장기 레이스를 치르기 위해서는 주전들의 뒤를 받칠 제대로 된 백업이 필요하다.
이번처럼 부상이나 징계 등으로 주전이 빠졌을 때 이를 메워줄 수 있는 후보선수 말이다.
어제 경기만 해도 그랬다.
팀의 세 번째 포수가 너클볼을 제대로 못 잡은 건 둘째 치더라도, 좌익수와 2루수 쪽에서 터져나온 에러는 명백히 프런트의 잘못이었다.
시즌 개막 후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선발 출장했던 2루수.
피로가 누적되며 스텝이 무뎌진 게 눈에 보이는데도 선발로 출전시킨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거다.
좌익수도 마찬가지다.
등에 불편을 호소한 짐 브라운 대신 백업 요원인 케빈 맥클라우드를 올렸는데 원래 중견수 전문인 선수이다 보니 좌익수 자리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니엘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고, 결국 말린스와 제법 그럴듯한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트레이드 머니로 책정된 280만 달러가 과하다는 이유로 사장이 반대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보스, 아니, 엘리엇, 솔직히 말해 봐요.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이건 무조건 우리가 이득을 보는 트레이드예요. 지나가는 꼬맹이를 붙잡고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 나올 그런 문제라고요.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이 구단에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다니엘의 말에 시애틀 매리너스의 사장 엘리엇 톰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헨리 쪽에 문제가 발생했어. 그가 자기 지분을 정리하려는 모양이야.”
“젠장.”
대기업의 홍보 용도로 사용되며 매년 적자를 보는 KBO 구단들과 달리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은 엄연한 독립 사업체다.
구단을 운영해 이익을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시애틀 매리너스는 여러 투자자가 모인 구단주 그룹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중 15%라는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진 토드 헨리 쪽에서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다.
하긴, 지난해부터 불안하기는 했다. 그가 소유한 미국 내 대형 마트들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며 사업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말이 들려왔으니까.
“다른 구단주들은… 15% 지분을 인수하려는 사람은 없는 겁니까?”
“없어. 오히려 이번 기회에 자기도 지분을 처분하고 싶다는 인간들만 있을 뿐.”
“젠장, 이럴 거면 차라리 시즌 전에 다 털고 나가든지, 왜 이제 와서.”
“원래 사업이라는 게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다니엘. 우리 이렇게 하자고.”
“뭘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겨우 280만 달러가 아까워 못 쓰는 상황에서요?”
“나도 절망적이니 화만 내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소리야. 아무튼 자넨 무슨 수를 써서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첫 번째 임무야. 그 사이 나는 투자자를 끌어오든, 아니면 새로운 구단주를 데려오든, 뭘 해서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야. 내 말 이해했지?”
“후…….”
“이해한 걸로 알겠네. 솔직히 나도 우리 팀에 구멍이 있는 건 알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승이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 어떻게든 성적을 내. 그러면 돈은 알아서 따라오게 되어 있으니까.”
사장실을 나선 다니엘이 긴 복도를 따라 하염없이 걸음을 옮겼다.
‘하아, 그 친구 얼굴을 어떻게 보지…….’
자신과 함께 메이저리그를 정복하자고, 그걸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 떵떵 치며 한수혁을 데려왔건만, 고작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되다니.
미안함과 자책감으로 엉망진창이 된 다니엘이 복도를 벗어나 어디론가 향하던 그때.
정작 한수혁은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중이었다.
– 한수혁 선수, 지난번에 말씀하신 투자처 말인데요.
“네, 민태현 씨. 어디 좋은 데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