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6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64화(265/412)
#264. 복수
비록 회귀 전 기억에 의존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500억이라는 큰돈을 투자해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성공한 투자자이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자산을 관리해주는 민태현 씨는 배터리 연구소 이후 내가 투자를 하려는 낌새만 보이면 입에 거품을 물고 막아섰다.
지난번의 성공은 천운에 가까웠다고, 앞으로 그런 기적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테니 무리한 짓은 하지 말자고.
음,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배당금으로 들어오는 돈이 내게 필요한 돈의 규모를 훌쩍 뛰어 넘으며 나는 투자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렸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야구이지 돈 놀이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러니까 시애틀 지분이 매물로 나왔다는 거죠?”
– 네, 제 입장은 그렇습니다. 어차피 계속 야구를 하실 테고, 그렇다면 기왕 투자를 하는 거 야구 관련 사업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시애틀 매리너스 자체가 상당히 상품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수혁 선수가 계속 뛴다는 전제 하에 말이죠. 다만 몇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한데…….
상당히 복잡한 설명이었는데 내가 이해하기로는 이랬다.
수십 차례 규정이 개정된 2030년 현 시점을 기준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는 자신이 뛰고 있는 구단 외 타 구단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
때문에 내가 이 팀에서 뛰는 동안에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지분을 소유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지만 만에 하나 내가 팀을 떠나게 되면?
같은 메이저리그 내에서 이적을 하게 되면 지분을 팔아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냥 들고 있어도 된다.
결론적으로 여기저기 문제가 좀 있긴 하지만 내 선에서 충분히 컨트롤이 가능한 문제였다.
– 이번 투자에 대해 제가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건 현재 시애틀의…….
다음으로 넘어가 이번 투자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민태현은 꽤나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현재 시장에서 시애틀의 가치는 바닥을 찍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꽤나 그럴듯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투자를 하려고 하면 펄쩍 뛰며 말리던 민태현 씨가 이번 투자를 추천한 이유다.
어차피 내가 시애틀에서 뛰는 한 성적은 계속 오를 것이고, 팀을 떠날 일이 생기면 그 전에 지분을 처분하면 아무 문제도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럼 한번 해보죠.”
– 멋진 판단입니다. 그럼 천천히 진행해 보겠습니다. 투자 규모는 어느 정도로 할까요?
“워리어스 운영비, 그리고 제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올인.”
– 시간을 좀 들이면 구단 전체를 사들일 수도 있겠군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일이 진행되는 대로 틈틈이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네?”
– 예린이는 잘 지내죠?
“그걸 왜 저한테…….”
– 흠, 아닙니다. 이 눔의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 하하,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 * *
에인절스와의 홈 4연전이 2승 2패로 끝났다.
마이크 워렌이 등판한 2차전에서 패배한 우리는 3차전에 5선발을 내고도 승리했지만, 정작 에이스인 라이언 티보우가 등판한 4차전에서 타선이 침묵하며 패배했다.
그 결과 우리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1위 자리를 내준 채 다음 시리즈를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가 상대할 팀은 타이 존슨의 친정팀이자 내셔널리그 전체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최강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였다.
“카디널스 팬들은 내가 알버트 푸홀스의 후계자가 되길 바랐지. 사실 내가 되고 싶은 건…….”
“켄 그리피 주니어.”
“어떻게 알았지?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는데? 어쨌든 맞아. 물론 푸홀스는 대단한 선수이고, 존경받아야 마땅할 사람이지만 나는 뭐랄까…….”
“단기전에서의 임펙트, 그리고 대중적인 인지도.”
“맞아, 젠장, 암만 생각해도 네가 루키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단 말이지. 어쨌든 그래. 나는 푸홀스처럼 꾸준한 성적을 내는 타자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전성기가 짧아도 좋으니 팬들에게 강렬한 임펙트를 남기는 선수가 되고 싶어. 약쟁이들에 맞서 90년대 후반을 지배했던 켄 그리피 주니어처럼 말이야.”
“당신이 시애틀로 온 게 꼭 나 때문만은 아니군요.”
“아니, 너 때문이야. 그러니 책임져. 흐흐, 농담이고. 맞아. 내가 계속 세인트루이스에 있었다면 아마 안정적으로 마흔 살까지 커리어를 이어 나가면서 푸홀스 못지않은 선수가 될 수 있었겠지. 그 김에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몇 개 추가하고 말이야. 하지만…….”
타이 존슨이 눈빛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건 너무 시시한 인생 아닌가? 젠장,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시시하다고 말하면 누군가에게 맞아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꼭 내가 없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말이야.”
“뭔지 이해했어요.”
“빌어먹을, 아무튼 그래. 난 시애틀을 사상 첫 월드시리즈에 올려놓을 거야. 그리고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이렇게 외칠 생각이야. 내가 너희들을 위해 이걸 가져왔노라! 이 어린 괴물과 함께!”
친정팀과의 경기를 앞둔 타이 존슨은 이래저래 심경이 복잡한 눈치였다.
안 해도 될 말을 하면서 저렇게 스스로 기운을 북돋는 걸 보니 말이다.
“어쨌든 오늘 경기에 꼭 이기자는 거잖아요? 이해했어요. 질 생각 같은 건 원래 없었고요.”
“좋아, 괴물. 오늘 한번 제대로 해보자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여러 모로 신기한 팀이다.
인구수나 경제 규모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도시 내 치안은 미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좋지 않다.
당연한 말이지만 구단주의 투자 의지도 평범 그 자체.
그럼에도 이 팀은 메이저리그 30개 팀 중 양키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강팀 중의 강팀이다.
타이 존슨이 카디널스가 아닌 양키스 팜 출신이긴 하지만 데뷔 초반부터 줄곧 저 팀에서 뛰었고,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알버트 푸홀스의 후계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는 걸 감안하면…….
“부우우우우우!”
“죽어! 타이 존슨! 이 개자식! 배신자!”
“넌 지옥으로 떨어질 거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미국 동부에서 서부 끝까지 4시간을 날아와 미친 듯이 야유를 보내고 있는 카디널스 팬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한눈에 보아도 적지 않은 규모의 카디널스 팬들이 3루 관중석 한쪽을 가득 메운 채 타이에게 야유를 보내고 있다.
월드시리즈에 올라가지 않는 한 매리너스와 카디널스가 만날 수 있는 건 이번 3연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 저렇게라도 타이에게 항의를 하고 싶은 거겠지.
저것은 과연 애정인가, 미움인가, 혹은 비틀린 애증인가.
* * *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투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안토니오 가르시아
6번 포수 레너드 존스
7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8번 2루수 조나단 오웬스
9번 3루수 로니 몬타릭
여전히 등 쪽에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짐 브라운이 빠지고, 대신 토니가 좌익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토니의 수비력은 예전 워리어스에서 뛰다가 파이터즈로 이적한 강진석 선배보다도 못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오늘 마운드를 지키는 건 나다.
좌익수 수비가 불안하면 그쪽으로 타구를 안 보내면 된다.
“좋아, 한. 난 오늘도 준비됐어. 저 녀석들을 박살 내주자고.”
부상에서 돌아온 브루스 매튜스는 이제 서서히 복귀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경기부터 대타로 나서며 경기 감각을 끌어 올리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어쨌든 그런 이유로 오늘도 나는 레너드 존스와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존 글렌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지만, 요즘 레너드의 기세가 워낙 좋다 보니 기회를 자꾸 뺏기는 느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존 글렌의 경우에는 포수를 그만두고 차라리 1루로 전향해 타격을 살리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그걸 위해서는 쓸 만한 백업포수 하나를 더 데려와야겠지만.
그러려면 막힌 구단의 자금 흐름을 뚫어야 하고,
그걸 위해서는 또 지분 매각이 원활하게,
음,
그만두자. 일단 지금은 경기에 집중.
“플레이!”
지난 시즌까지 세인트루이스는 타이 존슨을 중심으로 한 강하면서도 끈끈한 타선, 그리고 오늘 나와 맞대결을 벌일 앤드류 데이비스를 필두로 한 빈틈없는 투수력으로 리그를 호령하는 팀이었다.
타이 존슨이 빠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컵스와 엎치락뒤치락하며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투수 쪽에서는 초대형 장기 계약을 맺은 내셔널리그 최고 투수 앤드류 데이비스가 건재했고, 타자 쪽에서는 지금 타석에 들어선, 1번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카디널스 타자 중 최고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그랜트 딕슨이 팀의 중심을 잡고 있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지난 시즌 3/4/5의 슬래시라인에 30개의 홈런, 61개의 도루를 기록한 그랜트 딕슨은 공수주를 겸비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중견수 중 하나다.
WBC와 올림픽에 불참해 나와 만날 일은 없었지만, 사실 회귀 전에는 이 녀석을 상대하는 데 조금 애를 먹기도 했다.
특별한 타격 매커니즘 없이 본능적으로 공을 골라내고 강하게 때려낼 줄 아는, 강력한 파워과 빠른 발을 겸비한 맹수와도 같은 타자.
세인트루이스 팬들은 녀석을 흑표범이라 부르며 애지중지하고 있다.
하지만,
슈웅
부웅
파앙
“스윙!”
녀석이 흑표범이면 나는…….
음, 멀쩡한 사람을 짐승에 비교하는 건 그만두자.
어쨌든 지난 삶에서는 그렇게 상대하기 까다롭던 녀석이 이제는 귀여운 애송이처럼 보인다.
세월이 힘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저렇게 독을 바싹 세우고 덤비는 애송이에게 겁을 먹기엔 나는 너무 오랜 시간 야구를 해왔다.
슈웅
딱!
“퍼스트!”
“아웃!”
녀석이 좋아하는 몸 쪽 코스에서 반 개 정도 빠진 공,
힘없는 1루 땅볼로 물러난 그랜트 딕슨이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뭐, 어쩌라고?
* * *
“플레이!”
타이 존슨이 떠난 후 구관조 군단의 최고 스타 자리를 물려받은 에이스 앤드류 데이비스, 그가 눈을 번뜩거리며 한수혁을 노려보았다.
빅리그에 콜업된 첫해 15승 4패, 그리고 이듬해 19승 5패 평균 자책점 1.85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구단으로부터 10년 4억5,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계약을 제시받은 카디널스의 에이스.
지난 올림픽 결승전에서 한수혁이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팀에 패배한 후, 그는 생각했다.
이 녀석만 데려오면 카디널스 왕조를 건설할 수 있겠구나.
자신과 타이 존슨, 그리고 한수혁만 있다면 두려울 상대가 없겠구나.
그렇기에 한수혁이 포스팅을 신청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뉴스 란을 새로고침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의 간판스타 타이 존슨, 시애틀 매리너스로 전격 이적] [KBO를 박살 낸 한수혁, 타이 존슨과 함께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게 되다]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한수혁이 시애틀을 선택한 건 둘째 치고, 데뷔했을 때부터 믿고 의지했던 타이 존슨까지 그 팀으로 가버리다니.
처음에는 타이 존슨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그가 팀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 하루하루 지날수록 무뎌지는 야구에 대한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말을 듣고는 미련 없이 그를 보내주기로 했다.
슈웅
따악
“아웃!”
그렇게 타이 존슨에 대한 원망, 그리고 한수혁에 대한 아쉬움에서는 모두 벗어났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오늘 앤드류 데이비스는 마운드에서 쓰러진다는 각오로 경기를 준비했다.
반드시 오늘 한수혁과 타이 존슨을 침묵시키고 카디널스에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저 두 사람에게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말겠다.
앤드류 데이비스라는 세계 최고의 투수와 함께 뛸 기회를 져버린 것에 대해 후회하게 해줄 것이다.
“플레이!”
1번 타자 데릭 플레밍을 3루수 땅볼로 잡아낸 앤드류가 다음 타자인 한수혁을 노려보았다.
때가 왔다.
드디어 때가 왔다.
지난 올림픽에서의 패배를 갚아줄, 그리고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를 해줄 기회,
스르륵,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백인들의 희망이라 불리는, 잘생긴 외모와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으로 미국 여성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앤드류 데이비스가 전력을 다해 초구를 던졌다.
“히얍!”
슈웅
그리고,
따아아아아악!
가죽 공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타구가 일직선으로 날아가 전광판을 강타하는 순간,
콰아앙
“어어억……!”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미남 투수가 마운드에 쓰러졌고, 깊게 눌러 쓴 모자 밑으로 반짝거리는 금발 몇 가닥이 빠져 나와 그라운드에 흩어졌다.
서른이 되기 전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올라서게 될, 대신 찬란한 머리카락과 미모를 잃게 될 앤드류 데이비스.
그의 탈모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