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6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65화(266/412)
#265. 지분 인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선수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알렉스 데이비스.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거함을 이끄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커리어 동안 무려 다섯 번의 사이영 상을 차지했지만 정작 월드시리즈 우승은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무관의 제왕.
나이를 먹은 그가 예전의 위용을 잃은 지금, 여러 투수들이 빈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리와 지구 1, 2위를 다투고 있는 오클랜드의 데빈 맥퍼슨, 뉴욕 양키스의 타이슨 바샴 등이 그렇고, 시애틀의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 역시 후보 중 하나다.
내셔널리그에서는 필라델피아의 래리 암스트롱, 다저스의 조슈아 칼루 등이 차기 황제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렇게 많은 투수들이 최고의 투수라는 타이틀을 위해 달리고 있지만 그중 단 한 명만 꼽아야 한다면, 과연 누가 2030년대 최고의 투수가 될 것이냐 묻는다면 대다수 사람들이 저 선수를 꼽을 것이다.
“갚아주자고! 젠장, 힘을 내! 카디널스!”
“고개 떨구지 마! 앤드류! 넌 세계 최고의 투수야!”
나에게 선제 홈런을 얻어 맞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앤드류 데이비스 말이다.
“플레이!”
그리고 특별한 일 없는 한 사람들의 그런 예상은 맞아떨어지게 될 것이다.
내가 봐도 현재 추세대로라면 회귀 전처럼 아주 좋은 투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전처럼 최고 중의 최고라 불리기는 힘들 것이다.
내가 빅리그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홈런을 허용한 후 아주 잠깐 흔들리던 녀석이 금세 정신을 차리고 타이 존슨에게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지난 시즌까지 세인트루이스라는 강팀을 지탱해온 투타의 기둥이 적이 되어 만났다.
오늘 경기 전 앤드류 데이비스가 우리 덕아웃으로 찾아왔다.
타이 존슨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선전포고가 목적이었던 것 같다.
‘오늘 경기에서 단 한 점도 주지 않을 거야. 타이, 미안해요.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어쩔 수 없네요.’
물론 그 선전포고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내 홈런 한 방에 깨져버렸지만.
음,
생각해보니 저 녀석 지금 속으로 엄청나게 부끄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슈웅
파앙
“볼.”
두 번 연속 100마일에 가까운 하드 싱커가 날아왔다.
방금 공도 볼로 판정 받긴 했지만 사실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코스였다.
회귀 전 나는 타자로서 앤드류 데이비스의 공을 치기 위해 노력했고, 투수로서 그의 자리를 뺐기 위해 계속 도전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타석에서 녀석을 상대로 별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투수로서의 커리어 격차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벌어졌었다. 내가 계속되는 부상으로 마운드를 비우는 일이 잦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슈웅
부웅
“스윙!”
102마일에 달하는 포심과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빅리그 최정상급의 구종을 여럿 보유한 앤드류 데이비스이지만 그에게 연평균 4,500만 달러짜리 계약을 안겨준 건 바로 방금 던진 하드싱커다.
최고 100마일의 구속으로 꿈틀거리며 파고드는 하드싱커.
사실 빅리그에 건너온 내가 하드싱커의 비율을 높이고 있는 건 저 녀석의 영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회귀 전 녀석이 던지던 하드싱커는 내게 투수로서 상당한 영감을 주었으니까.
슈웅
파앙
“볼.”
애매한 공을 잘 골라낸 타이 존슨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녀석의 하드 싱커가 위력적인 건 포심과 구별하는 게 전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최고 구속이 2마일밖에 차이 안 나는 공이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고 들어오는 건 타자에게는 재앙 그 자체다.
슈웅
파앙
“볼.”
승부가 길어지면 결국 구석에 몰리는 건 타자다.
풀카운트에 몰린 타이 존슨이 입술을 꽉 깨물고 타격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앤드류 데이비스의 승부구가 날아왔다.
슈웅
부웅
“스윙! 아웃!”
“Fuck!”
몸 쪽으로 붙어 들어오다 중앙으로 역회전하며 떨어지는 100마일의 하드싱커.
그 공에 타이 존슨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선취점을 내긴 했지만 오늘 경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말 그대로 한 점도 안 준다는 각오로 던져야 할 듯하다.
* * *
– 불규칙 바운드로 인한 내야 안타, 거기에 포수 송구 실책으로 도루까지 허용하며 한수혁 선수가 2사 주자 2루 위기에 몰렸습니다.
– 아, 정말 안타깝네요. 빗맞은 타구가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킨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방금 도루를 허용한 장면은 어이가 없습니다. 투수가 아무리 타이밍 싸움을 잘 가져가도 포수가 저렇게 엉망으로 송구를 하면 대책이 없는 거거든요.
– 다음 경기부터는 주전 포수인 브루스 매튜스 선수가 돌아온다고 하니 조금 나아지겠죠?
– 네, 그렇기는 한데… 아무리 봐도 시애틀 백업 자원이 약하긴 합니다. 사실 레너드 존스 선수 탓만 할 수는 없어요. 저 선수 이제 빅리그 1년 차입니다. 마이너에 내려서 조금 더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하는데 백업 포수가 없다 보니 너무 일찍 마스크를 쓰게 됐어요.
– 음, 시애틀이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꿈을 이루려면 전력 보강은 필수일 것 같군요. 어쨌든 7회말 시애틀이 1 대 0으로 앞선 가운데 2사 주자 2루 상황에서 7번 타자 제일런 톰슨 선수가 들어섭니다. 오늘 제일런 선수는 안타가 없습니다.
– 확실히 세인트루이스 타선이 끈질기긴 하네요. 오늘 경기 전까지 8경기에 등판해서 8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는 한수혁 선수를 상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듭니다.
– 상대 선발인 앤드류 데이비스 선수도 칭찬해 줘야겠죠? 1회 한수혁 선수에게 선제 홈런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이후에는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호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네, 저도 경기장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확실히 차세대 황제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네요.
– 말씀드리는 순간, 한수혁 선수가 던진 초구를 제일런 톰슨 선수가 받아쳤습니다. 유격수 앞으로 굴러가는 평범한 땅볼, 유격수 가볍게 잡아서 1루… 아앗! 이게 뭔가요! 송구 실책이 나왔습니다! 2루 주자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세이프! 타자 주자 2루까지! 맙소사! 결정적인 순간 또 에러가 나왔습니다!
– 저 망할 자식들 싹 다 데려다가 빠따를…….
– 위원님?
– 하아, 아닙니다. 너무 답답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결국 불규칙 바운드와 에러 두 개가 겹치며 한수혁 선수가 동점을 허용하고 맙니다.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요?
– 네, 결국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올라옵니다. 7회초, 시애틀이 동점을 허용하며 경기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이곳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T모바일파크입니다.
* * *
“한, 지난번 투구 이후에 휴식일을 건너뛴 것도 그렇고, 오늘도 투구 수가 적지 않아. 여기까지만 던질까?”
“이번 이닝만 마무리하겠습니다.”
“흠, 이번 이닝이라……. 그래, 좋아.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빨리 처리하고 돌아오라고.”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절대 계획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오늘 한 점도 주면 안 되겠다 생각한 내 예감이 맞았다.
이를 악물고 전력을 다해 던지는 앤드류 데이비스를 상대로 우리 타자들은 제대로 된 타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녀석은 나와 타이에게는 계속 유인구만을 던졌고, 대신 다른 타자들을 상대로는 압도적인 구위로 삼진을 마구 뽑아냈다.
결국 7회 초까지 1 대 0, 아슬아슬한 리드가 이어졌고, 불규칙 바운드와 잇단 에러가 겹치며 동점을 내주고 말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는 하지만 야구라는 게 원래 이럴 때가 있는 법이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시즌 162경기를 치르려면 조금 멀리 볼 필요가 있다.
코치의 말처럼 지난 컵스와의 3차전에 등판한 후 휴식일을 갖지 못했고, 오늘도 7회까지 90개가 넘는 공을 던졌다.
제이콥의 잔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결국 오늘 내 임무는 여기까지일 것 같다.
슈웅
따악
“아웃!”
7이닝 12K, 1실점을 기록한 채 나는 마운드를 내려왔다.
* * *
[시즌 8승 평균자책점 0 한수혁 대 6승 평균자책점 1.25 앤드류 데이비스의 맞대결, 결국 승자를 가리지 못해] [한수혁 7이닝 1실점(비자책), 앤드류 데이비스 7이닝 1실점, 치열했던 투수전… 승리는 막판 뒷심을 보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돌아가] [9회초 터진 세인트루이스 간판타자 그랜트 딕슨의 석 점 홈런, 그리고 트레버 닉슨의 완벽한 마무리] [이날 패배한 시애틀 매리너스, 지구 1위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와 승차 1게임 반으로 벌어져] [타자로서 선제 홈런, 그리고 투수로서도 완벽한 투구를 선보이고도 승수 추가에 실패한 한수혁 “야구란 원래 이럴 때도 있는 것이다. 모든 타자를 삼진으로 잡지 못한 내 탓.”] [벤자민 레이놀즈 감독 “한수혁은 완벽했다. 1위 싸움을 하느라 휴식일을 주지 못해 오늘은 조금 일찍 마운드에서 내렸다. 앞으로도 그의 몸 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 [구관조 군단의 에이스 앤드류 데이비스 “승수 추가에는 실패했지만 팀이 이겨 기쁘다. 존경하는 타이 존슨과의 승부도 내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시애틀과 월드시리즈에서 만나고 싶다.”]이때까지만 해도 시애틀 팬들의 분노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록 1위 오클랜드와의 승차가 또 한 번 벌어졌지만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아 있었고, 거기에 빠져 있던 주전 선수들이 돌아올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카디널스와의 2, 3차전에서 우리는 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동안 부상으로 빠져 있던 주전 포수 브루스 매튜스와 좌익수 짐 브라운이 라인업에 복귀했고, 대신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쳐 있던 2루수와 유격수가 교대로 휴식을 취했다.
경기 흐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2차전에 선발로 나선 디몬 앤더슨 주니어는 5이닝 2실점으로 제 몫을 다했고, 3차전 선발 마이크 워렌 역시 6이닝 3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다.
지난 1차전에서 빈타에 허덕였던 타자들도 다시 타격감을 되찾으며 안타를 만들어냈고, 나 역시 3차전에 투런 홈런 하나를 추가하며 시즌 홈런 개수를 26개로 늘렸다.
문제는 중간계투 쪽에서 발생했다.
계속되는 등판으로 지쳐 있던 승리조가 우르르 무너지며 대량실점을 허용한 것이다.
그렇게 카디널스에 스윕을 당한 시애틀은 시즌 전적 32승 23패, 승률 0.582로 1위 오클랜드와의 승차가 3게임으로 벌어져버렸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위 LA에인절스가 1게임 반 차로 바짝 쫓아오기까지 했다.
억지로 분노를 눌러오던 시애틀 팬덤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총알을 10발 이상 장전할 수 있는 탄창을 판매하는 게 불법이라고? 엿이나 처먹으라고 해! 나는 T모바일파크를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니까!
└나도 같이 가자고 친구, 탄창은 충분히 준비했어. 필요하다면 폭탄도 구할 생각이야.
└빌어먹을, 망할 매리너스, 이럴 줄 알았어. 지난 2년 동안 해온 짓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군. 이 자식들은 침팬치의 지능을 가졌어. 왜 이런 멍청한 짓을 하는 걸까?
└그 큰돈을 주고 타이 존슨을 데려왔으면 어떻게든 월드시리즈까지 가야 할 거 아냐? 대체 왜 백업 멤버를 안 데려오는 건데?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투자자문회사를 운영 중인 시애틀 팬이야. 그리고 최근 시애틀과 관련된 아주 좆같은 소식을 들었지.
└일단 말해봐. 헛소리라면 죽을 각오부터 하고.
└믿든 말든 너희 자유야. 어쨌든 내가 들은 정보는 이거야. 우리 구단주 중 한 명의 재정 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 그래서 구단주 그룹 내부에서 지분을 소화하려다가 일이 잘 안 돼서 외부 투자자를 찾고 있다는군.
└무슨 뜻이야? 한마디로 지금 우리 구단에 돈이 없다는 건가?
└맞아.
└맙소사, 티겟도 더럽게 비싸게 파는 것들이 돈이 없다고?
└그것과는 상관없어. 구단주의 다른 사업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것 때문에 지분을 처분하려 하는 거니까.
└어쨌든 그렇다 쳐. 그럼 그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계속 이 상태일 거라는 거지?
└아무래도 그렇겠지. 지분 매각이 깔끔하게 처리되기 전에는 고정 지출 외 추가 예산 집행은 동결된다고 봐야겠지.
└오 마이 갓……. 그럼 저 끔찍한 꼴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건가?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아마도?
문제가 발생한 토드 헨리의 지분 15%를 매각하는 대신,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던 시애틀의 1차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대출받은 돈이 토드 헨리의 개인 부채 해결에 쓰일 염려가 있다 판단한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해당 건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다.
야구단 자체는 흑자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구단주가 다른 사업을 위해 대출을 받아 결국 야구단이 도산 위기에 몰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 말이다.
“젠장, 답이 없군. 해결책은 없는 거야? 토드, 그 자식은 아직 연락이 안 되고?”
“대리인에게 모두 맡기고 잠적한 모양이야.”
“빌어먹을, 튀었군.”
급하게 소집된 시애틀 구단주 그룹.
자칫하다가는 시애틀 구단의 경영권 자체가 위협받을 상황에 놓인 그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 마련에 나서던 그때.
덜컥
“오! 오셨군요! 이쪽으로.”
“다들 모여 계셨군요. 잘됐습니다. 서로 바쁘니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물론이죠! 원하는 바입니다. 그럼 일은…….”
“지분 35%, 저희가 모두 인수하겠습니다. 단, 시간을 두고 천천히, 차례대로.”
“오오오!”
회의장에 등장해 시애틀 구단주 그룹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한 이는 바로 민예린의 아버지이자 골드만삭스 부사장, 그리고 한수혁의 대리인을 맡고 있는 민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