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6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67화(268/412)
#267. 템파베이의 기둥
기억 속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다른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흠칫하게 된다.
지금 타석에서 요상한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제임스 테일러를 보며 하는 이야기다.
저 녀석이 빅리그 최고의 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선구안과 컨택 능력을 동시에 갖춘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 때리기 좋은 공을 골라 양질의 타구를 만들어내는 선수였다는 건데…….
슈웅
부웅
“스윙!”
포수가 잡기 힘들 정도로 바닥에 처박힌 공에 어이없는 헛스윙.
슈웅
부웅
“스윙!”
이번에는 바깥쪽에서 역회전하는 공에 배트가 따라 나가며 헛스윙.
흠,
이번 시리즈 전에 녀석의 타격 영상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저 녀석 왜 저래요?’
‘글쎄?’
저 멀리 1루 수비를 보고 있는 타이와 눈이 마주친 김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는데, 그가 용케 내 말을 알아듣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상하네.
왜 저런 개 잡는 스윙을 하는 거지?
슈웅
틱
“파울!”
이번에는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오는 공에 억지로 배트를 가져다 대며 파울.
방금 공은 마이너에서 갓 올라온 루키도 안 건드릴, 그런 공이었는데.
슈웅
부웅
“스윙! 아웃!””
“좋았어!”
1회부터 제구가 안 되어 고생하던 댈빈 슈워츠가 어려운 상대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음, 대체 왜 저럴까.
* * *
“저 녀석이 널 따라 하는 모양인데?”
“나를요?”
“흐흐, 아무튼 재미있는 놈이야.”
회귀 전 저 녀석과 내가 아메리칸 리그 최고 타자 자리를 두고 경쟁했을 때 언론에서는 우리 둘을 놓고 이렇게 비교했다.
제임스 테일러가 타격의 교과서 같은, 그렇기에 타이 존슨의 뒤를 이을 전형적인 스탠다드 타입의 선수라면 한수혁은 예전 블라드미르 게레로를 연상시키는, 눈에 보이는 공은 모두 때려내는 배드볼 히터의 최고점에 도달한 선수라고.
눈에 공이 들어오면 일단 때리고 본다.
그런 내 타격 기조는 회귀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나 워리어스 시절에는 좋은 공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기에 비슷한 공에는 모두 배트를 낼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로 건너오고, 타이 존슨이 내 뒤에 서며 상황이 조금 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특정한 타격 매커니즘에 구애받지 않고 때릴 수 있는 공은 일단 때리고 본다는 마음으로 타석에 서고 있다.
그런데 저 녀석이 나를 따라 하려 한다고?
글쎄, 상황이 좀 아이러니하게 된 걸 떠나서,
그게 그렇게 쉽진 않을 텐데?
“플레이!”
자신의 장점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게 저 녀석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저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시즌 0.361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타율 2위를 달리고 있는 걸 보면 난 놈은 난 놈이다.
물론 1위인 내 0.429와는 꽤나 차이가 있지만.
저 녀석이 만약 우리 팀이라면 이렇게 말해줬을 거다.
지금 나는 홈런 개수를 늘리기 위해 타율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고, 그러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뭐, 현재로서는 적이니 이런 조언을 해줄 필요는 없겠지만.
일단 녀석에 대한 생각은 그쯤에서 접어두고 투수와 타자의 승부로 시선을 돌렸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2년 전 쿠바에서 탈출해 템파베이 레이스의 유니폼을 입은 루카 에르난데스가 데릭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지난 선발 등판에서 105마일을 던지며 내가 기록한 세계 최고 구속인 107마일에 도전장을 내민 야생마 같은 놈이다.
슈웅
파앙
“볼.”
문제는 빠른 공에 비해 제구력이 형편없다는 건데, 그래도 아주 못 써먹을 정도는 아닌지 올 시즌 3승을 기록하며 템파베이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고, 이를 즉전감으로 키우는 능력만큼은 최고라 불리는 템파베이.
재미있는 건 1998년 창단해 구단 역사가 32년밖에 안 된, 거기에 다른 구단의 절반밖에 안 되는 예산으로 운영되는 스몰마켓 팀이 2008년과 2020년,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봤다는 것이다.
창단한 지 53년이나 된, 거기에 예산 역시 남 부럽지 않게 쓰는 시애틀이 여지껏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그 무대를 말이다.
슈웅
파앙
“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 템파베이 레이스가 선전하는 지분의 90% 정도는 현 구단 사장인 체이스 에드먼즈에게 있다고 본다.
단장을 거쳐 부사장, 사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구단 운영의 귀재.
내가 시애틀 매리너스의 최대 주주가 되면 일단 저 사장부터 우리 팀으로 스카우트를…….
음,
그냥 돈 몇 푼 때문에 팀이 시끄러워지는 것 같아 시작한 지분 인수인데 일이 너무 커지는 느낌이다.
이 문제는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슈웅
따아악!
“좋아! 데릭!”
“이제는 감이 완전히 살아난 거 같은데?”
징계에서 돌아온 후 다시 타격 감각을 찾는 데 성공한 데릭 플레밍이 3-유 간을 빠져나가는 깨끗한 안타를 치고 1루로 나갔다.
확실히 빠른 공에는 강점이 있는 타자다. 성격이 좀 급한 탓에 유인구만 주구장창 던지는 투수에게 자꾸 말려드는 게 문제이지만.
어쨌든,
[2번 타자 지명타자 한수혁]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 * *
타율 0.429, 출루율 0.518, 장타율 1.011, OPS 1.529, 홈런 26개, 타점 64개.
시즌 55게임을 치른 현재, 내가 기록하고 있는 타격 성적이다.
KBO에서 MLB로 넘어온 타자의 경우 OPS가 0.235 정도 하락한다는 것이 업계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KBO에서 NPB로 넘어갈 때 0.110이 마이너스되고, NPB에서 MLB로 넘어갈 때 다시 0.125가 마이너스된다고 한다.
그간 세 개 리그를 넘나든 선수들의 성적을 토대로 집계한 것이니만큼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출루율이 조금 하락한 걸 제외하면 KBO 시절과 거의 비슷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타이 존슨을 뒤에 세움으로써 고의사구에서 해방된 게 이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플레이!”
내 앞에서 데릭이 출루하고, 나와 타이가 타점을 쓸어 담는, 그리고 그 뒤 타자들이 나머지 잔루를 해결하는 시애틀의 타격 프로세스가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타이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고, 투수들이 내게 미친 듯이 볼을 던져 대고, 구심점을 잃은 이 팀의 젊은 타자들이 타격 침체에 빠져드는 거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타이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누군가는 서른다섯의 타자에게 연평균 4천만 달러의 계약을 안겨준 게 호구짓이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슈웅
“스트라이크!”
글쎄, 내가 보기에 현재 메이저리그 타자들 중 저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 타이 존슨이다.
그는 분명 존경받아야 마땅한 타자다.
슈웅
“볼.”
104마일에 달하는 볼 끝이 지저분한 포심.
칠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흘려보냈는데 볼이 선언되었다.
그런데 그걸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한 것인지 레이스의 포수가 이죽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어때? 손도 못 대게 빠르지? 언젠가는 저 친구가 네 최고 구속 기록을 깨 버릴 거야.”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음?”
“공만 빠르다고 다 투수가 아니야.”
부와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망명한 녀석에게는 미안하지만 저 녀석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 일 거라 생각한다.
빠른 공만 믿고 설치기에 메이저리그는 너무 험난하고 살벌한 곳이니까.
슈웅
따아아악!
“와아아아!”
“좋아! 홈! 홈!”
“한수혁! 빌어먹을! 최고야!”
“저 녀석들을 박살 내버려!”
깔끔한 1타점 2루타.
좋아, 상쾌한 출발이다.
* * *
내 2루타 이후 타이 존슨의 추가 적시타가 터지며 스코어 2 대 0.
두 점을 선취한 가운데 시애틀의 2회초 수비가 시작되었다.
슈웅
파앙
“볼.”
오늘처럼 지명타자로 출전한 날에는 수비 이닝마다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물론 수비를 계속 하는 게 경기 감각을 이어가는 데 훨씬 도움이 되긴 하지만, 투타 겸업을 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런 잠깐의 휴식도 필요할 거라 생각한다.
슈웅
파앙
“볼.”
오늘 선발인 댈빈 슈워츠는 시즌 초반 3선발로 시작해 어느새 5선발로까지 밀려난 좌완 투수다.
지난 시즌에는 중간계투와 선발을 오가며 5승을 기록한, 빠른 공을 주무기로 하는 그는 최근 들어 자신이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있다.
“이봐, 챔피언.”
“네, 감독님.”
“혹시 기회가 되면 저 친구에게 포심을 던질 때마다 턱이 자꾸 들린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흠, 네. 기회가 된다면요.”
“좋아. 어디 불편한 곳은 없지? 아주 약간의 이상이라도 발견되면 일주일짜리 휴가 티켓을 끊어줄 거야. 그러니 숨길 거면 제대로 숨기라고.”
감독이 원하는 건 그런 거다.
가끔은 코칭스태프가 말하는 것보다 리그 최고 수준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가 하는 말이 더 와닿을 수 있다는 것.
선발 순서가 밀리니 자꾸 초초해지고, 그러다 보니 더 빨리 던져야겠다는 생각에 투구폼이 흔들리고,
불안감에 빠진 동료를 위해 조언 한 마디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겠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녀석의 몫이다.
팀의 주장인 라이언이라면 모를까,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기에는 나는 아직 빅리그 커리어가 모자라니까.
가만, 그런데 왜 날 시킨 거지?
슈웅
따악!
“젠장, 괜찮아. 델빈! 고개 들어!”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한 댈빈이 화난 얼굴로 마운드를 걷어찼다.
이번에 말린스에서 넘어온 칼튼 벨을 비롯해 이 팀에는 댈빈을 대신해 5선발로 나설 수 있는 투수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팀 전체를 놓고 볼 때는 이런 경쟁 구도가 성적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겠지만 선수 개개인에게는 하루하루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댈빈 저 녀석이 이런 압박감을 얼마나 잘 이겨낼 수 있을까?
* * *
“Fuck!”
“이봐, 댈빈, 진정해. 일단 아이싱부터 하고.”
결국 댈빈은 위기를 넘어가지 못했다.
2회초,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내준 그는 다음 타자에게 동점 투런 홈런을 허용했다.
다행히 이어진 두 타자를 범타로 막아냈지만 투아웃 이후 8번 타자에게 또 하나의 홈런을 허용하며 결국 역전까지 내주고 말았다.
이어진 2회말 시애틀의 공격은 득점 없이 끝났다.
그리고 시작된 3회초 템파베이의 공격,
댈빈이 선두타자에게 또 안타를 허용하자 감독이 즉각 행동에 나섰다.
불과 2이닝밖에 안 던진 선발투수를 교체해버린 것이다.
감독은 1위 오클랜드와의 승차가 더 벌어지면 안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거기에 새로 영입한 투수를 테스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고.
어쨌든 선발 투수 입장에서 2이닝 만에 강판을 당한다는 건 엄청난 굴욕이다.
분을 참지 못한 댈빈이 라커룸으로 사라진 가운데 팀의 두 번째 투수 칼튼 벨이 등판했다.
“플레이!”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아메리칸 리그 최고 타자 중 하나인 제임스 테일러를 상대하게 됐지만 칼튼 벨은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이번에 말린스에서 데려온 세 명의 선수 중 개인적으로는 저 투수의 가치가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회귀 전 기억은 둘째 치고, 젊은 투수들로 구성된 시애틀 투수진에 경험을 추가해줄 수 있는 좋은 베테랑이 될 것이다.
슈웅
따악!
“세컨!”
“아웃!”
“아웃!”
“좋아!”
“잘 막았어! 칼튼!”
역시나 베테랑답게 침착하게 잘 던진 칼튼이 제임스 테일러를 병살로 처리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건 그렇고,
제임스 저놈 진짜 타격 밸런스가 엉망인데?
저런 식이면 땅에다 공 세 개를 패대기 쳐도 삼진을 먹을 기세다.
팀의 기둥이라는 놈이 저런 모습을 보이다니,
템파베이에게 애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