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6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68화(269/412)
#268. 한 명만 꼽는다면
“제임스.”
“네, 감독님.”
“난 그렇게 생각해. 지난 일주일 동안 봐줄 만큼 봐줬다고 말이야.”
“네? 아, 네, 하지만…….”
“됐고, 다음 타석에서도 그딴 짓을 하면 즉시 그라운드에서 끌어내릴 거야. 명심해. 네가 아무리 슈퍼스타라고 해도 예외는 없어. 팀에 마이너스가 되는 짓을 하면 라인업에서 빠지는 거야. 알아들었지? 좋아, 그럼 이만 가봐.”
팀을 넘어 리그 최고의 스타 중 하나로 불리는 선수에게 이런 강력한 경고를 날릴 수 있는 감독은 거의 없다.
특히나 감독의 지위와 권위가 KBO에 비해 훨씬 약한 메이저리그에서는 말이다.
만약 팀 내 최고 연봉자와 감독 간에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빅리그 구단 열 중 아홉은 감독의 목을 날리는 쪽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만은 예외다.
“자, 이기고 있다고 방심해서는 안 돼. 저 팀에는 타이 존슨이 있다. 그리고 4할을 치는 괴물이 버티고 있지. 전력을 다해 녀석들을 박살 내! 고! 고! 레이스!”
구단의 빈약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매년 템파베이를 가을야구에 도전하는 팀으로 만든 명감독.
사장인 체이스 에드먼즈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벌써 10년 넘게 레이스를 이끌고 있는, 제임스 테일러를 마이너에서 끌어 올려 오늘날 슈퍼스타로 만든 감독.
스티브 콕스가 선수들의 독려해 그라운드로 올려보냈다.
“하아,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네, 그럴 겁니다.”
제임스 테일러가 데뷔한 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녀석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었던 스티브 감독은 지난 일주일간 극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몇 년 이내 타이 존슨을 넘어 빅리그 최고의 타자가 될 거란 기대를 모았던 녀석이 갑자기 누군가를 흉내 내겠다며 이상한 짓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한수혁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한수혁.
빅리그에 데뷔하자마자 리그 전체를 박살 내고 있는 괴물.
동양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단단한 체구, 유난히 긴 팔과 다리를 활용해 존 바깥으로 들어오는 공도 잡아당겨 홈런을 만들어내는 괴물 중의 괴물.
스티브 감독은 저런 타입의 선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예전 현역으로 뛰던 당시 그를 상대로 10타수 6안타 4홈런을 때려낸 괴물,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딱 저랬으니까.
비슷한 코스로 들어오는 공은 일단 때려내는, 그렇게 때려낸 타구를 그라운드 안에 우겨 넣을 수 있는 배드볼 히터.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던 도미니카 산 괴수.
문제는 한수혁이 그 블라디미르 게레로보다도 훨씬 끔찍한 놈이라는 거였다.
타격 스타일은 비슷한데 타율이 그보다 1할이나 높다.
거기에 홈런 개수조차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말하자면 한수혁이라는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배드볼 히터의 끝판왕 같은 타자라는 뜻이다.
그런 녀석을 따라 하겠다고?
생각 같아서는 당장 혼을 내주고 라인업에서 빼 버리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그렇게 함부로 다루기엔 제임스 테일러는 너무 큰 선수가 되어버렸으니까.
일주일,
그가 제임스에게 준 시간은 딱 일주일이었다.
말도 안 된다 생각했지만 스스로 납득하기 전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제임스의 성격을 감안해 그 정도는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 기간 동안 제임스는 한수혁을 따라 한답시고 온갖 기행을 저질렀고, 그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놀이는 끝났다.
팀 내 최고 선수를 위한 배려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플레이!”
주심의 경기 재개 사인과 함께 시애틀의 3회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루카 에르난데스가 10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시애틀의 리드오프 데릭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그리고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리그 최고의 타자 제임스 테일러를 열등감에 빠지게 만든,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던 시애틀 매리너스를 강력한 라이벌로 의식하게 만든 선수.
한수혁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음.’
메이저리그 감독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갖고 싶은 선수를 딱 한 명만 고르라면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수혁을 선택할 것이다.
그건 한수혁이 투수로서, 타자로서 기록하고 있는 성적 때문만이 아니었다.
스티브 감독이 보기에 한수혁은 지금껏 보아온 그 누구보다 야구에 대한 이해가 깊은 선수였다.
야구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지금 템파베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루카 에르난데스처럼 야구가 뭔지도 잘 모른 채 그저 빠른 볼만 믿는 선수들은 피지컬이 하락세에 접어듬과 동시에 급격하게 무너지게 된다.
반면 한수혁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선수는 구속이 90마일 밑으로 떨어져도, 배트 스피드가 느려져 더 이상 빠른 공에 대응할 수 없게 되어도,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의 선수로 남아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슈웅
파앙
“볼.”
머리 쪽으로 향하는 볼을 슬쩍 피해낸 한수혁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투수를 바라보았다.
순간 스티브 감독의 심장이 쿵 멎을 뻔했다.
‘머저리 같은 놈이…….’
루카 에르난데스가 호전적인 투수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험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세상에 무서운 건 자기 아버지밖에 없다고 말하는, 말 그대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야생마 같은 놈이었다.
그런 녀석을 어떻게든 관리하며 선발로 잘 써먹고 있지만, 아무래도 슬슬 한계가 오는 모양이다.
스티브 콕스 감독이 보기에 메이저리그에서 절대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키면 안 되는 상대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시애틀이다.
한수혁이 버티고 있는 시애틀 말이다.
루카 에르난데스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런 흔한 애송이라면 한수혁은 진짜 중의 진짜다.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떻든 간에 자기가 정한 선을 넘어섰다 싶으면 그대로 박살 내 버리는 터미네이터 같은 인간이다.
‘조만간 단장을 만나봐야겠군.’
루카 에르난데스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왔다는 걸 깨달은 스티브 감독이 그를 마음 속 트레이드 카드로 확정해버린 가운데 둘의 대결이 계속 진행되었다.
슈웅
파앙
“볼.”
또 한 번 몸 쪽으로 향하는 공.
한수혁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졌고, 반면 루카스 에르난데스의 얼굴에는 이죽거리는 웃음이 피어 올랐다.
그 순간 스티브 감독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젠장, 차라리 자동고의사…….”
감독의 입에서 자동고의사구 요청이 나오려던 그 순간,
따아아아아아악!
거대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새까맣게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몸 쪽 높은 곳으로 날아오는 공을 받아친 한수혁이 그 자리에서 배트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타구를 감상했다.
루카 에르난데스가 울컥하며 마운드에서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 한수혁의 입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앞에 오는 순간 너는 한 달 동안 스프만 먹게 될 거다.”
관중들이 내지르는 엄청난 함성에도 불구하고 투수는 그 목소리를 확실히 알아들은 듯 보였다.
루카 에르난데스는 결국 더 이상 앞으로 나오지 못했고, 그 사이 계속 날아간 타구가 관중석을 넘어 야구장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3 대 3 동점을 만드는 장외 홈런.
타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한수혁이 천천히 1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도 메이저리그에 남아 있는 배트플립과 타구감상에 대한 거부감.
평소 같으면 한수혁을 향해 누군가 덤벼들 법도 했지만, 템파베이 선수 중 누구도 한수혁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건 강자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야구 선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 자체로 강한 한수혁을 모두가 알아본 것이다.
쿵
한수혁의 발이 홈플레이트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젠장.”
“감독님?”
“불펜 상황 체크해.”
“알겠습니다.”
“조니.”
“네, 보스.”
“정말 멋진 녀석이군. 이 구단 전체를 팔아서라도 데려오고 싶은, 그런 선수야.”
“동의합니다.”
“젠장, 시애틀 감독 제안이 왔을 때 받아들였어야 했나?”
“네?”
“아냐, 그냥 해본 말이야. 자, 일단 동점 준 건 준 거고 다시 시작해 보자고.”
스티브 콕스는 생각했다.
먼 훗날, 자신이 자서전 같은 걸 쓰게 되었을 때 그 한 구석에 인생에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적어 넣게 될 날이 온다면,
만약 그런 순간이 온다면 시애틀의 감독 자리를 거절한 것, 그래서 한수혁이라는 선수를 지도할 기회를 놓친 걸 적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후회는 언제나 뒤늦게 찾아오는 법이다.
* * *
[시애틀 매리너스와 템파베이 레이스 간 시즌 1차전, 치열한 타격전 끝에 시애틀의 7 대 5 승리로 끝나] [시즌 27호 홈런 때려낸 한수혁 “최근 타격감에 만족한다. 홈런 기록? 예전에도 말했지만 당연히 도전할 생각이다. 투수들이 겁먹고 도망가지만 않는다면.”] [리그 최고의 타자, 최고의 3루수 자리를 놓고 한수혁과 맞붙은 제임스 테일러, 4타수 무안타로 침묵] [템파베이 스티브 콕스 감독 “한수혁은 정말 대단한 선수다. 하지만 제임스 역시 그에 못지않은 타자라고 생각한다. 아직 어릴 뿐.” 한수혁이 더 어리다는 기자의 말에 “정신 연령을 말한 것이다.”]그리고 이어진 2차전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승리했다.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가 8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고, 오랜만에 승리조가 깔끔한 이어 던지기를 선보이며 4 대 3 한 점 차 짜릿한 승리를 쟁취했다.
템파베이가 유일하게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건 지난 일주일 동안 엉망진창이던 제임스 테일러가 3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연승을 거두는 사이 오클랜드가 연패를 당하며 승차가 다시 한 게임 차로 좁혀졌다.
그리고 내 선발 등판 차례가 돌아왔다.
“오늘은 6번 자리에 서게 될 거야. 자네가 타이 존슨의 앞에 서고 싶어 시애틀로 왔다는 건 잘 알지만 나는 감독으로서 자네의 체력을 관리해줄 의무가 있어. 오늘은 이렇게 가자고.”
“이해했습니다.”
“자넨 언제나 확실해서 좋아.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 나에게 얘기하고.”
템파베이와의 3차전에 선발 등판 하게 된 나는 이번 시즌 들어 처음으로 6번 타순에 서게 되었다.
어제 경기 후 실시한 메디컬 체크에서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어떤 선수라 해도 이 정도 시점이 되면 피로가 쌓이는 게 당연한 거다.
하지만 나는 시즌 내내 투타 겸업을 이어가야 할 몸이다.
타이 존슨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하루 정도는 하위 타선에서 체력을 관리하며 뛸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좋아,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군.”
팀 이적 후 처음으로 선발 우익수로 나서게 된 카일 섀너한이 신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우익수 카일 섀너한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좌익수 짐 브라운
5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6번 투수 한수혁
7번 3루수 리엄 랜드먼
8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9번 2루수 조나단 오웬스
오늘은 내가 6번으로 내려온 것을 포함해 라인업에 이런저런 변화가 많다.
시즌 개막 후 한 경기도 빠짐없이 선발 출장했던 척 클락 대신 말린스에서 이적해온 카일 섀너한이 2번 타자 겸 우익수로 나섰다.
아무리 체력 소비가 덜한 외야수라 해도 가끔은 휴식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나 타이 존슨의 뒤에서 이런저런 견제를 받아온 척 클락은 꽤나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으니까.
내가 빠진 3루에는 말린스 이적생인 리엄 랜드먼이 들어섰다.
결론적으로 평소보다 타선의 무게가 떨어져 보이는 건 사실이다.
어쩔 수 없다.
오늘도 한 점도 안 내준다는 생각으로 던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