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6화(27/412)
#26. 나는 모든 걸 걸어볼 생각이다
각 구단 간의 트레이드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스토브리그와 시범경기 기간 사이, 야구팬들의 주요 일상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 뉴스 란을 새로고침하며 선수들의 이동을 파악하는 것이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게 된 짜릿함, 반대로 핵심 선수를 놓치게 된 허탈감.
출근길에 접하게 된 응원팀의 트레이드 소식 하나하나에 그날의 컨디션이 좌우되는 것.
그것이 바로 야구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고통이기도 하다.
<워리어스와 매지션스, 서울 라이벌팀 간 전격 트레이드 합의>
<워리어스 송기태, 정기호 <-> 매지션스 최민석, 김두영 유니폼을 바꿔 입다>
<익명을 요구한 구단 관계자 “내부적으로는 모두가 반대한 트레이드였지만 박재철 단장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워리어스 박재철 단장 “익명 뒤에 숨어 입만 나불대는 구단 관계자 반드시 잡아낼 것”>
﹂자, 한 번 따져보자. 우리 이득이냐, 손해냐?
﹂최민석은 그렇다 치고, 김두영은 누구야? 아는 사람?
﹂2군에만 있던 공만 빠른 제구레기···
﹂미친, 그런 애들은 우리 2군에도 널렸잖아
﹂일단 송기태랑 정기호는 치웠어야 함. 걔들이 팀 분위기 망치는 거 모르는 사람 없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럼 우리 야수진 정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유격수 한수혁, 3루수 안치욱, 중견수 최민석 이렇게 고정되겠지?
﹂됐고, 공 놓치고 인상 쓰는 송기태 안 보게 된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하다
야구계의 많은 인사들, 심지어 워리어스 팬들조차 이번 트레이드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송기태와 정기호를 치워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받아온 선수들의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선수로 성장할지 알고 있는 나로서는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말이다.
젠장,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KBO 선수들에게도 관심 좀 가져 두는 건데.
어쨌든 그렇게 양팀 간 트레이드가 완료되고 매지션스에서 온 두 선수가 팀에 합류했다.
투구폼에 대해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한 김두영은 2군으로 일단 내려갔다. 내가 시킨 대로 전담 코치가 붙어 그의 투구폼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들어갈 것이다.
하반기부터라도 그가 불펜에 합류해준다면 우리 팀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 되겠지.
한편 외야수 최민석은 정기호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곧바로 1군 선수단에 합류했다.
“안녕하십니까! 최민석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 어서 와. 환영한다. 우리 구면이지?”
“네,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일단은 오늘 경기부터 치르고 정식으로 환영회 하자. 열심히 해봐.”
“감사합니다!”
고참급 선수들과 대충 인사를 나눈 최민석이 자신의 고등학교 동기인 외야수 김수학을 발견하고 그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동기야, 반갑다.”
“어, 그래. 잘 왔어.”
“흐흐,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은 무슨. 우리 팀 분위기 좋아. 괜히 인터넷에서 떠드는 거 신경쓰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김수학과 소근소근 이야기를 주고받던 최민석이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야, 그나저나 내가 조심할 것 있으면 좀 알려줘.”
“조심할 거?”
“그래. 이 팀에서 꼭 해야 하거나, 하면 절대 안 되는 거.”
“음··· 일단 이리 와바. 여기는 듣는 귀가 너무 많다.”
최민석의 유니폼을 잡아 끈 김수학이 몸을 푸는 척 외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일단 우리 팀에 파벌 같은 건 없어.”
“오오··· 진짜?”
“응, 예전에는 이래저래 심각했는데 너도 알잖아? 우리 코치 라인 다 날라가고 송기태 선배도 너희 팀, 아니지, 매지션스 가면서 다 흩어져버렸거든.”
“그렇군···”
“황성민 선배가 남아 있기는 한데··· 사실 별 힘은 못 써. 그래도 괜히 건들지는 마. 어차피 곧 나갈 사람이니까.”
“내가 그 형 건들 일이 뭐가 있겠어. 아무튼, 그럼 현재 실세는?”
“주장은 조성오 선배님인데 사실 별 터치는 안 하는 타입. 요즘에는 무슨 일인지 한수혁 뒤만 졸졸 따라다니더라.”
“아, 맞다. 한수혁, 걔 진짜 장난 아니더라. 뭐 그런 괴물이 다 있냐?”
“엄청나지. 아, 실세가 누구냐고 했지? 사실 우리 팀에 지금 실세라 부를 선수가 없기는 한데··· 굳이 따지자면 한수혁?”
“뭐?”
김수학의 뒤를 따라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던 최민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한수혁이 실세라니? 이제 입단 몇 달 밖에 안 된 신인이?
“아, 오해는 말고. 그런 실세가 아니라··· 뭐랄까. 일단 저 놈 동기인 안치욱이랑 용병 맥스, 그리고 방금 말한 조성오 선배가 하루 종일 한수혁 근처에서만 맴돌거든.”
“그래?”
“응, 타격에 대해 의논도 하고, 서로 조언도 하고, 내기도 하고, 아무튼 꽤 친하게 지내더라. 가끔 이창모 선배랑 이만식 선배도 합류해서 같이 어울리고.”
“그렇군··· 근데 너는 안 끼어들고 뭐하냐?”
“내가 원래 숫기가 좀 없잖냐. 크크. 아무튼 거기에다가 감독님이나 코치님들도 한수혁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고···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오케이, 일단 접수.”
“자, 알아들었으면 이제 돌아가자. 감독님이 우리 쳐다본다.”
동기에게서 고마운 꿀팁을 전수받은 최민석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덕아웃 쪽으로 달려갔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한수혁이랑만 잘 지내면 된다. 뭐 이런 뜻이라 이해하면서.
학창 시절부터 처세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던 인싸 최민석이 활짝 웃는 얼굴로 한수혁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수혁아.”
“네? 아, 네. 저도요. 선배님.”
“그래, 우리 꼭 친하게 지내보자. 혹시 나한테 부탁할 거 생기면 언제든 말하고.”
* * *
따아악!
“좋아, 나이스!”
“크다! 넘어간다!”
“자, 이제 두 점만 더 내면 된다! 나가서 민석이 맞이해주고!”
“저 자식, 유니폼 바꿔 입은 지 얼마 됐다고 벌써 홈런을 치네?”
본래 팀 분위기라는 건 별 것 아닌 작은 일에도 쉽게 변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특히나 워리어스처럼 기존에 덕아웃을 지배하던 적폐들이 한순간에 쓸려 나간 팀은 더더욱.
이 팀의 파벌을 조성하던 코치진들의 목이 단 칼에 날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한진우와 송기태, 황성민, 거기에 이대준 감독에게 찍혀버린 정기호 등 네 명의 골치덩어리 중 셋이 이 팀을 떠났다.
그러자 그간 왠지 모르게 칙칙했던 워리어스 덕아웃의 분위기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오, 최민석. 너 방망이 좀 치네? 매지션스 때랑 좀 다른데?”
“헤헤, 선배님. 과찬이십니다. 저야 뭐 예전부터 선배님 스윙 보면서 야구 배웠는 걸요.”
“뭔 소리야. 너 매지션스 때 인터뷰한 거 내가 다 봤는데. 성철이가 롤 모델이라며.”
“아앗! 아닙니다. 그건 제가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던 시절에 한···”
“그게 바로 몇 달 전인데 무슨··· 풋, 됐고. 아무튼 이적 후 첫 홈런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워리어스로 이적한 후 처음으로 홈런을 친 최민석 선배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조성오 선배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덕아웃에서 송기태, 정기호가 빠지고 최민석이 들어온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패거리들이 모두 쫓겨나듯 팀을 떠난 가운데 유일하게 홀로 남은 황성민은 이제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은 채 혼자 고립되어 있다.
듣기로는 저 놈에 대해서도 박재철 단장이 뭔가 복안을 갖고 있는 거 같다던데.
좋다. 아주 좋아.
박 단장이라면 저 놈도 제 값을 받고 팔아 넘길 수 있을테지.
“덕수야, 아마 너한테는 수비 시프트 걸어올 거다. 크게 칠 생각하지 말고 바깥쪽 공 들어오면 가볍게 밀어도 돼.”
“감사합니다. 선배님.”
최고참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팀내 주류 세력에 밀려 조용히 지내던 조성오 선배가 적극적으로 나서며 덕아웃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간 구심점 없이 눈치를 보며 주변을 떠돌던 중고참급 선수들이 하나로 모여들며 서로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잘 되어가는 팀의 분위기다.
물론 아직 워리어스의 객관적인 전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프로야구에서 자본력이란 그만큼 절대적이다.
그리고 그런 자본력으로 끌어 모은 선수들은 대부분 그 가치를 해내기 마련이다.
선수 개개인이 갖고 있는 기량은 철저히 분석되어 수치로 나열되고, 그걸 일렬로 쭉 정리하면 그해 시즌 해당 팀이 기록할 수 있는 승수까지 예측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야구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워리어스의 예상 성적은 아마 하위권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야구 전문가, 좀 더 쉽게 말하면 세이버매트리션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수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팀 분위기, 선수들 간의 캐미, 감독과 코치의 리더십, 팬들의 응원과 열정.
이런 변수들이 더해지기에 야구가 더 재미있는 거다.
따아악!
대전 팔콘스에 9대 5로 끌려가던 워리어스가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최민석 선배의 투런 홈런에 힘입어 9대 7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터진 9번 유인철과 1번 이창모 선배의 연속 안타
1사 1, 2루. 끝내기를 위한 판이 내 앞에 깔렸다.
“한수혁! 한수혁!”
“하나 날려줘! 너 보러 왔다!”
“투수 너, 승부 피하면 죽인다! 이거 시범경기야! 정정당당하게 얻어맞으라고!”
우리 홈팀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관중들의 야유에 대전의 마무리 투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정정당당하게 얻어맞으라니, 내가 마운드에 있었어도 발끈했을 거 같은데.
그나저나 저 투수가 작년에 22세이브인가를 기록했다지? 대전의 희망이라고 불린다 했던가?
흠.
알게 뭐야.
꼭 관중들의 야유가 아니더라도 시범경기에서 일부러 승부를 피하는 투수는 거의 없다.
시범경기를 치르는 목적 자체가 지난 겨울 동안 자신이 훈련한 성과를 확인하는데 있으니까.
상대는 한 팀의 주전 마무리를 맞고 있는, 구위에 있어서는 스스로 자신감이 충만할 마무리 투수.
거기에 나는 오늘 경기 앞선 세 타석에서 아직 안타를 기록하지 못한 상황.
승부를 걸어올 확률이 높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
상대 배터리의 의중도 떠볼 겸 새로 교체되어 들어온 대전 포수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방금 전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노장 포수는 꽤나 입이 가벼웠는데.
뭐, 상관없겠지.
포수의 상태가 이렇다는 건 승부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그건 곧 대전 덕아웃에서 나와의 정면 승부를 지시했다는 걸 의미한다.
피식.
갑자기 헛웃음이 나온다.
야구에 대한 모든 걸 수치로 분석할 수 있다 믿는 세이버매트리션들이 우리 팀에 대해 간과하는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나다.
빅리그에서 15년 간 최상급 클래스를 경험한 후 스무 살 육체를 갖고 돌아온 나 한수혁.
과연 그들이 나란 존재를 수치로 분석해낼 수 있을까?
글쎄, 그런 게 가능했다면 아마 감독이고 뭐고 다 잘라버리고 세이버매트리션들만 잔뜩 뽑아서 덕아웃에 앉혀 놨을테지.
“한수혁, 제발···”
“아··· 한 방만.”
대전의 마무리 투수가 피칭 준비를 시작하자 갑자기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포수 바로 뒤 지정석에 앉은 관중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내 귓가로 스며든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바로 지금이 이 경기의 승부처라는 걸.
시범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보는 워리어스의 약진에 팬들의 마음은 이미 가을로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뭘 해야 하는지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투수의 손 끝에서 공이 떠나는 게 보인다.
실밥 하나하나가 보일 정도로 아주 선명하게.
오랜 시간 야구에 모든 걸 바친 내 직감이 말해준다.
이 공이 스트라이크 존 가장 낮은 곳으로 파고드는 패스트볼이라는 걸.
드드득
그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일반적인 궤적의 스윙을 가진 타자들에게는 상당히 까다로운, 하지만 내 어퍼 스윙과는 상성이 아주 좋은 그 공을 향해 배트가 힘차게 나아간다.
따아아아아악!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직감했다.
이번 타구가 어쩌면 내가 회귀한 후 친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홈런이 될 거라는 걸.
“와아아아아!”
“오오오오오!
쥐 죽은 듯 고요하던 관중석에서 일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운드 위에 서 있던 투수는 맞자마자 홈런이라는 걸 직감했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고, 1루와 2루에 서 있던 우리 팀 주자들은 걸음을 멈추고 내 타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전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 어떤 야구 평론가가 한 말이 기억 난다.
빅리그 역사상 한수혁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친 선수들은 제법 많지만 그 어떤 선수의 타구도 그보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지는 못할 거라고.
자화자찬 같지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오늘따라 유난히 파란 하늘 위로 내가 쳐낸 타구가 끝없이 비행한다.
나는 홈런을 쳐내고 타석에서 가만히 서 타구를 감상하는 이 순간이 너무 좋다.
가끔 이것 때문에 빈볼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절대 포기하지 못할 정도로.
동료 선수들과 팬들이 나를 향해 환호하고, 상대 팀이 나 때문에 좌절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건 야구를 하며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다.
휘릭
그런 기쁨의 순간도 모두 지나갔다.
타구가 완전히 경기장 밖으로 날아가버린 걸 확인한 나는 배트를 뒤로 휙 집어 던지고 천천히 1루 베이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수만 명에 달하는 관중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집중되고, 저 멀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동료들이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1루를 지나 2루로, 3루로, 다시 홈으로.
자신들이 지키는 베이스를 하나 둘 점령해 나감에도 아무런 대응조차 못하고 고개를 떨구는 상대팀 선수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정복욕과 성취감.
어쩌면 내가 야구를 계속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수혁! 올해는 꼭 가을야구 부탁한다!”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네가 최고야!”
어느덧 시범경기 일정도 거의 끝나고 우리는 이제 정규시즌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모두들 얘기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번 시즌 워리어스의 가을야구는 어려울 거라고.
글쎄, 나는 그 일에 모든 걸어볼 생각이다.
어디, 누구 말이 맞는지 한 번 지켜보자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