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7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71화(272/412)
#271. 에이스의 의지
템파베이와의 3연전을 마친 시애틀은 6월 첫 번째 일정이었던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4연전에서 3승 1패를 기록했다.
그 덕에 2위 오클랜드와의 승차가 벌어지자 벤자민 감독은 이어진 캔자스시티 로얄스와의 3연전에서 한수혁의 등판 일정을 한 번 건너뛰는 과감한 모험을 감행했다.
[캔자스시티 로얄스 1차전 선발 투수, 한수혁에서 제이크 하워드로 변경, 벤자민 감독 “전체 일정의 삼 분의 이가 남았다. 한수혁의 체력 관리를 위한 조치.”]결과만 놓고 보면 그 시도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캔자스시티와의 3연전에서 시애틀은 1승 2패,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고 말았다.
하지만 대신 한수혁의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결론적으로 벤자민 감독의 의도가 정확히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따아아아악!
“우아아아! 간다! 간다!”
“좋아! 젠장! 멋진 홈런이야!”
감독의 배려 속에 체력을 회복한 한수혁이 타석에서 펄펄 날아다녔다.
미네소타와의 4연전에서 홈런 두 개, 그리고 캔자스시티와의 3연전에서 또 한 개.
그렇게 세 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시즌 홈런 개수를 30개로 늘렸고, 대기록 경신의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한편 한수혁이 KBO를 떠나 빅리그로 무대를 옮겼지만 한국 야구 커뮤니티 내 최대 떡밥은 여전히 한수혁이었다.
그가 KBO에서 뛴 기간이라 봐야 고작 3년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시간, 한수혁은 한국야구 역사에 남을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
└시즌 절반도 안 지났는데 타율 0.430, 출루율 0.521, 장타율 1.012, OPS 1.532, 홈런 30개, 타점 71개, ㄷㄷㄷ, 이거 인간 맞음?
└잠깐, 저거 어디서 많이 보던 수치인데? 작년 KBO 기록 아닌가?
└아니, 6월 둘째 주 현재 MLB.COM에 공식 박제된 성적임
└ㅋㅋㅋ, 한수혁 미국 가면 3/4/5도 힘들 거라 씨부리던 놈들 다 튀어나와라
└진짜 타이 존슨이 뒤에 서 있어서 그런 건가… 근데 워리어스에서 한수혁 뒤에 서던 애들도 약하지 않았잖아? 조성오, 월터 스미스, 장덕수…….
└ㄴㄴㄴ 그것도 있지만 한수혁이 경기하는 거 보면 마음가짐이 다름. 대놓고 개인 성적에 올인하고 있음. 좀 이기적으로 보일 정도로
└그런 게 어디 있어? 애초에 개인이 잘하면 팀에도 도움되는 거임. 지금 봐라. 2년 연속 지구 4위 하던 팀이 1위 달리고 있으면 말 끝난 거 아냐?
└아무튼 진짜 엄청나다. 세상에, 저런 인간이 KBO에서 뛰고 있었다니…….
└투수 성적은 더 대단함. 시즌 10경기 선발 등판에 79이닝 던져서 실점 3점, 그중 자책점은 꼴랑 1점, 평균 자책점 0.11, 9승 무패임.
└…게임에서도 저런 성적은 안 나오겠다 미친
└이상하네. 한국에서보다 더 잘 던지는 거 같지 않냐? 뭔가 지표들이 전부 다 상승한 느낌
└ㅇㅇ 상승한 게 맞음. 최고 구속이 2마일 올랐고 새로 던지기 시작한 하드 싱커는 거의 마구 수준
└하아… 그나마 진짜 다행이다. 저놈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워리어스가 한 15년은 연속 우승했을 듯
└제발 거기서 은퇴하길, 다시는 돌아오지 않길… 진심으로 한수혁의 건투를 기원합니다…….
한국 야구팬들의 응원인지 저주인지 모를 기도 속에 메이저리그 일정은 계속되었다.
캔자스시티전을 끝으로 홈경기 일정을 모두 마친 시애틀 매리너스는 다시 원정을 위한 머나먼 여정길에 올랐다.
앞으로 10일간 이어질 이번 원정의 첫 번째 상대는 콜로라도 로키스였다.
“젠장, 야간 경기를 하고 바로 덴버까지 날아가야 하다니 끔찍하군.”
“더 끔찍한 걸 알려줄까, 동 서부 시차 때문에 휴식 시간이 한 시간 줄어들었어.”
“한가한 소리 하는군. 지금 쉬는 게 문제야? 그 끔찍한 곳에서 공을 던져야 하는 우리 투수들을 생각해봐.”
“홀리 쉣…….”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속한 콜로라도 로키스.
해발 1,610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투수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쿠어스 필드를 홈으로 사용하고 있는 팀.
야구판에서 쿠어스 필드의 악명과는 별개로 사실 그들의 연고지인 덴버는 미국 내에서 살기 좋기로 손꼽히는 도시 중 하나다.
인구 70만이 넘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물 맑고 공기 좋고, 크게 북적이지도 않는, 그래서 은퇴한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
“젠장, 이번에는 홈런을 몇 방이나 맞으려나. 끔찍하군.”
“그나마 다른 리그라는 게 다행이야. 저놈들하고 1년 내내 경기를 해야 했다면 난 미쳐버렸을지도 몰라.”
투수들이 쿠어스 필드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고지대에 위치했기에 공기의 밀도가 낮고, 그러다 보니 공의 마찰력이 줄어들고, 이는 무브먼트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반면 공기 저항이 낮으니 타구는 더욱 멀리 날아가게 되고, 다른 구장 같으면 외야 플라이로 끝날 공이 홈런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희박한 공기 탓에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건 덤이다.
“다들 일찍 자 둬. 아침에 일어나서 몸 풀 때 너무 급하게 움직이지 말고.”
늦은 저녁, 덴버 시내 호텔에 짐을 푼 시애틀 선수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아마도 이번 3연전이 꽤 힘든 경기가 될 거라 생각하며.
* * *
그 예감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5선발 댈빈 슈워츠가 등판한 1차전에서 시애틀은 9 대 4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한수혁이 2타점 2루타, 타이 존슨이 안타 세 개를 터뜨리며 분전했지만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2차전, 시애틀의 마운드에 오른 건 이 팀의 1선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라이언 티보우였다.
“라이언, 오늘은 투심과 스플리터 위주로 가보자고. 내 말 이해했지?”
“좋아, 브루스.”
벌써 8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시애틀의 배터리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100마일에 가까운 포심과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하는 라이언이지만 오늘만큼은 로테이션을 조금 달리 갈 필요가 있었다.
쿠어스 필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땅볼을 유도해야만 한다.
커브나 싱커를 잘 던지는 투수들이 그나마 쿠어스 필드에서 제법 괜찮은 성적을 올리는 이유다.
현재 라이언 티보우가 던질 수 있는 구종 중 땅볼 유도에 가장 특화된 공은 투심.
당연히 상대 타자들도 그걸 노리고 들어오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헤이, 한.”
“왜?”
“선취점을 부탁해. 라이언이 우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누가 울… 하아…….”
라이언 티보우와 브루스 매튜스 배터리의 농담을 뒤로하고 한수혁이 대기 타석에 들어섰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7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8번 2루수 리암 랜드먼
9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선발투수 라이언 티보우
지난 몇 경기에서 돌아가며 휴식을 취한 시애틀의 주전 라인업이 모처럼 만에 총출동했다.
다만 2루수의 경우 수비력에 강점이 있는 주전 조나단 오웬스 대신 말린스에서 이적해온 리암 랜드먼이 대신 들어섰다.
어차피 수비보다는 공격에서 승부가 날 거라는 벤자민 감독의 판단이었다.
“플레이!”
심판의 사인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역시 시애틀의 선봉장 역할을 맡게 된 데릭 플레밍이 투수의 초구를 힘차게 받아쳤다.
따아악!
그런데,
맞는 순간에는 평범한 우익수 플라이가 될 것 같던 타구가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날아갔다.
“어, 어, 어, 저, 저거!”
“달려! 데릭! 달리라고!”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데릭이 죽을 힘을 다해 베이스러닝을 시작했다.
1루를 돌아 2루로, 2루를 돌아 3루로,
마치 엔진이라도 달린 듯 계속 날아간 공이 펜스 최상단에 맞고 그라운드 안으로 떨어졌다.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린 데릭이 3루에서 거친 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힘든 곳에서 3루까지 내달렸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데릭을 위해 잠깐 타임이 요청되고, 그가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야 경기가 다시 재개되었다.
그리고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시즌 66경기 만에 홈런 30개를 기록한 그가 또 한 번 투수의 초구를 잡아당겼다.
따아아아악!
이번에는 힘들여 달릴 필요도 없었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알 수 있었던 거대한 타구.
타구가 넘어가는 걸 끝까지 확인한 한수혁이 배트를 뒤로 휙 집어 던지고 천천히 1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엄청난 난타전의 시작 말이다.
* * *
– 대단합니다! 10 대 5으로 앞서던 시애틀 매리너스가 6회초 9번 조쉬 올리버 선수의 시즌 두 번째 홈런으로 다시 한 점을 추가, 점수는 이제 11 대 5까지 벌어졌습니다.
– 쿠어스 필드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어메이징 그 자체군요.
– 고 위원님, 지금까지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주시죠.
– 네, 오늘 시애틀에서는 한수혁 선수가 홈런 1개, 2루타 1개, 안타 1개로 사이클링 히트에서 3루타 한 개가 모자란 활약을 보이고 있고요. 그 외 타이 존슨 선수가 3안타 1타점을 기록하는 등 타자들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6회까지 11점을 득점했습니다.
– 로키스 선수들도 만만치 않았죠?
– 맞습니다. 시애틀의 1선발 라이언 티보우를 상대로 5회 말까지 5점을 뽑아냈죠. 재미있는 건 그 5점이 모두 싱글홈런으로 기록한 점수라는 겁니다.
– 와우, 메이저리그를 본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라이언 티보우 선수가 저렇게 홈런을 계속 맞는 건 처음 보는 듯합니다.
– 그렇죠. 누가 뭐래도 아메리칸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오늘 경기에서 허용한 홈런 다섯 방 중 제대로 맞은 건 단 하나에 불과합니다. 사실 다른 타구들은 쿠어스 필드가 아니었다면 외야 플라이가 되었을 공이었어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런 것도 야구인걸요.
– 벤자민 감독의 입장도 난처할 것 같습니다. 6회 초에 다섯 점 차, 투수를 바꾸기도, 안 바꾸기도 애매하죠?
– 아직은 좀 더 끌고 가야겠죠. 다섯 점을 내주긴 했지만 전부 단발성 홈런이었고, 투구 수도 70개밖에 안 되거든요. 무엇보다 이 팀의 1선발 아니겠습니까? 제가 벤자민 감독이라면 그대로 올려 보낼 거 같습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이곳은 시애틀 매리너스와 콜로라도 로키스 간의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쿠어스 필드입니다.
* * *
“후욱후욱.”
“라이언, 조금 더 던질 수 있겠지?”
“후우, 네. 얼마든지요, 감독님.”
“좋아, 이미 맞은 홈런은 잊어. 여긴 쿠어스 필드니까. 자넨 오늘도 에이스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그러니까 나가서 보여주라고. 시애틀의 1선발이 누구인지 말이야.”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던 라이언 티보우가 감독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마운드로 걸어 올라갔다.
매 이닝 시애틀의 공격이 길어지며 어깨가 식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버텨줘야 한다.
감독의 말처럼 자신은 시애틀의 1선발이니까.
물론 성적만 놓고 보면 한수혁과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지만, 얼마 전 그와 이야기를 나눈 후 선발 순서와 관련된 이야기는 그만두기로 했다.
‘라이언, 감독님에게 또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며.’
‘음? 쓸데없는?’
‘그래, 선발 순서 말이야.’
‘그건 쓸데없는 게 아니라…….’
‘라이언, 난 그렇게 생각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보지.’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투타 겸업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가끔은 체력 관리를 위해 로테이션에서 빠질 수도 있지.’
‘그거야 그때 그때 순서를 조절하면…….’
‘내 말 끝까지 들어. 물론 네 말이 맞아. 그때마다 순서를 조절하면 별 문제는 없겠지. 하지만 말이야. 난 한 팀의 에이스, 1선발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음?’
‘어떤 일이 있어도, 어깨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운드를 지킬 수 있는 선수, 팀의 우승을 위해서라면 뭐든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투수, 그게 바로 에이스 아닐까?’
‘…….’
‘난 시애틀에서 그 자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게 너라고 믿어. 그러니 앞으로는 딴 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공이나 던지라고, 친구.’
다른 건 모르겠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어릴 적부터 시애틀의 팬이었던, 그리고 시애틀의 팜에서 성장해 팀의 에이스 자리까지 올라간 라이언은 이 팀의 우승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한수혁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성적만 놓고 보면 그가 에이스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자신을 믿고 에이스 자리를 맡긴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플레이!”
오늘 라이언은 이번 시즌 들어 최악의 피칭을 보이고 있다.
5회 말까지 매 이닝 홈런을 맞았고, 벌써 5점이나 내줬다.
하지만 라이언은 어깨에 힘이 남아 있는 한 마운드를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누가 던져도 힘든 이곳에서의 싸움을 다른 투수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에이스의 의지를 담은 공이 상대 타자를 향해 날아갔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