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7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72화(273/412)
#272. 난타전
내가 생각하는 한 팀의 1선발, 에이스의 자격은 그렇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도 끝까지 남아 팀을 지탱할 수 있는 선수.
예전 워리어스의 이만식 선배와 임준영 선배 정도는 되어야 에이스라 불릴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심으로 라이언이 이 팀의 에이스 자리에 가장 걸맞은 선수라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애틀 매리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지만 나는 예전의 이만식 선배처럼, 혹은 지난 시즌 워리어스에서의 나처럼,
이 팀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서 있지 않다.
물론 이번 지분 인수로 인해 앞으로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그렇다는 거다.
“플레이!”
어쨌든 내 눈에는 시애틀의 가장 든든한 에이스로 보이는 라이언 티보우가 6회말 로키스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번에도 꽤 큰 타구가 나오긴 했지만 중견수 데릭의 호수비가 나오며 오늘 게임 들어 첫 무실점 이닝을 기록했다.
6이닝 5실점을 했지만 여전히 투구 수가 88개에 불과한 라이언은 조금 더 투구를 이어갈 생각인 듯했다.
태블릿을 들고 자신의 지난 투구 영상을 확인하는 라이언을 보며 천천히 그라운드로 걸어 나갔다.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찬 에이스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이봐, 우리끼리 얘기를 해봤는데 네가 첫 타석에서 보인 그 시건방진 배트플립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어. 하지만…….”
“닥쳐, 너희들이 뭔데 그걸 넘어가네 뭐네 결정하는데? 불만 있으면 내 머리로 공을 던져봐. 단, 한 번에 날 죽이지 못하면 네 턱이 날아갈 거다. 그리고 나는 내일 마운드에 올라 너희 팀 1번 타자의 대가리를 박살 낼 거야. 그러니 자신 있으면 덤벼봐.”
“…개자식.”
“입 닥치고 야구나 해.”
선심 쓰듯 이야기하는 포수 놈의 입을 닫게 만들어준 후 투수를 노려보았다.
2030년이 되었건만 이 메이저리그 꼰대 놈들의 꽉 막힌 사고 방식은 도통 변할 줄을 몰랐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배트 플립으로 시비를 걸어 온단 말인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신 있으면 던져봐.”
“…….”
확인사살을 해준 후 다시 투수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심판이 우리 대화를 모두 들은 이상 어지간한 꼴통이 아니면 날 맞힐 시도는 하지 못할 것이다.
아, 물론 투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머저리라면 포수의 리드와 상관없이 내 머리로 공을 던질 수도 있겠지.
피할 생각은 없다.
겨우 이런 놈들에게 겁을 집어먹을 바엔 야구를 때려 치는 게 낫다.
슈웅
파앙
“볼.”
“역시나 겁쟁이들이 맞았군.”
“개자식, 죽여버릴 테다.”
“원래 무는 개들은 짖지 않는 법이지.”
“Fuck you.”
흠, 생각해보니 물기 전에 짖는 개도 있긴 있더라. 민예린이 키우는 치와와가 딱 그런 놈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스코어 11 대 5, 장소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친화적 구장인 쿠어스 필드.
거기에 나는 홈런 신기록에 대한 도전 의지를 공공연하게 밝힌 상황.
누가 봐도 홈런을 노린다는 걸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나를 피하고 뒤 타자를 상대할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주자를 쌓아 놓고 큰 걸 맞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기에 노린다.
드드득
그립을 조이고, 오늘 저 투수가 계속 던지고 있는 바깥쪽 낮은 코스에 포커싱을 맞추고,
투수의 손에 감춰졌던 공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바로 하나, 둘,
부웅
따아아아악!
“빌어먹을! 개자식들! 이제 그만 맞아!”
“저놈한테 홈런을 몇 개나 맞는 거야? 어?”
관중들의 야유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날아가는 타구를 감상했다.
뒤에서 포수가 뭔가 또 궁시렁거리는 것 같았지만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렇게 계속 날아가던 타구가 외야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졌다.
콰앙!
“엿먹어! 이 개자식아! 가져가! 도로 가져가라고!”
분노한 관중이 홈런볼을 잡아 다시 그라운드 안으로 던져버렸다.
허리를 숙이고 그 공을 집는 콜로라도 중견수의 뒷모습이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하지만 적의 아픔은 곧 나의 기쁨.
1루를 돌아 2루로, 3루로, 그리고 홈으로,
쿠웅
홈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또 한 번의 야유가 쏟아졌다.
“타이, 저 녀석 바깥쪽 낮은 공은 이제 못 던질 거예요.”
“흐흐, 좋아. 참고하지.”
역시 쿠어스 필드는 이 맛이라니까.
* * *
“또 보는군. 가만, 벌써 이닝이 교대된 건가? 나는 수비를 한 기억이 없는데.”
“엿이나 먹어, 개자식아.”
“흠, 입이 거친 놈이군. 좋아, 그럼 이번에는 진짜 내 머리로 하나 던져봐. 불쌍해서라도 하나 맞아줄 테니까.”
“…….”
내 홈런으로 시작된 7회초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부터 시작해 4번 척 클락까지 이어진 백투백투백 홈런, 거기에 안타 두 개 이후 또다시 터진 브루스의 석 점 홈런.
콜로라도 로키스의 투수가 또 한 번 바뀌고, 그 바뀐 투수가 8번 타자를 잡아내며 간신히 숨을 돌리나 싶었지만.
이어진 볼넷과 안타로 또다시 원 아웃 주자 1, 2루 찬스가 만들어졌고,
“자, 그럼 야구를 해보자고.”
7회 초 내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전 타석에서 나를 노려보던 호전적인 놈은 어디 가고, 흐리멍텅한 동태 눈깔을 한 애송이 하나가 마운드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얼마 전 마이너에서 콜업된 애송이인 모양인데, 이런 상황에서 데뷔전 무대를 치르게 된 것에 대해 명복을 빌어줘야 할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빅리그 무대를 밟게 된 걸 축하해줘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기술의 발전은 참으로 놀라워. 안 그래, 친구?”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입이 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점수 차를 생각해서 내가 한 번은 넘어가주지. 어쨌든 내 말은 진심이야. 저기 마운드 위를 봐. NASA에서 마침내 공 던지는 로봇을 만든 모양이야. 온몸이 하얀 걸 보니 혈색 같은 건 아직 구현이 안 된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놀랍지 않아?”
“Fuck you.”
“오늘 두 번째 퍽큐로군. 좋아. 농담은 그만하고 다시 승부에 집중하도록 하지. 물론 집중하지 않아도 저런 시체의 공을 쳐내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이번에는 진짜 머리로 던져주지.”
“얼마든지.”
그간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메이저리거는 정말 좋은 직업이다. 최소 수십만, 많게는 수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면서 이렇게 공짜 배팅 연습까지 할 수 있다니.
슈웅
따아아아악!
“좋아, 이번 타구는 좀 더 멀리 날아가겠군.”
“…….”
“흠, 방금 전까지 내 뒤에 멍청이 하나가 앉아 있었던 거 같은데.”
“…….”
“풉, 이봐. 이제 그만하고 나가봐. 이 친구 이러다 울겠어.”
“네, 물론이죠. 저는 심판의 권위를 누구보다 존중합니다.”
“좋아, 잠깐 다른 일 하고 있을 테니 얼른 한 바퀴 돌고 들어와.”
“옛설.”
처음에는 대부분의 심판들이 날 아시아에서 건너온 루키 정도로 취급했지만, 계속 스탯이 쌓이고 팬들의 주목도가 올라가며 이렇게 농담을 받아주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런 심판과 함께 로키스 포수 놈을 실컷 놀려준 나는 다시 1루를 향해 천천히 출발했다.
“우우우우!”
“개자식! 넌 덴버에 뼈를 묻게 될 거다!”
“오늘 내 리볼버가 네 머리통을 향해 불을 뿜게 될 거다!”
“젠장, 빌어먹을 로키스! 이 따위 투수밖에 없는 거야? 제대로 된 놈을 올리라고!”
이번 홈런으로 스코어는 이제 20 대 5로 벌어졌다.
로키스 덕아웃이 잠잠한 걸 보니 저 애송이 투수에게 계속 경기를 맡길 모양이다.
좋다.
너무 큰 게 많이 나오면 다음 경기 타격 밸런스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이곳은 쿠어스 필드다.
다음 시리즈에 애를 먹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칠 수 있을 만큼 치는 게 맞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 저 녀석은 허수아비예요. 아마 존 안으로는 공이 안 들어올 거예요. 차분히 기다리든지, 아니면 도망가는 공을 후려쳐보는 것도 좋겠죠.”
“서 있는 것도 힘드니 기다리는 것보다는 때리는 쪽을 택해야겠군.”
“좋은 선택이에요.”
우리 팀의 공격은 끝날 줄을 모르고, 분노한 관중들이 핫도그를 집어 던지고,
흥분한 민예린은 안전망을…….
어라? 쟤가 왜 저기 있지? 오늘 뉴욕에서 스튜디오 작업 있다고 한 거 같은데?
* * *
7회 초 공격에서 무려 18명의 타자가 등장한 시애틀은 그 이닝에만 13점을 내며 구단 역사상 한 이닝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비록 메이저리그 역대 기록인 18점에는 못 미치지만 그건 무려 1883년에 일어난 일이니까.
매 이닝 점수를 내주며 고전하던 라이언은 6회와 7회에는 깔끔한 투구로 로키스 타자들을 침묵시켰다.
24 대 5로 벌어진 스코어, 이쯤 되면 그냥 헛스윙을 하고 덕아웃에 들어가 쉬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나는 올 시즌 약쟁이가 기록한 단일 시즌 홈런 기록을 깨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또 보는군, 친구.”
“…….”
“이제는 야구만 하기로 마음먹은 건가, 좋아. 바람직한 자세야.”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이번 머저리는 저번 머저리보다…….”
음,
나도 모르게 또 시비를.
“방금 건 실수야.”
“Fuck you.”
“이젠 그 말만 하기로 한 건가? 좋아, 내 실수도 있으니 관대하게 넘어가지.”
내가 오늘 집요하리만큼 이 포수 놈을 괴롭히는 건 회귀 전 이 녀석과 시비가 붙어 일주일 정도 결장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내 입지와 처지가 달라졌기에 아마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열받는 건 열받는 거다.
슈웅
파웅
“볼.”
“그냥 빨리 빨리 스트라이크 던지고 경기를 끝내자고. 이제 그만 가서 쉬어야지.”
“Fuck you.”
“깜빡했군. 네가 그 말밖에 못 하는 멍청이라는 걸 말이야.”
“Fuck you.”
됐다.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이제는 다시 야구에 집중할 때다.
타석에서 반 발 정도 물러나고, 높은 공에 대비해 그립을 조절하고,
슈웅
따아아아악!
“우우우우우!”
“그래! 다 같이 죽자! 이 개자식들아! 한 놈에게 홈런 4개를 맞을 거면 그냥 여기 불지르고 다 같이 죽자고!”
“퍼킹 로키스! 난 너희가 싫어! 너희를 증오해!”
“시애틀 개자식들아! 그만 패! 그만 패라고!”
이번에는 좀 힘들겠지 싶었는데 타구가 계속 쭉쭉 뻗어간다.
그렇게 또 하나의 공이 담장 밖으로 넘어갔다.
나를 보는 로키스 팬들, 그리고 선수들의 눈빛이 이제는 분노를 넘어 원망으로 변해버렸다.
이건 좀 위험하다.
배트를 살짝 내려놓고 아주 얌전하게 그라운드를 돌았다.
이대로면 정말 호텔까지 따라와 불을 질러버릴 것 같은 분위기여서.
* * *
[시애틀 매리너스,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1차전 31 대 5 대승] [23년 만에 깨진 한 경기 한 팀 최다 득점] [분노한 콜로라도 팬들, 경기가 끝난 후 한 시간 동안 야구장 점거하며 농성 이어가] [외야 펜스를 뒤로 밀 것, 감독을 교체할 것, 투수를 더 사올 것, 무슨 수를 쓰던 한수혁을 트레이드해 올 것, 팬들의 요구에 로키스 단장 “그중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고민해 보겠다.”] [8타석 2볼넷 6타수 6안타 4홈런 8타점 기록하며 시즌 34홈런 돌파한 한수혁 “타격감이 유난히 좋은 하루였다.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 [한수혁을 처음 본 로키스 팬들 경악 “저건 대체 뭐 하는 놈인가?”] [1998년 새미 소사가 기록한 월간 최다 홈런 기록(20개), 한수혁은 깰 수 있을까?] [7이닝 5실점하고도 승리투수가 된 라이언 티보우 “타자들의 헌신에 감사한다. 그들은 최고의 야구선수이며, 최고의 동료다.”] [1승 1패 주고받은 양 팀, 내일 마지막 3차전 치른다. 매리너스 한수혁 vs 로키스 에반 산체스 맞대결에 야구팬들 관심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