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7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75화(276/412)
#275. 죽여버릴 거다
지난 첫 번째 맞대결에서 한수혁에게 사이클링 히트와 퍼펙트게임까지 내주며 완패를 당한 뉴욕 양키스.
설욕을 위해 시애틀을 찾은 그들이 다시 한수혁과 만났다.
양키스 선수들을 더욱 분노케 한 건 사이클링 히트와 퍼펙트라는 대기록보다는 홈런을 친 후 자신의 타구를 감상하는 등 경기 내내 이어졌던 한수혁의 건방진 태도에 있었다.
‘하나의 양키스’라는 이름 아래 모여든,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신념 하에 스스로 등판의 이름을 떼어버린 그들에게 그건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시애틀과의 정규시즌 마지막 4연전, 독기를 잔뜩 품은 양키스 선수들이 한수혁을 맞이했다.
하지만,
따아아아아악!
1회말 주자 없는 상황에서 한수혁이 또 어마어마한 타구를 때려냈다.
시즌 37호 홈런을 때려낸 그가 허공에 배트를 집어 던지고 가만히 서서 타구를 바라보았다.
양키스 선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진짜 덤벼드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오늘 한수혁은 뭔가 이상했다.
타석에서 시비를 걸어오는 포수도, 지난 경기의 보복인지 몸 가까이 공을 던진 투수도, 마치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무시해 버렸다.
그러고는 저런 말도 안 되는 홈런을 날려버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양키스 선수들은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를 건들면 뭔가 큰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무슨 일인지 몰라도 크게 분노한 상태라는 걸.
강자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의 본능이다.
야구 선수이기에 앞서 인간인 그들은 한수혁에게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고, 그 누구도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를 눈치챈 건 상대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시애틀 동료들 역시 한수혁의 상태를 알아챈 상태였다.
하지만 그냥 못 본 척 무시했다.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개인의 사정일 뿐, 한수혁은 그라운드 위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그럼 굳이 왜 그러냐고 물을 필요는 없는 거다.
커다란 홈런을 때려낸 한수혁이 동료들과 주먹을 몇 번 맞부딪힌 후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전히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이런 내 태도가 팀 분위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의 기분 같은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지금 내 기분은 회귀 후, 아니, 회귀 전을 통틀어서도 최악이었다.
어젯밤, LA호텔에서 만난 그녀.
내 부탁을 받은 민예린이 2년 넘는 조사 끝에 마침내 찾아낸 그녀.
하지만,
그녀가 아니었다.
그랬다. 그건 분명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건네준 초상화와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거기에 오렌지카운티에 살고, 음악을 하고, 그 외 몇 가지 특징들까지 모두 부합되는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그녀에게 양해를 구한 후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순간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
그 여자는 내 기억 속 그녀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녀에 대한 몇 가지 단서들, 예를 들어 그녀가 직접 말해준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 희망, 꿈,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과 말하는 태도.
그 어느 것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었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민예린이 찾아온 그녀는 내 기억 속 그 사람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은 전혀 다른, 완벽한 타인이라는 걸.
만남이 끝날 때까지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하는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민예린과 단 둘이 마주 앉았다.
‘오빠… 저분이 아닌 거죠?’
‘응, 아닌 거 같아. 아니, 확실히 아니야.’
‘그런데 오빠.’
‘…말해봐, 예린아.’
‘아직 한 번도 안 물어본 거고, 안 물어보려 했지만…….’
‘내가 찾는 여자가 누구냐고?’
‘네.’
나는 민예린에게 진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더 이상은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내가 많은 걸 빚진 사람, 그리고 무너지는 나를 지탱해주려 애쓴 사람.’
‘그럼 혹시… 과거의 여자친구? 애인?’
‘응?’
‘정말 그런 거라도 상관없어요. 예전의 일이니까요, 전 그냥…….’
‘예린아.’
‘네?’
‘내가 너한테 예전의 애인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할 사람 같아?’
‘…아뇨.’
‘후우, 그래. 예린아. 이제 이 일은 그만하자.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네? 정말 그만두신다고요?’
‘그래, 일단 시애틀로 돌아가자.’
나는 갈 길을 잃었다.
더 이상 그녀를 찾아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맞건 안 맞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기에 기억할 거리조차 없는 사람을 앉혀 놓고,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집에 가자.’
지난 몇 년 동안 계속되었던 내 여정은 거기서 막을 내렸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과거는 없다는 걸, 그렇기에 그녀를 완벽히 잊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그래, 지금 내가 힘들어하는 건 그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마음 때문이겠지.
“자, 다시 나가자! 고! 고! 매리너스!”
동료들의 외침에 의식이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이 팀의 이름인 매리너스는 뱃사람(Mariner)을 뜻한다.
나는 이 드넓은 미국 땅에서 항로를 잃은 뱃사람일지도 모르겠다.
* * *
“타이슨,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지만 오늘은 안 돼. 참아.”
“하지만 루카스.”
“네가 날 친구, 아니, 캡틴이라 생각한다면 내 말을 들어. 난 네가 저 녀석에게 얻어맞고 시즌 아웃이 되는 걸 원하지 않아.”
“뭐? 내가 저놈에게 맞을 거라고? 장난해?”
“설사 반대가 된다 해도 마찬가지야. 네가 저 녀석을 두드려 패고 출장 징계를 당하면? 당장 다음 번 레드삭스 놈들하고 경기에는 누가 던지지?”
“…빌어먹을.”
“나도 알아. 한수혁 저 녀석이 조금 멋대로 군다는 거. 하지만 세상이 변했어. 이제 팬들도 배트 플립을 보며 즐기는 시대라고. 어쩌면 우리들만 이 세상에서 뒤떨어진 걸지도 모르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말이야.”
첫 타석에서 또 홈런 후 배트플립을 당하자 당장이라도 한수혁에게 덤벼들 것처럼 흥분한 친구이자 오늘의 선발투수인 타이슨 바샴을 양키스의 주장 루카스 앤더슨이 간신히 달랬다.
저 멀리 대기 타석에 서 있는 한수혁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어떻게든 녀석을 데려와야 했다.
자신이 존경하는 유일한 현역 선수인 타이 존슨은 한수혁과 뛰기 위해 팀까지 옮겼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자신도 뭔가 했어야 했다.
멍청한 단장과 사장이 한수혁에게 팀의 규율을 들먹이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그가 원한다면 수염이나 머리도 기르게 해주고, 그게 뭐든 원하는 걸 들어줬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플레이!”
양키스를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생각하는 캡틴 루카스 앤더슨이 마운드 위 투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양키스의 에이스 역할을 해주고 있는 타이슨 바샴.
방금 전 그에게 한 말은 진심이었다.
현 시점 빅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성적을 올리고 있는 한수혁.
그런 한수혁을 따라잡기 위해 그와 관련된 모든 영상을 찾아보고 분석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터무니없이 강한 선수인지.
앞의 이야기는 실력에 대한 것이고, 뒷이야기는 주먹과 관련된 것이다.
한수혁이 한국과 미국에서 여러 선수들을 박살 내는 영상을 본 루카스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이 이 팀의 캡틴으로 있는 한 한수혁과의 벤치 클리어링은 막아야겠다고.
지금까지 한수혁과 맞붙어 몸이 성한 선수가 단 하나도 없다.
최하 몇 주, 길게는 한 달 이상 부상으로 결장해야 했고, 그 결과 경기 감각이 엉망이 되어 팀과 개인이 모두 추락하는 최악의 참사로 이어졌다.
슈웅
따악
“아웃!”
시애틀의 1번 타자를 땅볼로 잡아낸 타이슨 바샴이 다음 타자 한수혁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루카스의 머릿속에 뭔가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당황한 그가 재빨리 타임을 요청하려 했지만…….
빠악!
이미 때는 늦었다.
타이슨 바샴이 던진 초구가 한수혁의 머리 쪽으로 날아갔고, 뭔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흥분한 타이 존슨과 시애틀 선수들이 우르르 마운드를 향해 달려 나갔다.
“맙소사……!”
* * *
“빌어먹을 개자식들! 죽여버려!”
“타이! 잠깐만, 타이! 흥분하지 말고!”
“비켜! 저 자식을 내가 죽여버릴 거다!”
투타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오늘날 시애틀이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게 만든 원동력인 한수혁이 머리에 공을 맞고 쓰러졌다.
그 사실에 분노한 시애틀 선수들이 일제히 타이슨 바샴을 향해 달려 들었다.
하지만 양키스 선수들이 한 발 빨랐다.
1루에 있던 루카스 앤더슨을 비롯한 내야수들이 투수를 보호하는 사이, 외야와 덕아웃에 있던 나머지 선수들이 달려 나와 시애틀 선수들과 대치했다.
“개자식! 넌 내가 죽인다!”
“덤벼 봐! 덤벼 보라고!”
흥분한 브루스 매튜스의 외침에 타이슨 바샴이 덤벼보라는 듯 제스쳐를 취하며 맞받아쳤다.
당황한 심판들이 양팀 선수들과 코치들을 떼어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흥분한 시애틀 팬들은 안전망에 달라붙어 앞뒤로 마구 흔들어댔다.
“넘어뜨려요! 내가 다 배상합니다! 저 망할 놈들을 죽여버리자고요!”
“오오오! 좋아! 가자! 망할 양키스 놈들을 죽여버리러!”
민예린의 주도 하에 관중들이 안전망을 무너뜨리는 사이, 양팀 선수들이 대치한 곳곳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벌어졌다.
끝까지 타이슨 바샴에게 다가가려던 브루스 매튜스에게 양키스 선수 누군가가 태클을 먹였고, 그걸 본 척 클락이 그 뒷덜미를 끌어내 펀치를 날려버렸다.
퍼억!
“으윽!”
“그만! 퇴장! 퇴장이야! 그만하라고!”
심판들의 노력에도 사태는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차! 영차!”
“조금만 더!”
1루와 3루 안전망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흥분한 타이 존슨을 말리던 루카스 앤더슨이 그의 팔꿈치에 얻어맞아 코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그걸 본 양키스 3루수가 타이 존슨에게 덤벼들다 목이 잡혔고, 그 위를 데릭 플레밍이 덮쳐버렸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젠장, 안 되겠어. 어쩌지?”
“안전요원에게 협조를 요청해. 저기 관중석이 무너지면 다 끝장이야.”
“좋아, 자네는 저쪽을 맡아. 어어, 안 돼! 무기는 안 돼!”
여기저기서 유혈사태가 벌어지자 심판들이 급기야 안전요원까지 호출했다.
출동한 요원들이 관중석 앞으로 달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여러분이 체포될 수도 있어요!”
“체포해! 체포당하더라도 저 망할 놈은 죽여야겠으니까!”
그야말로 혼돈의 아수라장.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든 양키스의 투수 타이슨 바샴은 이미 코치들의 보호를 받으며 덕아웃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타이슨, 진정해. 일단 덕아웃으로 들어가. 저기 관중들이 난입하면 다 끝장이라고.”
“젠장, 덤빌 테면 덤벼봐! 이 시애틀 촌놈들아! 난 타이슨이다!”
“쉿! 그만 좀 하라고! 제발!”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니면 드디어 한수혁에게 복수를 성공했다 생각하는지 얼굴이 벌개진 타이슨 바샴이 계속 관중들을 도발했다.
그렇게 상황이 점점 악화되던 그때,
스륵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머리에 공을 맞고 쓰러져 의료진을 기다리던 한수혁,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어디론가 돌진했다.
타이슨 바샴과 몇몇 코치들이 앉아 있는 양키스 덕아웃으로 말이다.
“어엇! 뭐야! 안 돼! 막아! 막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