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7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76화(277/412)
#276. 구멍가게 주인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이 홈 플레이트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고작 0.4에서 0.5초.
내가 복싱을 배우지 않았다면, 그래서 눈앞에서 날아오는 프로 복서의 주먹을 피하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오늘 나는 큰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글러브 속 감춰졌던 하얀 공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직감했다.
저 공이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올 거라고.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그 공을 피하려 노력했다.
빠악!
그리고 성공했다.
머리 대신 배트 손잡이 부근에 먼저 공이 맞았고, 그 공이 튕기며 내 헬멧을 강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충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정전이 찾아온 듯 눈앞이 깜깜해지며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순간 찾아온 감정은 분노가 아닌 당혹감이었다.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아직 할 일이 많은데,
당혹감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뜬금없이 민예린과 기억 속 그녀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하나로 합쳐졌다.
“이봐, 한! 괜찮아? 젠장, 앰뷸런스는 왜 안 들어오는 거야!”
“건드리지 마! 일단 손은 대지 말고! 오, 하느님!”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이 차오르던 그 순간,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리고 엄청난 고함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지잉 하고 울리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청력이 서서히 돌아왔고, 눈꺼풀을 시작으로 내 몸의 통제권이 하나하나 돌아오기 시작했다.
“됐다. 앰뷸런스가 들어왔… 헉! 한! 이봐! 한수혁! 뭐 하는 거야? 안 돼!”
“누가 저 친구 좀 잡아! 잡으라고!”
의식을 차리자마자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목표물을 찾았다.
있었다.
내 머리로 공을 던진 놈, 전통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다른 선수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쓰레기.
“안 돼!”
대부분의 선수들과 코치들, 그리고 심판들이 마운드 근처에 모여 있는 상황.
놈에게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건 코치 몇 명이 전부였다.
“자, 자, 잠깐, 마, 말로! 컥!”
“우아아악!”
“젠장, 막아! 막으라고!”
코치 셋을 밀쳐버리고 타이슨 바샴의 코 앞에까지 도착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놈이 냄새나는 입을 열어 뭔가를 주절거리려 했다.
“애초에 네… 커억!”
“닥쳐! 이 개자식아!”
그런 병신 같은 말 따위, 들어줄 생각은 없다.
멱살을 잡아채고 곧바로 그 더러운 주둥이에 한 방.
퍼억!
“큽…….”
냄새나고 더러운 입이 단번에 닫혔다. 뒤로 늘어지려는 놈의 멱살을 앞으로 당기며 또 한 방.
퍼어억!
닫혀 있던 놈의 주둥이가 열리고 거기서 누런 치아 몇 개가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끄르르륵…….”
무너지려는 놈을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또 한 방.
퍼어억!
옆구리에 틀어박힌 펀치에 놈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정신을 차리고 달려든 양키스 코치 셋이 내 팔과 등에 매달려 소리쳤다.
“그만! 그만! 그러다 진짜 죽어! 그만!”
“젠장, 무슨 힘이 이렇게… 다들 이쪽! 이쪽으로!”
“타이슨부터 밖으로 빼내! 저기 두지 말라고!”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몇몇 선수들이 달려와 내 팔과 다리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얼굴이 파랗게 질린 코치 하나가 쓰러진 타이슨의 목덜미를 잡아 덕아웃 밖으로 끌고 나갔다.
와장창!
그 순간 관중들과 선수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안전망이 무너져 내렸다.
“죽어! 이 더러운 양키스 자식들아!”
“헉! 도망가! 다들 도망가라고!”
성난 군중들의 돌진에 당황한 양키스 선수들이 사방팔방으로 도망쳤다.
소식을 듣고 출동한 시애틀 경찰들이 소리를 지르며 관중들의 앞을 막아섰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빨리 뒤로 물러서세요! 여러분은 폭도가 아닙니다!”
“닥쳐! 다 죽여버릴 거다! 감히 한수혁을 건드리다니!”
T모바일파크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 * *
“준비됐습니다. 단장님,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아, 나가자고.”
양 팀 선수와 코치 합쳐 총 12명이 퇴장당한,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처절했던 경기가 끝났다.
최종 스코어 8 대 7 시애틀의 역전승.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었다.
오늘 일어난 벤치클리어링으로 한수혁과 타이 존슨, 데릭 플레밍, 브루스 매튜스, 척 클락 등 시애틀에서만 5명이 퇴장을 당했다.
퇴장도 퇴장이지만 그들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는 데 다니엘 단장은 분노하고 있었다.
특히나 한수혁, 자신이 3년 동안 공을 들여 데려온, 시애틀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줄 구세주가 머리에 공을 맞고 쓰러졌다.
다행히 공이 배트에 먼저 맞으며 충격이 조금 완화되긴 했지만, 그가 쓰러졌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부상을 입은 선수들은 검사를 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제는 자신의 차례다.
아마도 지금쯤 사무국에서는 이번 벤치 클리어링과 관련된 징계수위를 조절하는 회의가 준비되고 있을 것이다.
다니엘은 오늘 벤치 클리어링에 참가한 시애틀 선수들, 특히 한수혁이 징계를 당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타이슨 바샴의 부상이 심하다, 뭐 그런 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머리에 공을 던졌으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것이 다니엘의 생각이었다.
방금 전까지 수십 번을 가다듬은 연설문을 들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앉아 있던 기자들이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기자분들, 다들 자리에 앉아주세요. 질문을 받기 전에 먼저 저희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의 입장부터 밝히겠습니다.”
잠시 웅성거리던 기자들의 입이 하나둘 닫혔다.
그리고 마침내 다니엘의 입이 열렸다.
“먼저 이 자리에 앉아 계신 기자분들에게 묻겠습니다. 100년이 넘는 야구의 역사를 모두 살펴봐도 벤치 클리어링으로 인해 주먹을 주고받은 선수들 중 그 누구도 폭행죄로 처벌받은 적은 없습니다. 혹시 그 이유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
질문을 안 받겠다더니, 단장이 먼저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기자들 중 하나가 손을 들며 대답했다.
“범죄 구성요건해당성에 따라 위법 행위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 아닙니까?”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혹시 모르고 계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해드리면 현행법상 범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 책임 능력 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벤치 클리어링은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에서 예외 조항이 발생합니다.”
“그쪽으로는 지식이 없어서 그런데 구성요건해당성이 뭔가요?”
“좋은 질문이군요. 구성요건해당성, 예를 들어 벤치 클리어링에서의 물리적 충돌이 폭행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신체에 폭행을 가하는 구성 요건이 갖춰져야 하고, 이것이 위법이라 판단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잠시 말을 멈추고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폭행이 위법성에 해당되려면 그 행위가 법질서상 부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데 여기서 예외가 발생합니다. 흔히 말하는 정당방위는 폭행죄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위법하지는 않다고 판단되는 거죠. 이는 야구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기자회견을 소집해서 이런 얘기를…….”
기자의 말에 다니엘의 표정이 비장하게 변했다. 그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방금 전 말씀드렸듯이 현행법상 벤치 클리어링 도중 주먹이 오가는 행위, 특히 상대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당한 선수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건 정당방위로 판단하여 처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네, 그런데요?”
“오늘 경기에서 한수혁 선수는 심각한 목숨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100마일 가까운 속도로 날아오는 무기에 맨몸으로 노출된 거죠.”
“으음.”
“다행히 배트에 공이 먼저 맞아 큰 부상은 당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이 오늘 처음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마운드 위에 선 인성파탄자 놈들이 타자의 머리로 공을 던지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요.”
“그건 그렇죠.”
“타자의 머리로 공을 던지는 건 무기를 휘두르는 것과 동일한 특수 폭행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미합중국은 칼을 들고 설치는 상대를 총으로 제압해도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국가이고요.”
“틀린 말은 없군요.”
“네, 오늘 한수혁 선수는 타이슨 바샴 그 개자식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맨손으로 놈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 와중에 놈의 이빨 몇 대가 날아가고, 갈비뼈에 금이 가긴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입니까? 만약 경기장 밖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타이슨 그놈은 그 자리에서 총을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사람의 머리에 100마일짜리 공을 던졌으니까요!”
말하다가 흥분이 올라왔는지 숨을 한 번 들이쉰 다니엘 단장이 말을 이었다.
“이에 저희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오늘 정당방위를 한 한수혁 선수에게 과도한 징계가 가해질 경우 저희 구단은 그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또한 사무국에 제안합니다. 머리로 공을 던지는 행위에 대한 징계 강화, 그리고 이로 인한 벤클이 발생할 경우 상대 선수에 대한 징계 면제 등의 조항 신설을 공식 요청합니다.”
* * *
같은 시간 메이저리그 사무국을 대표하는 커미셔너의 사무실.
“저기… 정말 이대로 발표해도 괜찮겠습니까? 반발이 심할 텐데요. 특히나 스타인브레너 가문에서…….”
“이봐, 올리버.”
“말씀하십시오.”
“지금 양키스 구단주를 걱정할 때야? 시애틀 구단 뒤에 누가 서 있는지 몰라? 그쪽에서 콧김 한 번 뀌면 우리부터 시작해서 양키스, 아니, 이 야구판 자체가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흡……!”
“그리고 어차피 한 번 손을 댈 때가 되긴 했어. 투수들이 타자 머리를 노리는 행위를 너무 오래 지켜봐왔지. 다니엘 그 친구 말이 맞아. 다른 사람을 죽이려 했으면 본인도 죽을 각오를 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곧바로 발표하겠습니다.”
“좋아, 나가봐.”
[메이저리그 사무국, 시애틀 매리너스와 뉴욕 양키스 간 발생한 벤치 클리어링 관련 사후 징계 발표, 매리너스 한수혁 벌금 5천 달러, 사회봉사 20시간, 타이 존슨 벌금 5천 달러, 사회봉사 30시간, 데릭 플레밍 1경기 출장 정지, 브루스 매튜스 1경기 출장 정지, 척 클락 1경기 출장 정지, 뉴욕 양키스 타이슨 바샴 30경기 출장 정지, 벌금 5만 달러, 사회봉사 50시간, 샤킬 레너드 1경기 출장 정지, 그렉 조세프 2경기 출장 정지] [뉴욕 양키스 즉각 반발 “타이슨은 치악골과 늑골 골절을 당했다. 그런데 출장 정지도 아니고 고작 벌금 5천 달러? 게다가 타이슨에게 내려진 30경기 출장정지는 너무 과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시애틀 매리너스 “성에 차지 않지만 변화의 의지를 보인 사무국의 결정을 존중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 “머리를 향해 고의적인 빈볼을 던지는 행위를 근절시키겠다. 이는 선수 개인뿐만 아니라 야구판 전체를 좀먹는 행위다.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규정을 대폭 손질하고, 2030년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메이저리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뉴욕 양키스 구단주인 스타인브레너 가문 분노 “계속 이런 식이면 메이저리그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 양키스 없는 야구를 하고 싶은 건가?”]“조, 이 구멍가게 주인이 왜 이렇게 세상 무서운 줄 알고 설치지?”
“죄송합니다. 도련님,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알아서 해. 그리고 수혁이 형 검사 결과 어떻게 나왔는지 계속 체크하고.”
“알겠습니다.”
[입장문 발표 후 10분 만에 태도를 바꾼 스타인브레너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지금까지 모든 발언을 철회하고 사무국의 결정을 전면 수용하겠다. 한수혁 선수의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