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8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81화(282/412)
#281. 기록보다 중요한 것
초반 치열한 타격전으로 진행되던 경기가 갑자기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7회 말, 6 대 3으로 시애틀이 앞서는 가운데, 8회 초 2사 1루 상황에서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오늘 경기에서 타격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한수혁은 빅리그 데뷔 후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까지 단타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2번 타자 숏스탑 한수혁]“우아아아아!”
“안타 하나만 더 치면 돼! 한! 고작 안타 하나라고!”
“자이언츠 놈들 코를 납작하게 해줘! 제발!”
따로 시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타자들에게 사이클링 히트가 값진 기록이란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히트 포 더 사이클, 좀 더 부르기 쉬운 표현으로 사이클링 히트.
단타부터 시작해서 2루타, 3루타, 나아가 홈런까지,
한 명의 타자가 한 경기에 이런 타구를 날릴 수 있다는 건 힘과 스피드, 그리고 정확성을 겸비했다는 증명서와도 같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남는 건 기록뿐이다.
때문에 어떤 타자들은 사이클링 히트 달성에 단타만을 남긴 상황에서 큰 타구를 날리게 되더라도, 승패에 큰 영향이 없으면 그냥 1루에서 멈추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타자는 3루타만 남긴 상태에서 홈런이 나오자 일부러 홈을 밟지 않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탐나는 기록이란 뜻이다.
“우우우우우!”
“저 건방진 놈을 삼진으로 잡아버려!”
“절대 맞지 마! 빌어먹을! 차라리 그냥 볼넷으로 내보내!”
8회 초 6 대 3 석 점 차, 거기에 2사 1루 상황.
이기고 있는 팀도, 그리고 지고 있는 팀도,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그런 상황.
관중들의 말대로 정말 걸러야 할까, 그러다가 혹시 마지막 남은 추격의 기회마저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복잡한 마음이 된 투수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바깥쪽으로 흘러 나가는 슬라이더를 뿌렸다.
그리고,
따아악!
한수혁이 그 공을 멋지게 받아쳤다.
“됐다! 사이클링 히트다!”
“자이언츠 개자식들, 맛이 어때!”
“그래, 이 먼 곳까지 오길 잘했어. 기록 달성의 순간도 보… 어?”
오라클 파크 우측 펜스 깊숙한 곳에 떨어진 타구.
선행 주자가 2루를 돌아 3루, 그리고 홈으로 여유 있게 들어오던 그때, 시애틀 관중들이 갑자기 웅성거렸다.
“왜 계속 뛰는 거지?”
이제 넉 점까지 벌려진 점수 차.
그냥 1루에서 멈춰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 없는 상황에서 한수혁이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1루에서 멈추겠지, 안이한 마음으로 수비하던 자이언츠 야수들이 허둥지둥 공을 중계했고, 그 사이 전력을 다해 달린 한수혁은 3루까지 내달렸다.
뒤이어 등장한 타이 존슨의 적시타가 터지며 스코어 8 대 3.
다섯 점 차로 앞서게 된 시애틀 벤치는 한결 여유있게 투수 운영을 할 수 있었고, 결국 경기는 그대로 시애틀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MVP로 선정된 한수혁이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단타 하나였으면 히트 포 더 사이클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하도 떠들어서 모를 수가 없었죠.”
“그런데 왜 1루에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린 겁니까? 기록이 아깝지 않나요?”
“전혀요.”
한수혁이 저 멀리 시애틀 팬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어떻게든 한 베이스를 더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경기를 보기 위해 10시간을 넘게 달려온 팬들 앞에서 혹시나 팀이 역전패 당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록? 물론 좋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저희 팬들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날 밤, ESPN을 통해 한수혁의 인터뷰가 미국 전역으로 중계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수혁의 인터뷰에 감명을 받았다.
아직 투표를 하지 않은, 혹은 다른 투표 대상을 찾아다니던 야구팬들, 거기에 소식을 듣고 찾아온 한국 야구팬들이 투표에 합류했다.
그 결과, 한 계정당 하루 최대 5회라는 투표 제한에도 불구하고 한수혁에게로 향하는 표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 * *
[2030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1차 투표 마감, 시애틀 매리너스 한수혁 1,580만 표로 역대 최다 득표 기록] [이변은 없었다. 2위 제임스 테일러(205만 표)의 8배를 득표한 한수혁, 2차 투표 없이 곧바로 올스타전 직행] [전반기 타율 0.430, 출루율 0.519, 장타율 1.004, 홈런 43개, 타점 101개,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괴물 타자 한수혁, 올스타전은 타자로만 참가?] [시애틀 매리너스 다니엘 단장 “투타 겸업을 하는 선수의 몸은 정밀기계와도 같다. 올스타전에서 공을 던지는 건 너무 위험하다 판단, 대신 선수와 협의해 홈런더비에는 참가하기로 했다.”] [올 시즌 88경기에서 43개의 홈런을 때려낸 한수혁, 과연 홈런더비에서는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메이저리그 팬들 주목] [한수혁 외 외야수 데릭 플레밍, 1루수 타이 존슨, 지명타자 안토니아 가르시아, 포수 브루스 매튜스 등 시애틀 선수 5명 1차 투표 통과, 달라진 시애틀 매리너스의 위상을 한 눈에]“헤이, 올스타 포수.”
“왜 불러, 올스타 외야수.”
“흐흐.”
“흐흐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2차전을 앞둔 시애틀 라커룸, 올스타전 1차 투표를 통과한 데릭 플레밍과 브루스 매튜스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껄껄 웃었다.
투수를 제외한 9개 포지션 중 5개 포지션에 시애틀 선수들의 이름이 올랐다는 건 이 팀의 달라진 위상을 증명하는 척도와도 같았다.
지난 시즌까지 시애틀은 전형적인 비인기 구단에 속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라이언 티보우 외에는 팀을 대표할 스타가 없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올스타전은 항상 남의 이야기였다.
선수단 투표로 올스타에 선정된 라이언 티보우를 제외하면 매년 1, 2명의 선수들만이 사무국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합류한 게 전부였다.
“젠장, 2차 투표 대상자가 된 건 정말 오랜만이군. 이게 다 너 때문이야, 한.”
“어떻게, 제가 사무국에 전화해서 바꿔달라고 할까요?”
“뭐? 하하하.”
거의 매년 내셔널리그 전체 득표 1위를 독차지하며 2차 투표 없이 올스타전에 직행했던 타이 존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라커로 향했다.
엄살을 떨긴 했지만 타이 존슨 되는 선수가 2차 투표에서 떨어질 리도 없고, 설사 떨어진다 해도 사무국 추천으로라도 올스타전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기분 좋은 엄살인 셈이다.
“자, 제군들. 주목. 다들 기분 좋은 건 알지만 할 건 해야지, 안 그래?”
“감독님도 축하드립니다. 데뷔 첫 해에 올스타전 감독이 된 걸 말이죠.”
“젠장, 사실 난 집에서 쉬고 싶었다고. 손녀가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난리인데 그날까지 일을 해야 하다니.”
워리어스 수석코치에서 갑자기 빅리그팀 감독이 된 벤자민 레이놀즈는 데뷔 첫해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들을 지휘하게 되었다.
올 시즌부터 다시 각 리그 전체 승률 1위 팀 감독이 지휘봉을 잡도록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1차 투표를 통과한 다섯 명, 선수단 투표로 올라올 게 확실한 라이언 티보우, 거기에 감독까지.
“이거 완전 시애틀 판이네요?”
“왜 남 얘기하듯 해? 이게 다 네 덕분인데?”
“내 덕분?”
“올스타전 투표에서 한국인들 지분이 어마어마했다더군.”
“아하.”
그래, 자고로 온라인에서 화력을 집중하는 데는 한국인만한 민족이 없지.
“자, 올스타전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는 걸로 하고, 지금은 자이언츠 놈들을 박살 내는 데 집중한다. 라인업 확인하고, 혹시나 문제 있는 놈 있으면 바로 감독실로 찾아오도록.”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좌익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6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7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8번 3루수 리암 랜드먼
9번 2루수 조나단 오웬스
선발 투수 댈빈 슈워츠
라인업을 확인한 선수들의 표정이 제각각 복잡하게 변해갔다.
어제 주전에서 제외되었다 복귀한 조나단 오웬스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최근 다섯 경기에서 1할 대의 빈타에 허덕이다 급기야 선발에서 제외된 짐 브라운의 표정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나저나 좌익수 출장이라…….
타격에 좀 더 힘을 쏟으라는 뜻인 건가?
* * *
“우우우우우우!”
“빌어먹을 자식! 오늘은 네 마음대로 안 될 거다!”
“홈런 칠 생각은 꿈도 꾸지 마!”
어제 장외홈런 때문인지 야유 소리가 더 커진 느낌이다.
86경기에서 43개의 홈런, 정확히 2경기당 1개 꼴로 홈런이 나오고 있다.
이걸 노리고 타이 존슨이 있는 팀을 고르긴 했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더 엄청나다.
물론 그보다 더 대단한 건 지금 내 육체다.
아무리 머릿속에 빅리그 15년 차의 노하우가 쌓여 있다 해도 몸이 안 따라주면 다 헛일이다.
그런데 제이콥이 만들어준 이 육체는 뇌에서 전달하는 신호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현실에 구현해준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은 내가 야구를 계속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오늘도 부탁해! 저 멍청한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달라고!”
“홈런볼은 필요 없어! 경기장을 넘겨! 바다에 공을 수장시키라고!”
어제보다 커진 건 자이언츠 팬들의 야유뿐만이 아니었다.
원정 온 시애틀 팬들의 응원 역시 함께 커졌다.
듣자 하니 어제 천 명 정도이던 원정 팬의 숫자가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최근 들어 온오프라인에서 극성을 부리는 시애틀 팬들이 급증하면서 언론에서는 시카고 컵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함께 매리너스의 팬들을 메이저리그의 4대 훌리건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보기에는 음,
아무리 그래도 그들하고 비교하는 건 좀…….
“이거 경기에 이겨도, 져도 문제일 거 같은데. 자칫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아.”
“한, 미리 말하는데 아무리 자이언츠 팬이라 해도 절대 관중을 때려서는 안 돼. 그건 쉽게 넘어가기 힘든 문제라고.”
“뭔 소리예요, 타이. 내가 무슨 미친놈인 줄 알아요?”
“너 미친놈 맞아. 흐흐, 아무튼 팬을 때리는 건 안 돼. 그럴 거면 차라리 마운드로 달려가서 저 멍청한 투수 놈의 턱을 날려버리라고.”
아무래도 나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는 나중에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한, 잠깐 시간 괜찮아?”
“토니? 음, 괜찮아. 그런데 왜?”
“한 가지 상의할 게 있는데… 홈런더비 말이야.”
올 시즌에도 타율 0.212에 홈런 23개라는 재미있는 지표를 기록 중인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 큰 키는 아니지만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근육질, 거기에 험상궂은 외모까지 더해지며 겉보기에는 마초맨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토니이지만.
“내가 홈런더비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흠…….”
사실 토니는 야구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탐구하는, 말하자면 학구파 스타일의 선수이다.
토니의 말을 듣자마자 고민하는 게 무엇인지 바로 깨달았다.
홈런더비 초청장을 받은 타자들 중 상당수가 이런저런 이유로 참가를 거부하곤 한다.
가장 흔한 이유는 타격감이 망가질까 봐 두려워서다.
홈런을 위한 스윙을 하고, 거기에 맞은 타구가 쭉쭉 뻗어가는 경험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스윙이 커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다 변명에 불과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토니, 내 생각에는 한번 나가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다른 건 몰라도 홈런 하나는 자신있잖아?”
“그렇긴 한데…….”
“혹시나 밸런스가 흐트러지면 바로 잡는 걸 도와주지. 그러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봐. 홈런타자로서 더비에 참여하는 건 팬들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하니까.”
“음, 좋아.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어. 긍정적으로 검토해봐야겠군.”
물론 결정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 아무리 내가 녀석들을 도와준다고 해도…….
가만, 그러고 보니 요즘 왜 이렇게 나한테 상담을 요청하는 녀석들이 늘어난 거지?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