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8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82화(283/412)
#282. 44호
아메리칸 리그 전체 승률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시애틀은 완벽과는 거리가 먼 팀이다.
주전과 백업 선수들 간의 기량 차, 여전히 헐거운 뒷문.
그런 문제들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큰 약점은 선수단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거다.
한번 분위기를 타면 끝도 없이 상승할 수 있지만 자칫 삐끗하면 집단 슬럼프에 걸릴 수도 있는 그런 팀인 거다.
올 시즌 시애틀의 기록지에 연승과 연패가 많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이런 젊은 팀의 약점 중 하나가 노련한 투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늘 자이언츠의 선발로 등판한 베테랑 브라이언 베일리같은 선수들 말이다.
“좋아! 베일리! 네가 최고야!”
“역시 믿을 건 너밖에 없군!”
지난 15년간 자이언츠의 마운드를 지켜온 저 우완투수는 오늘 나와 타이 존슨을 철저히 피하고, 대신 팀의 젊은 타자들을 유혹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지만 사실 뾰족한 해법이 있는 일은 아니기에 그저 다른 선수들을 믿는 수밖에 없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순간순간 상황에 맞는 플레이를 하는 것.
당장은 불가능하더라도 언젠가 선수단 전체가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시애틀은 진정 강팀으로 불릴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오늘 우리 팀 선발인 댈빈 슈워츠가 5회까지 한 점도 내주지 않는, 그야말로 인생투구를 펼치고 있다는 거다.
이런 날 승리투수를 만들어주고 싶지만…….
뭐, 공이 들어와야 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양 팀 투수들의 호투로 0 대 0 팽팽한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5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 팀의 첫 번째 위기가 시작되었다.
원아웃 주자 없는 상황, 타석에 들어선 자이언츠의 리드오프가 우중간을 꿰뚫는 커다란 3루타를 쳐낸 것이다.
[2번 타자 서드베이스맨 루크 벨]자이언츠를 대표하는 강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결국 타임을 요청한 투수코치가 마운드로 향했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0 대 0 팽팽한 접전 속에 맞은 첫 번째 실점 위기, 마운드에는 올 시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는 팀의 5선발, 그리고 타석에는 상대팀의 간판타자 루크 벨.
당장의 1승이 중요하다면 여기서 구위가 좋은 중간계투를 올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팀 감독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플레이!”
내 예상대로 코치는 투수를 잠깐 격려한 후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자이언츠의 2번 타자 루크 벨.
몇 년 전 WBC에서 나와 맞붙었던 미국 국가대표팀의 3루수다.
매 시즌 3할에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힘 있는 타자.
외야 플라이나 깊숙한 땅볼 하나면 득점이 가능한 이런 상황은 사실 투수에게나 타자에게나 상당히 힘든 순간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더 힘든 건 이 순간을 막아내야 하는 투수이다.
안타뿐만 아니라 외야 플라이나 내야 땅볼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물론 그 정도 구위와 제구력을 갖춘 투수라면 한번 해볼 만한 싸움이겠지만.
따아아악!
불행히도 우리 팀 5선발인 댈빈 슈워츠는 그 정도 실력을 갖춘 투수는 아니었다.
“우아아아!”
“좋아! 됐어!”
낮은 코스로 들어오는 공을 멋지게 걷어 올린 루크 벨.
그가 때려낸 타구가 내 쪽을 향해 총알같이 날아왔다.
올 시즌 들어 첫 번째 좌익수 수비이지만 그리 낯설지는 않다.
회귀 바로 직전, 그러니까 은퇴를 고민하던 시점 내 주 포지션이 바로 여기였으니 말이다.
외야 수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구가 떨어질 위치를 예측하는 것이다.
가장 첫 번째 주어지는 단서는 타격음.
경쾌한 소리가 난 걸로 봐서 얕은 플라이는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서는 타구의 궤적.
오라클 파크의 좌측 담장이 우측처럼 괴상망측하게 높진 않지만, 그래도 담장을 넘기기는 힘든 궤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턱
펜스에 등을 기댄 후 마지막까지 타구의 속도와 방향을 예측하면서,
공이 떨어지는 순간 앞으로 걸어 나가듯 한 걸음,
턱
펜스에서 불과 1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타구를 잡아냈다.
3루에 있던 주자가 태그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홈플레이트를 향해 전력으로 송구.
“타앗!”
슈우웅
파아아앙!
“아, 아웃!”
음, 오랜만에 해본 건데, 그럭저럭 괜찮은데?
* * *
– 이, 이게 대체… 위원님. 저희가 대체 뭘 본 건가요?
– 하하, 하하, 하하하.
– 저기, 웃지만 마시고…….
– 아, 죄송합니다. 하하, 이거 정말 웃음밖에 안 나오네요. 어쨌든 상황을 정리해야겠죠. 루크 벨 선수가 친 타구가 담장 앞까지 날아갔는데 한수혁 선수가 그 공을 잡아 홈으로 태그업 한 3루 주자를 잡아냈습니다. 참 쉽죠?
– 아아, 자이언츠 관중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먹고 있던 도너츠와 핫도그가 그라운드로… 결국 경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 그럴 수밖에 없죠. 사실 자이언츠의 1번 타자가 전형적인 리드오프는 아닙니다. 발도 빠르지 않고요, 주루 센스도 아주 좋은 편은 아니죠. 그보다는 출루율이 높다는 이유로 1번 타자에 기용된 것이니까요. 어쨌든 그걸 감안해도 지금 타구 정도면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왔어야 하거든요.
– 그렇죠. 아, 방금 전 한수혁 선수의 송구 속도가 측정된 거 같군요. 106마일……. 하하, 이거 참, 한수혁 선수가 좌측 펜스 앞에서 노바운드로 뿌린 송구의 속도가 170.6㎞/h를 기록했습니다.
–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뭘요?
– 한수혁 선수의 우익수 기용도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이죠.
– 흠.
– 시애틀에는 3루를 책임질 선수들이 여럿 있거든요. 최근 타격 부진에 빠지긴 했지만 수비력 하나만큼은 여전히 최고인 조나단 오웬스도 있고, 말린스에서 넘어온 리암 랜드먼, 로니 몬타릭……. 그런데 외야는 좀 부실해요. 주전 3명 중 하나가 빠지면 지명타자인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나서야 할 정도로요. 그런데 그 선수는 수비력이…….
–
– 최악이죠. 솔직히 저렇게 수비 못하는 선수는 저도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 맞습니다. 그러니 한수혁 선수를 우익수로 기용하는 것도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거 같습니다. 펜스 바로 앞에서 공을 뿌려서 태그업 하는 주자를 잡아낸다? 세상에 이런 우익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익수 자리에 세워놓으면 2루 주자가 단타에 홈으로 뛰어드는 걸 상당 부분 잡아낼 수 있을 겁니다.
– 네, 제 생각에도 그럴 거 같네요. 그 사이 그라운드 정리가 끝나고 다시 경기가 재개됩니다. 위원님, 어쨌든 한수혁 선수 정말 대단하네요. 저런 선수를 최저 연봉에 기용하고 있는 시애틀, 축복받은 팀이라고 볼 수있겠어요.
– 당연하죠. 저런 선수는 연봉 1억 달러를 줘도 못 구합니다. 시애틀, 복 받은 팀이에요.
* * *
“젠장, 멋진 플레이였어, 한. 그런 송구는 정말 처음 보는군.”
“우리 연봉 조금씩 걷어서 저 친구에게 몰아줘야 하는 거 아냐?”
“연봉? 아, 그렇지. 한, 너 최저연봉 받고 있는 거지? 데릭 말이 맞군. 자, 돈을 걷어보자고.”
데릭의 농담에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최저연봉을 받고 있었지?
흠, 이번 미국행과 관련해 내가 여러모로 손해를 봤다 평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비스 타임 때문에 첫해 연봉 자체는 최저 연봉이 맞지만 일단 포스팅 비용 2,500만 달러도 내가 소유한 워리어스 구단 계좌로 입금되었고,
미국으로 건너온 후에는 시애틀 지분까지 취득하게 되었으니 어차피 내가 하는 플레이 하나하나가 내 이익에 직결되는 셈이다.
뭐, 지금은 그냥 최저 연봉을 받는 루키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최저 연봉자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너도 이제 할 일 해야지, 데릭?”
“좋아, 어떻게든 1루로 나가도록 하지.”
6회 초 시애틀의 공격.
1번 타자 데릭이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우리 팀이 점수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데릭의 부진이다.
한 경기 못한 것에 부진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좀 그렇지만, 어쨌든 데릭이 출루를 못 하면서 상대 투수에게 나와 타이 존슨을 피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준 셈이다.
그렇기에 다시 1번부터 시작되는 이번 이닝 공격이 무척 중요하다.
그 무게를 알고 있는 데릭이 초구를 받아쳐 깔끔한 좌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따악!
“좋았어, 데릭!”
“자, 이제 나가보자고! 고! 고! 매리너스!”
원하던 그림이 만들어졌다.
노아웃 주자 1루, 이제 저 베테랑 투수에게는 나와 타이를 거르지 못할 이유가 생겼다.
여기서 고의 볼넷을 줘서 노아웃 만루를 만들 멍청이는 없을 테니까.
오늘 경기 분위기를 보면 잘해야 2점, 혹은 3점 이내에 승부가 결정 날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승부구가 들어올 확률이 높다.
노린다.
드드득
정해진 타격 매커니즘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하는 내 타격 접근 방식에 우려를 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무리 좋은 타자도 모든 구종과 코스의 공을 때려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정밀하게 설계된 타격폼을 유지하며, 때릴 공은 때리고, 버릴 공은 버리는 그런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일반적으로는 말이다.
“플레이!”
하지만 내게는 프로 무대에서만 18년을 뛴 경험과, 아직 전성기에 도달하지 못한 20대 초반의 젊고 싱싱한 육체가 있다.
이런 하드웨어를 갖고 그저 안정만을 추구하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눈에 들어오는 공은 모두 때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
어쩌면 먼 훗날 이런 선택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지만,
슈웅
따아아아악!
글쎄, 아무래도 그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우아아아아아아!”
“간다! 간다! 간다!”
일직선으로 날아가 우측 담장을 살짝 넘기는 투런 홈런.
1루에 서 있던 데릭이 마치 토끼처럼 펄쩍펄쩍 뛰며 베이스를 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린 나도 천천히 1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젠장! 또 맞았어! 하필 저 녀석에게!”
“브라이언! 이 퇴물 같은 자식! 나가 죽어!”
방금 전까지 팬들에게 칭송받던 베테랑 투수가 쏟아지는 야유에 고개를 푹 떨군다.
저 기분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조금 불쌍한 마음도 들지만…….
“우우우우우! 빨리 돌아! 이 개자식아!”
“전력으로 달려! 얼른 덕아웃으로 꺼지라고!”
관중들의 야유가 내게로 향하니 갑자기 오기가 솟구친다.
속도를 더욱 늦춰 거의 산책하듯 베이스를 돌아 홈으로 돌아왔다.
쾅
어제만 해도 눈에 불을 켜고 덤비던 자이언츠 포수 놈이 못 본 척 고개를 돌려버린다.
흠,
뭐지, 나랑 상대하지 말라는 지시라도 내려온 건가.
“젠장, 이 괴물 같은 자식, 홈런이 벌써 44개라고?”
“도대체 몇 개나 때리려고 이러는 건데?”
“최저 연봉 받는다고 불쌍하다고 한 놈 나와. 이 녀석은 몇 년 안에 리그 최고 연봉자가 될 거라고.”
마흔 네 개라…….
흠, 많이 때리긴 했네.
이거 정말 어디까지 갈 수 있으려나?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