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8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84화(285/412)
#284. 미니 한일전
“젠장, 대체 어떤 놈이 일정을 이따위로 짜놓은 거야? 미국 본토 유람이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진정해, 이번 3연전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서부면 서부, 중부면 중부, 동부면 동부, 일관성을 갖는 게 그렇게 어려워?”
매리너스 선수단과 구단 관계자, 담당 기자들을 태운 전용기가 밀워키를 향해 날아올랐다.
시애틀 선수들이 불만을 갖는 이유는 간단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 서부 해안선에 위치한 두 도시에서 원정 경기를 치른 그들이 이번에는 중부, 아니, 동부라 불러도 좋을 곳에 위치한 밀워키로 날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집이 미국 북서부 시애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서부, 남서부, 동부, 다시 북서부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은 나 홀로 미국 본토 북서부에 처박힌 시애틀의 위치 탓이었지만 어쨌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원정길에 나서야 하는 선수들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 맥주 한 잔 할래? 아니지, 넌 시즌 중에는 안 마신다고 했지.”
“그럼 이쪽으로 붙어. 포커나 한 판 치자고. 뭐? 할 줄 모른다고? 젠장.”
“좋아, 그럼 이건 할 줄 알겠지. 패드를 잡아. 오늘 누가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릴지 한 판 붙어보는 거야. 응?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고? 오마이갓…….”
전용기 안에서 삼삼오오 짝을 이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선수들.
그들의 손길을 뿌리친 한수혁이 헤드폰을 끼고 좌석을 뒤로 젖혔다.
헤드폰 안에서는 민예린이 부른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너의 책갈피가 되고 싶어. 다시 보고 싶은 곳에 끼워 넣는 무언가가 되고 싶어.]한수혁의 완투승으로 샌디에이고와의 1차전을 잡아낸 시애틀은 이어진 2, 3, 4차전에서 2승 1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한수혁은 4차전에서 또 하나의 홈런을 때려내며 시즌 홈런 수를 45개로 늘렸다.
그렇게 시즌 성적 57승 35패를 기록한 그들은 이제 올스타 브레이크전 마지막 경기인 밀워키와의 3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밀워키 1차전에 등판 예정인 라이언은 부진에서 벗어나겠다는 각오를 불태우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는 스승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루키 시절부터 항상 팀의 중심이 되어야 했던, 자신보다 어리고 경험 부족한 후배들을 이끌어야 했던 그에게는 기대고 쉴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비단 라이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데릭 플레밍, 척 클락, 짐 브라운, 안토니오 가르시아, 조쉬 올리버, 조나단 오웬스 등 젊은 타자들, 그리고 디몬 앤더슨 주니어와 댈빈 슈워츠 같은 애송이 투수들.
그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다.
물론 그 대상이 고작 프로 4년 차에 불과한 빅리그 루키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만.
그런 사람들의 기대와 믿음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한수혁이 자기도 모르게 민예린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난 너의 책갈피가~”
“흐흐, 저 친구도 못하는 게 있군.”
“맞아. 끔찍한데?”
“다행이야. 나한테도 저 녀석보다 잘하는 게 있어서.”
한참 동안 한수혁을 놀리던 시애틀 선수들이 이번에는 어제 발표된 올스타전 최종 투표 결과로 화제를 옮겨 갔다.
결과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단 투표를 통해 선정된 라이언 티보우가 투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기존 1차 투표를 통과한 타이 존슨과 데릭 플레밍, 안토니오 가르시아, 브루스 매튜스 등이 모두 올스타전에 합류하게 되었다.
양대 리그 통틀어 최다 득표를 기록한 한수혁을 포함하면 무려 6명의 시애틀 선수가 올스타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이는 팀의 최고 황금기였던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때도 찾아보기 힘든, 말 그대로 이 팀에 처음 찾아온 경사와도 같았다.
“젠장, 데릭 저 자식이 올스타 외야수가 될 줄이야.”
“축하는 못 해줄망정 악담은 사양이야, 브루스.”
“처음 마이너에서 올라와서 벌벌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흐흐.”
“그런 얘기를 하는 건 늙었다는 증거라고.”
FA자격을 취득하는 즉시 이 팀을 떠날 예정이었던 브루스는 얼마 전 그 계획을 변경했다.
젊고 힘이 넘치는 타선,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팀의 에이스, 살아 있는 전설 타이 존슨, 거기에 투타 양면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쌓아가고 있는 한수혁.
‘이런 팀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순 없지.’
예전에는 혼자 팀의 안방을 지키는 게 벅찼지만 레너드 존스라는 제법 쓸 만한 녀석이 팀에 합류하며 체력에도 여유가 생겼다.
아직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지금 페이스대로라면 사상 첫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한수혁이었다.
브루스의 시선이 다시 한수혁에게로 향했다.
“이정표가 되고 싶어~”
여전히 듣기 끔찍한 노래였다.
역시 세상은 공평한 것이라 생각하며 브루스가 다시 카드를 집어 들었다.
“좋아, 에이스 투 페어, 날 이길 놈이 있나?”
“젠장!”
* * *
늦은 밤 밀워키에 도착한 시애틀 선수단은 짧은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브루어스와의 3연전에 돌입했다.
미국 제1의 맥주 양조 도시이자 메이저리그 전체 구단 연고지 중 광역권 인구가 가장 적은 도시 밀워키.
창단된 지 61년밖에 안 된 젊은 팀이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몰마켓 팀.
하지만 밀워키에게는 1982년 월드시리즈에 진출해본 경험이 있다.
생각해보면 시애틀이 대단한 거다.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고도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나가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3연전의 첫 경기, 지난 경기의 부진을 씻기 위해 절치부심한 라이언이 8이닝 2실점 호투를 선보였다.
하지만 승수를 추가하는 데는 실패했다.
뒤를 이어 등판한 중간계투조가 역전을 허용하며 밀워키가 먼저 1승을 가져간 것이다.
승리를 놓치긴 했지만 라이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아닌 후련함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아낸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2차전, 한수혁이 마운드에 올랐다.
“렌타로, 네 SNS는 어때?”
“개판이야. 알림이 하도 와서 그냥 앱을 삭제해 버렸어.”
2년 전, 밀워키는 자체 팜에서 키워낸 대형 투수 샤킬 레너드와 10년 장기 계약을 맺으며 윈나우를 선언했었다.
팀 전력 보강을 위해 일본 리그에서 뛰던 하야시 렌타로를 포스팅으로 데려오고, 그 외 저렴한 FA를 영입하며 나름 가을야구를 향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2시즌 연속 지구 최하위에 처박히자 곧바로 구단 방침이 변경되었다.
에이스 샤킬 레너드가 양키스로 팔려 나갔고, 그 외 몸값이 비싼 선수들 몇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팔려나간 샤킬 레너드를 대신해 하야시 렌타로를 1선발로 올렸고, 구멍 난 타선을 대충이라도 메우기 위해 5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일본 타자 하나를 데려왔다.
지금 밀워키 덕아웃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는 마에다 쇼고를 말이다.
“하야시, 난 저 녀석이 너무 끔찍해.”
“마찬가지야. 제길, 분하지만 저 녀석은 강하다고.”
각기 다른 이유로 밀워키 유니폼을 입게 된 선발투수 하야시 렌타로와 주전 유격수 마에다 쇼고.
그 둘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엄청나게 지쳐 있었다.
한수혁을 응원하는 한국 야구팬들, 그리고 한수혁에게 깨질 경우 차라리 할복을 하라고 도배하는 일본 팬들.
그 양대 세력이 몰려들어 SNS를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하필 이런 날 선발이라니…….”
더욱 절망적인 건 오늘 밀워키의 선발이 하야시 렌타로라는 거다.
한수혁과 하야시의 선발 맞대결, 그리고 투수 하야시와 타자 한수혁, 투수 한수혁과 타자 마에다 간의 투타 맞대결까지.
팀 성적이나 순위에 상관없이 한일 야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칙쇼… 차라리 시작하자마자 저 녀석 머리에 공을 던지고 도망가 버릴까.”
“하야시.”
“왜.”
“그건 네 자유지만 미리 말하는데 난 절대 저 녀석에게 덤비지 않을 거야. 시즌아웃이 되긴 싫다고.”
“하아…….”
일본 선수 둘의 한숨 속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 제길, 저놈들에게 얕보이고 있군.
└ 무슨 소리지?
└ 오늘 선발 라인업을 봐. 우리는 일한(日韓)전이라고 들떠 있지만 저놈들에게는 그냥 유흥거리에 불과한 거라고.
└ 선발 라인업이 대체 어떤데? 답답해! 여긴 왜 라인업이 안 뜨는 거야?
└ 내가 가져왔으니 이걸 보라고.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투수 한수혁
3번 우익수 척 클락
4번 1루수 안토니오 가르시아
5번 좌익수 카일 섀너한
6번 3루수 리엄 랜드먼
7번 포수 레너드 존스
8번 유격수 로니 몬타릭
9번 2루수 조나단 오웬스
└ 이게 뭐야? 타이 존슨, 지므 브라운, 브루스 매튜스, 조쉬 올리버가 다 빠졌다고?
└ 그래, 시애틀에게 오늘 경기는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타코야키(たこ焼き)로 여겨지는 것 같아 www
└ 칙쇼… 이건 명백하게 얕보이고 있다는 증거군. 하야시! 마에다! 오늘 지면 할복하라고!
└ 무리야. 올 시즌 한수혁 승수가 13승, 타자로서는 홈런 44개를 치고 있어. 하야시 두 명을 데려와도 투수 한수혁에 안 되고, 마에다 일곱 명을 데려와야 타자 한수혁에게 비빌까 말까야 w
└ 야레야레, 내가 봐도 그래. 이건 해보나 마나라고.
평소 같으면 혐한 발언으로 가득 찼을 2ch에서조차 오늘 경기는 힘들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밀워키의 하야시 렌타로와 마에다 쇼고의 성적이 나쁜 건 아니었다.
주축 선수들이 떠나고 탱킹 모드에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하야시가 기록한 전반기 6승은 분명히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었다.
또한 1번 혹은 2번으로 뛰며 타율 0.275, 홈런 6개, 도루 18개를 기록한 마에다도 자신의 몸값 정도는 해냈다 봐야 했다.
그냥 상대가 너무 나빴을 뿐이다.
괴물 같은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한수혁 말이다.
어쨌든 미니 한일전을 준비하는 일본 측의 분위기가 초상집에 가까웠다면 이번 시즌 내내 한수혁의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는 KBC 중계팀 쪽의 분위기는 잔치집, 그 자체였다.
– 위원님, 오늘 시애틀의 라인업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자신감의 발현이라고 봅니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 일본 선수들이 주축이 된 밀워키 정도는 차포 떼고 붙어도 충분히 이긴다, 한수혁 혼자서도 다 박살 낼 수 있다, 뭐 그런?
– 흠.
– 이게 정말 농담이 아니라, 한수혁 선수 플레이스타일상 일본 선수들에게는 천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빅리그를 많이 따라왔다 해도 여전히 일본 야구 추세는 힘과 스피드보다는 정교함과 작전이거든요. 그런 타입의 선수들은, 네, 그래요. 지난 WBC와 올림픽에서 봤잖아요? 한수혁 선수에게 걸리면 그야말로 개박…….
– 으흐흠, 알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발언이 조금 과하더라도 양해 부탁드리고요. 어쨌든 오늘 일본 선수 두 명이 뛰고 있는 밀워키 브루어스와 한수혁 선수가 선발 등판한 시애틀 매리너스 간의 시즌 2차전 경기,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브루어스의 홈구장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입니다.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