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8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87화(288/412)
#287. 마이스터
“휴, 좋아. 드래프트도 끝났고,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군.”
“네, 단장님.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일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0만 달러는커녕 100만 달러도 못 내놓겠다고 버티던 사람들이…….”
“아무래도 새로 지분을 취득한 쪽 입김이 들어갔다고 봐야겠지. 그중 하나는 로펠스 계열이고 말이야. 젠장, 갑자기 판돈이 올라가니까 손발이 벌벌 떨리는군.”
“어쨌든 신인 선수들 계약과 입단식 문제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단장님.”
“좋아, 차질 없이 진행해.”
어제 끝난 2031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는 우완투수 브라이언 나이트를 1순위로 지명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초 그들이 노렸던 좌완투수 래리 화이트는 다음 순위였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차지가 되었다.
“그런데 단장님, 정말 이번 선택이 옳았던 걸까요? 누가 봐도 래리 쪽이…….”
“됐어. 지나간 일은 잊어. 그리고 잘될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주목한 선수이니까.”
지난 미팅에서 한수혁의 조언을 받아들인 다니엘 단장은 래리 화이트를 제치고 브라이언 나이트를 선택했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로 끝날지 현재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물론 한수혁, 그를 제외하고 말이다.
“음, 어쨌든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군.”
“네, 단장님.”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트레이드 마감 시한.
구단주 그룹으로부터 500만 달러의 추가 트레이드 머니를 승인 받은 다니엘은 지금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 중이었다.
지난 몇 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야수진의 뎁스는 어느 정도 채워졌다.
흡족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부족한 살림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다.
문제는 투수진이었다.
선발진은 그나마 만족스럽다.
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라이언 티보우, 정규이닝을 채울 경우 투수 부문 각종 기록을 경신할 게 확실시되는 한수혁, 하루가 다르게 너클볼에 적응해가고 있는 마이크 워렌으로 이뤄진 1, 2, 3선발은 정규시즌,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조합이다.
하지만 중간계투진의 사정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올 시즌 전반기, 시애틀은 1, 2, 3 선발이 등판하는 경기의 대부분을 이기고, 4, 5선발이 등판하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패배했다.
단순히 선발 투수의 역량 차이를 떠나 그 뒤를 이어 던진 중간계투진이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전력보강의 기회.
지금 시장에는 A급을 넘어 S급에 가까운 중간계투 한 명과 B급과 A급 사이를 넘나드는 선발 투수 한 명이 나와 있다.
둘의 가격은 비슷한 수준.
선수단 연봉 줄이기가 시급한 상대 쪽에서는 시애틀이 제안한 28순위 유망주와 47순위 유망주, 그리고 현금 500만 달러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척박한 땅에 믿을 수 있는 중간계투 한 명을 심어 넣느냐, 아니면 계투진을 아예 포기하고 선발투수진을 더욱 보강해 장점을 강화하느냐.
딸깍
한참 동안 고민하던 다니엘 단장의 입이 열렸다.
“좋아, 밀워키 쪽으로 전화를 넣어.”
“네? 단장님? 그러면?”
“어설픈 중간계투진 강화는 포기한다. 선발진을 극대화해서 최대한 많은 이닝을 끌고 가는, 그게 이번 하반기 우리 팀의 전략이 될 거야.”
* * *
올스타전 사전행사가 끝나고 드디어 본 경기 준비가 시작되었다.
과거, 올스타전 경기 결과에 따라 월드시리즈 홈경기 어드벤티지가 주어지던 시절, 이곳은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
하지만 그 어드벤티지가 사라진 후 올스타전의 분위기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야구인들의 축제로 거듭난 것이다.
“뭐? 누가 어디로 간다고?”
“밀워키 투수 하야시 렌타로, 그놈이 시애틀로 간다는군.”
“젠장, 상대하기 더 까다롭게 되어버렸잖아.”
그럼에도 오늘,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들이 모여 있는 덕아웃의 분위기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루카스 앤더슨과 그렉 조세프, 새킬 레너드 등 양키스 선수들이 한 구석에 모여 쑥덕거리고 있고, 그 반대쪽에는 한수혁을 주축으로 한 시애틀 선수들과 제리 와그너 등 보스턴 선수들이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양키스와 레드삭스의 사이가 최악인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지만 올해는 거기에 한수혁이라는 변수가 더해졌다.
이번 시즌 양키스와 붙을 때마다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던, 그 결과 양키스의 에이스 타이슨 바샴의 턱을 박살 내버린 한수혁 말이다.
“다들 그만해. 오늘은 축제라고. 그리고 누가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이야? 우린 양키스라고, 그걸 잊지 마.”
“젠장, 루카스, 네 말이 맞아.”
지금 양키스 선수들이 쑥덕거리고 있는 건 방금 전 들어온 트레이드 관련 소식 때문이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반기 6승을 기록한 일본인 투수 하야시 렌타로가 시애틀 매리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는 소식 말이다.
올 시즌 디비전 시리즈 직행을 놓고 시애틀과 경쟁 중인 양키스로서는 가슴이 답답해질 이야기였다.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 각 리그당 6개씩의 팀이 출전하는 포스트시즌에서는 3개 지구 우승팀 중 승률 상위 두 팀만이 디비전 시리즈로 직행한다.
반면 지구 우승을 차지했지만 승률에서 3위로 밀린 나머지 한 팀은 와일드카드를 획득한 3개 팀과 함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러야만 한다.
쉽게 말해 그런 거다.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하기 위해서 지구 우승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각 지구 우승팀 중 승률 2위 안에 들어야 한다.
현재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1위 팀은 뉴욕 양키스, 중부지구 1위 팀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서부지구 1위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다.
각 팀별로 대략 90경기 정도씩을 치룬 지금, 승률 순으로 놓고 보면 양키스, 매리너스, 화이트삭스다.
문제는 그 승률 차이가 아주 미미하다는 거다. 몇 경기만 잘못해도 곧바로 뒤집힐 수 있는 그런 미미한 차이.
“이게 다 저 자식 때문이야. 타이슨은 아직도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그만해, 그렉.”
한수혁의 머리에 공을 던졌던 타이슨 바샴은 그에게 얻어맞은 후유증으로 아직 제대로 된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애초에 잘못을 저지른 건 타이슨 바샴이지만, 에이스를 잃은 양키스 선수들의 원망은 한수혁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리너스 동료들, 그리고 레드삭스 선수들에게 둘러싸인 한수혁은 세상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봐, 한, 사인 한 장만 해줄 수 있을까?”
“사인?”
“어, 우리 팀 라커룸에 붙여놓아야 할 거 같아서. 타이슨 바샴의 턱을 박살 낸 한수혁이라고 적어주면 고마울 거 같은데. 흐흐.”
라이벌의 불행은 곧 나의 기쁨.
타이슨 바샴의 부재를 틈타 동부지구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는 레드삭스 선수들은 한수혁에게 한없는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선수들에 둘러싸여 한참을 떠들던 한수혁이 그곳을 벗어나 누군가에게로 다가갔다.
“형, 혼자서 뭐 해요?”
“내비둬. 비인기 팀 선수의 비애여.”
“에인절스가 비인기 팀이라… 진짜 비인기 팀들이 들으면 욕할걸요.”
“뭐, 그런가? 아무튼 올해 올스타전은 유난히 분위기가 삭막하네. 저기 양키스 놈들 때문에 그런 건가?”
“그래요? 가서 확 쥐어 패버릴까요? 분위기 좀 망치지 말라고?”
“에헤이, 아서. 올스타전에서 자기 팀원하고 벤클 벌이면 기네스북에 올라가게 될겨.”
“그런 것도 기네스북에 올라가요?”
“아닌가?”
올스타전답게 이런저런 잡담들이 오가던 그때,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팀 지휘봉을 잡게 된 벤자민 레이놀즈 감독이 덕아웃으로 들어왔다.
“자자, 다들 여기 주목. 내 손으로 이 비싼 선수들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놓다 보니 손이 덜덜 떨리더군. 하지만 난 선발로 나설 10명의 이름을 선택해야 했고, 그 결과물이 여기 붙어 있어. 당연한 말이지만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골고루 기회가 가게 될 거야. 아무리 축제라지만 승부는 승부야. 저 내셔널리그 놈들을 박살 내주자고.”
그 말을 남긴 벤자민 감독이 덕아웃 벽 한켠에 선발 라인업을 붙여 놓고 다시 감독실로 돌아갔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시애틀 매리너스)
2번 3루수 한수혁(시애틀 매리너스)
3번 1루수 타이 존슨(시애틀 매리너스)
4번 지명타자 루카스 앤더슨(뉴욕 양키스)
5번 포수 제리 와그너(보스턴 레드삭스)
6번 좌익수 잭 로저스(보스턴 레드삭스)
7번 2루수 그렉 조세프(뉴욕 양키스)
8번 유격수 제너드 에반스(클리블랜드 가디언스)
9번 우익수 페트릭 메이슨(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선발투수 라이언 티보우(시애틀 매리너스)
잠시 후 전광판에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들의 이름이 새겨지고, 자신들의 선수가 4명이나 포함된 것을 확인한 시애틀 팬들이 큰 목소리로 그 선수들의 이름을 외쳤다.
“데릭! 넌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야!”
“타이 존슨! 시애틀로 와줘서 고마워! 여기서 10년만 뛰고 명예의 전당으로 가는 거야!”
“라이언! 우리 팀의 에이스 라이언! 오늘도 멋진 경기 부탁해!”
데릭과 타이, 라이언,
그리고 마지막 한 선수.
“한! 수! 혀어어억! 젠장! 넌 세계 최고야! 아니, 역대 최고가 될 거야! 박살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박살 내라고!”
그런 팬들의 외침과 함께 2030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시작되었다.
* * *
“고동식 위원님, 솔직히 말이죠. 처음 프로야구 중계를 맡게 되었을 때만 해도 제가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경기를 현지에서 중계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동감합니다. 저도 개인 방송에서 메모장 켜놓고 올스타전 중계를 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코앞에서 경기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죠. 이게 다 누구 덕분이다?”
“부인할 수 없겠네요. 한수혁 선수 덕분이죠.”
“맞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저희는 공영방송 KBC, 언제나 신속, 정확, 공정, 중립을 표방하는 KBC 메이저리그 중계팀입니다.”
“제가 할 멘트를 대신 하시는군요. 어쨌든 좋습니다. 위원님, 오늘 경기 전에 라커룸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죠?”
“네, 맞아요. 한수혁 선수를 만나러 갔다가 엉겁결에 저희가 ESPN하고 인터뷰를 하게 되어버렸죠.”
“저한테도 이것저것 물었지만… 위원님에게는 뭘 물어보던가요?”
“당연히 한수혁 선수에 대한 거겠죠? KBO 시절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최근 활약에 대한 것들, 그 외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한수혁 선수의 사생활까지 아주 다양하게도 묻던데요.”
“그중에서 여기서 소개해주실 만한 것이 있을까요?”
“소개라……. 음, 네, 이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더군요. 그래서 저도 가장 성심성의껏 답해줬고요.”
“그게 뭔가요?”
“한수혁 선수가 투타 겸업을 하면서도 부상 없이 저런 성적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묻더군요. 솔직히 처음에는 약을 하는 거 아닌가 의심했다면서요.”
“흠.”
“사실 저도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한수혁 선수에게 현지 파파라치들이 여럿 붙은 모양이더라고요.”
“파파라치요?”
“네, 처음에는 다른 셀럽들처럼 사생활을 캐내려고 한 모양인데, 다들 아시는 여자 친구, 네, 맞아요. 민예린 씨와 간혹 데이트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나온 모양이더라고요.”
“그렇군요.”
“일이 그렇게 되다 보니 이 파파라치 놈들이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더군요. 대체 한수혁이 투타 겸업을 하면서도 큰 부상 한 번 안 당하는 비결이 뭘까, 정말로 약을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다른 비결이 있는 걸까 하고 말이죠.”
“그것 참, 집요한 인간들이군요.”
“맞아요. 어쨌든 거기서 결론이 내려졌답니다. 한수혁은 그럴 만한 선수라는 결론.”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야구밖에 모른답니다. 24시간 중에서 잠자는 시간 빼면 모든 시간을 야구에 투자하는, 심지어 데이트를 하는 도중에도 손에서 악력기를 놓지 않고, 입에 들어가는 음식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그야말로 야구를 위해 태어난 생명체.”
“허어…….”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켜보는 저희나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한수혁 선수의 이런 활약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느끼지만… 그런 활약을 위해 선수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지 알고 나니,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더군요.”
“정말 그러네요.”
“물론 한수혁 선수가 야구를 하는 건 본인을 위한 거죠. 그러니까 이건 뭐랄까… 한 분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장인에 대한 존경심 같은 거랄까요. 네, 그래서 저는 ESPN 인터뷰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뭐라고요?”
“내가 생각하는 한수혁은 야구의 장인, 그러니까 마이스터(Meister)다, 라고요.”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