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8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88화(289/412)
#288. 스위치
“이봐, 챔피언. 오늘 자네는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마지막 이닝까지 뛰게 될 거야. 최다 득표를 몰아준 팬들을 위해서 말이지.”
“문제없습니다.”
“좋아, 그리고… 그거 말인데, 정말 할 생각인가?”
“네, 팬들을 위해서요.”
“음, 알았어. 트레이너들도 별 문제는 없을 거라 하니……. 좋아, 그럼 내가 적절한 순간이 오면 알려주도록 하지. 명심해. 절대 무리해서는 안 돼. 자넨 올스타이기에 앞서 시애틀의 중심이라고.”
“당연한 말입니다.”
한수혁과 벤자민 감독 간의 짧은 대화가 끝나고, 양 팀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그라운드로 입장했다.
1회 초,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의 공격,
마운드에 선 선발투수 라이언 티보우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몇 차례 올스타에 선발된 적은 있지만, 첫 번째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의미 있는 자리다. 말하자면 올 시즌 아메리칸 리그 선발 투수 중 실력 면에서, 그리고 인기도 면에서 최고의 선수라는 증명이라고 해야 할까.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타이 존슨이 떠난 세인트루이스를 이끌고 있는 중견수 그랜트 딕슨.
힘 있고, 정교하고, 발도 빠른 올라운드 타입의 선수.
저 선수를 시작으로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들이 줄줄이 타석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모두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
이틀간의 휴식 후 시작될 하반기를 위해 오늘 라이언은 단 1이닝만을 소화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공 하나하나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오늘 경기를 지켜보는 미국, 그리고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자신이 성장한 모습을, 지난 시즌까지 힘만 믿고 던지던 자신이 드디어 야구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
슈웅
부웅
“스윙!”
한수혁에게 마음을 연 후 노골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를 따라 다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야구를 배우고 있다.
그는 결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를 밀어내는 사람도 아니다.
한수혁은 말로 뭔가를 설명하는 데 인색한 사람이다. 하지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든 걸 알려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라이언이 아쉬운 건 단 한 가지, 조금 더 그와 일찍 만났다면, 지금보다 어렸을 때 그와 만나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그럼 조금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남은 미련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늦지 않았다.
올 시즌 시애틀은 월드시리즈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수혁이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마운드를 지키는 에이스,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건 라이언 자신이라고.
그의 말을 따른다. 그리고 그와 힘을 합쳐 팀을 승리로 이끈다.
[2번 타자 3루수 애런 데커]1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나니, 다저스, 아니,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인 애런 데커가 타석에 들어섰다.
누군가 말했다.
올스타전은 올스타전일 뿐이라고.
하지만 라이언의 생각은 달랐다.
올 시즌, 시애틀이 사상 첫 월드시리즈에 오르게 된다면,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상대가 될 확률이 높은 팀 중 하나가 바로 다저스다.
그리고 애런 데커는 그 팀의 중심이다.
무너뜨린다. 철저하게.
슈웅
따악!
“파울!”
3루 베이스 라인을 타고 흐르는 강한 타구.
하지만 한수혁은 마치 타구의 방향을 예상이라도 하는 듯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공을 바라만 보았다.
생각해보면 한수혁의 진짜 가치는 단순히 공을 잘 던지고, 잘 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떤 자리에 세워 놓아도 제 몫을 다하는, 아니, 다 하는 걸 넘어 가장 잘하는 선수.
그게 바로 한수혁이다.
슈웅
부웅
“스윙!”
그를 뒤에 놓고 공을 던지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진다.
언젠가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한수혁 7명을 등 뒤에 놓고 공을 던지고 싶다는 그런 생각.
물론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맞춰 잡는 피칭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지.’
수비수 한수혁은 그런 선수다.
그저 그라운드에 서 있는 것만으로 투수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존재.
기분 좋은 상상을 끝낸 라이언 티보우가 애런 데커를 향해 곧바로 승부를 걸었다.
“타핫!”
슈웅
부웅
“스윙 아웃!”
“좋았어! 흐흐흐! 멋지군!”
“한 방 먹여줬어! 역시 야구는 아메리칸 리그지!”
힘찬 기합과 함께 발사된 70마일 체인지업.
당연히 포심이 들어올 거라 생각했던 애런 데커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고, 관중석에서 커다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좋다.
이런 감각이야말로 나를 살아 있게 해준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희열을 느끼며 다음 타자를 맞이했다.
[3번 타자 숏스탑 하비에르 카스티요]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간판타자이자 현 시점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가 타석에 들어섰다.
라이언이 신중한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가 상대해야 할 타자는 여기까지다.
이번 승부를 끝으로 라이언 티보우의 2030년 올스타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어느 때보다 신중한 표정이 된 라이언이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았다.
동료인 브루스 매튜스보다 편하지는 않지만 기량 면에서는 한 수 위라 봐도 좋을, 메이저리그 최고의 포수 제리 와그너.
사인 두 번 만에 배터리의 뜻이 일치했고, 마침내 라이언의 손끝에서 공이 발사되었다.
하지만,
‘아차.’
던지는 순간 깨달았다.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걸.
역시나 힘이 과하게 들어간 공은 본래 목표했던 곳보다 높은 곳으로 날아갔고, 하비에르의 방망이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따아악!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총알 같은 타구가 3루수 머리 위로 날았다.
맞는 순간 장타가 될 게 확실한 타구.
라이언의 얼굴이 일그러지려던 그 순간,
파아앙!
“어억! 저걸 잡아?”
“젠장! 내셔널리그 촌놈들아! 맛이 어떠냐! 이게 바로 시애틀의 주전 3루수라고!”
“이런 건 난생 처음 봤을걸? 그러니 집에 가서 엉엉 울기나 하라고!”
제자리에서 거의 1미터 이상을 날아오른 한수혁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타구를 그대로 낚아챘다.
“젠장, 정말 괴물이군. 저런 서전트 점프는 미식축구에서나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저런 운동 능력에 미친 펀치에, 대체 왜 야구를 하는 거야?”
타구를 잡아낸 한수혁이 그 공을 관중석에 던져준 후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대체 저 녀석이 못하는 건 뭘까?
다른 모든 걸 떠나 한수혁이 같은 편이라는 데 대해 라이언은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 * *
“플레이!”
오늘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의 첫 번째 선발투수로 선정된 앤드류 데이비스는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한수혁에게 본때를 보여줄 거라고.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타이 존슨을 뺏어간 원수, 나아가 세계 최고의 투수를 꿈꾸는 자신을 막아선 사상 최악의 빌런.
악감정은 아니었다.
뭐랄까, 언젠가 꼭 넘어서야 할 최종보스를 바라보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팀의 라인업 중 1번, 2번, 3번이 모두 시애틀 선수들이다.
이미 인터리그에서 한 차례 상대했던, 어쩌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강타선.
더욱 큰 문제는 3번 타자까지만 신경 쓰면 됐던 시애틀과 달리, 오늘 앤드류가 상대할 팀은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라는 거다.
감독이 정해준 자신의 임무는 2회까지.
완벽하게 막아내고 싶다.
적어도 오늘 경기 MVP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
슈웅
부웅
“스트라이크!”
유인구 따위는 필요 없다. 어차피 하반기 첫 경기에는 앤드류가 아닌 2선발이 등판할 예정이다.
때문에 앤드류는 오늘 2이닝 투구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마치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것처럼 말이다.
전력을 다한 앤드류 데이비스의 손끝에서 102마일에 달하는 포심이 발사되었다.
슈웅
부웅
“스윙! 아웃!”
“좋았어! 멋진 투구야!”
“너를 믿어, 앤드류! 저 녀석들을 박살 내버려!”
이곳까지 원정 온 세인트루이스의 팬인지, 아니면 그저 시애틀을 싫어하는 어느 팀의 팬인지,
그게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팬들의 환호를 들으며 앤드류가 두 눈을 꼭 감았다.
한수혁의 회귀 전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관종이라 불렸던 앤드류 데이비스.
그가 자기 자신에 심취해 있는 사이,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2번 타자 서드베이스맨 한수혁]갑자기 정신이 번뜩 돌아왔다.
온몸에 퍼져가던 나른함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팽팽한 긴장감이 돌아왔다.
다시 만났다.
지난 올림픽, 그리고 인터리그 경기에서 자신을 박살 낸 괴물.
복수를 위해, 그리고 앞으로 세계 최고가 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치워야 할 빌런.
‘이긴다, 이긴다, 반드시 이길 거다.’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앤드류 데이비스의 얼굴.
월드시리즈 무대에라도 선 듯 신중한 표정으로 투구를 시작한 앤드류.
그의 손끝에서 자신의 최고 구속인 102마일을 넘어 103마일에 달하는 강력한 포심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악!
관중들의 환호성을 뚫고 나올 정도의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하얀 궤적 하나가 경기장 중앙을 향해 뻗어나갔다.
“나왔다!”
“간다! 간다! 간다!”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홈런임을 예감한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수혁의 이름을 연호하고,
그에 답례라도 하듯 보기만 해도 정신이 어질어질해질 것 같은 배트 플립을 한 한수혁이 타구를 바라보고,
터엉
T모바일파크 중앙 펜스를 넘은 타구가 외벽을 넘어 경기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순간,
“우아아아아아아아!”
“퍼킹! 이거지!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장외홈런은커녕 일반 홈런도 나오기 힘들다는 투수 친화적 구장 T모바일파크.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뚫고 장외홈런을 날려버린 한수혁이 마치 춤을 추듯 스텝을 밟으며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아하하! 저 친구, 춤은 잘 못 추는군!”
“좋아! 그래서 더 멋져! 인간적이야!”
“젠장, 경기가 끝나면 우리 집으로 와! 내가 멋진 댄스를 가르쳐주지!”
민예린에게 직접 배우기는 했지만 한수혁의 댄스 실력은 엉망진창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그는 즐거워했고, 그 모습을 보는 관중들도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오직 한 사람, 거대한 홈런을 허용한 앤드류 데이비스를 제외하고 말이다.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돈 한수혁이 마침내 홈으로 돌아왔다.
그의 발이 홈플레이트를 힘차게 밟았다.
쿵
앤드류 데이비스의 귀에 그것은 마치 거인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렸다.
* * *
“마무리는 누가 하려나?”
“에밀리오가 한 이닝 더 던지지 않을까?”
2030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경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아메리칸 리그 팀에서는 라이언 티보우에 이어 오클랜드의 에이스 데빈 맥퍼슨과 류한결, 지미 맥카운, 샤킬 레너드, 에밀리오 카스트로 등이 이어 던지며 8회까지 5점을 내주었다.
반대쪽 내셔널리그 팀에서는 앤드류 데이비스를 시작으로 조슈아 칼루, 다나카 야마토, 래리 암스트롱이 등판했다.
그리고 한수혁은 4타수 4안타 3홈런 5타점을 기록하며 팀이 올린 6점 중 5점을 혼자 책임졌다.
9회 초, 6 대 5로 한 점 차 뒤진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마지막 마무리를 누가 할지를 놓고 관중석이 웅성거리던 그때,
불펜 문이 열리며 생각지도 못한 선수가 마운드를 향해 걸어 나왔다.
“으응?”
“오늘 안 던진다며?”
“깜짝쇼 같은 건가!”
“좋아! 뭐가 어찌 되었든 환영이야! 내셔널리그 멍청이들을 박살 내버려!”
한수혁이었다.
오늘 등판 예정이 없던 한수혁이 한 점 차 승부를 마무리 짓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가만… 뭔가 그림이 이상한데?”
“맙소사! 글러브를 오른손에 끼고 있잖아!”
“응? 아니? 왜? 뭐 하는 거지?”
“설마 왼손으로 던지려는 건가?”
설마 하던 일이 정말 벌어졌다.
연습투구가 시작되었고, 한수혁이 왼손으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슈웅
퍼엉!
90마일,
슈웅
퍼엉!
91마일,
슈웅
퍼엉!
92마일,
그렇게 간단한 연습투구를 마친 한수혁이 주심을 향해 준비가 되었다는 사인을 보냈다.
느슨해졌던 경기장의 분위기가 다시 팽팽하게 조여졌고, 드디어 한수혁의 왼손 실전 피칭이 시작되었다.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