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9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90화(291/412)
#290. 리더의 책임
“젠장, 양키스 놈들이 돈이 많긴 많군. 벌써 몇 명째야?”
“이런 트레이드를 승인해준 걸 보면 확실히 사무국도 제정신이 아니야. 이건 적극적으로 탱킹을 하라고 밀어주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트레이드 마감 기한이 다가오며,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전체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반기가 끝난 이 시점이 되면 가을야구에 도전해야 할지, 아니면 시즌을 포기할지, 혹은 극단적으로 탱킹에 들어가야 할지 대충 견적이 나오게 된다.
그렇게 탱킹을 선택한 팀에서는 비싼 선수들을 모두 매물로 내놓고, 양키스처럼 가을야구에 도전하는 돈 많은 팀에서 이를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인다.
타이슨 바샴의 부재로 인해 선발진에 한계를 느낀 양키스는 이달 들어서며 벌써 세 명째 투수를 트레이드 해갔다.
그 팀과 경쟁하는 입장에서 보면 욕 나올 일이지만, 사실 리그 전체의 흥행을 놓고 보면 저렇게 과감한 투자를 하는 구단에게 박수를 보내주는 게 맞다.
“양키스 영입 명단에 제임스 테일러 이름도 오르내리는 것 같더군.”
“설마! 그 친구를 팔면 템파베이 단장실에 폭탄이 날아들지도 모르는데?”
기본적으로 메이저리그 구단은 독립된 사업체다.
선수 연봉을 비롯한 운영 비용을 투자하고, 그보다 많은 수익을 얻는 게 목적인 사업체.
문제는 그 사업체를 운영하는 구단주들 중 일부는 전력보강보다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템파베이나 오클랜드처럼 환경이 정말 열악해서, 수익이 나지 않아서 긴축 운영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오늘부터 우리와 상대하게 될 마이애미 말린스는 비교적 탄탄한 연고지 인프라와 부자 구단주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파산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전형적인 운영 못하는 구단 중 하나이다.
덧붙여 내가 포스팅을 신청했을 때 유일하게 입찰을 안 했던 팀이기도 하고.
뭐, 입찰을 했다 해도 내가 마이애미에서 뛸 일은 없었겠지만.
“이렇게 되면 잡을 수 있는 경기는 확실히 잡아야겠군.”
“맞아요, 타이. 여기까지 왔는데 밀릴 수는 없죠.”
같은 팜에서 성장하며 여기까지 자라온 선수들, 그리고 타이 존슨이나 말린스 3인방, 하야시와 같은 이적생들, 여기에 아예 다른 나라에서 온 나까지.
이런 다양한 선수층이 섞여 있는 걸 감안하면 시애틀 라커룸의 분위기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만약 기존 선수들이 텃세를 부리고, 새로 이적해온 선수들이 따로 파벌을 만들고, 양쪽 모두 끼지 못한 선수들이 겉돌고,
그런 상황이었다면 팀 성적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라이언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주장이다.
뭐, 애송이들에 대한 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자, 그럼 오늘도 시작해보자고. 다들 엉덩이 떼고, 그라운드로 집합!”
감독의 호통과 함께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3연전이 시작되었다.
* * *
지금에 와서는 파산설까지 나돌고 있지만 사실 마이애미 말린스가 원래부터 이랬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1993년 창단해 팀 역사가 37년밖에 안 된 주제에 월드시리즈에 2번이나 우승을 했고, 창단 5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우승하던 당시에는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적극적인 투자를 했던 구단이기도 하다.
다만, 그렇게 우승을 차지하고 난 후 선수단 연봉 규모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한 말린스는 우승의 주역이었던 주축 선수들을 몽땅 팔아치우는 모험을 단행했고, 그런 역사는 현재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신인을 키우고, 적당히 컸다 싶으면 선수단을 보강해 우승에 도전하고, 그 일이 끝나면 주축 선수들을 몽땅 팔아치우고 탱킹에 들어가는, 그런 루틴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뜻이다.
팬들 입장에서는 대략 10년에 한 번 꼴로 우승에 도전하는 팀을 볼 수 있게 된다고나 할까.
문제는 2020년대 들어 그런 루틴이 깨어졌다는 거다.
무슨 생각인지 짠돌이 구단주가 돈을 풀어 선수단을 대폭 보강했고, 갑작스러운 윈나우를 선포했다.
하지만 우승은커녕 와일드카드조차 확보하지 못한 말린스는 곧바로 파이어세일에 들어갔고,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삽질이 거듭되며 파산설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구단 운영에 실패했다는 거다.
“오늘은 라이언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
“흠.”
말린스에 대한 감상은 이쯤에서 접어두고, 브루스의 말처럼 오늘 선발투수인 라이언의 컨디션이 유난히 좋아 보인다.
나는 투수가 언제 저런 표정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공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저런 표정이 나온다.
올스타전 첫 번째 선발로 등판한 경험과 내 왼손 투구를 지켜본 것이 심리적인 영향을 준 것일까?
모르겠다. 일단은 지켜볼 수밖에.
“플레이!”
* * *
우리 팀 감독인 벤자민 레이놀즈는 워리어스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선수의 육체적 능력만큼이나 정신적인 능력을 중요시하는 지도자다.
그래서인지 오늘 경기에서 벤자민 감독은 말린스 출신 3인방을 모두 기용할 생각인 듯했다. 일종의 친정팀 효과를 기대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1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7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8번 2루수 리암 랜드먼
9번 중견수 카일 섀너한
투수 라이언 티보우
일단 말린스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리암 랜드먼과 카일 섀너한이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고, 투수인 칼튼 벨에게는 불펜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라이언이 초반부터 흔들리거나, 혹은 반대로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질 경우 곧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말이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오늘은 데릭을 대신해 토니가 내 앞자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올스타전 베이스러닝 중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데릭이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슈웅
파앙
“볼.”
당연한 말이지만 토니는 데릭과는 전혀 다른 타입의 리드오프다.
데릭이 빠른 발과 적당한 배팅파워를 갖춘 역동적인 리드오프라면 토니는…….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2할 초반대의 타율에도 불구하고 출루율이 3할 후반대에 이르는 눈 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라고 해야 할까.
단점이라면 발이 너무 느리다는 건데,
괜찮다.
슈웅
따아악!
대신 큰 타구를 날릴 수 있는 파워를 갖고 있으니까.
“좋았어, 토니!”
“시원시원하게 날아가는군.”
선두 타자 토니가 좌중간을 꿰뚫은 멋진 2루타로 출루한 가운데 내 첫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좋은 출발이다.
“이봐, 휴양지에 사는 기분은 어때? 매일매일 휴가를 떠나는 기분인가?”
“음, 나쁘지 않아. 가끔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일 년 내내 따뜻한 곳에서 지낼 수 있어서 가족들도 모두 만족하고 있어. 혹시 이곳으로 휴가 올 일이 있으면 나에게 연락해도 돼. 좋은 곳을 소개해주지.”
에…….
뭐랄까, 시비를 걸려고 한 말에 저런 대답이 돌아오니 갑자기 내가 쓰레기가 된 기분이다.
됐다. 그냥 야구나 하자.
“휴가라… 그러도록 하지.”
“좋아, 언제든 연락하라고, 친구.”
뜻밖의 친구를 하나 얻게 된 나는 투수와의 승부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 속해 있는, 거기에 가을야구에서 만날 가능성이 눈꼽만큼도 없는 녀석들이니만큼 굳이 기를 죽일 필요도 없다.
지붕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놔서 그런지, 온도도, 습도도, 아주 적당한…….
슈웅
따아아아악!
그래, 홈런 치기에 아주 적당한 그런 날이다.
거참, 시원하게 날아가네.
* * *
선수 입장에서 볼 때 시즌을 포기한 상대와 경기를 하는 건 여러모로 김이 빠지는 일이다.
풋내기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꾸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그러다가 재수 없어서 지기라도 하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고 할까.
하지만 적어도 오늘 시애틀은 거기에 해당되는 팀은 아니었다.
[투수 교체 라이언 티보우 ▶ 칼튼 벨]우리 타선이 6회 초까지 무려 11점을 내자 벤자민 감독은 곧바로 라이언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말린스 출신의 롱릴리프 칼튼 벨을 투입시켰다.
아무리 짧게 던졌다 해도 올스타전에 등판한 만큼 휴식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경기 전부터 어깨가 유난히 가볍다던 라이언은 조금 아쉬운 듯했지만, 5회 말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은 것에 나름 만족하는 눈치였다.
“젠장, 혹시나 하고 와본 내가 병신이지.”
“이따위로 할 거면 그냥 구단을 해체해, 이 개자식들아!”
경기가 너무 일방적이어서 그런지 벌써부터 경기장을 떠나는 팬들이 보였다.
나는 첫 타석 홈런 외에는 또 다른 홈런을 추가하지는 못했다.
대신 2루타 두 방과 희생플라이로 타점 4개를 올렸을 뿐이다.
흠,
벤자민 감독이 승부수로 내놓은 리암 랜드먼과 카일 섀너한은 각각 홈런과 2루타로 타점을 올리는 등 벤치의 기대에 부응했다.
내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팀은 점점 더 강해진다.
이렇게 여유가 있는 경기에는 백업 멤버를 적극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한, 혹시 휴식이 필요하면 말해. 빼줄 테니까.”
“아직 괜찮습니다.”
물론 나는 빼고.
“그럼 수비 위치는? 좌익수로 바꿔줄까?”
“그건 상관없습니다.”
“좋아, 그럼 상황을 봐서 편한 곳으로 옮겨주지.”
점수가 크게 벌어지자 주전 타자들도 하나둘씩 라인업에서 빠지고 백업 멤버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게는 휴식이 아닌 타석이 필요하다.
오늘까지 내가 쳐낸 홈런의 개수가 48개,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하기 위해 필요한 건 25개의 홈런.
현재 페이스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리 멀게 보이는 목표는 아니지만, 홈런이라는 게 그렇다.
나올 때는 몰아서 나왔다가 한 번 막히기 시작하면 또 절대 안 나오는,
한국에서도 한 달 동안 고작 3개의 홈런밖에 못 때린 때가 있었으니, 항상 이런 사실을 머리에 담아둬야 한다.
나는 아직 이곳 빅리그에서 확고한 목표를 잡지 못한 상태다.
우승이나 MVP, 사이 영 상 같은 걸 노리자니 이미 회귀 전에 한 번 해본 일이고, 시애틀의 우승에 목을 매기에는 솔직히 팀에 대한 애착이 낮다. 지분을 매입했음에도 말이다.
그렇기에 목표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건 시애틀의 월드시리즈 진출, 그리고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다.
투수 기록?
솔직히 거기에는 큰 미련을 두지 않으려 한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 정체성이 투수라고 생각하지만 투타 겸업을 하는 상황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투수 쪽일 확률이 높다.
1년 내내 부상 없이 선발 로테이션을 지킨다 해도 몸에 문제가 생겨 정규이닝을 못 채울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투수 쪽 기록에 대해서는 일단 관심을 거둔 상태다.
자칫 그것까지 신경을 쓰다가는 나도 모르게 무리를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투수 관련 기록은 내가 전업투수를 하게 된 후에나 생각해보기로 하고,
슈웅
따악!
“아웃!”
“젠장, 고마워, 한. 완전히 빠져 나가는 줄 알았는데.”
“걱정 말고 편하게 던져, 칼튼. 11점 차이라고.”
“알아, 방금은 손이 미끄러진 거야.”
“습도가 낮으니 로진백도 충분히 만져주고.”
“충고 고마워.”
다음 타자가 들어서는 사이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눠본다.
마운드 위에 선 투수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옆에 선 동료가 말을 걸어주는 건 상당한 도움이 된다.
특히나 칼튼처럼 친정팀 팬들 앞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선수들에게는 말이다.
슈웅
부웅
“스윙! 아웃!”
“좋아, 칼튼! 계속 그렇게!”
“저 녀석들 겁먹었어. 박살을 내주라고.”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조쉬가 맡고 있던 내야수들의 지휘, 그리고 분위기를 조율하는 역할이 내게로 넘어온 것 같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더니, 이제는 선수들이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는 느낌이다.
뭐지, 이거 점점 워리어스 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