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9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91화(292/412)
#291. 지금 해야 할 일은
‘음.’
잠실야구장 바로 앞에 위치한 작은 오피스텔.
주로 학생, 혹은 사회초년생들이 거주하고 있는 이 단촐한 오피스텔에 서울 워리어스의 슈퍼스타 천상진이 살고 있다는 데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수혁의 회귀로 서울 워리어스가 다시 정상에 서고, 이제는 왕조라 불러도 부끄럽지 않은 전력을 갖추게 되면서 그 안에 있는 선수들의 입장도 많이 변했다.
서형주, 안치욱, 장덕수, 최민석, 양기철 같은 무명 선수들은 이제 워리어스를 넘어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고 그만큼의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의 정점에 서 있는 선수가 바로 천상진이다.
군 입대 전까지 1군 경기 등판 기록이 전혀 없던, 하지만 2027년 혜성같이 나타나 워리어스를 대표하는 투수가 된 인물.
구단에서는 그런 천상진에게 FA부럽지 않은 넉넉한 연봉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천상진의 생활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화가 없다.
오로지 집과 야구장만을 오가는 수도승과 같은 생활 패턴.
천상진의 관심은 넓은 집, 좋은 차, 맛있는 음식 따위에 있지 않았다.
그가 관심 있어 하는 건 오직 하나.
야구뿐이다.
‘이게 가능한 건가?’
방금 전 끝난 매지션스와의 경기에서 8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된 천상진이 침대에 누워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건 얼마 전 올스타 전에서 한수혁이 보여준 왼손 피칭 영상이었다.
2군 탈출의 해법이 보이지 않던 그때, 천상진 역시 스위치 투구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다.
왼손으로는 아무리 빨리 던져봐야 140㎞/h가 고작이었기에 혹시나 오른손으로 던지면 조금 더 위력적인 공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야구, 그리고 투구에 대해 알아가게 되면서 구속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지만.
당시 천상진은 그 정도로 절박했다.
‘수혁이가 부상이 없는 게 혹시 이것 때문인가?’
100경기 가까운 일정을 소화하면서 투타 양면에서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한수혁에 대해 미국과 한국 등 전 세계 야구팬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올 시즌 한수혁이 보여준 가장 큰 결과물은 홈런이나 평균자책점 같은 기록이 아니라, 그 불가사의할 정도로 단단하고 안정적인 몸 관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지금 천상진이 주목하고 있는 건 한수혁의 스위치 피칭이 몸 관리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몸을 세로로 나눠 양쪽 근육을 균형 있게 사용한다는 면에서 스위치 피칭이 도움이 된다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고,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지 못할 경우 자칫 부상이 올 수 있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스위치 피칭을 하는 선수가 거의 없기에 아직 결론이 난 사항은 아니지만…….
‘한번 해볼까.’
천상진의 나이도 이제 곧 서른, 원래도 평범했던 구속과 구위는 조금씩 하락세로 접어들 것이고, 언젠가는 한계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천상진이 바라는 건 오직 하나,
단 하루라도 더 오래 야구를 하는 것.
그걸 위해서는 못 할 게 없었다.
‘수혁이가 겨울에 한국에 들어오려나? 한번 물어봤으면 좋겠는데.’
생각을 마친 천상진이 다시 영상을 뒤로 돌려 한수혁의 피칭 모습을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투구 폼.
야구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천상진에게 후배 한수혁의 피칭을 보는 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 * *
말린스와의 1차전에서 큰 점수 차로 대승을 거둔 다음 날, 또다시 내 등판 차례가 돌아왔다.
야구의 모든 기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투수로서 완봉을 기록하고, 타자로서 홈런을 때려내는 거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포츠 중 가장 다양한 경우의 수와 작전, 그리고 전략이 존재하는 것이 야구이지만 사실 딱 두 가지만 갖추면 승리는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투수가 9회까지 한 점도 내주지 않고, 타자들 중 누군가 홈런 한 방만 때려주면 된다. 그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그리고 투타 겸업을 하는 선수는 그걸 혼자서 해낼 수 있다.
내가 이 힘든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1회 초 시애틀의 공격이 점수 없이 끝나고 1회 말 말린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시즌이 거의 3분의 2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여전히 0점대를 기록 중인 내 평균자책점을 놓고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사실 이런 수치는 나조차도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아무래도 KBO 때와는 많이 달라진 내 구위와 투구 패턴이 한 몫을 한 것 같다.
역대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저 평균자책점 기록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밥 깁슨이 기록한 1.12다.
그런데 좀 많이 옛날이다. 1968년에 세운 기록이니 말이다.
만약 내가 올 시즌을 1점대 이하의 평균자책점으로 마무리하게 된다면?
62년 만의 기록 경신과 함께 역대 최초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로 남게 될 것이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물론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해야 한다.
일단 정규이닝을 채우기 위해서는 162이닝 이상을 던져야 한다.
오늘 경기 전까지 116이닝을 던진 걸 감안하면 그럭저럭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다.
투타 겸업을 이어가는 선수의 몸은 극도로 예민한 정밀기계라고 봐야 한다.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곧바로 가동이 중단될 것이고, 나는 억지로 그 기계의 스위치를 올릴 생각이 없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선수로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지, 고작 기록 경신을 위해 내 한 몸을 불사르는 건 절대 아니니까.
슈웅
따악!
“아웃!”
그럼에도 내가 자꾸 평균자책점 기록에 눈길을 주는 이유는…….
“젠장, 오늘도 역시 끔찍하군. 말린스 녀석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야.”
“그래서 아까 1회 때 삼진 먹어준 거예요, 타이?”
“응? 하하, 제길, 한 방 먹었군. 좋아, 다음 타석에서는 장외로 넘어가는 홈런을 보여주지.”
어쩐지 이번 시즌이 끝나면 평균자책점 기록 맨 윗단에 내 이름을 박아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그리고 최저 평균자책점.
음,
진지하게 도전해볼까.
* * *
“나는 조금 더 잘 치는 타자가 되고 싶어. 방법이 없을까?”
“음, 경기 중에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알아, 그냥, 젠장, 너무 답답해서 해본 소리야. 선발 투수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줘.”
2회 초 시애틀의 공격, 삼진으로 물러난 유격수 조쉬 올리버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내 옆에 주저앉았다.
우리 팀의 선발 라인업 중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 바로 2루와 유격수다.
시즌 초만 해도 2루는 조나단 오웬스, 유격수는 조쉬 올리버의 독차지였다.
타격은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부족하지만 수비 하나만큼은 골드글러브 감인 두 명의 젊은 내야수.
하지만 기존 백업 요원인 로니 몬타릭의 성장과 말린스에서 넘어온 리암 랜드먼의 분전으로 인해 2루와 유격수 자리의 주전 다툼이 본격화되었다.
현 상황으로 보면 2루는 리암 앤드먼의 차지가 된 듯하다.
수비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0.850의 OPS를 보여줄 수 있는 2루수는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반면 유격수 자리는 기존 주전인 조쉬 올리버의 출장 회수가 가장 많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나단 오웬스, 혹은 로니 몬타릭이 들어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역시나 타격 문제이다. 우리 팀의 주전 유격수 조쉬 올리버는 쉽게 말해 수비에 가중치를 너무 많이 둔, 전형적인 수비형 유격수다.
“조쉬.”
“어? 어, 그래. 한.”
“너도 알겠지만 타격에 정답은 없어. 그런 게 있었다면 우리가 이런 고생을 하진 않았겠지.”
“그야 그렇겠지.”
“상하체가 따로 논다. 마음이 다급하니 팔로스로우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몸이 일루로 향한다… 뭐, 이런 말은 이미 많이 들어봤을 거 아냐.”
“맞아. 지금도 고치려고 노력 중이지.”
“음, 어쩌면 이건 감독이나 코치가 하기 어려운 말일 수도 있겠군. 좋아, 그럼 내가 말해주지. 이번 겨울에 체중을 좀 늘려보는 건 어때?”
“체중을?”
“내가 보기엔 그래. 지금 네 타격 매커니즘에서 체중만 조금 늘어나면 결과물이 전혀 달라질지도 몰라.”
“솔직히… 나도 고민 안 해본 건 아닌데, 그럼 유격수 수비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수비? 골드글러버가 목표야?”
“당연하지. 유격수라면 골드글러브를 받는 게 1차 목표 아니겠어?”
“그렇군. 그런데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뭘?”
“일단 주전 자리를 지켜야 골드글러브든 뭐든 딸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에 조쉬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다른 포지션에 비해 그간 별다른 경쟁이 없었던 유격수 자리, 조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팀의 구멍이 2루와 유격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걸 감안하면 지금 그가 걱정해야 할 건 골드글러브가 아니라 생존일지도 모른다.
뭐, 이 정도면 대충 알아들었겠지.
“자, 다시 수비다. 집중하고! 말린스 놈들을 박살 내버려!”
1회에 이어 2회에도 시애틀은 점수를 내지 못했다. .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어제처럼 큰 점수 차로 이기고 난 후에는 자연스럽게 타자들의 스윙이 커지고, 이게 타격 부진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우리 팀의 애송이들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지 마운드에서 벼텨주는 거다.
이런 것이 바로 베테랑이 팀에 기여하는 방법이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빅리그 1년 차에 불과한 애송이지만.
흠,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어제 경기가 끝난 후 이 팀의 주전 포수인 브루스 매튜스가 내 숙소로 찾아왔다.
맥주 두 병을 들고 멋쩍게 웃는 녀석을 방으로 들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을 털어놓았다.
‘젠장, 한, 솔직히 말하건데 나는 이 팀을 떠날 생각이었어.’
팀내 야수들 중 최고참인 브루스는 올 시즌이 끝나면 FA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미 팀을 떠난 베테랑 선수들, 그리고 팀에서 새롭게 키워낸 젊은 선수들 사이에 위치한 그는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개인 성적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꽤 적극적으로 덕아웃 분위기를 살피는 팀의 리더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데 난 솔직히 필리스 팬이야.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알아, 나도 내가 미친놈인걸. 젠장, 그래도 어쩌겠어. 내 유년 시절의 추억이 그 좆같은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 묻혀 있으니 말이야.’
솔직히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회귀 전 그가 FA로 이적을 하긴 했지만 필리스가 아닌 자이언츠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협상이 잘 안 되었던 걸까.
브루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음… 작년까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던 어린놈들이 자꾸 눈에 밟혀. 내가 떠나면 저 녀석들은 어쩌려나… 뭐? 사실은 우승 반지가 탐나는 거 아니냐고? 젠장, 역시 널 속이는 건 무리였군. 맞아, 흐흐, 나는 월드시리즈 정상에 서고 싶어. 그리고 그걸 위한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네 옆에 붙어 있는 거란 걸 깨달았고 말이야.’
맥주 두 병을 원 샷하고 뭔가를 계속 주절거리는 녀석을 돌려보내고 침대에 등을 기댔다.
원 역사대로라면 시애틀을 떠나 자이언츠의 주전포수가 되었을 브루스 매튜스의 운명이 나로 인해 뒤바뀌게 되었다.
물론 내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의 선택이니 말이다.
다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 이상 최소한 결과만이라도 바뀌기 전보다 좋아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부웅
파앙
“스윙! 아웃!”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승, 시애틀의 우승.
이제 그것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