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9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95화(296/412)
#295. 그렉 매덕스의 재림
‘으음…….’
투런 홈런을 때린 라파엘 오수나를 비롯 백업 멤버들의 대활약으로 말린스를 스윕하는 데 성공한 매리너스.
그들의 다음 상대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강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다.
올 시즌 필리스와 지구 우승을 다투고 있는 브레이브스는 전통적으로 투수력이 강한 팀으로 인식되고 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그렉 매덕스, 존 스몰츠, 톰 글래빈 등 사이영 위너 3인방을 거느리고 리그 최강으로 군림했던 팀.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후에도 애틀랜타는 자체 육성선수뿐만 아니라 외부 FA영입 때도 선발투수를 최우선으로는 하는, 선발야구의 표본과도 같은 팀이었다.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렉 매덕스나 존 스몰츠, 톰 글래빈 3인방에는 비교할 수 없지만 리그 정상급이라 불러도 좋은 3명의 선발 투수를 중심으로 단단한 마운드를 구축한 상태다.
자체 팜에서 키워낸 도미니카 출신의 우완 투수 미겔 나바로는 예전 그렉 매덕스를 연상시키는 우완 기교파 투수이다.
2선발로 나서는 좌완 기교파 투수 윌리 게이를 애틀랜타 팬들은 제2의 톰 글래빈이라 부른다.
여기에 3선발인 제이 워드는 올 시즌 105마일을 던지며 한수혁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구속을 기록한, 제구력이 부족해 다소 기복이 있긴 하지만 존 스몰츠의 재림이라 불러도 좋을 강속구 투수다.
‘하필이면 로테이션이… 젠장.’
원정팀 감독실에 앉은 벤자민의 표정이 어두운 건 이번 3연전에 애틀랜타의 에이스 3인방이 차례로 출격하기 때문이다.
본래 순서대로라면 하반기 첫 3연전에 나섰어야 했건만, 올스타전 등판과 컨디션 조절 실패, 약간의 부상 등 가지각각의 이유로 3인방의 등판이 뒤로 밀린 탓이다.
그런 이유로 지구 라이벌인 필리스와의 3연전에서 1승 2패를 당한 애틀랜타는 이번 시애틀과의 3연전에서 어떻게든 위닝 시리즈를 가져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월드시리즈를 목표로 하고 있는 시애틀 역시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문제는 시애틀의 선발진이었다.
1, 2, 3선발이 차례로 출격할 애틀랜타를 맞아 시애틀은 4, 5, 1선발로 맞서야 하는 상황.
선발진 강화를 위해 밀워키에서 데려온 4선발 하야시 렌타로, 5선발 디몬 앤더슨 주니어, 그 둘이 나서는 경기 중 한 경기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1선발 라이언이 등판하는 마지막 경기에 승부를 걸어볼 수 있을 테니까.
‘으음…….’
시즌이 진행되며 체력 문제를 호소하는 선수들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나 시애틀은 다른 팀에 비해 몇 경기를 더 치른 상황.
팀의 기둥 중 하나인 타이 존슨, 거의 전 경기에 출전 중인 우익수 척 클락, 주전 포수 브루스 매튜스 등 체력을 관리해줘야 할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젠장, 결국 또 이렇게 되는군.’
벤자민 감독이 입맛을 다시며 텅 빈 라인업 용지를 바라보았다.
말린스를 스윕하며 오늘 하루 휴식을 주려 했던 이 팀의 기둥 중의 기둥 한수혁.
하지만, 상대 1선발인 미겔 나바로를 상대로 한수혁 없이 경기를 치를 생각을 하니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오, 주여.’
마음속으로 신의 이름을 찾은 벤자민이 라인업 용지에 한수혁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거짓말처럼 진정되고, 손발의 떨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벤자민 감독은 깨달았다.
한수혁이야말로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야구의 신이라는 것을,
지상에 강림한 신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그런 선수를 지휘할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한 벤자민 감독이 나머지 빈 공간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 * *
“우리가 말린스를 스윕하는 동안 오클랜드 놈들도 미네소타를 스윕했다. 그런 이유로 오늘은 총력전이다. 도저히 못 뛰겠다 싶은 녀석이 있으면 내 방으로 찾아오도록.”
라커룸 벽면에 선발 라인업 용지를 붙여놓은 벤자민 감독이 그 말 한마디를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휴식을 취하거나 가벼운 식사를 하고 있던 선수들이 라인업 용지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7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8번 2루수 리암 랜드먼
9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선발 투수 하야시 렌타로
“…….”
오늘도 선발에서 제외된 걸 확인한 조나단 오웬스가 고개를 푹 떨구고 라커룸을 나가버렸다.
감독의 입에서 총력전이라는 말이 나온 상황에서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는 자신이 빠졌다는 건 지금 이 라인업이 감독이 생각하는 베스트멤버라는 걸 깨달은 거다.
아주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나는 저 녀석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알고 있다.
예전 삶에서도 타격 부진으로 고민하던 조나단 오웬스는 스위치히터로 변신을 시도했고, 결국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긴 했지만 예전보다 훨씬 나은 공격력을 갖춘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다.
시즌 중에 그런 얘기를 해봐야 저 녀석에게 혼란만 심어줄 뿐이다.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녀석이 계속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그때는 슬쩍 내 의견을 흘려도 되겠지.
물론 받아들이고 말고는 녀석의 선택이겠지만.
“하야시, 넌 왜 그렇게 죽상이야? 어디 안 좋은 데라도 있어? 상대 투수가 미겔 나바로라 그런 건가?”
“아니, 난 그냥… 음, 별 일 아니야.”
오늘 호흡을 맞출 브루스의 말에 살짝 망설이던 하야시는 결국 아무 말 없이 자기 라커로 돌아갔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빅리그 팀의 라커룸 분위기는 한마디로 이렇다.
덩치만 커진 남자 애들 수십을 감독할 사람도 없이 한 자리에 모아놓은 느낌이랄까?
라커룸 중앙에 마련된 게임기 앞에 모여 100달러 내기 게임을 하고 있는 놈들,
테이블 하나를 놓고 카드를 치는 놈들, 보기만 해도 토 나올 것 같은 춤을 추는 놈들, 유치한 장난을 치며 사방팔방으로 뛰어 다니는 놈들까지.
그런 라커룸 안에서 하야시는 언제나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뭐, 얌전함이라는 게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양인,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인 선수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지만 오늘은 유난히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이적 후 첫 선발 등판이 부담되는 걸까, 아니면 브루스의 말처럼 상대 투수가 애틀랜타의 에이스인 미겔 나바로라 그런 걸까.
일단 경기가 시작되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 * *
“플레이!”
1회 초 시애틀의 공격, 선두 타자 데릭이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선발로 나선 애틀랜타의 에이스 미겔 나바로는 회귀 전 내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워했던 투수 중 하나다.
내가 타자로 완전 전업한 후 새로운 커리어를 쌓아가던 시절 방송국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투수는 누구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이 흐르고, 인간의 육체와 기술이 발전하며 구속이나 구위를 강점으로 삼는 투수들의 이름은 점점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90년대와 2000년대 리그를 지배했던 강속구 투수인 랜디 존슨과 페드로 마르티네즈 같은 투수들을 2030년대로 소환하면 과연 그대로의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인가?
해당 투수들의 팬이라면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리란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당시로서는 마구에 가까웠던 100마일 포심의 가치가 이제는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구의 기본,
그러니까 타자와의 머리싸움에서 한 발 앞서 나가고, 절묘한 제구력과 볼 배합으로 타자를 요리할 줄 아는 투수의 가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렉 매덕스를 역대 최고의 투수라 생각한다.
인터뷰가 방송되고 난 후 나와 다른 뜻을 가진 야구팬들의 항의에 SNS를 잠시 닫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내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시대를 초월하는 투구의 가치, 그렉 매덕스는 그런 투수였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물론 지금 애틀랜타의 마운드에 서 있는 미겔 나바로를 그렉 매덕스와 비교하는 건 조금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입고 있는 유니폼부터 시작해서 투구 스타일, 하다못해 배가 약간 나온 아저씨 같은 체형까지 똑같다 보니 애틀랜타 팬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받는 모양이다.
어쨌든 긴장해야 한다.
그는 내가 빅리그에 진출한 후 상대하게 된 가장 까다로운 투수일지도 모르니까.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Fuck!”
물론 거기 해당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허를 찌르는 투구에 삼구 삼진을 당한 데릭이 투덜거리며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2번 타자 서드베이스맨 한수혁]평소 같으면 일단 포수의 기부터 죽여 놓았겠지만 오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오늘 구종과 코스를 결정하는 건 벤치나 포수가 아닌 미겔 나바로, 바로 투수 자신일 테니까.
툭툭
들고 있던 배트로 홈플레이트를 툭툭 두드리며 생각해본다.
저 투수가 무서운 건 타자의 약점이라 생각되는 곳에 과감하게 공을 던질 수 있는 배짱과 제구력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4할을 치고 50개 가까운 홈런을 치고 있다 해도 약점이 없는 건 절대 아니다.
일단 빅리그 투수들에게 대응하기 위해 새로 장착한 타격 매커니즘상 바깥쪽 낮은 공에 대한 대응이 KBO 때보다 조금 못하다.
그렇기에 미겔 나바로 같은 투수를 상대할 때는 평소처럼 공 보고 공 치기 식의 타격은 지양해야 한다.
그보다는 일관된 타격 매커니즘이 필요하다.
미겔 나바로는 포심보다는 투심의 구사 비율이 살짝 높은, 거기에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를 섞어 타자를 요리하는 투수이다.
포심과 투심, 일단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내가 만약 투수라면 나를 상대로 초구로 뭘 던질까?
한가운데 투심,
그래, 지금 가장 좋은 공은 타자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그리고 땅볼을 유도할 수 있는 한가운데 투심이다.
내가 투수라면 분명 그 공을 던질 것이다.
그렇기에 노린다.
드드득
한가운데 투심에 대비한 타격 스탠스.
타격 준비가 끝나는 순간 미겔 나바로의 손끝에서 하얀 공이 발사되었다.
그의 투구 동작에 맞춰 하나, 둘,
따악!
어라?
“와아아아아!”
“좋아! 미겔! 네가 괴물을 잡아냈어!”
배트 윗단에 빗맞은 힘없는 타구가 중견수에게 잡혀버렸다.
속았다.
한가운데로 들어오리란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구종이 틀렸다.
포심.
저 여우 같은 놈은 올 시즌 50개 가까운 홈런을 때려낸 타자를 상대로 90마일 포심을 존 한복판에 던져버렸다.
“흐흐, 너도 속을 때가 있군.”
“젠장, 장난 아니에요, 타이. 보기보다 공도 묵직하고요.”
“알아, 저놈하고 하루 이틀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내 생각에는 타이에게 포심은 안 던질 거 같아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저놈 속을 누가 알겠어? 어쨌든 덕아웃에서 잘 지켜보라고. 내가 한 방 먹여주고 돌아올 테니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좋아, 두고 보라고.”
그런 말이 있다.
두고 보자는 사람 중에 무서운 사람 하나 없다고.
큰 소리 땅땅 치고 타석에 들어선 타이 존슨은 결국 공 세 개 만에 내야수 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지금까지 느낀 상대 선발 미겔 나바로의 컨디션은 최고조.
오늘 경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