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9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96화(297/412)
#296. 일진 잡는 일진
한국 사회에 남아 있는 여러 악습들 중 소위 말하는 군기, 그러니까 학교나 회사 같은 조직 내 엄격한 규율과 상하관계에서 기반한 대부분의 것들은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해 전파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선배가 후배를 때리고, 기합 주고, 억압하고, 조직 내에 파벌을 만들어 거기 속하지 못한 이들을 따돌림 하는 이지메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갑자기 똥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저기 마운드 위에서 죽을상을 하고 서 있는 우리 팀 선발 투수 하야시 렌타로 때문이다.
이제야 생각났다.
저 녀석이 왜 저러는지.
회귀 전 저 하야시 렌타로가 은퇴한 후 공개된 인터뷰 한 꼭지가 떠올랐다.
[일본 요미우리 시절부터 이어온 하야시 렌타로와 야마모토 겐이치 사이의 악연, 상습 폭행과 이지메, 그걸로도 모자라 목숨에 대한 위협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내 일명 야마모토 군단을 만들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위에 군림했던 야마모토 겐이치, 메이저 진출 후에도 일본 후배들 대상 협박 이어가] [은퇴한 다른 일본인 선수들을 통해 공개된 진실 “야마모토 뒤에는 야쿠자가 있다?” 일본 프로야구계 발칵]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우리 팀의 하야시 렌타로가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던 당시 거기에는 파벌을 조직해 대장 놀이를 하던 야마모토 겐이치라는 쓰레기가 있었는데, 그놈이 올 시즌 직전 FA로 빅리그로 진출한 거다.
오늘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애틀랜타로 말이다.
그때 본 기사 내용은 그야말로 추접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야마모토 파벌에 속한 놈들이 하야시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을 대상으로 수시로 협박하고 때리고, 돈을 빌리고 안 갚고, 심지어 장난을 친답시고 글러브나 유니폼을 찢어놓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술집으로 불러 알몸으로 춤을 추게 하는 등.
그런 분위기 속에 있다 메이저리그로 탈출을 한 하야시이지만 자신을 지독하게 괴롭히던 야마모토가 FA로 미국까지 따라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플레이!”
하아…….
진짜 이 세상에는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 걸까.
야마모토 겐이치의 타순은 5번,
하지만 하야시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짜증과 공포가 반반씩 섞인 복잡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슈웅
파앙
“볼.”
심리적인 문제 때문인지 하야시의 제구가 벌써부터 흔들린다.
이럴 때는 첫 타자와의 승부가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뭔가 잘못되면 그대로 무너질 수도 있다.
다행히도 이 팀의 내야진과 외야진의 수비력은 메이저리그 평균을 상회하는, 그러니까 제법 쓸 만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가능하면 내 쪽으로 타구가 왔으면 좋겠지만.
내 바람을 누군가 듣기라도 한 것일까?
따아악!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총알 같은 타구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몸을 이동해 중심 한가운데에서 처리하기에는 너무 빠른 공.
어쩔 수 없이 팔을 쭉 뻗어 글러브 안으로 공을 우겨 넣고,
스르륵
그 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며 타구의 힘을 줄이고, 그 즉시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1루로 송구,
아웃!
“젠장! 저걸 저렇게 쉽게 처리한다고?”
“개자식! 더럽게 유연하군!”
음,
저건 욕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어려운 타구를 쉽게 처리해준 덕분인지 하야시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그래야지.
내 돈 500만 달러나 주고 데려온 놈인데.
“플레이!”
언제나 선발투수에 모든 걸 올인하는 팀이긴 하지만 이 팀에 쓸 만한 타자가 없는 건 아니다.
리그를 대표할 만한 선수는 없지만 최소 A급 이상으로 꽉 짜여진 균형 있는 타선.
두 번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은퇴해야 했던 아쿠냐 주니어까지 있었다면 타격만으로도 리그 정상에 도전해볼 만한 팀이었을 것이다.
아쿠냐 주니어… 그래,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놈이었다.
도루의 가치가 아무리 바닥으로 떨어졌다 해도 한 시즌 40-70이라니.
70-40이면 모를까, 그건 지금의 나조차도 도전하기 힘든, 어쩌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다시 나오기 힘든 기록일 것이다.
흠,
홈런과 관련된 기록을 깨고 나면 체중을 좀 줄여서 70-70에 도전을…….
됐다.
일단 이 문제는 나중에.
슈웅
따아악!
“와아아! 좋았어! 바로 그거야!”
“시애틀 놈들을 박살 내! 내셔널리그의 힘을 보여주라고!”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2번 타자가 친 잘 맞은 타구가 우익수 앞 안타가 되었다.
내가 보기에 오늘 하야시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다만, 이제 곧 서른이 될 놈이 예전 자신을 괴롭혔던 머저리의 그림자에 눌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1사 주자 1루.
집중해야 한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야마모토인지 다마네기인지 하는 놈을 만나게 되면 하야시가 무너질 수도 있다.
어떻게든 그 전에 처리해야 한다.
“플레이!”
투수로서 시즌을 치르다 보면 가장 힘든 게 바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야구에 9개의 포지션이 있지만 그중 가장 예민한 건 투수, 그중에서도 홀로 긴 이닝을 책임져야 하는 선발투수이기 때문이다.
상대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를 달리는 강팀의 에이스,
그 와중에 우리 팀 선발은 예전의 악몽 때문에 기가 죽어 있는 상황,
음,
아무래도 좋지 않다.
이럴 때는 배터리를 이루는 포수가 투수의 마음을 잘 헤아려…….
따아악
“오오오오! 그래! 퍼킹! 그거지!”
“좋아! 박살 내!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라고!”
젠장,
상황이 최악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연속되는 안타에 투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고, 결국 다음 타자에게 볼넷.
하야시는 결국 1사 만루 상황에서 마음 속 깊은 곳에 악몽으로 남아 있는 야마모토와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 * *
‘빠가야로…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군.’
이제 곧 서른이 되어 가는 나이에 예전 자신을 괴롭혔던 선배와 만나는 게 이렇게 무섭다는 게 너무 수치스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요미우리에서 뛰던 5년 내내 자신과 후배들 위에 군림했던, 야쿠자 연루설까지 나오며 구단에서조차 쉽게 컨트롤하지 못했던 야마모토 겐이치는 정말 무서운 인간이었다.
저놈에게 얻어맞은 게 몇 번이고,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당한 상처가 얼마나 컸던가.
이제는 자신 역시 베테랑이 되어 가고 있지만, 그때 그 시절 야마모토에게 당한 고통은 여전히 몸과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다.
‘정신 차리자, 하야시! 넌 프로야! 어른이라고!’
[5번 타자 퍼스트베이스맨 야마모토 겐이치]애써 다짐을 해보건만,
장내 아나운서의 입에서 야마모토라는 이름이 나오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린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신은 한 해 연봉으로만 천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받는 프로 중의 프로, 전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빅리그 선수 중 하나이다.
예전 저 녀석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머리통에 공을 꽂아넣고 싶지만…….
오랫동안 학습된 공포는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하야시가 할 수 있는 건 어떻게든 저놈을 잡아내고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내는 거다.
“하아…….”
하야시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 나왔다.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평소와 다른 자신의 표정을 걱정하는 동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병신 같은 소리를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무엇보다 마초다움을 강조하는 게 미국의 문화이다.
고작 신인 시절 이지메를 당한 것만으로 이렇게 움츠러들었다는 걸 알면 동정이 아닌 비난과 비아냥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겨내야 한다. 어떻게든 혼자 이 순간을 극복해야 한다.
“플레이!”
타석에 선 야마모토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았다.
놈의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했다.
자신을 호구로, 아니, 그걸 넘어 아예 병신으로 보는 게 확실한 저 눈빛.
여기서 만약 병살타라도 나오게 되면?
아마 밤새도록 욕설과 협박 전화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에 오면 죽여버리겠다는 둥 하는 그런 저열한 협박 말이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일본에서 뛰던 때는 그 협박이 두려워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나는 빅리거다. 그것도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팀의 선발투수.
“하압!”
자기도 모르게 기합을 내지른 하야시가 야마모토를 향해 초구를 발사했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몸 쪽으로 바싹 붙은 98마일의 포심.
초구를 그냥 흘려보낸 야마모토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떠올랐다.
순간 예전의 트라우마가 떠오르며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안 돼……. 마음을 강하게 먹어, 하야시!’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응원을 보낸 하야시 렌타로가 두 번째 공을 뿌렸다.
슈웅
파앙
“볼.”
빠른 승부를 위해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뿌린 공이 볼 판정을 받았다.
야마모토의 입가에 맺혀 있는 비열한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저 웃음을 보니 예전 프로 2년차 때의 일이 떠올랐다.
‘이봐, 하야시. 이걸 좀 보라고.’
‘네?’
선발 등판을 준비 중이던 하야시를 누군가 불렀다. 야마모토의 꼬붕 짓을 하고 다니던 모토시라는 놈이었다.
그 목소리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던 그때,
쑤욱
‘어어억!’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느낌과 함께 하야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어, 장난인데 너무 제대로 들어간 건가, 크크크.’
‘하야시, 이 자식아. 일어나. 엄살 부리지 말고.’
등판을 앞둔 선발투수에게 장난이랍시고 똥침을 먹이는 팀의 주장, 그리고 그걸 보며 낄낄거리는 패거리들.
그때 야마모토의 입가에 매달려 있던 웃음이 딱 저랬다.
“후…….”
한숨과 함께 그때의 기억을 억지로 날려버린 하야시가 세 번째 공을 준비했다.
인간적으로 쓰레기라는 부분을 떠나 타자 야마모토 겐이치는 일본 리그에서 홈런 50개를 때려낸, 그리고 빅리그에서도 홈런 30개 정도는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 강타자다.
1사 주자 만루, 여기서 삐끗하면 그대로 강판당할 수도 있다.
시애틀이 어떤 각오로 자신을 데려왔는지 하야시는 잘 알고 있다.
팀의 네 번째 선발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달라는 감독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반드시 잡아낸다!’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꽉 깨문 하야시가 타자에게서 가장 먼 바깥쪽 낮은 코스를 향해 힘차게 포심을 뿌렸다.
하지만,
따악!
하야시 렌타로라는 투수에 대해 자기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를 움츠러들게 만드는 야마모토가 그 공을 제대로 받아쳤다.
“안 돼! 막아!”
“젠장! 이런 빌어먹을!”
시애틀 원정 팬들이 모인 곳에서 탄식과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우측 펜스에 맞은 타구가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키며 파울라인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3루 주자에 이어 2루 주자, 급기야 1루 주자까지, 루상에 있던 세 명의 주자가 모두 홈으로 들어왔고, 그 타구를 때려낸 야마모토가 전력을 다해 3루로 달려 들었다.
이미 내준 점수는 어쩔 수 없다 쳐도 타자주자의 3루 진출만큼은 막아야 하는 상황.
이를 악문 척 클락이 3루를 향해 전력으로 송구를 뿌렸다.
슈웅
“세이프!”
하지만 이미 늦었다.
3타점 3루타를 때려낸 야마모토가 베이스 위에서 괴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으하하하, 하야시, 멍청한 자식, 조금도 발전이 없군. 좋아, 3루타를 바쳤으니 앞으로 한동안은 괴롭히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지.”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하야시는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수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런 추태를 보일 수는 없다.
“하아아…….”
더욱 깊어진 한숨,
오늘 경기는 이대로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던 그때.
“그 더러운 주둥이 닫지 않으면 내일부터는 죽만 먹게 될 거다.”
하야시의 귓가에 야마모토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야마모토를 내려다보고 있는 한수혁이 있었다.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