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29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297화(298/412)
#297. 정당방위
시즌의 거의 3분의 2를 소화한 시점에서 4할이 넘는 타율과 50개 가까운 홈런, 거기에 0점대의 말도 안 되는 평균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는 야구선수가 있다면?
그런데 그 선수가 올스타전에서 난데없이 반대편 팔 피칭까지 선보였다면?
그걸로도 모자라 올 시즌 네 번의 벤치클리어링에서 본인은 한 번도 다치지 않고 상대편을 완벽히 박살 내버리는 싸움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야구팬들의 압도적인 관심과 지지는 당연한 것이고, 그것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부분을 파헤치려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올 시즌 한수혁의 전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ESPN.
그곳에서는 얼마 전 의학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교수와 UFC 챔피언 출신의 트레이너 등 인간의 육체와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놓고 한수혁에 대한 집중분석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패널로 참가한 노교수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저는 야구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을 위해 한수혁 선수에 대한 영상과 자료들을 모두 분석해봤죠. 어떻게 한 명의 선수가 여러 포지션에서, 심지어 평소 쓰지 않는 손으로까지 플레이를 할 수 있느냐, 이게 궁금한 거 아니겠습니까?”
“정확합니다.”
“자, 일반인들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집에서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칩시다. 그런데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상체 운동에만 전력을 쏟은 거예요. 덤벨도 들고, 푸시업도 하고, 뭐, 어쨌든 그렇게 해서 멋진 상체를 만들었다 쳐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갑자기 고강도의 하체 근력운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회자가 대답했다.
“음, 근육통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겠죠. 젠장, 그러고 보니 끔찍한 기억이 나는군요. 와이프 등쌀에 스쿼트 좀 했다가 다음 날 제대로 걷지도 못했지요.”
“맞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한마디로 이런 겁니다.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의 운동선수에게는 쓰는 근육과 안 쓰는 근육이 있습니다. 오른손 투수가 왼손으로 던지는 게 불가능한 건 연습 문제도 있지만 애초에 반대쪽 근육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낼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기 때문이죠. 타자와 투수의 겸업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요?”
“한수혁 선수는 음… 제가 그 선수의 정확한 데이터를 받아보지 못해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정의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인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근육과 기관들을 완벽하게 단련한, 네, 어떤 동작이든 해낼 수 있도록 준비된 완벽한 운동선수라고 말이죠.”
“와우! 대단한 칭찬이네요.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한수혁 선수의 벤치 클리어링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죠. 올 시즌 이 선수는 총 4번의 벤치 클리어링에 휘말렸고, 그 결과 4명의 상대를 병원 침대로 보내버렸습니다. 본인은 거의 다치지도 않고요. 엄청나죠. 자, 여기에 대해 전 UFC 챔피언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자신의 발언 차례를 기다리던 거구의 사내가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요, 사실 이 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받고 그런 생각을 했죠. 젠장, 야구선수가 싸움을 해봐야 얼마나 잘한다고 이 호들갑이지? 그리고 그 친구가 주먹질 하는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봤어요. 잠시 후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친구는 야구가 아니라 격투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 그런 생각을 한 건가요?”
“방금 저 교수님이 말한 대로예요. 격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근력이 아닌 몸의 균형이거든요. 쉽게 말해서 어떤 상황에서든 밸런스를 잃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 그걸 위해 가장 중요한 게 신체의 모든 부위를 골고루 단련하는 거예요.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말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한수혁 선수는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자기 뜻대로 컨트롤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건가요?”
“맞아요. 여기 영상을 보세요. 멋진 펀치죠? 한 가지 확실한 건 한수혁 선수가 권투를 전문적으로 배웠다는 겁니다. 이건 배우지 않고는 불가능한 펀치거든요? 그리고 아직 사용한 적은 없지만 저는 한수혁 선수가 킥이나 그라운드 기술 같은 다른 격투기에도 능할 거라 확신합니다.”
“와우! 펀치 말고 다른 격투기 기술도 가능할 거다? 그렇게 추측하는 근거가 무엇인가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TV에 나오는 댄서의 춤을 몇 번 보는 것만으로 거의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오, 맞아요. 우리 딸이 바로 그렇거든요.”
“네, 일반적으로 남의 춤을 잘 따라하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눈썰미가 좋고, 거기에 몸을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죠. 격투기도 마찬가지예요. 아마 한수혁 저 친구는 몇 번 보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격투기 기술을 아주 자연스럽게, 숨 쉬듯이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한수혁 선수와 벤치 클리어링을 벌였거나, 벌일 예정인 선수들은 긴장해야겠군요. 지금까지 말을 종합해봤을 때 저 친구, 그냥 야구선수가 아니에요.”
“네, 맞아요. 마지막으로 제가 한 가지 궁금한 건 메이저리그의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면서 어떻게 신체를 저렇게 완벽한 상태로 관리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대단해요. 저건 보통 정신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전문가들로부터 완벽한 운동선수라는 칭찬을 받았던 한수혁.
그가 지금 권태로운 눈빛으로 누군가를 향해 경고를 날리고 있다.
“잘 들어. 내 동료에게 한 마디만 더 좆같은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스프나 받아 먹게 될 거야. 알아 들어?”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야마모토 겐이치였다.
1사 만루 찬스에서 3타점 3루타를 날리고, 자신의 후배이자 호구였던 하야시 렌타로를 상대로 도발을 날렸던 야마모토.
한수혁의 으름장에 야마모토의 눈빛에서 흥분이 사라지고 대신 긴장감과 분노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개자식이 지금 감히 누구한테.’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다.
자신이 먼저 도발을 날렸다 해도 감히 이 야마모토에게 이런 말을?
물론 알고 있다.
눈앞의 이 건방진 조센징이 한 주먹 한다는 걸.
덩치들이 우글거리는 이 메이저리그에서 4전 4승을 올린 알아주는 강펀치라는 걸.
하지만,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빅리그에 적응하느라 아직 직접적인 주먹다짐을 벌인 적은 없지만, 일본에서 그는 벤치 클리어링에서 그 누구에게도 밀려본 적 없는 절대 강자였다.
물론 일본 리그에서의 벤치 클리어링이라는 게 이곳 미국에서의 그것과는 비교도 하기 힘든 어린아이 장난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야구 실력은 몰라도 주먹에서만큼은 메이저리그 덩치들에게도 밀릴 게 없다고 생각해온 야마모토가 곧바로 대응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 어? 내가 내 후배에게 무슨 말을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입 닫어. 더러운 냄새 나니까. 그리고 네 후배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우리 동료야. 개자식아.”
3루에서의 갑작스러운 충돌에 심판들이 달려와 중재에 나섰다.
“이봐, 둘 다 뒤로 물러나. 말싸움까지는 상관없어. 하지만 더 이상은 곤란해.”
“제기랄, 심판, 저놈이 먼저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고. 내가 고향 후배가 반가워 한 마디 좀 했다고 그걸 갖고 지랄을 했다니까?”
“알았으니 물러나. 야마모토, 네가 한 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따져보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물러나도록 해. 마지막 경고야.”
한수혁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심판들은 일차적으로 야마모토를 뒤로 물러서게 하는 데 집중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한수혁이 쉽게 흥분하지 않는 타입이라는 걸, 그리고 상대가 어느 선을 넘지 않으면 한두 번 정도는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선수라는 걸.
“씨발, 저놈이 홈런 좀 많이 쳤다고 편애하는 거야? 어? 저 애송이 놈 편을 드는 거냐고?”
하지만,
문제는 세상 무서운 것 모르고 멋대로 살아온 야마모토가 그 선을 넘어섰다는 거였다.
그의 계속된 도발이 한수혁의 뇌관을 건드렸다.
“버러지 같은 놈이 입이 달렸다고 제멋대로 떠드는군.”
“뭐? 이 개자식아?”
한수혁의 말에 발끈한 야마모토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며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럴 때 먼저 주먹을 휘두르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그보다는 일단 머리로 상대의 가슴을 툭툭 밀치면서 심판의 눈과 카메라의 각도를 피해 세게 박아주면 그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일본에서 하던 버릇처럼 뒷짐을 지고 고개를 앞으로 숙인 야마모토가 한수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양팀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어? 뭘 어쨌다고! 어?”
바싹 들이민 야마모토의 머리통이 한수혁의 가슴을 강타하려던 그때,
툭
콰당
“어억!”
돌진해오는 야마모토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한수혁이 몸을 슬쩍 피하며 놈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그리고 주심을 향해 말했다.
“보셨죠? 전 정당방위를 한 겁니다.”
“좋아, 나도 제대로 봤어. 여기서 멈추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러니 그만하라고.”
긴박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심드렁하게까지 느껴지는 대화.
한수혁과 주심 사이에 오가는 대화에 야마모토가 크게 분노했다.
자신의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두 사람의 태도와 말투.
일본에서 반쵸라 불리며 대장으로 군림하던 그로서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이런 개자식들, 죽여버릴 거다!”
마침내 야마모토가 주먹을 치켜들고 한수혁에게 덤벼들었다.
물론 진짜로 때릴 생각은 없었다.
그의 거지 같은 성격을 알고 있는 애틀랜타에서는 계약서상에 벤치클리어링에서 주먹질로 상대에게 위해를 입히거나 출장정지를 당할 경우 구단 내부적으로 벌금을 물린다는 조항을 삽입해 놓았다.
일본에서 진 엄청난 도박 빚에 돈 한 푼 한 푼이 소중한 그에게는 치명적인 패널티 조항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야마모토의 주먹질은 그저 겁주기 용도에 불과했다.
진짜 주먹이 오갈 상황이 만들어지면 다른 선수들이 뛰어 나와 둘 사이를 갈라놓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니까.
자신은 가오를 세워서 좋고, 상대에게 겁을 줘서 더 좋고,
일본에서도 매번 이런 식으로 무패의 제왕으로 군림한 게 야마모토였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난 한에게 100달러.”
“젠장, 몽땅 다 저놈에게 굴면 내기가 성립이 안 되잖아!”
자신을 도와야 할 애틀랜타 동료들이 인간 장벽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인간 장벽을 만든 건 다름 아닌 시애틀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한수혁과 야마모토의 사이를 떼어놓는 대신, 그 둘이 마음껏 싸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이상한 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지?’
어안이 벙벙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 자신은 가오 하나로 여기까지 올라온 요미우리의 반쵸, 일본의 큰 형님 야마모토 겐이치다.
대충 겁만 주고 끝내려던 그가 생각을 바꿔 먹었다.
다른 모든 걸 떠나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한수혁에 대한 증오가 일순간에 폭발했다.
이제는 벌금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기서 밀리면 리그 모든 선수들이 자신을 겁쟁이라 놀릴 것만 같았다.
“개자식!”
“이봐! 그만! 그만! 퇴장이야! 물러나!”
“비켜! 다 죽일 거다! 조센징!”
폭언과 함께 야마모토가 몸을 날렸다.
인의 장벽 안으로 간신히 기어들어온 심판이 야마모토를 막아서려다 그에게 부딪혀 뒤로 밀려났다.
그와 함께 야마모토가 스파이크를 신은 오른발을 한수혁에게 날렸다.
그 순간,
툭
가벼운 몸짓으로 그 발길질을 피해낸 한수혁이 바닥에 쓰러진 심판에게 말했다.
“다 봤죠? 이제부터는 정당방위입니다.”
그 말과 함께 한수혁이 야마모토에게로 돌진했다.
콰직
“컥!”
처음 내지른 바디 블로우에 야마모토의 갈비뼈 쪽에서 무언가 심각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수혁이 야마모토의 멱살을 잡아채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놈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 병신 같은 짓거리는 너희 리그에서나 통하는 거야. 이제 알겠어? 네가 어디서 뛰고 있는지?”
그 말을 끝으로 야마모토의 의식이 날아가 버렸다.
뻐억!
콰지직!
옆구리에 틀어박힌 한 방, 그리고 턱을 박살 내버린 마무리 일격,
뒤로 축 늘어진 야마모토를 한수혁이 더러운 쓰레기 다루듯 발로 툭 밀어버렸다.
얼이 빠진 채 자신을 바라보는 심판에게 한수혁이 말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당방위입니다.”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