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0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01화(302/412)
#301. 초대
‘만약 그때 내가 그냥 포기했다면… 젠장,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메츠와 매리너스 간의 더블헤더 2차전 경기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시애틀 단장실에서는 구단의 운영 총책임자인 다니엘 미첼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TV 중계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팀의 단장이기에 앞서 열렬한 팬이기도 한 다니엘은 요즘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행복했다.
위로는 사장의 눈치를 보고, 아래로는 감독과 선수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이 없지만 이 팀이 지구 1위를 질주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게 다 한수혁 덕분이다.
만약 그때, 그러니까 2026년 가을, 계약 직전까지 갔던 한수혁이 KBO 잔류를 선언했을 때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면?
이미 남의 선수가 되었으니 7년 뒤에나 보자 하고 신경을 끊었다면?
‘홀리 쉣……!’
처음에는 모두가 비웃었다.
당장은 미국으로 데려올 수조차 없는 한수혁을 무작정 쫓아다니는 자신을 보며 혀를 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 바보 같아 보이던 다니엘의 노력들이 하나하나 결실을 맺으며 한수혁은 결국 시애틀의 선수가 되었다.
– 스윙! 아웃!
– 아아! 대단합니다! 언빌리버블! 한수혁이 또 한 차례 삼진을 잡아내며 2사 2루 위기를 벗어납니다!
– 오늘 저 선수, 삼진이 대체 몇 개째인가요?
–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저 선수가 현존하는 최고의 투수라는 것 말이죠.
주전 대신 백업 멤버들이 대거 출전한 더블헤더 2차전,
선발로 나선 한수혁이 8회 말 찾아온 2사 2루 위기를 삼진으로 벗어났다.
인간은 로봇이 아니다.
빡빡한 일정이 계속되며 한수혁 역시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 한수혁은 타자로서 3타점 2루타를 기록했고, 투수로서는 8회까지 2안타 2실점을 기록하는 준수한 피칭을 선보이고 있었다.
‘가만… 그나저나 오늘 또 완투를 하게 되면…….’
선발에 비해 확연히 무게감이 떨어지는 시애틀의 계투진과 마무리.
거기에 아직 투구 수가 92개에 불과하다는 걸 감안하면 한수혁이 완투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니엘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만약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133이닝 5자책… 평균자책점 0.41… 허허, 허허허…….’
최근 들어 실점을 하는 빈도수가 조금 잦아지긴 했지만 시즌 초반 타자들이 한수혁의 광속구에 적응을 하지 못할 때 워낙 많은 스탯을 쌓아놔서 그런지 평균자책점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마무리 투수도 아닌 선발 투수가 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다는 건 정말 엄청난 거다. 쉽게 말해 9이닝 완투를 해도 1점도 주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니까.
심지어 오늘 내준 2점의 점수가 올 시즌 들어 한 경기 최다 실점이다.
다른 투수 같으면 9이닝 2실점 완투만 해도 만세를 부를 판국에 오히려 평균자책점이 올라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날 비웃던 놈들 얼굴을 좀 보고 싶군.’
아주 오래전 한수혁의 KBO 데뷔 첫 해, 다른 빅리그 스카우터들에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머지않은 미래, 사람들이 한수혁을 이렇게 부르게 될 거라고.
미스터 베이스볼.
그 말을 들은 다른 스카우터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미쳐도 아주 제대로 미쳤다고.
하지만 결국 다니엘의 예견이 적중했다.
데뷔 3년 만에 KBO를 박살 낸 한수혁은 미국으로 건너와 거만한 빅리거들을 차례차례 박살 내며 비교할 대상조차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 아아! 끝났습니다! 경기 끝났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메츠의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혼자서 경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스코어 3 대 2, 한 점 차 시애틀의 승리! 한수혁 선수는 타자로서 결승 3타점, 투수로서 9이닝 2실점 완투를 기록하며 또 한 번 완벽한 승리를 만들어냈습니다.
– 솔직히 말씀드리죠. 시애틀 팬 여러분, 진심으로 부럽습니다. 저런 선수를 응원할 수 있는 건 1920년대 뉴욕 시민들에 이어 당신들이 두 번째일 겁니다. 그것도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서 말이죠. 즐기세요. 야구의 신이 당신들에게 선물한 값진 시간을 말이죠.
“저 친구,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군.”
해설자이기에 앞서 양키스의 팬인 남자의 극찬에 다니엘이 저도 모르게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난주 찾은 고향에서 오랜만에 아버지와 재회를 나눴다.
거의 10년 만인가.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많은 대화가 필요치 않았다.
“아들, 네가 한수혁 저 친구를 데려왔다며.”
“네, 아버지. 제가 해냈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장하다.”
뼛속까지 매리너스의 팬인 두 부자는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때, 다니엘은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것이다.
야구의 신이 강림한 상황에서 그걸 이루지 못한다면 이 팀에게 두 번 다시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혹시 불편한 점은 없겠지? 귀찮게 구는 놈들이라거나?’
그러고 보니 아시안게임 차출부터 시작해서 체크해야 할 일들이 몇 개 남아 있었다.
며칠 전 한수혁이 새로 선임한 에이전트를 만나야겠다 생각하며 다니엘이 단장실 문을 나섰다.
* * *
“좋아, 드디어 이런 날이 오게 되었군. 어서 와, 한. 이쪽은 내 사랑하는 아내 미아, 그리고 여긴 내 하나뿐인 딸 라일리.”
“환영해요, 한. 그리고 민, 그렇게 불러도 되겠죠? 노래 정말 잘 듣고 있어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티보우 부인.”
“편하게 미아라고 불러주세요. 정말 반가워요. 어서 들어오세요.”
메츠와의 3차전에서 5 대 4,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시애틀은 9일 동안 이어졌던 원정 일정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하루 동안의 소중한 휴식이었다.
철인이라 불러도 무방할 한수혁조차 지치게 만들었던 강행군, 그 빡빡한 일정 속에 간신히 얻어낸 휴식일을 맞아 라이언은 오래 전 약속했던 일을 실행에 옮겼다.
딸인 라일리의 생일에 대타로 나서 멋진 홈런을 날려준 한수혁,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것 말이다.
초대를 받은 한수혁은 민예린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혹시 불편한 건 아니지? 그럼 나 혼자 가고.”
“아, 아뇨! 불편하다니요! 그럴 리가요! 가만, 저녁, 저녁식사라고 했죠? 그럼 저 일단 머리부터… 아니, 일단 드레스부터 챙겨야…….”
“드레스? 동료 선수 집에 저녁 먹으러 가는데 무슨 드레스까지. 그냥 대충 청바지 입고 가도 돼, 예린아.”
“무슨 말씀을! 자고로 그런 자리에서 여자가 예쁘게 입고 나가야 바깥사람의 위신이 음… 아무튼 제가 알아서 할게요, 오빠.”
그 말을 끝으로 어디론가 사라진 민예린은 그로부터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야구장 안전망을 기어오르다가 안전요원에게 끌려 나가는 훌리건이 아닌,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셋팅된 월드스타 민예린의 모습으로 말이다.
“예린아……?”
“오빠, 어때요? 저 이 정도면 어디 같이 다녀도 창피하지는 않겠죠?”
정말 오랜만에, 아니, 무대에 설 때보다 더 진심으로 자신을 꾸민 민예린의 모습에 한수혁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항상 민예린을 어린 동생 대하듯 하던, 연인보다는 친구에 가깝게 여겼던 한수혁에게는 조금 생경한 감각이었다.
“라일리, 이리 와. 한과 민에게 인사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전 라일리라고 해요.”
“어머, 귀여운 거 봐. 라일리 몇 살?”
“아홉 살이요.”
“오빠, 얘 너무 귀엽지 않아요? 꼭 인형 같아!”
“음.”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손 한 번 잡아줘요. 오빠만 쳐다보잖아요.”
“으음…….”
어색한 듯 살짝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던 한수혁이 앞으로 슬쩍 다가와 라일리 앞에 섰다.
그러자 라일리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음, 뭐가?”
“지난번 제 생일에 홈런 쳐 주셔서요! 우리 아빠 울지 않게 해주셔서요!”
“어허, 라일리. 울긴 누가 울어? 그런 말 하면 못 써.”
“아빠, 그때 눈가에 눈물 맺힌 거 제가 똑똑히 봤거든요.”
“이런…….”
라일리의 말에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은 저녁 식사 자리로까지 이어졌다.
모두에게 만족스러웠던 식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간단한 후식을 즐기던 미아에게 민예린이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말 안 했나요? 이이가 제 고등학교 선배예요. 전교에서 제일 잘생긴 운동부 주장, 전 치어리더.”
“아하! 그 전설의 쿼터백과 치어리더의 조합!”
민예린이 재미있다는 듯 손뼉을 짝 치자 다른 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때는 야구를 하면서 미식축구도 했으니… 음, 쿼터백이 아니라 풀백이긴 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렇군요! 아무튼 멋져요.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사랑이라니!”
“예린 씨는요? 한수혁 선수랑 어떻게 만난 거예요?”
“저요? 에…….”
민예린의 머릿속에 처음 한수혁과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사 떡 돌린다고 아빠랑 무턱대고 찾아갔었지.’
그 다음으로 만난 건 아마…….
‘내가 안전망에 매달려 버둥거리던 때인가? 음, 그때는 내가 확실히 미숙했어. 안전망이 그렇게 촘촘할 줄은 몰랐으니까.’
아무리 떠올려도 첫 만남의 기준을 언제로 잡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난감한 표정을 한 민예린이 대답할 말을 고르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그때,
“처음에는 예린이인지 몰랐어요.”
“네?”
미아의 말에 대답한 건 한수혁이었다.
“제가 한국 야구에 처음 데뷔한, 네, 개막전이었죠. 처음 보는 가수가 축하공연을 하는데… 음, 평소 노래 같은 거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눈을 뗄 수가 없더라고요. 나중에 알았죠. 그 가수가 제 옆집에 사는 여자였다는 걸 말이죠.”
“어머! 그럼 두 사람이 서로 누구인지 모르고 만났다가 나중에 알게 된 거예요? 로맨틱하네요.”
사실 민예린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한수혁의 말이 이어졌다.
“그 뒤에도 예린이는… 제 경기가 있을 때마다 야구장을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안전망, 아니, 응원을 했고, 제가 필요할 때마다 옆에 있어 줬죠.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저 친구가 없으면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게 되었고요.”
화끈
난데없는 한수혁의 간접 고백에 민예린의 양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미아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결혼한 지 이미 10년이 넘은 그녀의 입장에서 이 풋풋한 커플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한참 동안 민예린과 한수혁을 바라보던 미아가 말했다.
“두 사람, 너무 보기 좋아요. 언젠가 결혼식을 하게 되면 꼭 저를 불러줘요. 설사 한국에서 한다고 해도 무조건 참석할게요. 아, 혹시 들러리가 필요하다면 전 언제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것 말고도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우리 딸을 웃게 해준 보답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