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0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02화(303/412)
#302. 난 준비됐어
모든 성공에는 이를 시기하는 세력들의 음해와 모략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미식축구와 농구의 인기에 밀리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국기인 야구.
자신들이 최고라 믿는 몇몇 보수적인 미국인들의 눈에는 홀로 메이저리그를 박살 내는 아시아인의 활약과 이를 찬양하는 팬들의 모습이 눈꼴시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수혁은 예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다시 나오지 않을 야구 영웅이지만.
어쨌든,
그런 꽉 막히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위한 스포츠 토크쇼에서 한수혁에 대한 특집 방송이 진행되었다.
– 이제 슬슬 거품이 빠지고 있죠?
– 맞아요, 게릭. 0점대 평균자책점이니, 4할이니, 홈런 신기록이니 별의별 설레발들이 다 나돌았지만 이 선수의 하반기 성적을 보면 그게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 오, 자료까지 준비해 오셨군요. 좋아요. 한번 보도록 하죠.
– 좋아요. 자, 여길 보세요. 하반기 들어 이 한수혁이라는 선수는 총 두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습니다.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2차전에서 8이닝 1실점, 뉴욕 메츠와의 2차전에서 9이닝 2실점, 한눈에도 페이스가 떨어지고 있는 게 보이죠?
– 정말이네요. 하반기만 계산하면 평균자책점이 1.59에 달하는군요!
– 맞아요. 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0.420에서 0.430 사이를 오가던 타율도 계속 하락해서 최근에는 0.417까지 떨어졌죠. 이런 추세면 4할대 붕괴도 시간문제일 겁니다.
– 홈런 신기록 쪽은 어떨까요?
– 턱도 없어요. 두 경기당 한 개씩 홈런을 생산해낸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다섯 게임에 하나 나올까 말까예요. 장담합니다. 이거 무조건 실패합니다.
– 저런… 이런 선수를 두고 제2의 베이브 루스니 뭐니 했던 게 얼마나 큰 설레발인지 확실하게 알겠군요. 좋아요, 그럼 다음 그래프를…….
전체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다.
물론 한수혁의 페이스가 시즌 초반보다 다소 떨어진 건 사실이었다.
2승 1패, 시애틀의 위닝시리즈로 끝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경기까지 한수혁은 투수로서 18번 선발 등판해 140이닝을 던졌고 그 결과 15승에 평균자책점 0.45를 기록했다. 마지막 등판인 디트로이트와의 3차전 경기에서 7이닝 1실점을 기록했음에도 말이다.
타자로서는?
타율 0.418, 출루율 0.530, 장타율 1.007 49홈런.
여기까지만 봐도 일부 세력들이 주장하는 한수혁 부진론과 거품론이 얼마나 헛소리인지는 두말할 필요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수혁은 그런 사람들의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발끈한 건 주변 사람들이었다.
특히나 한수혁과 함께 뛰기 위해 팀까지 옮긴, 얼마 전까지 미국을 대표하는 야구선수였던 타이 존슨 말이다.
디트로이트와의 3연전이 끝난 날 밤, 타이 존슨은 ESPN의 특집 방송 출연 요청을 받아들였다.
“어서 와요, 타이. 제 쇼에서 보는 건 꽤 오랜만인 거 같네요.”
“저보다 야구를 더 잘하는 친구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그래요. 정말 끔찍할 정도로 야구를 잘하는 그 친구에 대해 말해봅시다. 최근 그 한수혁 선수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군요.”
한수혁의 등장 이전 미국, 아니,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였던 타이 존슨.
그의 입에서 한수혁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사람들은 모릅니다. 한수혁이 정말 어떤 선수인지, 지금 어떤 일을 해내고 있는지 말이죠.”
“음, 단순히 성적만 놓고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고,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좋아요. 올 시즌 초반, 녀석하고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죠. 제가 물었어요. 어떤 타자, 어떤 투수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냐고 말이죠.”
“뭔가 철학적인 질문이군요. 그래서 어떤 대답이 돌아왔나요?”
“그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경기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타자가 좋은 타자라는 건 다 개소리라고, 그건 다른 동료에게 짐을 떠넘기는 행동밖에 안 된다고, 정말 좋은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타석에서 모든 걸 끝장내겠다는 각오로 덤벼야 한다고 말이죠.”
“와우!”
“그게 끝이 아니에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야구선수들은 이런 생각을 갖기 위해 애씁니다. 그래, 야구는 실패에서 배우는 스포츠야. 10번 타석에 들어서서 3번만 치면 수백, 수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을 수 있잖아? 그러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 안 그러면 절대 오래 버틸 수 없을 거야, 뭐 이런 생각 말이죠.”
“많이 들어본 얘기군요.”
“맞아요. 일 년에 162경기를 치르면서 팀 성적과 자신의 성적을 동시에 챙기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거든요. 일반적인 선수라면 저렇게 생각해야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어요. 물론 저를 포함해서 말이죠.”
“음, 그런데 한수혁 선수는 조금 다르다는 얘기 같군요?”
“네, 전 녀석의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수혁이 그러더군요. 그런 건 모두 개소리라고. 실패를 염두에 두고 경기에 임해서는 절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여기서 실패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허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시애틀을 응원하는 팬들, 혹은 시애틀을 응원하지 않아도 새로운 신기록 달성을 보고 싶은 야구팬들, 그런 분들이라면 여러 말 하지 말고 한수혁을 지켜보시면 됩니다. 지금 저 선수는 작게는 팀을 위해, 크게는 야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예리한 칼처럼 다듬고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다 자칫 자신이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아아…….”
“그리고 한수혁에 대해 헛소리를 지껄이는 일부 세력들, 당신들에게 경고합니다. 자꾸 개소리를 지껄이면 내가 가만 안 있을 거라는 거, 미리 알려두죠. 그러니 입 닥치고 그냥 지켜보기나 해요. 어쩌면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위대한 선수의 위대한 시즌을.”
단순한 야구 선수이기에 앞서 백인들의 우상인 타이 존슨의 일갈에 들썩거리던 여론이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굳이 타이 존슨의 말이 아니더라도, 한수혁이라는 선수가 어떤 자세로 야구에 임하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피부색으로 모든 걸 판별하는 몇몇 꼴통들의 불만 어린 목소리는 계속되었지만 말이다.
한편,
“예린아… 이거 정말 할 거니?”
“당연하지. 내가 뭣 때문에 죽어라 연습하고 자격증까지 딴 건데. 당연히 해야지.”
“하아… 너 이러다 정말 월드토픽에 나올 수도 있어.”
“뭔 소리야. 시 당국에서도 허가를 받았고, 구단 측 승인도 받아냈는데.”
“그렇긴 한데… 야, 다시 한 번만 생각해봐.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당연하지.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을 만들어줄 거야. 두고 봐.”
한수혁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며, 이제는 야구를 벗어나 미국 전역의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었다.
사실 한수혁 부진론과 거품론 역시 이런 관심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쉽게 말해 ‘빠’가 늘어나면서 덩달아 ‘까’도 늘어났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올 시즌 팀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수혁과 그를 사랑하는 팬들을 위해,
시애틀 매리너스에서는 내일 열릴 주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1차전에서 깜짝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니엘 단장은 비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수혁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최고의 인재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오빠는 내일 날씨나 계속 확인하고 있어. 특히나 바람 방향 중심으로.”
* * *
나를 두고 뭐라 떠들던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회귀 전부터 시작해서 워리어스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내가 좋은 성적을 내도 꼭 칭찬만 돌아오는 건 아니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몇몇 안티 세력들의 분탕질 정도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실제로 아주 약간이나마 내 페이스가 떨어지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확실한 해결책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원인이 시즌을 치르며 점점 떨어지는 체력, 그리고 나에 대한 분석이 심화되는 것에 기인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럴 때는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제자리에 주저앉아 쉬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며, 어떻게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로 그런 부동심이다.
“헤이, 한. 괜찮아?”
“데릭.”
“음?”
“지금 날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너 최근 일주일 타율이 2할도 안 되는 건 알고 있는 거지?”
“젠장… 아픈 데를 찌르는군.”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에 걱정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다.
이게 다 타이가 출연한 TV쇼 때문이다.
“젠장, 타이. 굳이 그런 말까지 할 필요는 없었어요.”
“흐흐, 아니, 난 이 팀의 베테랑으로서 루키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면 저기 저 녀석들이나 돌봐주던지요.”
“음? 흐음… 정말 그렇군. 좋아, 거기 애송이들! 이쪽으로 집합!”
오클랜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콜업된 마이너리그 애송이 둘이 타이 존슨의 말에 화들짝 놀라 뛰어 왔다.
시즌 107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우리는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여유 따위는 없었다.
월드시리즈 우승 하나만 바라보고 미친 듯이 선수를 사들이고 있는 양키스, 그리고 같은 지구 팀들에게서 승리를 쓸어 담고 있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승률이 우리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지 않고 디비전 시리즈로 직행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둘 중 하나는 제쳐야 하는 상황.
어느 정도 우열이 가려지기 전까지는 매일 매일이 총력전이 될 수밖에 없다.
“자, 애송이들. 너희는 야구가 뭐라고 생각하지?”
“네? 아, 네, 넷!”
타이 존슨이 나름의 방식으로 애송이들을 안심시키는 걸 보며 라커로 돌아왔다.
오늘 우리는 여전히 지구 우승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2위팀 오클랜드와 결전을 치러야 한다.
우리 팀에서는 3선발 마이크 워렌이, 반대편 오클랜드에서는 에이스 데빈 맥퍼슨이 출전하는 경기.
오클랜드와의 경기 차가 4게임 반이라 해도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행여나 스윕 같은 거라도 당하면 바로 턱밑까지 추격을 허용하게 될 상황이니까.
“자, 오늘 라인업이다. 다들 확인하고, 혹시 문제 있는 놈 있으면 감독실로 찾아와도 좋아.”
라커룸 한쪽 벽에 라인업 용지가 붙었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6번 좌익수 짐 브라운
7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8번 2루수 리암 랜드먼
9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선발투수 마이크 워렌
5번과 6번이 서로 자리를 맞바꾼 걸 제외하면 현재 우리 팀에서 구성 가능한 최고의 라인업이다.
이제는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린 조나단 오웬스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어쩔 수 없다.
감독은 그를 대수비 자원으로 활용하려 마음먹은 상태이니까.
만약 바뀐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자, 다들 그라운드로 집합!”
수석코치의 말에 선수들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하나둘 그라운드를 향해 달려 나갔다.
또다시 결전의 시간이 찾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