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0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03화(304/412)
#303. 조금만 기다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야구장을 찾은 날, 한수혁의 플레이에 홀딱 반하고, 그의 초대를 받아 저녁식사까지 함께 한 소년 로이 모간은 한수혁의 광적인 팬이 되었다.
그 소년이 오늘, 또다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T모바일파크를 찾았다.
“할아버지, 오늘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그래, 당연히 재미있어야지. 저 망할 오클랜드 놈들을 작살내주는 것도 그렇고, 경기 전에는 특별한 공연도 있다 하니 말이야.”
“혹시 유명한 가수가 나오는 걸까요? 아! 한수혁 선수가 한국 사람이니 혹시 K-POP 스타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로이.”
두 조손이 경기장을 찾을 거란 걸 알게 된 한수혁은 구단을 통해 그들에게 포수 뒤편 가장 좋은 좌석을 마련해주었다.
괜히 폐를 끼칠 수 없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소용없었다.
반강제로 티켓을 받아 든 할아버지 토마스 모간은 대신 티켓값으로 지불하려 했던 돈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의 굿즈를 몽땅 다 사들여버렸다. 자신의 작은 소비가 구단 운영에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될 것이라 기대하며 말이다.
“저쪽이구나.”
“와아… 여기, 마운드가 완전 코앞이네요? 얼굴까지 다 보일 거 같아요!”
“네 말이 맞다, 로이. 진짜 끝내주는 자리구나.”
야구장을 오래 다녔지만 포수 바로 뒷자리는 처음 앉아보는 토마스가 손자와 함께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선수들의 가족, 혹은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한수혁 선수에게 고맙다고 편지라도 써야겠구나.”
“제가 SNS에 감사 인사 남길게요, 할아버지.”
“그래 주겠니?”
멋진 자리에서 멋진 경기를 볼 생각에 들뜬 두 조손.
잠시 후 몸을 푼 선수들이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대신 장내 아나운서가 그라운드로 걸어 나왔다.
“멋진 주말 오후입니다. 오늘, 저희 시애틀 매리너스의 경기를 보기 위해 구장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길게 시간 끌지 않겠습니다. 오늘 지구 1, 2위 간의 대결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분께서, 특별한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다들 즐겁게 감상해주시죠!”
그 말과 함께 장내 아나운서가 퇴장했다.
관중들의 시선이 불펜 쪽으로 향했다. 늘상 축하공연이 있을 때면 거기서 가수들이 나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관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Oh,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으응? 할아버지, 이거 국가 누가 부르는 거죠?”
“글쎄다… 아직 그라운드에는 아무도 없는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
어떤 여자의 투명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를 타고 미국 국가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라운드에는 아무도 없었다.
들려오는 건 그저 그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뿐이었다.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그때였다.
“저기, 저거 뭐야?”
“어억! 사람인데?”
“맞네! 젠장, 그거 망원경 좀 빌려줘봐.”
“잠깐만, 내가 먼저 보고 말해줄게. 기다려봐.”
저 멀리 상공에서 T모바일파크를 향해 패러글라이더 한 대가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굳이 망원경까지는 필요치 않았다..
그 패러글라이더가 점점 더 야구장을 향해 접근했고, 곧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까워졌다.
“민예린이다!”
“오 마이 갓! 그녀가 저기서 뭘 하는 거지?”
“맙소사! 이 목소리는, 맞아. 국가를 부르는 건 그녀였어.”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고? 퍼킹! 정말 끝내주는군!”
그랬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민예린이었다.
한수혁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는,
오늘 팀을 위해, 그리고 한수혁을 위해 특별 공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자마자 자진해서 이런 프로그램을 짜온 민예린.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팝스타 민예린의 입에서 미국 국가의 마지막 소절이 흘러 나왔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경기장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O’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오오오, 좋아! 오늘은 정말 끝내주는 구경을 하는군.”
“젠장,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좋아, 다음에는 내가 경비행기로 구장에 착륙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국가 연주가 끝나고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바로 그때, 경기장 상공을 선회하던 민예린이 동승한 조종사에게 말했다.
“지금이에요.”
“좋아, 레이디. 그 버튼을 누르면 돼.”
딸깍
민예린의 손짓 한 번에 패러글라이더 밑으로 거대한 현수막이 쫙 펼쳐졌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한수혁 선수의 세계 최고 기록 도전을 기원합니다!]마치 꼬리처럼, 그 거대한 현수막을 뒤에 매단 패러글라이더가 천천히 야구장 한복판을 향해 착륙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이거 진짜 끝내줘요!”
“그래! 로이! 젠장, 나도 이런 건 처음 보는구나!”
모건 가의 조손을 비롯, T모바일파크를 가득 채운 관중들이 커다란 목소리로 민예린과 한수혁의 이름을 번갈아 불렀다.
마침내 마운드 위에 완벽하게 착지한 민예린이 안전장치를 벗어던지며 소리쳤다.
“예에! 그럼 한번 재미있게 놀아볼까요?”
* * *
시끌벅적했던 사전행사가 끝나고 그라운드 정리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흐흐, 한, 네 애인은 정말 끝내주는군. 멋진 여자야.”
“음.”
“뭐야, 설마 멋진 여자라는 내 의견에 공감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보다… 그냥 좀 놀라서요.”
“이런… 남자 배포가 여자보다 작아서야.”
타이 존슨의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를 말을 들으며 경기를 준비했다.
놀랐다는 내 말은 진심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예린이에게 놀랐다.
내가 놀란 건 그 애가 이상한 짓을 해서가 아니다.
물론 패러글라이더에 동동 매달린 채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해서는 조금 충격을 받긴 했지만 어차피 안전망을 제 집처럼 타고 넘는 걸 감안하면 그 정도는 수용 가능한 범위였다.
그보다 진짜 놀란 건…….
예전부터 느낀 건데 예린이는 나보다도 더 내 기분을 잘 파악하는 듯하다.
내가 뭔가 기운이 축 처지거나 혹은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거나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뭔가를 하려 애쓴다.
오늘 행사 역시 마찬가지다.
확인해볼 필요도 없이 이번 행사의 중심이 된 건 예린이었을 것이다.
지친 나를 위해 뭔가를 해주려는 마음, 그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고개를 돌려 저 멀리 관중석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예린이를 위해 마련해준 좌석은 아직 비어 있었다.
아마도 지금쯤 불편한 점프슈트를 갈아입으려 낑낑대고 있을 테지.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보면 내가 저 애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민예린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가끔이나마 웃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뭐야, 한. 뭐가 그렇게 좋아서 혼자 피식거리고 있는 건데?”
“데릭.”
“음?”
“일단 출루부터 해. 내가 무슨 수를 쓰던 홈으로 불러들여 줄 테니까.”
* * *
1회초 오클랜드의 첫 번째 공격이 득점 없이 끝났다.
시끌시끌했던 사전행사 때문인지, 아니면 아무리 용을 써도 좁혀지지 않는 시애틀과의 격차 때문인지,
오클랜드 선수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고, 그런 타자들을 상대로 마이크 워렌의 너클볼이 위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어진 1회 말 시애틀의 공격.
따아악!
선두타자 데릭이 상대팀의 에이스 데빈 맥퍼슨의 초구를 멋지게 받아쳐 중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1루에 출루한 데릭이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어라 입을 뻐끔거렸다.
아마 약속대로 자신을 홈으로 불러들이라는 것이겠지.
좋아, 그럼 한번 시작해볼까.
“이봐,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나? 흠, 예전에 봤을 때보다 살이 좀 빠진 거 같은데?”
“…….”
“뭐야, 설마 그거 한 대 맞았다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좋아, 혹시 수화를 배워야 한다면 내가 좋은 선생을 소개해주지.”
“…심판, 이 녀석 입 좀 닫게 해줘요.”
“음,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야구를 하기 위해 모인 거라는 걸 잊지 말자고.”
“좋아요. 전 심판의 권위를 존중합니다. 그나저나 넌 비겁자였군, 데스몬드. 말 몇 마디 했다고 심판에게 쪼르르 일러바치다니.”
오늘 오클랜드의 안방을 지키는 건 다름 아닌 데스몬드 킹.
맞다.
개막전에서 데릭에게 폭언을 퍼붓다가 내게 얻어맞고 한 달 동안 병원에 누워 있어야 했던 바로 그놈이다.
오클랜드와의 시리즈 두 번이 모두 시즌 초반에 몰려 있던 탓에 놈의 얼굴을 보는 건 개막전 이후 처음이다.
흠,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제법 강단도 있고 배짱도 두둑한 놈인 줄 알았건만,
고작 말 몇 마디 했다고 심판에게 일러바치다니.
됐다.
오늘 기분도 괜찮고 하니, 그냥 넘어가주자.
“플레이!”
내게 얻어맞고 턱뼈가 박살 나긴 했지만, 사실 데스몬드 킹은 꽤나 좋은 포수이다.
안정적인 수비력, 거기에 간혹 터져 나오는 장타까지.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우리 팀의 브루스보다는 한 수 위에 있는 선수다.
거기에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상대팀의 에이스인 데빈 맥퍼슨.
100마일에 가까운 포심과 투심, 커터를 아주 잘 던지는 투수로, 현재까지 평균자책점 2.98에 12승을 수확한 리그 정상급의 선수이다.
슈웅
파앙
“볼.”
사실 최근 들어 내 타격 페이스, 정확히 말하면 안타와 홈런이 나오는 비율이 조금 낮아진 건 내 문제라기보다는 내 뒤 타자들, 그러니까 타이 존슨과 척 클락의 동반 부진 때문이다.
솔직히 부진이라 하기도 뭐했다.
타이의 경우 체력 관리를 위해 타석수를 조절하다 보니 아주 약간 타격감이 떨어진 정도였고, 척은 올스타전 참가의 후유증인지 스윙이 커져 코치와 함께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교정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그 둘의 하반기 OPS는 각각 0.83과 0.75에 달한다.
하지만 그 약간의 부침마저도 상대 투수에게는 약점으로 보였는지, 최근 들어 나를 피하고 뒤 타자를 상대하려는 시도가 잦아지고 있다.
슈웅
따악
“파울!”
하지만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난 디트로이드와의 2차전에서 터진 홈런을 계기로 타이 존슨의 타격감이 다시 정상궤도로 올라오고 있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나와 상대하고 있는 오클랜드의 배터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사 주자 1루 상황.
여기서 나까지 내보내고 타이와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다.
어떤 식으로든 승부를 걸어올 거다.
내가 할 일은 그 승부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지난번에 널 때리고 말이야. 솔직히 좀 후회했어.”
“…….”
“솔직히 말하면 좀 빗맞았거든. 그 빗맞은 주먹에 박살 날 정도로 네 턱이 약한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젠장, 심판, 이 자식이…….”
“이봐, 난 보모가 아니야. 정해진 시간 내에 공을 던지고 받기만 하면 난 다른 건 상관하지 않을 거야.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또 그때처럼 싸우면 안 돼.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가 보이면 난 너희 둘 다 퇴장시킬 거니까.”
“물론이죠. 심판, 난 그냥 이놈하고 오랜만에 만난 게 반가워서 그런 건데, 아무래도 이 친구는 여전히 삐져 있는 모양이네요.”
“…개자식.”
“오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좋아, 이 개자식아. 다시 한번 말해주지. 한 번만 더 나나 내 동료들의 국적에 대해 나불거리면 이번에는 그 앞 이빨을 몽땅 다 뽑아버릴 거다. 알아들어, 이 빌어먹을 자식아?”
“…….”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살짝 흥분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타격에 집중하기 딱 좋을 정도의, 기분 좋은 흥분이었다.
나와 포수 간의 말싸움을 눈치챈 것인지 투수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볼 카운트 원 볼 원 스트라이크.
이 상황에서 자신의 단짝이자 친구인 포수를 돕기 위해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공은?
당연히 몸 쪽에 바싹 붙는 포심, 혹은 역회전 하는 투심.
그렇다면 노린다.
드드득
지난 애틀랜타전에서 제이 워드를 상대로 때려낸 홈런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근사했다.
몸 쪽으로 바싹 붙어 들어오는 105마일의 강속구.
그보다는 조금 느리겠지만, 그때의 감각을 되살려 다시 한 번 스윙을 준비한다.
나와 1루 주자를 번갈아 노려보던 투수가 천천히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저 투수의 장점이라고 하면 와인드업과 셋 포지션에서의 투구 위력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끔은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셋 포지션으로 공을 던질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스윙 타이밍은 최대 100마일의 포심에 맞춰서.
슈웅
투수의 손끝에서 공이 발사되고, 그와 동시에 팔꿈치를 몸통에 딱 붙이며 스윙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패스트볼이다.
그렇다면 포심일까, 아니면 투심, 혹시 커터?
스륵
홈플레이트 직전에 와서야 역회전하며 아래로 살짝 가라앉는 공.
투심이다.
순간적으로 스윙의 궤도를 수정하며 그대로 팔로스로우.
따아아아악!
“됐다! 터졌다! 50호야!”
“퍼킹! 한수혁! 넌 우리의 자랑이야! 그 빌어먹을 배리 본즈의 기록을 꼭 넘겨줘!”
“가라! 가라! 가라! 갔다! 됐다!”
새까맣게 치솟은 타구가 좌측 펜스를 향해 계속 날아갔다.
맞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한 나는 팔로스로우 상태 그대로 배트를 공중으로 휙 집어던져 버렸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던 배트가 대기 타석까지 날아가 버렸고, 나는 그 상태 그대로 타석에 선 채 타구를 감상했다.
빈볼이 날아오면 어쩔 거냐고?
글쎄, 잔뜩 겁을 집어먹은 저 포수가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설사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한 방에 날 못 죽이면 이번에는 정말 놈의 턱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생각이니까.
“우아아아!”
“108경기 만에 50홈런이라니! 젠장, 정말 끝내주는군!”
“좋아, 데빈 맥퍼슨, 널 남자로 인정하지. 그래, 넌 남자야! 비록 홈런은 맞았지만 넌 남자라고!”
홈경기는 이래서 좋다.
일방적으로 열광하는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천천히 1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1루, 그리고 2루를 돌 때쯤 나도 모르게 관중석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포수 바로 뒤편 관중석에서 소년 한 명과 노인 한 명, 그리고 젊은 여자 하나가 데스몬드 킹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넌 킹이라는 성을 쓸 자격이 있어! 왜냐하면 한수혁에게 승부를 걸었으니까!”
“뭐라고? 저번에는 싸움을 걸었다가 턱이 박살 났다고? 좋아, 넌 진정한 남자임에 분명해. 우리에게 큰 웃음을 주었으니까.”
어깨동무를 한 채 뭔지 모를 말을 쏟아내고 있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데스몬드 킹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붉게 달아올랐다.
음,
예린이와 저 노인은 그렇다 치고, 쟤는 아홉 살, 아니, 여덟 살이라고 하지 않았나?
표정이나 말하는 것만 봐서는 닳고 닳은 훌리건 같은데.
턱
한 번 호된 맛을 봐서 그런지, 내 홈런 세레모니, 그리고 관중석의 도발에도 폭발하지 않은 데스몬드 킹을 향해 말해주었다.
“넌 좋은 포수가 될 것 같군.”
“…듣고 싶지 않아. 그만해. 난 너와 말을 섞지 않을 거야.”
흠,
참을성이 깊은 걸로 보아 좋은 포수가 될 재목이라 말해주려 했는데.
됐다. 듣기 싫다니 그만둬야지.
“자, 소년. 경기가 끝나면 구단 버스 앞으로 찾아와. 이 배트를 선물로 주지.”
“우아아아! 정말요! 할아버지, 들으셨어요? 방금 홈런을 친 배트를 절 주신대요!”
“그래, 들었단다. 이봐요, 한. 정말 고마워요. 우리 손주에게 잊지 못할 기억 하나를 또 심어주네요.”
안전망에 매달린 소년에게 배트를 주겠다고 말하니 옆에 함께 매달려 있던 민예린이 부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왜, 너도 갖고 싶어?”
“네… 50호 홈런 친 배트, 갖고 싶어요!”
“예린아.”
“네?”
“조금만 기다려. 74호 홈런 친 배트를 선물로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