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0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04화(305/412)
#304. 마지막 한 조각
오랜 시간 타석에 서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홈런이라는 게 한번 막히기 시작하면 좀처럼 나오지 않는 다는 걸.
따아아아악!
반대로 막혔던 물꼬가 트이면 어이없을 정도로 계속 나올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또 간다! 간다! 으아아아! 갔어! 갔다고!”
“51호! 51호야! 젠장, 외야에 앉았어야 했어!”
“한수혁! 퍼킹! 우린 널 사랑해! 영원히 시애틀에 남아줘!”
2 대 1, 한 점 차로 앞서가던 시애틀의 3회 말 공격.
이제는 주전 2루수 자리를 굳힌 리암 랜드먼이 볼넷으로 출루한 상황,
투 아웃 상황인 걸 감안해 일부러 스윙을 크게 가져갔다.
그리고 그 스윙에 맞은 타구가 T모바일파크 우측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졌다.
– 아아, 고동식 위원님. 하반기 들어 잠깐 주춤했던 홈런포가 다시 재가동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50호와 51호 홈런을 연거푸 날린 한수혁 선수가 당당한 얼굴로 다이아몬드를 돌고 있습니다.
– 후아… 엄청납니다. 사실 방금 공은요, 웬만해서는 절대 홈런이 나올 수 없는 그런 코스였어요. 영상 보세요. 바깥쪽 낮은 코스에 완벽하게 제구된 포심이거든요. 그냥 흘려보냈으면 아마 볼로 판정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공을 후려쳐서 초대형 홈런을 만들어버리네요. 한수혁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 자, 이러면 이제 한수혁 선수의 하반기 부진론을 얘기하던 사람들도 입을 닫을 수밖에 없겠군요.
– 부진론이요? 하! 정신 나간 소리입니다. 제가 한수혁 선수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꾸준함이에요.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라 해도 기복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저 선수는 그런 게 거의 없거든요. 여기 주간별 타율 추이를 보세요. 가장 높은 주가 0.450 정도이고, 그나마 제일 낮은 주가 0.390이에요. 이런 선수를 두고 뭐? 부진이요? 그 정신 나간 양키 놈들의…….
– 흠, 어쨌든 오늘은 시애틀에게 정말 중요한 경기죠?
– 네, 일단 오클랜드와의 경기 차가 아직 안심할 수준이 아니기도 하고, 최근에 동부지구 1위 양키스와 중부지구 1위 화이트삭스의 페이스가 너무 좋아요. 둘 중 하나는 제쳐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한 경기, 한 경기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없습니다.
– 양키스는 그렇다 치고, 중부지구의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조금 의외네요. 저 팀이 6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운이 좋았죠. 정말 운이 좋았어요. 같은 지구에 속한 미네소타와 캔자스시티, 디트로이트, 이 3개 팀이 사실상 시즌을 포기한 상태이다 보니 같은 지구 팀들과의 경기에서 승수를 엄청나게 쌓고 있거든요.
– 그렇군요. 아앗, 말씀드리는 순간 3번 타이 존슨 선수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날리며 또 한 번 득점 찬스를 만들었습니다.
– 좋아요, 하반기 살짝 주춤했던 타이 존슨이 저렇게 살아나면 투수들이 한수혁 선수를 절대 거를 수 없게 되는 거거든요. 자, 시애틀, 여기서 한 점 더 내야 합니다. 상대 투수가 오클랜드의 에이스라는 걸 감안하면 초반에 승부를 봐야 해요.
* * *
“척, 내 말 잊지 않았겠지?”
“네, 코치.”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하지 마. 넌 네 스윙에만 집중하면 돼.”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나가 봐.”
타이 존슨의 2루타와 함께 오클랜드 벤치에서 타임을 요청해왔다.
그 틈을 타 타격코치에게 조언을 받은 척 클락이 다시 타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팀의 4번 타자라는 무게, 거기에 한수혁과 타이 존슨이라는 리그 최강의 타자 둘을 앞에 둬야 한다는 부담감.
전문가들, 그리고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팬들은 올 시즌 시애틀의 상승세를 이끄는 요인 중 하나로 척 클락의 존재를 꼽고 있다.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선수가 4번 자리에 섰다면 한수혁과 타이 존슨을 피하려는 투수들이 더욱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그건 단순히 실력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두 번 타석에 들어서면 그중 한 번은 반드시 루상에 출루하고 마는 한수혁.
올 시즌 커리어 하이를 찍을 기세인 타이 존슨.
리그 최강의 2, 3번 타자를 피해 다음 타자에게 승부를 걸어오는 상대 투수들.
다니엘 감독은 이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낼 적임자로 척 클락을 선택했고, 그는 올 시즌 그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했다.
“플레이!”
다만, 올스타전 참가 후 갑자기 찾아온 타격 부진이 문제였다.
사실 부진이라 표현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선 두 타자가 너무 대단하다 보니, 척 클락의 페이스가 떨어진 걸 눈치챈 투수들이 그를 집중적으로 노렸고, 이는 결국 한수혁과 타이 존슨이 제대로 타격을 할 수 없게 되는 일로 이어졌다.
쉽게 말해 4번 척 클락이 만만하게 보이다 보니 2번 한수혁과 3번 타이 존슨에게 좋은 공을 주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는 거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코치와 함께 자신의 타격 매커니즘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원인을 찾아냈다.
앞선 타자들이 워낙 큰 타구를 날려대다 보니 척 클락의 스윙 역시 점점 커져가고 있던 것이다.
시즌 107경기를 치른 상황에서 14개의 홈런과 88개의 타점을 기록 중인 척 클락.
단순히 수치만 보면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팀의 4번 타자로서는 조금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신경줄 굵기로는 리그 최고라 평가받던 척 클락조차 그런 평가에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타격 매커니즘에까지 영향을 주고 만 것이다.
슈웅
파앙
“볼.”
척 클락은 생각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고로 내 앞에 선 두 명의 괴물들과 비교하는 건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누가 뭐래도 나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4번 타자다.
감독이 말했다.
척 클락이라는 선수가 없었다면 2번 한수혁, 3번 타이 존슨의 조합도 없었을 거라고, 시애틀의 타선이 리그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일도 없었을 거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약간의 패배주의와 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던 척 클락이 그 말 한 마디에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에게는 한수혁이나 타이 존슨 같은 장타력은 없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든 내 스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노린다.
드드득
그립의 위치를 조정하고, 어깨에 들어간 불필요한 힘을 빼고,
투수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가볍게,
더할 나위 없이 가볍게,
따악!
“됐다! 빠졌어!”
“달려! 타이! 할 수 있어!”
“멋진 안타야! 척! 역시 넌 최고의 4번 타자야!”
척 클락이 만들어낸 강한 땅볼 타구가 2루수의 글러브를 피해 외야로 굴러나갔다.
타격음과 함께 스타트를 끊은 2미터의 거인, 타이 존슨이 죽을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우아아아아!”
“좋았어!”
한수혁이 때려낸 거대한 홈런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방금 그 타구로 인해 시애틀은 또 한 점을 추가하며 5 대 1, 넉 점 차로 앞설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오클랜드의 에이스가 등판한 경기에서 말이다.
‘좋아, 이 감각이야.’
적시타를 때려낸 후 1루를 밟는 기분,
그 기분 좋은 설렘을 기억하며 척 클락이 관중석을 향해 오른팔을 쭉 들어 올렸다.
* * *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 2위 팀 간의 대결, 두 개의 홈런을 몰아친 한수혁의 활약으로 7 대 3, 시애틀의 승리로 끝나] [2위와의 격차를 벌린 시애틀, 디비전 시리즈 직행을 위한 총력전 선포] [시즌 50, 51호 홈런 날린 한수혁 “좋은 타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동료 타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멋진 활약을 보인 동료들, 특히 척 클락에게 감사한다. 그는 리그 최고의 4번 타자이다.”] [점점 완숙해지는 마이크 워렌의 너클볼, 다저스 팬들 “저런 좋은 투수를 헐값에 팔아치운 단장에게 저주가 내릴지어다.”] [리그 최강의 타선, 거기에 3선발 마이크의 각성과 4선발 하야시의 합류로 더욱 단단해진 선발 마운드. 전문가들 “중간계투와 마무리가 불안 요소이긴 하지만… 선발 투수들이 워낙 길게 던지다 보니 그 약점이 잘 부각되지 않고 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트레이드 마감 기한, 과연 시애틀의 추가 전력보강은 이루어질 것인가?]“흠.”
“단장님, 찾으셨다고요?”
“그래, 그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일차적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냈습니다.”
“반응은?”
“솔직히 말하자면 시큰둥합니다. 확신이 없는 느낌이랄까요.”
“예상했던 대로군.”
“네, 맞습니다. 저 같아도…….”
“이봐, 멍청한 소리 할 거면 거기서 그만둬.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좋아, 어쨌든 우리에게 남은 카드는 이게 마지막이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나 이메일로 깔짝거리지 말고 집 앞으로 찾아가든 뭘 하든 끝까지 설득해.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나가봐.”
* * *
오클랜드와의 3연전 첫 경기를 잡아내며 두 팀 간의 경기차가 다섯 게임 반 차로 벌어졌다.
그렇기에 평소보다는 조금 여유가 감돌아야 했을 시애틀의 라커룸.
하지만 선수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아닌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건 방금 올라온, 아주 따끈따끈한 트레이드 관련 뉴스 때문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에 모든 것을 건 뉴욕 양키스, 유망주 셋과 현금 주고 템파베이의 간판타자 제임스 테일러를 데려오다.] [뉴욕 양키스 “우승을 위한 마지막 한 조각을 채워놓았다. 이제 양키스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 [팬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는 템파베이 “그간 제임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 그가 최고의 선수가 되길 기원하겠다.”] [양키스 로버트 윌슨 감독 “제임스의 입단을 환영한다. 그는 양키스의 중심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루카스 앤더슨 – 제임스 테일러 – 잭 헤인즈로 이어지는 양키스의 2, 3, 4번 타선, 전문가들 “한수혁 – 타이 존슨 – 척 클락으로 짜여진 시애틀과 맞설 수 있는 최강의 조합” 이구동성] [아메리칸 리그 전체 승률 1위 양키스,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다.]“진짜 갔네. 하, 어이가 없네, 정말.”
“제임스 테일러까지 합치면 쟤들 연봉 총액이 얼마야?”
“확실한 건 사치세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거지.”
“쟤들하고 일정이 다 끝난 게 다행인 건가?”
양키스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던 템파베이의 주전 3루수이자 차세대 최고 타자 후보 중 하나인 제임스 테일러, 녀석의 양키스 이적이 공식 발표되었다.
이번 시즌 내내 양키스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시애틀 입장에서는 힘 빠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자, 됐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자고. 어차피 그래 봐야 우리가 더 강해.”
“흐흐, 하긴 그건 그래. 루카스 앤더슨과 제임스 테일러 조합보다는 타이 존슨, 한수혁 조합이 훨씬 무섭지.”
“디비전 시리즈 가기 전까지는 놈들하고 볼 일이 없으니 일단 눈앞의 오클랜드부터 신경 쓰자고.”
브루스를 비롯한 베테랑들의 말에 나머지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라커로 돌아갔다.
그 말이 맞았다.
어차피 올 시즌 양키스와의 정규 시즌 일정은 모두 끝난 상황.
가을 야구 전까지는 볼 일도 없을 팀에게 굳이 심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선수라면 말이다.
“뭐가 그렇게 복잡한 얼굴이야?”
“아, 타이. 혹시 애덤 머피에 대해서 아는 것 있으면 다 말해줘요.”
“애덤 머피? 그 영감은 왜?”
“아무래도 한번 만나게 될 거 같아서요.”
뜬금없는 한수혁의 말에 타이 존슨의 얼굴에 궁금증이 한가득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