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0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05화(306/412)
#305. 새로운 동료
한 시대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리그를 지배했던 페드로 마르티네스와 랜디 존슨, 그렉 매덕스 같은 선수들이 그렇고, 2000년대 후반부터 10년 이상 최강의 투수로 군림했던 클레이튼 커쇼 등이 그렇다.
2009년 마지막 우승 이후 21년간 고난의 시기를 보냈던 양키스,
그런 양키스에는 앞선 투수들과는 조금 다른, 그러니까 압도적인 실력이 아닌 꾸준함으로 이름을 떨친 선수가 하나 있었다.
성적 자체만 놓고 보면 선배들의 그것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양키스의 마운드를 지켜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
커리어 내 단 한 번도 최고인 적은 없었지만 누적 스탯 하나만큼은 남 부럽지 않게 쌓아올린 양키스의 전 에이스 애덤 머피.
“그러니까… 단장이 부탁했다 이거군. 애덤 머피랑 식사를 하는데 동석해 달라고 말이야.”
“네, 정확히 말하면 애덤, 그 사람이 요청했다더군요.”
“흠, 우리 단장은 무슨 생각인 걸까? 야구공을 놓은 지 반년이 넘은 마흔세 살 먹은 영감을 복귀시키려는 건 아닐 테고… 코치 자리라도 제안하려는 건가? 하긴, 가을에 양키스 놈들을 상대할 때 도움이 되긴 하겠군.”
“어쨌든 타이, 그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좀 말해주세요.”
“아는 거라… 음… 인간적으로는 모르겠고, 야구선수로서 애덤 머피에 대해 평가하라면 딱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군. 탐욕.”
“탐욕? 그런 캐릭터 아니지 않아요? 욕심 부리지 않고 꾸준히 선발 자리를 지킨 선수로 알고 있는데요.”
“하! 웃기는 소리. 그 영감은 내가 만나본 야구선수 중 제일 욕심이 많은 인간이야. 큰 욕심 없이 20년 동안 양키스 마운드를 지켜온 성실맨이라고? 개소리지. 그 영감은 항상 최고가 되려 발버둥쳤어. 그런 모습을 외부로 보이는 게 싫어서 억지로 감춘 것뿐이지.”
“흠.”
“그 영감 공이 5마일만 빨랐다면, 정말 운 좋게도 사이 영 위너라도 한 번 됐다면 아마 어마어마하게 잘난 척을 했을걸? 그게 안 되다 보니 별 거 아닌 척 티를 안 내려 애썼을 뿐이지.”
회귀 전 나는 애덤 머피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빅리그에 콜업된 직후 은퇴해 완전히 사라져버린 선수였으니까.
그런데 타이 존슨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어떤 캐릭터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최고가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대신 스스로를 평범함과 꾸준함의 상징으로 이미지 메이킹 한, 겉보기와는 달리 야심이 강한 타입의 선수.
“어쨌든 잘 해봐. 단장이 식사 자리 동석 요청을 한 걸 보면 그 영감하고 뭔가를 꾸미려는 모양인데… 글쎄, 잘 될지 모르겠네. 워낙 다루기 힘든 인간이라.”
“그런데 타이, 어떻게 그 사람에 대해 그렇게 잘 알아요?”
“그게… 음, 그 영감이 제리 와그너 그 자식하고 친하거든. 올스타전 끝나고 제리 주선으로 술자리를 한 번 가졌는데 말 몇 마디 섞다보니 바로 시비가 붙더라고. 젠장, 진짜 나랑은 안 맞는 인간이었지. 그래서 한 판 붙었지.”
“갑자기?”
“그때는 나도 어렸거든. 욕심이 철철 흘러넘치는 게 보이는데 자꾸 아닌 척하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몇 마디 했더니 바로 주먹이 날아오데?”
“호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바로 박살을 내버렸지.”
“표정 보니 그게 아닌 거 같은데, 괜찮으니 솔직히 말해 봐요. 맞았죠?”
“아니라고! 그냥 그 영감이 휘두른 럭키 펀치가 운 좋게…”
“맞았네.”
“하아, 됐고, 아무튼 다음 날 바로 기사가 뜨더라고.”
“뭐라고요?”
“나랑 야구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이 격해져서 주먹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금세 화해했다,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아무튼 우린 화해 안 했어. 그 뒤로 서로 말 한 번 섞어 본 적 없거든.”
오케이, 캐릭터 파악 완료.
나머지는 식사 자리에서 생각하는 걸로.
“그나저나 하야시 저놈 뭘 저렇게 중얼거려?”
“뭐라더라, 음… 맞다. 강해지는 주문이래요.”
“강해지는 주문? 뭐, 일본 토속 신앙 같은 건가?”
“글쎄요?”
라커 안에 뭔가를 올려놓고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오늘의 선발 투수 하야시 렌타로.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던 야마모토 겐이치가 시즌 아웃 된 후 몰라보게 안정을 찾은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라커에 작은 불상 하나를 모시기 시작했다.
솔직히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뭐가 됐든 플레이에 도움만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거겠지.
“자, 라인업이다. 오늘은 리암이 첫 리드오프로 출전하게 됐으니 다들 많이 도와주고.”
“네, 감독님!”
“좋아.”
1번 2루수 리암 랜드먼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7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8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9번 중견수 카일 섀너한
선발투수 하야시 렌타로
어제 경기에서 손가락에 작은 불편을 느낀 데릭이 빠지고 대신 카일 섀너한이 중견수 자리에 투입되었다.
비어버린 리드오프 자리는 2루수 리암 랜드먼이 대신 서게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말린스에서 데려온 리암과 카일, 그리고 칼튼까지.
저 3인방을 선택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확실히 다니엘 단장의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정말 확실하다.
음, 그런 양반이 대체 무슨 일을 꾸미려고 날 불러낸 걸까.
* * *
하야시가 선발 등판한 두 번째 경기에서 우리는 4:3 한 점 차 역전패를 당했다.
8회 말까지 3 대 2로 앞서고 있었지만 마무리로 등판한 댈빈 슈워츠가 볼넷 2개와 안타를 내주며 순식간에 역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시즌 68승 41패, 승률 0.624.
양키스는 그렇다 치고 화이트삭스에도 승률이 밀리며 리그 전체 승률 순위 3위로 밀리고 말았다.
“흠, 그러니까 단장님 말은…….”
“네, 전 이번 하반기 시애틀의 마무리로 애덤 머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기가 끝난 난 곧바로 단장실로 향했다.
다니엘 단장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자신이 있건만,
솔직히 이번에는 좀 놀랐다.
아무리 우리 팀의 마무리 투수 자리가 무주공산이라고 해도 야구공을 놓은 지 반년이 지난 43살 은퇴선수를 데려다가 그 자리를 맡기겠다고?
“다 떠나서… 그게 가능은 한 건가요? 공은 제대로 던질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솔직히 말하면 1차 테스트까지는 통과한 상태입니다.”
“테스트요?”
“네, 포심 구속은 대략 87마일, 지난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 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개인 트레이너까지 고용해서 계속 투구 연습을 한 모양이더라고요. 푹 쉬어서 그런지 자잘한 부상도 다 사라진 상태고, 체력적으로도 반 시즌 정도 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음.”
내 반응이 좀 떨떠름해서 그런지 다니엘이 곧바로 추가 설명을 붙였다.
“애덤 머피가 왜 은퇴 선언을 한지는 아시나요?”
“대충은 압니다. 선수단 정리 차원에서 트레이드 논의가 있었다면서요.”
“맞습니다.”
마이너리그에서 2년을 보낸 후 곧바로 양키스의 선발 투수 자리를 꿰차고 20년 넘는 시간을 한결같이 버텨온 남자가 바로 애덤 머피다.
최고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늘 자신의 몫을 다 해내는 선수였다.
양키스가 리그 최하위에 처박혔을 때도, 그리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총력전을 펼칠 때도, 그는 언제나 선발 투수로서 양키스의 마운드를 지켰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구단의 차가운 태도였다.
루카스 앤더슨, 타이슨 바샴 등 주축 선수들과의 장기계약에 성공한 양키스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암흑기를 끝내고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이 든 선수들이 하나둘 팔려 나갔고, 대신 다른 팀에서 데려온 싱싱한 얼굴들이 그 자리를 채워나갔다.
리빌딩이라는 대명제 앞에서는 20년 넘게 마운드를 지켜온 노장의 이름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양키스에서는 애덤 머피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다.
원클럽맨으로서 명예롭게 은퇴를 하거나, 만약 그것이 싫다면 다른 팀으로의 트레이드를 주선해 주겠다는 선택지.
배신감과 치욕감에 신음하던 애덤 머피는 구단, 그리고 팬들을 향해 이런 말을 남긴 후 은퇴의 길을 선택했다.
‘나는 아직 던질 수 있다. 하지만 구단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니 나도 구차한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
구단에서 제의한 은퇴식조차 거부한 애덤 머피는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말이죠. 그 말이 빈말이 아니더군요. 아직 던질 수 있다는 그 말 말이죠.”
“으음… 정말로 복귀를 생각하고 있던 거군요.”
“맞습니다. 자, 그럼 일단 출발해 볼까요? 제 차로 모시겠습니다, 한수혁 선수.”
결론은 그거였다.
애덤 머피는 반강제로 은퇴를 당했고, 여전히 야구에 대한 미련이 남아 몸을 관리해왔다.
그리고 시애틀에는 불안한 뒷문을 단속해줄 새로운 마무리 투수가 필요하다.
“애덤 머피라… 음.”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차 안, 내가 걱정하는 건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애덤 머피의 실력?
단장의 말처럼 지난 시즌까지의 모습, 그러니까 87마일 내외의 포심에 안정적인 제구력, 그리고 많은 이닝을 던질 수는 없지만 마무리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체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
뒷문이 완전히 뚫려버린 시애틀 입장에서는 꽤나 그럴듯한 카드가 될 것이다.
하지만,
30대 후반도 아니고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
그 나이를 먹고 남은 석 달간의 강행군을 소화하는 게 가능할까?
조금 부족하더라도 현재 팀에 있는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다니엘 단장의 입에서 의미 있는 말이 흘러 나왔다.
“아마 애덤 머피가 이번 시즌 남은 일정 동안 버틸 수 있을지, 그게 걱정되시는 거겠죠. 일단 만나보시죠. 그럼 알게 되실 겁니다.”
* * *
[트레이드 마감 시한 앞두고 마지막 전력 보강에 나선 시애틀 매리너스, 전 뉴욕 양키스 선발투수 애덤 머피 영입] [2029년 9월 마지막 선발 등판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던 애덤 머피,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깜짝 복귀] [매리너스 다니엘 단장 “여러 차례의 만남을 통해 애덤 머피의 확고한 의지를 읽었다. 그는 우리 팀 마운드에 부족한 끈끈함과 베테랑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멋진 선수.”] [거의 일 년 가까이 공을 놓은 선수가 다시 빅리그 마운드에 설 수 있을까? 시애틀 유니폼을 입게 된 애덤 머피 “은퇴 선언 후 단 하루도 운동을 쉰 날이 없다. 오히려 작년까지보다 몸 상태가 더 좋다. 날 선택한 시애틀 구단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뛸 생각.”] [너클볼러 마이크 워렌, 좌완 강속구 투수 하야시 렌타로에 이어 베테랑 중의 베테랑 애덤 머피까지 영입한 시애틀 매리너스, 이제 남은 건 기존 투수진과의 조화]애덤 머피의 현역 복귀는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다니엘 단장이 이미 그의 영입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남은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서로에 대한 확신.
어제, 내가 그 식사 자리에 동석하게 된 건 바로 그걸 위한 것이었다.
애덤 머피가 말했다.
20년을 넘게 헌신했음에도 쓰레기처럼 버려졌다고. 자신은 그 치욕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렇기에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시애틀의 새로운 리더에게 자신을 데리고 양키스를 박살 내겠다는 약속을 듣고 싶었다고.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당신이 아니더라도 양키스 그 꼰대들은 내가 무조건 작살낼 겁니다. 아주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거든요.’
그 말에 20년 넘게 양키스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사내의 입에서 시원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했다.
남은 석 달간의 리그 일정, 매일 등판을 대기해야 하는 그 험난한 시간들을 버텨낼 자신이 있냐고.
그의 입에서 또 한 번 커다란 웃음이 흘러 나왔다.
바로 그걸 위해 지난 반년 넘는 시간 동안 죽을힘을 다해 준비해 왔다고.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눴고, 그날 저녁부터 오늘 아침 사이, 선수 계약부터 등록까지, 필요한 모든 과정이 삽시간에 처리되었다.
“어이, 다들 잘 부탁해. 거기, 타이. 그래, 너. 흠, 몇 년 만에 보는 건데 아직도 삐져 있는 건 아니겠지?”
“젠장, 영감. 은퇴했으면 그냥 손주나 볼 것이지. 대체 뭘 하겠다고 복귀까지 하는 건데?”
“뭘 하긴, 양키스 놈들을 박살 내야지.”
“흠, 그건 마음에 드는 소리군. 좋아, 과거는 잊자고, 영감.”
“바라던 바야.”
오클랜드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둔 우리에게 새로운 지원군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