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0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07화(308/412)
#307. 불가능한 일은 없다
최강의 팀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한수혁 같은 선수들로만 26인 로스터를 가득 채우면 그게 바로 최강팀을 만드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잘 알기에 각 구단의 프런트들은 최적의 선수 조합을 찾기 위한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보다 현실적인 선수단을 구성하는 최적의 조합은 무엇일까?
리그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올스타급 선수들로 라인업을 꽉꽉 채우면 되는 걸까?
이건 그나마 현실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실제 그런 짓을 한 구단도 있다.
다른 팀들로부터 악의 제국이라 불리는 뉴욕 양키스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그런 양키스조차 가장 좋은 성적을 낸 건 무작정 비싼 선수들로만 라인업을 채운 시기가 아니었다.
1978년 월드시리즈 재패 이후 줄곧 리그 최고의 선수들을 돈으로 사들이며 왕조 건설에 나섰던 양키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그들이 다시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차지한 건 무려 18년이 지난 1996년이었다.
그 우승을 시작으로 뉴욕 양키스는 1998년과 1999년, 2000년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하며, 1990년대 후반 최강의 왕조를 구축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그런 양키스의 왕조 건설이 돈이 아닌 리빌딩에서 시작되었다는 거다.
우승을 위해 필요한 건 뭐든지 할 수 있다 외치던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선수단에 대한 불법 사찰 혐의 등으로 구단주 자격이 정지되자, 새로 부임한 단장은 이번이 양키스가 리빌딩할 기회라 판단하고, 자체 팜을 통해 육성한 선수들을 대거 1군 로스터에 포함시켰다.
그 신인들의 이름은 데릭 지터, 앤디 페티트, 호르헤 포사다, 마리아노 리베라, 버니 윌리엄스.
바로 1990년대 후반 새로운 양키스 왕조를 건설한 코어4였던 것이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선수를 팔아치우고, 더 비싼 선수를 사오던 구단주가 물러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렇게 코어4 등 신인들에 더해 외부에서 데려온 알짜배기 베테랑들이 힘을 합친 양키스는 1990년대 후반에만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등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징계에서 풀려난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돌아왔고, 그는 다시 알렉스 로드리게스, 케빈 브라운, 랜디 존슨, 하비에르 바스케스 같은 빅네임들을 비롯해 일본 선수인 마쓰이 히데키, 이가와 게이 등을 무차별 영입하며 돈지랄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후 양키스는 2030년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이런 역사가 시사하는 교훈은 아주 명확하다.
왕조 건설을 위해 필요한 건 단순히 비싼 선수가 아닌, 적제적소에 필요한 선수들을 영입해 신구 조화를 이루는 게 필요하다는 것.
그런 면에서 애덤 머피를 영입한 시애틀의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
뉴욕 양키스의 왕조를 건설했던 코어4와 비견될 만한 시애틀의 젊은 선수단.
지금까지는 이들을 이끌어줄 베테랑들이 없었다.
아무리 한수혁이 정신적으로는 베테랑이라고 해도 빅리그 1년 차이기에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 본인 스스로 선수단을 적극적으로 이끌 생각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타이 존슨이 더해진 타자 쪽에서는 어느 정도 신구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투수 쪽의 사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빅리그 경력 3년 차 미만의 애송이들이 득실거리는 가운데 그나마 경험이 가장 많은 라이언은 전체 선수단을 돌봐야 하는 주장이었고, 다저스로부터 영입한 베테랑 마이크 워렌은 다른 투수들과 투구 매커니즘이 완전히 다른 너클볼러였다. 게다가 그는 너클볼러로의 변신을 위해 다른 선수들을 돌볼 여유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시애틀 투수진에도 베테랑의 품격이 더해지게 되었다.
그것도 그냥 베테랑이 아니라 리그 최강팀 뉴욕 양키스에서만 22년을 뛴, 베테랑 중의 베테랑 말이다.
[11회까지 간 시애틀 매리너스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간의 경기, 연장 11회말 한수혁의 끝내기 2루타로 시애틀이 7 대 6으로 승리] [9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한 양키스의 전 에이스 애덤 머피, 2.2이닝 무실점으로 시애틀 입단 후 첫 구원승 신고] [결정적인 위기에서 빛을 발한 노련한 볼 배합, 전문가들 “베테랑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던 멋진 투구”]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반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한 애덤 머피 “내 목표는 오로지 하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월드시리즈 우승이 아니냐고 묻자 “그건 나중 일이다. 일단 아메리칸 리그 정상에 서는 게 먼저다.”] [매리너스 벤자민 레이놀즈 감독 “마무리 투수가 동점을 허용한 상황에서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카드가 애덤이라 생각했고 그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멋진 선수를 영입한 프런트에 감사 인사를 보내고 싶다.”] [매리너스 다니엘 미첼 단장 “애덤 머피를 영입하기 위해 지난 몇 달간 지속적인 만남을 가졌다. 그는 우리 팀 투수진에 부족했던 베테랑의 경험을 전해줄 적임자이자 이번 시즌 주전 마무리 투수다.”] [애덤 머피의 투구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한수혁 “마무리 투수가 꼭 강속구를 던져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삼진으로 잡든 땅볼로 잡든, 아웃을 잡는 건 마찬가지다. 애덤의 입단을 환영한다.”]└ 솔직히 말하지. 구단에서 43살 먹은 은퇴 선수를 영입한다고 했을 때 단장 놈이 돌아버린 거 아닌가 의심했었어. 젠장, 인정해. 나는 머저리야.
└ 댈빈도 그렇고, 조나도 그렇고 우리 팀 계투진들은 공은 빠르지만 너무 어려. 급한 상황이 오면 허둥지둥거리는 게 내 눈에 보일 정도로. 그런 면에서 22년 동안 빅리그에서 구른 애덤의 영입은 좋은 자극제가 될 거야.
└ 어제 1사 만루에서 봤지? 그런 상황에서 90마일도 안 되는 포심으로 삼진을 잡아낸 건 애덤이라 가능한 거야. 제기랄, 예전에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그렇게 꼴 보기 싫더니.
└ 어쨌든 이 팀에 가장 부족했던 계투진이 추가됐어. 선발투수 하야시에 내야 백업 라파엘, 거기에 애덤까지, 이 정도면 꽤나 만족스러운 영입이야.
└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올해 이 팀이 정말 제대로 돈을 쓰는 법을 깨달았다는 거야. 큰돈을 들이지 않고 영입한 선수들이 제각각 자기 몫을 하고 있지
└ 두말할 필요도 없어. 그거 알아? 올 시즌 한수혁이 최저 연봉을 받고 뛰고 있다는 걸 말이야. 우린 수천만 달러를 줘도 못 구할 선수를 100만 달러도 안 되는 돈에 쓰고 있는 거라고.
└ 맙소사, 그렇게 말하니 확실히 이해가 되는군. 하느님 감사합니다.
* * *
‘음, 몸 쪽 공에는 이런 식으로…….’
경기가 없는 월요일 오전, 특급 호텔 수준의 시설을 자랑하는 서울 워리어스 2군 선수단 숙소 침대에서 최재민이 영상 하나를 수십 번째 반복 재생해 보고 있다.
그것은 얼마 전 최재민의 요청에 따라 구단 측에서 편집해준 올 시즌 한수혁의 타격 영상이었다.
‘이거… 따라할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 최초의 청각장애 프로야구선수를 꿈꾸던 최재민은 한수혁을 만나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육성선수를 거쳐 2군 선수로, 그리고 다시 1군 선수로,
어느덧 프로 3년 차가 된 그는 올 시즌 워리어스의 전문 대타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동기이면서 워리어스의 선발 한 자리를 꿰찬 최마루, 그리고 착실하게 주전포수 수업을 받고 있는 박동석과 비교하면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최재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최재민이 여기까지 오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단연 한수혁.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 선생과 제자로 만난 그는 워리어스 육성선수 테스트를 치를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뿐만 아니라 입단 후 최재민에게 쏟아졌던 불편한 시선을 지우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렇기에 최재민에게 한수혁은 선배가 아닌 선생님에 가까운 존재였다.
‘테이크백이 많이 간결해지셨네.’
영상을 멈춰 세운 최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수혁의 타격 자세를 따라해 보았다.
최근 최재민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몸 쪽 공에 대한 대처였다.
처음 그가 프로야구 타석에 들어섰을 때 투수들이 보낸 시선은 거의 비슷비슷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반쪽짜리 선수.
아이러니한 건 그런 선입견이 최재민의 프로 적응에 도움이 되었다는 거다.
그에 대한 감정과는 상관없이 상대 투수들은 굳이 최재민의 몸 쪽을 공략하려 하지 않았다. 자칫 그 코스로 공을 던지다가 최재민을 맞히기라도 할까, 그래서 여론의 공격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공이 바깥쪽 코스로 형성되었고, 그곳은 최재민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코스였다.
하지만,
[전반기 80타석 만에 6개의 홈런포 날린 최재민, 대타로만 제한하기에는 아까운 타격 실력 선보여] [워리어스 이대준 감독 “장기적으로 1루, 혹은 코너 외야 수비수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제한된 타격 기회에서 눈에 띌 정도의 실적을 올리게 되자 상대 투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최재민이 어려움을 느꼈던 몸 쪽 코스로 들어오는 공의 비율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또한 공포스럽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공간 속에서 갑자기 몸 쪽으로 날아드는 하얀 공에 최재민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대타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회수가 잦아지고, 점차 자신이 아닌 다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경우가 늘어났다.
최재민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련일지도 모른다고.
휴식일을 이용해 하루 종일 한수혁의 타격 영상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작은 단서 하나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올 시즌 한수혁은 몸 쪽으로 날아드는 105마일 포심을 상대하기 위해 타격 매커니즘에 많은 변화를 가했다.
하지만 최재민이 주목한 건 그 매커니즘 쪽이 아니었다.
헬멧 끝에 거의 스칠 듯 날아드는 빠른 공, 무릎에 맞을 듯이 날아오다 존 안으로 꺾여 들어가는 변형 패스트볼.
그런 공에도 꿈쩍 않는, 마치 땅에 단단하게 박힌 거목처럼 느껴지는 한수혁의 타격 자세였다.
그건 단순히 기술이 뛰어나서 될 일이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수혁 역시 공포스러울 것이다. 저런 공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공포에 식은땀을 흘리기도 할 것이다.
그 역시 인간이니 말이다.
하지만 한수혁은 물러나지 않았다.
상대 투수의 위협구에도 꿈쩍하지 않았고, 결국 기가 질린 투수들이 몸 쪽 승부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역시 수혁이 형은…….’
최재민은 깨달았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닌 용기라는 것.
그간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부족한 자신을 납득해줬던, 그러니까 스스로에 대한 관용과 동정을 버려야 한다는 걸.
딸깍
동영상을 끈 최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장으로 향했다.
“야, 최재민, 나왔냐? 아까 부르려다가 뭔가 심각한 거 같아서 그냥 우리끼리 나왔는데.”
“맞아. 이 정신머리 없는 놈이 너 데리고 가야 한다는 거 내가 말렸지. 잘했지?”
그곳에는 자신의 동기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최마루와 박동석이 먼저 나와 있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2군 숙소에 머물며 틈이 날 때마다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워리어스의 차세대 스타들.
최재민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수·혁·이·형·보·고·싶·다·아·주·많·이’
동기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최재민이 배팅 게이지로 들어섰다.
그의 머릿속에 자신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존경하는 어떤 야구선수의 말이 떠올랐다.
[One must think that nothing is impossible until there is no hope.Obstacles are not more than a stage we must pass in order to succeed.]
모든 희망이 없어질 때까지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장애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관문에 지나지 않다.
선천적으로 오른팔이 팔목 부분까지밖에 없는, 운동선수는 커녕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한 장애를 안고 태어났으면서도 에인절스와 양키스, 화이트 삭스 등을 거치며 노히트노런이라는 대기록까지 달성했던 투수,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가 남긴 말이 최재민의 가슴 속에서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