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1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10화(311/412)
#310. 그와 한 시대를
[내가 야구를 즐기는 한 기록은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다.]시애틀 매리너스를 넘어,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불렸던, 그리고 한수혁의 어린 시절 우상 중 하나였던 켄 그리피 주니어가 남긴 말이다.
2030년의 7월이 끝나고 8월이 찾아왔다.
한수혁의 빅리그 두 번째 데뷔 시즌도 이제 2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3차전에서 한수혁의 도루 2개와 시즌 52호 홈런을 비롯 선수들의 고른 활약으로 대승을 거둔 시애틀은 시즌 성적 70승 43패, 승률 0.619라는 좋은 성적으로 서부 지구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시즌 성적 76승 35패, 승률 0.684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아메리칸 리그 전체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는 뉴욕 양키스, 그리고 같은 지구 팀들을 호구로 잡아 72승 39패, 승률 0.649를 기록 중인 시카고 화이트삭스.
그 두 팀에게서 디비전 시리즈 직행 티켓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아직 한 발이 모자랐다.
[뜸해진 홈런포, 잦아지는 실점, 메이저리그 투타 신기록에 도전 중인 한수혁, 하반기 시작과 함께 흔들리는 그의 입지] [남은 49경기 동안 22개의 홈런을 날려야 하는 한수혁, 최근 타격 페이스를 기준으로 하면 10개 정도 추가에 그칠 듯] [19경기에 선발 등판해 148이닝 8실점, 평균 자책점 0.49를 기록 중인 한수혁, 하지만 최근 4경기 연속 실점으로 불안한 페이스 이어가]한편 시애틀의 팀 성적 외에도 투타 양면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신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수혁에 대한 불안한 시선도 존재했다.
전반기 2경기당 1개꼴로 터졌던 홈런이 조금 뜸해졌고, 선발로 등판해 실점하는 경우가 잦아진다는 몇몇 기자들의 선동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시애틀을 비롯 한수혁을 응원하는 야구팬들로서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는 완벽한 헛소리였다.
└ 저 기사를 쓴 기자 놈 주소 아는 놈 있으면 올려봐. 내가 샷건으로 대가리를 날려버릴 테니.
└ 한수혁의 페이스는 그야말로 역대급이야. 젠장, 시즌을 두 달 넘긴 상황에서 여전히 평균 자책점이 0점대야. 게다가 타율 역시 4할 1푼대를 기록하고 있지. 이런 선수를 너희 멋대로 건들지 마. 이 빌어먹을 기자 새끼들아.
└ 그의 홈런 페이스가 떨어진 건 하반기 들어서 승부를 피하려는 투수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야. 지난 텍사스 3연전에서 그에게 쏟아진 고의사구를 봐. 중요한 건 그거야. 결국 한수혁이 그 고의사구 작전을 힘으로 박살 냈다는 거지.
└ 맞아. 홈런은 다시 늘어날 거야. 난 전혀 걱정 안 해.
└ 평균 자책점 기록도 마찬가지야. 젠장, 지난 4번의 선발 등판에서 그는 8이닝 1실점, 9이닝 2실점, 7이닝 1실점, 그리고 8이닝 1실점을 기록했지. 이게 부진한 거라고? 기자 놈들이 머리에 총을 맞은 건가?
└ 설사 0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지 못한다 해도 그는 이미 역대급 투수야. 투구 이닝 때문에 사이 영 위너가 되지 못한다 해도 내 마음 속에 최고 투수는 한수혁일 거라고.
└ 내가 정말 감동한 건 그가 언제나 개인 기록보다는 팀의 승리를 위해 플레이한다는 거야.
└ 맞아. 그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켄 그리피 주니어라는 거 다들 알지? 지난 인터뷰에서 한수혁이 말했어. 켄 그리피 주니어의 말처럼 야구를 즐기면 기록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 생각한다고.
└ 젠장, 정말 완벽한 선수군. 시애틀 너희들이 부러워. 우리 팀 간판스타라는 놈은 어제 경기에서 지고도 밤에 SNS에 파티 사진을 올렸다가 감독하고 싸우고 있더군.
└ 메츠 팬인가 보군. 쯧쯧, 그냥 양키스로 갈아타지 그래? 그럼 이기기라도 할 텐데 말이야.
└ 너무 완벽하게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할 수가 없군. 나한테 메츠라는 존재를 알려준 내 할아버지를 원망하는 수밖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한수혁에게 지지를 보내는 시애틀 팬들, 그리고 한수혁으로 인해 야구에 흥미를 가지게 된 뉴비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애틀은 다음 일정에 돌입했다.
8월의 첫째 주, 시애틀로 날아온 건 류한결과 이찬호가 속해 있는 LA에인절스였다.
* * *
“식사? 정말? 식사 초대를 하겠다고? 우리를?”
– 네, 부담되시면 말고요.
“아녀, 아녀, 부담은 무슨, 너무 황송해서 그러지.”
– 황송은 무슨, 누가 들으면 제가 이상한 놈인지 알겠어요.
“너 이상한 놈 맞어.”
– 흠.
“흐흐, 농담이고 아무튼 고마워, 동생. 찬호한테는 내가 전달할게.”
– 네, 그럼 이따 경기 끝나고 봐요.
“아, 맞다. 혹시나 이번 식사 초대에 이상한 옵션이 걸리고 그런 건 아니겠지? 볼넷을 주면 소고기가 돼지고기로 바뀐다거나…….”
– 흠.
2030년 아메리칸 리그의 가을야구 판도는 상당히 복잡했다.
동부 지구의 뉴욕 양키스, 중부 지구의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서서히 지구 우승을 확정 짓고 있는 가운데 서부 지구에서는 시애틀이 오클랜드의 추격을 뿌리치며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우승팀을 제외하고 승률이 가장 높은 세 팀에게 주어지는 와일드카드의 경우 동부 지구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가장 유력한 주자로 꼽혔고, 서부지구의 오클랜드 역시 최소 와일드카드 확보는 가능하지 않겠냐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문제는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나머지 와일드카드 한 장이었다.
중부지구에서 화이트삭스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가운데 동부지구와 서부지구의 2, 3위 팀들이 남은 한 장의 와일드카드를 차지하기 위한 총력전을 선언했다.
지난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한수혁에게 고의사구를 남발한 텍사스의 시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어쨌든, 오늘 시애틀과 상대하게 될 LA에인절스 역시 아직까지는 와일드카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시즌 초반 2선발로 시작해 어느새 1선발이 되어버린 류한결을 앞세워 필승을 다짐하고 있는 에인절스.
그 에인절스 라커룸 한켠에 나란히 자리를 잡은 한국인 선수 둘이 희희낙락하며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
“야, 찬호야. 이따 우리 수혁이네 집에 뭐 좀 사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가요? 흠, 몸만 오라고 했다면서요.”
“그거야 그냥 하는 말이고, 이게 말이여. 세계 최초여, 최초.”
“뭐가요?”
“한수혁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은 건 우리가 세계 최초일 거라고. 놀랍지 않냐?”
포스팅을 통해 미국으로 진출한 한수혁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고급 주택을 대여해 주겠다는 시애틀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비로 주택을 하나 사들였다.
시애틀 외곽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한수혁의 자택,
당연한 말이지만 그곳에 드나들 수 있는 건 공식적으로 여자 친구로 인정받은 민예린 정도가 유일했다.
구단의 동료, 관계자 등 그 누구도 한수혁의 미국 집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상황.
물론 한수혁이 그걸 의도했다기보다는 그저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건만, 사람들의 입에서 이상한 소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수혁이 대인기피증을 갖고 있다더라, 아니다, 매일 여자들을 불러 파티를 한다더라, 심지어 저택 정원에서 대마초를 재배하느라 아무도 들이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소리를 들은 민예린이 한수혁에게 말했다.
‘오빠, 혹시 집에 동료들이나 누구 데려올 분들 없어요? 제가 음식 맛있게 해서 대접할게요.’
‘식사 초대를 하라고? 흠, 글쎄, 뭐 부르면 올 사람이야 있겠지만…….’
있는 정도가 아니다.
한수혁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도 말을 못 할 뿐, 만약 그가 부른다면 지금 당장 뛰어올 선수들이 한 트럭이었다. 그저 한수혁만이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민예린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한수혁이 이렇게 대답했다.
‘흠, 그럼 내일 경기 끝나고 한결이 형이랑 찬호 형이나 초대해볼까? 그 사람들 한국 집밥 먹은 지 꽤 됐을 텐데.’
‘바로 그거예요. 다음에는 팀 동료들도 다함께 초대하는 걸로 하고 내일은 일단 그 두 분부터 모셔요. 제가 음식 준비는 알아서 해 놓을 테니 오빠는 경기 끝나고 두 사람 데리고 오시면 돼요.’
‘거창하게 준비하지 마. 그 형들 식성 엄청 좋거든. 그냥 고기만 좀 구워주면 알아서 먹을 거야.’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렇게 민예린이 한수혁과 한국 선수들을 위한 음식 준비로 한창인 가운데, 시애틀 매리너스와 LA 에인절스 간의 시즌 8차전이 시작되었다.
* * *
‘괴물도 저런 괴물이 없구먼.’
시애틀의 선발투수 하야시 렌타로가 1회초 에인절스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가운데 1회 말 시애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오늘 에인절스의 마운드를 지키게 된 한국인 에이스 류한결이 전광판에 새겨진 한수혁의 성적을 보며 입맛을 쩝 다셨다.
시즌을 두 달여 남긴 상황에서 0.420에 육박하는 타율과 52개의 홈런, 그리고 경기수보다 많은 타점까지.
한수혁의 프로 데뷔 시즌이자 류한결의 한국무대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7년,
저 괴물은 타율 0.432에 홈런 61개, 162타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기록하며 전년도 꼴찌팀 워리어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KBO에서 MLB로 무대를 옮긴 괴물은 그때 못지않은,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때보다 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를 폭격하고 있다.
그런 한수혁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생각에 자부심이 들기도 하지만, 선수 대 선수로서 그를 볼 때면 허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류한결 역시 어린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성장해온, 비록 막장 소속팀 때문에 한국시리즈 우승 경험은 없지만 한수혁 등장 이전까지 리그 최고 투수 소리를 듣고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하지만 저놈을 보면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천재? 엘리트?
자신이 천재라면 한수혁은 뭘까?
정말 누구의 말처럼 야구의 신이라도 되는 걸까?
“플레이!”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7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8번 2루수 리암 랜드먼
9번 유격수 조위 올리버
선발투수 하야시 렌타로
어제 톱타자로 선발 출장했던 한수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몇몇 전문가들은 오늘도 시애틀이 한수혁을 리드오프로 내세울 거라 전망했지만 류한결만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수혁도 알고 자신도 알고, 이 업계의 모든 사람들이 안다.
류한결이 얼마나 지독한 승부 근성을 갖고 있는 선수인지.
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한수혁을 피해갈 수 있지만 그것조차 투수 자신이 납득하고 결정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만약 벤치의 지시에 따라 자동고의사구가 요청될 경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류한결이 오히려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KBO에서 뛰던 시절, 류한결은 9개 구단 에이스 중 한수혁에게 가장 많은 볼넷을 내준 투수였으며, 동시에 단 한 번도 자동고의사구를 허용하지 않은 유일한 투수였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에 거의 걸치듯이 들어가는 묵직한 포심.
KBO 시절보다 구속은 조금 떨어졌지만 제구력 면에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공을 데릭이 그냥 흘려보냈다.
한수혁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접어둔다.
당장 눈앞에 있는 데릭 플레밍 역시 최근 7경기에서 4할 중반대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는 리그 최고 수준의 톱타자다.
슈웅
파앙
“볼.”
적당한 컨택 능력과 적당한 선구안, 적당한 파워, 거기에 발 빠르고 수비까지 좋은, 어떤 면에서 보면 자신의 팀 동료인 이찬호와 상당히 비슷한 스타일의 타자.
그렇기에 류한결은 이런 타자를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슈웅
파앙
“볼.”
바깥쪽 존으로 들어오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타자가 용케 참아냈다.
하지만 류한결은 보았다. 타자의 어깨가 움찔하는 것을.
전반기까지의 데릭 플레밍이었다면 분명 참지 못하고 배트가 나왔을 것이다. 최고조에 달한 컨디션이 그걸 강제로 멈춰 세웠을 뿐이다.
그렇기에 한 번 더 그곳을 노린다.
슈웅
부웅
“스윙!”
역시나,
같은 코스, 같은 구종의 공에 타자의 배트가 이끌려 나왔다.
헛스윙을 한 데릭이 분한 표정으로 류한결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방금 그 공으로 인해 승부의 저울추는 투수에게로 기울어졌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같은 코스로 들어가는, 하지만 체인지업이 아닌 포심에 스탠딩 삼진을 당한 데릭 플레밍.
그가 헬멧을 집어던지고 투수를 노려보았다.
타자가 내뿜는 콧김이 마운드에까지 전해지는 것 같지만,
상관없다.
이미 류한결의 관심은 데릭에게서 멀어진 상태였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대기 타석에서 걸어 나오며 좌우로 목을 꺾고 있는 시애틀, 아니, 야구판의 괴물 한수혁.
그와 눈이 마주친 류한결이 자기도 모르게 씨익 웃음을 지었다.
무섭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너무 즐겁다.
저런 대단한 타자와 승부를 할 수 있어서,
어쩌면 야구 역사상 다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를 선수와 한 시대를 살아갈 수 있어서.